얼마 전 생성형 AI 서비스를 해지하려다 실패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해지하려다 마음이 바뀌었다. 3개월 넘게 매달 2만 원씩 내면서 사용하던 서비스였는데, 문득 비용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니 그 서비스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었다. A그래서 사이트 어딘가 꽁꽁 숨겨둔 해지 페이지에 접속했다.
“고객님의 구독 해지 신청을 마무리 하기 전에 아래 특별 혜택을 확인해주세요.”
화면에 뜬 메시지는 마치 오랜 연인과 이별하려는 사람을 붙잡는 것 같은 애틋함이 담겨 있었달까. 나는 잠시 멈칫했다.
“현재 월 2만 원이신데, 2개월간 1만 원으로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추가로 프리미엄 기능도 무료로 제공해드립니다.”
순간 계산기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월 1만 원이면 2개월에 2만 원을 절약할 수 있다. 게다가 프리미엄 기능까지 사용할 수 있다. 해지하려던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결국 나는 2개월 더 사용하기로 했다. 사실 부질없는 계산이다. 2만원을 절약하는 것이 아니라 2만원을 더 쓰는 것이기에.
이런 경험은 나만의 것이 아니다. 요즘 들어 이런 ‘해지 방어’는 하나의 비즈니스 전략으로 자리 잡았다. 인터넷, 휴대폰, 각종 구독 서비스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서비스 기업들이 이 전략을 구사한다. 신규 고객을 유치하는 것보다 기존 고객을 유지하는 것이 비용면에서 훨씬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다른 서비스를 사용하다가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한 달 무료 체험 기간이 끝나고 해지하려고 하자 2개월간 50% 할인된 가격으로 이용할 수 있다고 제안해왔다. 그들은 내가 서비스의 가치를 충분히 경험하지 못했을 거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아니면 이미 서비스에 익숙해진 나의 관성을 계산에 넣었을지도 모른다.
해지 방어는 분명 효과적인 전략이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이런 의문을 가져볼 필요가 있다. 왜 기업들은 충성 고객에게는 이런 혜택을 선제적으로 제공하지 않을까? 왜 떠나려고 할 때만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하는 걸까?
이는 마치 연인 관계와도 비슷하다. 평소에는 당연하게 여기다가 이별의 순간에 이르러서야 상대방의 소중함을 깨닫는 것처럼. 하지만 비즈니스는 연애가 아니다. 감정이 아닌 합리적인 판단이 필요한 영역이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보면 해지 방어는 양날의 검이다. 한편으로는 더 나은 조건으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불필요한 소비를 지속하게 만드는 함정이 될 수도 있다. 내가 정말 필요해서 계속 이용하는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할인된 가격에 현혹된 것인지 냉철하게 판단해야 한다.
더구나 이런 해지 방어 전략은 소비자들 사이의 불평등을 초래할 수 있다. 해지를 고민하고 실제로 시도하는 적극적인 소비자들은 더 나은 조건을 얻게 되지만, 묵묵히 서비스를 이용하는 충성 고객들은 상대적으로 불리한 조건에 머물게 된다.
기업들도 이제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해지를 시도하는 순간에만 파격적인 혜택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이용 기간과 패턴에 따라 자동으로 혜택을 제공하는 방식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2년 이상 꾸준히 이용한 고객에게는 자동으로 요금을 할인해준다든가, 서비스 이용량에 따라 맞춤형 요금제를 제안하는 등의 방식이다.
결국 이 모든 것은 기업과 소비자 간의 신뢰 문제로 귀결된다. 해지 방어라는 임시방편적 전략에 의존하기보다는, 진정한 의미의 고객 감동을 실현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할 때다.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상생이며,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의 토대가 될 것이다.
2개월 후, 나는 다시 AI 서비스 해지를 고민하게 될 것이다. 그때는 어떤 제안을 받게 될까? 아니면 그전에 기업이 먼저 나에게 더 나은 조건을 제시해올까? 그때까지 서비스의 유용성을 더 확인하게 될 것이다. 그래야 내가 내리는 선택이, 순전히 가격 때문이 아닌 진정한 필요에 의한 것이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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