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공시 의무화라는 이름의 잔잔한 파도가 글로벌 기업 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마치 오래된 습관이 새로운 규칙으로 바뀌는 과정처럼, 이 변화는 불가피하면서도 불편하다.
코딧(CODIT)이 발간한 이슈페이퍼에 따르면, 유럽연합(EU)은 가장 앞서나가고 있다. 2025년부터 적용될 기업지속가능성보고지침(CSRD)은 상당히 구체적이다. 매출액 4000만 유로 이상, 자산총액 2000만 유로 이상, 직원 250명 이상 중 두 가지만 충족해도 ESG 공시가 의무화된다. 흥미로운 것은 EU가 자신들의 영토를 넘어선 기업들까지 이 규제의 테두리 안에 포함시켰다는 점이다.
반면 미국의 이야기는 조금 다르다. 증권거래위원회(SEC)가 2024년 3월, 2026년부터 상장기업들의 온실가스 배출량 공시를 의무화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트럼프의 대선 승리 가능성이 커지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9건의 반대 소송이 제기되었고, SEC는 법원의 확정판결을 기다리는 중이다. 마치 잘 짜여진 계획이 갑작스러운 폭우로 미뤄진 것처럼.
한국의 모습은 더욱 복잡하다. 금융위원회는 2025년 상반기 중 대상 기업 범위와 공시정보 등 기준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각자의 입장이 다르다. 여당은 신중하게, 야당은 적극적으로, 기업들은 걱정스럽게, 시민단체는 기대에 차서 이 변화를 바라보고 있다.
특히 기업들의 태도가 흥미롭다. 한국거래소 데이터를 보면, 자발적으로 ESG를 공시하는 상장기업이 2022년 131개사에서 2024년 12월 현재 203개사로 늘었다. 하지만 자산규모 2조원 이상 상장사의 58.4%는 의무화 시기를 2028~2030년으로 미루고 싶어 한다. 마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아직은 준비가 덜 된 것 같다고 말하는 것처럼.
국내 5대 은행의 ESG 투자 현황도 비슷한 맥락이다. 2023년 6월 말 기준으로 전체 운용자산의 9.6%만이 ESG 투자다. 이는 2022년 말의 9.8%보다도 낮아진 수치다. 은행별로는 NH농협은행이 14.2%, 신한 12.7%, 하나 8.3%, 우리 7.2%, KB국민 6.7% 순이다. 마치 발을 담그기 전에 물 온도를 재는 것처럼 조심스럽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들은 네 가지 준비를 해야 한다고 한다. ESG 관리 체계를 구축하고,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수집하며, 이해관계자들과 소통하고, 성과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다. 얼핏 보면 간단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상당히 복잡한 과정이다.
특히 한국은행 지속가능성장실의 보고서는 흥미로운 숫자를 보여준다. 미국 상장 국내기업 13개사와 EU 수출기업 19,337개사가 이 규제의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한다. 마치 멀리 있는 줄 알았던 변화가 생각보다 가까이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같다.
이제 ESG 공시 의무화는 피할 수 없는 흐름이 되었다. 하지만 각국의 속도가 다르고, 기업들의 준비 상태도 제각각이다. EU는 강력하게 밀어붙이고, 미국은 잠시 주춤하고, 한국은 중간 어딘가에서 균형을 찾으려 한다.
마치 오래된 건물을 새로운 기준에 맞춰 리모델링하는 것처럼, 이 변화는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다. 하지만 언젠가는 완성되어야 할 과제다. 특히 EU와 거래하는 기업들은 더욱 서둘러야 한다. 변화의 속도가 가장 빠른 곳이 바로 그곳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새로운 규칙이 만들어지는 순간을 목격하고 있다. 그리고 이 규칙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어가고 있다. 다만 각자의 상황에 맞는 속도로, 각자의 여건에 맞는 방식으로 이 변화를 받아들여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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