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어란 흥미로운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무엇을 궁금해하는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무엇을 사랑하는지를 가감 없이 보여주는 거울이다. 구글이 발표한 2024년 검색어 트렌드를 보고 있자니, 한 해 동안 우리가 걸어온 길이 선명하게 그려진다. 마치 거대한 집단의식의 지도를 펼쳐 보는 것 같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스포츠다. 글로벌 검색어 상위권을 ‘코파 아메리카’,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십’, ‘ICC T20 월드컵’이 장악했다. 인류의 축제는 이제 종교의식이나 국가 행사가 아닌 스포츠 경기장에서 벌어진다. 경기장은 현대인의 새로운 성전이 되었다. 승패의 향방에 수많은 사람들이 웃고 울고, 그들은 마치 신의 계시를 기다리듯 경기 결과를 기다린다.
한국의 검색어는 좀 더 복잡한 양상을 보인다. ‘올림픽/패럴림픽’이 1위를 차지했지만, 바로 뒤를 이어 ‘계엄령’이 2위에 올랐다. 이 극명한 대비가 흥미롭다. 하나는 평화와 화합의 상징이고, 다른 하나는 위기와 통제의 상징이다. 우리 사회가 가진 양가성이 이토록 적나라하게 드러난 적이 있었을까. 3위는 ‘주택 청약’이다. 부동산이라는 영원한 화두는 올해도 여전했다.
K-콘텐츠의 영향력은 더욱 견고해졌다. ‘눈물의 여왕’과 ‘내 남편과 결혼해 줘’가 글로벌 TV 시리즈 순위에 이름을 올렸다. 특히 ‘눈물의 여왕’은 국내 K-콘텐츠 순위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한국에서 사랑받은 콘텐츠가 세계에서도 사랑받는다는 사실은 더 이상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한류는 이제 ‘현상’이 아닌 ‘일상’이 되었다. 요리 예능, 로맨스 코미디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K-콘텐츠의 스펙트럼도 인상적이다.
음악 분야에서도 K-pop의 존재감은 여전했다. 로제와 브루노 마스의 ‘APT.’가 글로벌 순위 2위에 올랐고, 국내에서는 ‘밤양갱’이 2위를 차지했다. 에스파, QWER, 아일릿(ILLIT) 등 아이돌 그룹의 노래가 순위의 대부분을 차지한 것을 보면, K-pop의 주도권은 여전히 아이돌 그룹들이 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올해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AI 툴 분야다. ‘Pencilizing(펜슬라이징)’과 ‘뤼튼’이 1, 2위를 차지했고, ‘Chat GPT’가 3위, ‘퍼플렉시티’가 4위, ‘제타’가 5위를 기록했다. 이 다섯 개의 검색어는 우리 사회가 AI를 바라보는 시선의 변화를 보여준다. 우리는 이제 AI를 두려워하거나 경계하는 대신,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AI는 더 이상 SF 영화 속 존재가 아닌, 일상의 도구가 되어가고 있다.
인물 검색어도 흥미롭다. 글로벌 순위에서는 미국 대선의 영향으로 ‘도널드 트럼프’가 1위를, ‘카멀라 해리스’와 ‘조 바이든’이 각각 3위와 5위를 차지했다. 2위는 영국 왕실의 ‘웨일스 공비 캐서린’이었다. 정치와 왕실이라는 전통적인 권력이 여전히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음을 보여준다. 반면 국내 인물 순위에서는 민희진, 정우성, 김수미 등 엔터테인먼트 인사들이 상위권을 차지했다. 주목할 만한 것은 한국인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한강이 4위에 올랐다는 점이다. 문학이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문학의 힘을 믿고 있는지도 모른다.
영화 분야에서는 국내외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이 관심을 받았다. 특히 국내 순위에 오른 10개 작품 중 6개가 한국 영화라는 점이 눈에 띈다. ‘파묘’는 디즈니 픽사의 ‘인사이드 아웃 2’를 제치고 국내 1위에 올랐다. 한국 영화의 저력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스포츠 매치 검색에서는 축구의 인기가 단연 돋보였다. 손흥민이 속한 ‘토트넘 홋스퍼 FC 매치’가 1위를,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매치’가 2위를, ‘UEFA 유로 2024’가 3위를 차지했다. ‘삼성 대 기아 KBO 한국 시리즈’도 순위에 올라 야구에 대한 관심도 여전했음을 보여줬다.
레시피 검색어는 우리의 일상적 관심사를 가장 잘 보여주는 지표다. ‘어남선생(류수영) 레시피’, ‘밤 티라미수(흑백요리사)’, ‘두끼(떡볶이) 레시피’, ‘나박김치’ 등이 상위권에 올랐다. 한식이 다수를 차지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K-푸드의 영향력이 국내에서도 건재하다는 증거일 것이다.
도서 분야에서는 소설, 요리 레시피북, SF 등 다양한 장르의 책들이 순위에 올랐다. 특히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1위를 차지했다는 점이 의미심장하다. 노벨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우리는 비로소 우리 문학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검색어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 시대의 가장 정직한 자화상이다. 2024년, 우리는 여전히 스포츠를 사랑했고, K-콘텐츠를 즐겼으며, AI와 친해지려 노력했다. 때로는 불안해했고, 때로는 희망을 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검색창에 고스란히 남았다. 우리는 검색어를 통해 우리 자신을 발견한다. 그것은 마치 디지털 시대의 고고학 발굴처럼, 우리 시대의 욕망과 두려움, 희망을 캐내는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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