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갑게 빛나는 도시 라스베이거스가 다시 한번 세상의 중심이 되었다. 이번엔 카지노의 화려한 네온사인이나 호텔의 분수쇼가 아닌, 인류의 새로운 미래를 보여주는 빛이 도시를 채웠다. CES 2025의 개막과 함께, 도시 전체가 마치 거대한 실험실이 된 듯했다.
7일(현지시간) 개막한 CES 2025는 단순한 전시회가 아니다. 이곳은 기술의 거대한 축제이자, 우리가 앞으로 살아갈 세상의 청사진을 그리는 무대다. 주최 측인 미국 소비자기술협회(CTA)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세계의 이목을 이곳으로 모았다. AI와 디지털헬스, 지속가능 혁신, 차세대 모빌리티, 양자 컴퓨팅까지. 우리의 미래를 좌우할 기술들이 한데 모였다.
“이곳에서 시작된 혁신이 수백만 명의 삶을 바꾸고,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며, 세계 경제의 성장을 이끌 것입니다.”
게리 샤피로 CTA CEO는 담담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기술이 가져올 변화에 대한 강한 확신이 실려 있었다. “CES는 비즈니스가 성사되고, 파트너십이 형성되며, 세상을 변화시킬 아이디어가 탄생하는 곳입니다.” 그의 말에는 자부심이 묻어났다.
킨제이 파브리치오 CTA 회장도 힘을 보탰다. “CES는 기술 혁신을 믿는 전 세계 사람들의 축제입니다.” 그녀는 CES 2025가 단순한 전시회를 넘어 “산업과 세계를 발전시키는 대화를 이끌며 연결을 강화하는 플랫폼”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CTA는 미래를 향한 여러 계획도 발표했다. 디나 가자리안 아우스테르 창업자와 데비 테일러 무어 퀀텀 크런치 CEO가 무대에 올라 퀀텀 월드 콩그레스와의 새로운 협력을 소개했다. CTA의 ‘모두를 위한 혁신 펀드’에 5백만 달러를 추가로 투자한다는 소식도 들려줬다. 2년마다 발표되는 글로벌 혁신 스코어카드도 공개됐다. 마치 세계 국가들의 성적표를 보는 듯했다. 기술 혁신이 꽃필 수 있는 정치적, 경제적, 인구학적 조건을 갖춘 나라들의 면면이 드러났다.
브라이언 코미스키 CTA 시니어 디렉터와 멜리사 해리슨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스 부사장은 ‘주목해야 할 주요 기술 트렌드’를 발표했다. 양자 컴퓨팅, 인간 안보, 에너지 전환 등 우리 삶을 바꿀 기술들이 차례로 소개됐다. 특히 2025년 미국 기술 산업 전망은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었다.
이번 CES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젠슨 황 엔비디아 CEO의 기조연설이었다. 그는 AI가 만들어낸 혁신의 결과물들을 하나씩 꺼내 보였다. 이전 RTX 4090 모델의 성능을 뛰어넘는다는 지포스 RTX 50는 그저 시작일 뿐이었다. 실시간 AI 비서 ‘에이전틱 AI’는 마치 실제 인간처럼 자연스럽게 대화하고 일을 처리했다. 로봇을 위한 생성형 AI 모델 ‘코스모스’는 기계가 어떻게 우리의 세계를 이해하고 움직일지 보여줬다. 토요타와 함께 개발할 자율주행차 계획도 밝혔다. 엔비디아의 드라이브 OS가 탑재될 이 차량은 이미 안전 인증까지 받았다고 한다.
파나소닉 홀딩스의 무대는 또 다른 빛깔이었다. 유키 쿠스미 CEO는 지속가능성과 AI, 미래 세대의 건강을 이야기했다. DJ 스티브 아오키의 현란한 음악과 마블 배우 앤서니 맥키의 등장으로 무대는 화려했지만, 그 안에 담긴 메시지는 무거웠다. 44개 공장을 100% 재생에너지로만 가동하겠다는 약속은 진지했고, 에너지 효율을 높인 HVAC 시스템 ‘오아시스’는 실용적이었다. 블루욘더의 웨인 우시 CSO와 함께 발표한 AI 기반 공급망 관리 방안은 구체적이었다. 디지털 가족 웰니스 플랫폼 ‘우미’는 따뜻했다. 기술과 환경, 그리고 인간의 조화를 그려내는 모습이었다.
5일과 6일에 열린 미디어 데이는 그야말로 기술의 전람회였다. 만달레이 베이의 무대를 19개 글로벌 기업이 채웠다. 삼성전자와 LG전자를 필두로 AMD, 보쉬, HDMI, 하이센스, 인보 스테이션, 존디어까지. 국립 수면 재단, 온메드, 샥즈, 지멘스, 소니도 있었다. 스미토모고무공업, TCL, 톰봇, 토요타, 바리오웰, 지커까지. 6명의 CEO들이 직접 나서서 자사의 미래를 설명했다.
CES 언베일드에서는 더 놀라운 것들이 쏟아졌다. 기린 홀딩스는 전기로 작동하는 소금 스푼을 들고 나왔다. 얼핏 사소해 보이는 이 발명품은 우리의 식탁을 어떻게 바꿀지 모른다. 리버라이브는 줄 없이도 소리를 내는 스마트 기타 C1을 선보였다. 페이스하트의 카디오미러는 거울을 보는 것만으로도 심장 건강을 체크할 수 있게 했다.
특히 눈길을 끈 것은 톰봇의 ‘제니’ 애완동물 로봇이었다. 실제 반려동물처럼 교감하는 이 로봇은, 현대인의 외로움을 달래줄 새로운 친구가 될지도 모른다. 엑스펑의 ‘랜드 항공모함’은 모듈식 운송의 새로운 개념을 제시했다. 이런 혁신 제품들이 200개가 넘게 소개됐다. 각각의 제품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우리의 미래를 그리고 있었다.
우리가 상상했던 미래는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는지도 모른다고. 네바다 사막의 한가운데 있는 이 도시에서, 인류는 다시 한번 미래로 향하는 문을 열고 있다.
라스베이거스의 밤하늘은 여전히 밝다. 이곳에서는 지금, 인류의 다음 장이 쓰여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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