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의 마지막 일요일, 방콕을 출발하여 무안국제공항에 착륙하던 제주항공 2216편 비행기가 둔덕과 로컬라이저(방위각 시설)에 충돌하는, 도저히 믿고 싶지 않은 참사가 발생하고 말았습니다.
먼저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이런 대형 사고가 벌어지고 나면 누군가는 해야 하는 것이 사고 수습, 그리고 이에 따른 법률적 책임입니다. 오늘은 사고 이후의 법률관계에 대해 다루어 보았습니다.
- 손해배상의 주체
교통사고가 일어나면, 그 사고에 과실이 있는 주체가 사고로 인하여 다치거나 재산상 손해를 입은 피해자에게 배상을 하여야 합니다. 이것을 민법상 과실책임의 원칙이라고도 부릅니다.
그런데 이번과 같은 항공사고에서는 당사자가 보통 수백명 이상이고, 피해자들과 항공사들의 국적도 다양한데다, 피해 규모도 크고, 항공기 블랙박스를 해독하고 책임 소재를 가리는 데만 시간이 1년 이상 걸리는 경우가 많습니다(그럼에도 명확한 원인을 알아내지 못하기도 합니다). 이에 일반적인 교통사고처럼 과실책임의 원칙만을 고집하면 제대로 된 배상이 이루어지기 어렵습니다.
이 때문에 상법에서는 여객의 사망 또는 신체의 상해가 발생한 사고의 경우 운송인(항공사)은 과실 여부를 불문하고 113,100 SDR(약 2억 1700만원)까지 배상하도록 하고, 청구권자의 요구가 있으면 선급금도 지급하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이는 ‘몬트리올 협약’이라고 불리는 ‘국제항공운송에 있어서의 일부 규칙 통일에 관한 협약’의 규정을 상법에 반영한 것입니다.
실무상으로는 항공사가 가입한 보험사에서 우선 승객 및 유가족들에게 보험금을 지급한 뒤, 이후 책임 여하에 따라 보험사, 항공사, 항공기 제조사, 공항 운영사, 국가 등 당사자들 사이의 내부적인 관계를 정리하게 됩니다. 이번 사고의 경우에도 제주항공은 배상책임에 대해 최대 10억 달러(약 1조 4700억원)의 보험에 가입해 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손해배상의 범위
앞서 본 것처럼 상법과 몬트리올 협약에 따른 배상액 한도(약 2억 1천만원) 내에서 우선적으로 유가족들에 대한 배상이 될 것입니다.
다만 이 액수는 운송인(항공사)에게 과실이 없다고 하더라도 피해자 보호를 위해 일단 운송인이 배상해야 한다는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에 가깝습니다. 따라서 이를 넘는 손해액에 대해서는 결국 원칙으로 돌아가,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지를 따져서 손해배상을 받아야 합니다.
한편, 만약 여행자들이 개별적으로 여행자보험에 가입했다면 이에 따른 보험금은 위와 같은 손해배상과 별도로 받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금액은 이미 납입한 보험료의 대가적 성질을 가지는 것으로서 손익상계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 판례의 입장이기 때문입니다.
- 특별법에 따른 구제
이번과 같이 사회적 이목이 집중되는 사고의 경우 특별법을 제정하여 피해자들에 대해 국가가 책임지고 보상해 주기도 합니다. 이른바 ‘이태원 특별법’, ‘세월호 특별법’, ‘가습기살균제 특별법’ 등이 대표적입니다.
이런 특별법은 말 그대로 개별 사안에 대한 ‘특별’법이기 때문에 법마다 그 내용이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로 조사나 심의위원회의 설치, 국가의 지원금 지급, 피해 사실에 대한 입증책임의 완화 등을 그 내용으로 합니다.
이번 사고의 규모나 사회적 영향을 고려할 때, 국회에서 특별법이 제정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 때는 특별법의 조항들이 민법이나 상법 등 다른 법률 조항에 우선하여 적용되어 보다 적극적인 피해 구제의 역할을 담당하게 됩니다.
- 형사 책임
아직 사고의 원인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형사 책임을 논하는 것은 이릅니다. 다만, 만약 이 사고가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천재지변이 아니라 누군가의 과실이 결합된 인재(人災)로 확인된다면, 사고의 규모를 고려할 때 그 책임이 있는 사람은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특히 2022년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은 공중이용시설 및 공중교통수단의 결함으로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한 경우를 중대시민재해로 분류하고 있는데, 이번 사고의 원인이 항공기 결함이나 공항 시설의 결함으로 발생하였다면 법문상 사업주나 경영책임자는 중대재해처벌법의 적용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이 때문에, 이 형사책임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향후 이 사고의 원인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두고 치열한 공방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최앤리 법률사무소 윤현수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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