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실패라는 이름의 전환점’ 세 창업가의 피봇팅 스토리”

실패했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있다. 그때 우리는 보통 두 가지 선택을 한다. 포기하거나, 다시 시작하거나. 스타트업 생태계에서는 후자를 ‘피봇팅(Pivoting)’이라고 부른다. 말 그대로 방향을 틀어 새로운 길을 찾는 것이다.

나는 종종 창업가들을 만난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지금의 성공적인 비즈니스 모델도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대부분 실패와 좌절을 겪었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통찰을 얻어 방향을 전환했다. 흥미로운 것은 그들이 실패를 실패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스푼랩스의 최혁재 대표는 처음 휴대폰 배터리 공유 사업으로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좋은 아이디어처럼 보였다. 편의점에 휴대폰을 맡기고 한 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하는 불편함을 해소할 수 있는 솔루션이었으니까. 하지만 삼성이 갤럭시 S6에 일체형 배터리를 탑재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시장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상황을 실패라고 부를 것이다. 하지만 최 대표는 달랐다. 그는 이 경험을 통해 새로운 통찰을 얻었다. 사업이 실패하고 힘들었던 시기에 ‘나의 고민을 들어줄 수 있는 이들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여기서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갔다. ‘나처럼 누군가에게 고민을 털어놓고 싶은 사람이 많지 않을까?’ 이것이 오디오 플랫폼 스푼의 시작이었다.

삼성전자 출신의 또 다른 창업가의 이야기도 주목할 만하다. 에딧메이트의 최병익 대표는 세 번의 피봇팅 끝에 성공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찾았다. 처음에는 인공지능 음악 앱 ‘험온’으로 시작했다. 200만 회 다운로드를 기록했고, 한국팀 최초로 세계 3대 음악 박람회 ‘미뎀랩’에서 우승하기도 했다. 실리콘밸리 액셀러레이터의 선발을 받아 본사를 미국으로 옮기는 등 겉으로는 승승장구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최 대표는 이렇게 회고한다. “회사가 잘 나가는 것처럼 보이는 것과 실제로 회사가 잘 나가는 것은 큰 괴리가 있었다. 험온은 고객이 원했던 서비스였고 다운로드 수도 많았지만, 고객이 지갑을 여는 서비스는 아니었다.”

두 번째 시도는 인공지능 BGM 서비스였다. 소비자가 음악 창작에는 돈을 쓰지 않지만, BGM에는 돈을 쓸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이 역시 실패로 돌아갔다. 사람들은 인공지능이 만든 음악보다 사람이 만든 음악에 더 가치를 두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는 중요한 깨달음을 얻는다. 인공지능을 개발하면서 역설적으로 ‘인간의 가치’를 발견한 것이다. 특히 창작의 영역에서는 여전히 사람이 더 뛰어나다는 점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의 세 번째 도전은 ‘인간지능’ 기반의 서비스였다. 영상 편집 플랫폼 ‘에딧메이트’가 바로 그것이다.

제주의 한 스타트업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다자요’의 남성준 대표는 처음 숙소를 추천하고 중개하는 플랫폼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시장은 이미 포화상태였다. 대형 플랫폼들이 장악하고 있었고, 차별화된 경쟁력을 만들어내기가 쉽지 않았다.

그때 그는 제주의 한적한 마을을 산책하다가 무언가를 발견했다. 폐가가 많다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를 문제로만 볼 것이다. 하지만 남 대표는 다르게 생각했다. ‘제주다움을 느낄 수 있는 마을에 빈집이 이렇게 많다니. 이 빈집이 관광객을 위한 숙박시설로 이용된다면 빈집 소유주와 여행객들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을 텐데!’

이것이 ‘빈집 프로젝트’의 시작이었다. 단순한 숙박 중개 플랫폼이 아닌,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여행객들에게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는 서비스로 방향을 전환한 것이다. 이는 단순한 피봇팅 이상의 의미를 가졌다. 지역 재생이라는 사회적 가치까지 창출하게 된 것이다.

왜 어떤 스타트업은 실패 후에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것일까? 그들이 가진 특별한 능력이 있을까? 내가 만난 창업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렇지는 않다. 다만 그들은 실패를 바라보는 관점이 조금 달랐다. 실패를 끝이 아닌 전환점으로 본 것이다.

사실 우리 삶도 크게 다르지 않다. 매 순간 우리는 선택의 갈림길에 서있다. 어떤 선택은 실패로 이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 실패일까? 어쩌면 그것은 새로운 시작을 위한 전환점일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그 순간을 어떻게 바라보느냐다.

스타트업 생태계에서는 성공한 스타트업의 2/3가 초기 계획을 수정했다고 한다. 즉, 대부분의 성공한 기업들이 피봇팅을 경험했다는 것이다. 이는 실패가 얼마나 자연스러운 과정인지를 보여준다. 실패는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일 수 있다.

우리는 종종 실패를 두려워한다. 하지만 실패야말로 새로운 시작의 기회일 수 있다. 다만 그것을 실패로 받아들이느냐, 아니면 전환점으로 받아들이느냐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다. 적어도 내가 만난 창업가들은 후자를 선택했고, 그것이 그들을 지금의 자리에 있게 했다.

기자 / 제 눈에 스타트업 관계자들은 연예인입니다. 그들의 오늘을 기록합니다. 가끔 해외 취재도 가고 서비스 리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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