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방 도시들이 축제에 목을 매는 이유가 있다. 도시의 존재감을 알리는 가장 화려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축제는 성공하는데 도시는 여전히 텅 비어있다. 사람들은 왔다가 그냥 가버린다. 무엇이 잘못된 걸까.
데이터 분석 기업 로플랫이 세 개의 지역축제를 들여다 본 자료를 공개했다. 구미의 라면축제, 김천의 김밥축제, 예산의 맥주페스티벌. 언뜻 보면 음식이라는 공통점 말고는 비교할 것도 없어 보이는 이 축제들이 흥미로운 진실을 드러냈다.
예산 맥주페스티벌은 35만 명이라는 압도적인 방문객 수를 기록했다. 서울과 경기도의 젊은이들이 지방 소도시 예산으로 몰려들었다. 외지인 비율이 89.3%에 달했으니, 거의 모든 방문객이 다른 지역에서 온 셈이다. 마치 작은 도시에서 열린 록 페스티벌 같았다. DJ 파티에 맥주가 어우러지고, EDM이 울려 퍼지는 동안 예산은 잠시나마 ‘핫한’ 도시가 되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이들은 축제장 밖으로 거의 나가지 않았다. 맥주를 마시러 왔다가 맥주만 마시고 돌아간 것이다. 교차방문율이 53.7%에 그쳤다는 건, 절반 가까운 사람들이 예산이라는 도시는 보지도 않고 떠났다는 뜻이다. 마치 콘서트장에 왔다가 공연만 보고 가는 것처럼. 도시는 그저 배경일 뿐이었다.
구미는 다른 양상을 보였다. 17만 명이 찾은 라면축제. 예산보다는 적은 숫자지만, 이들은 부지런했다. 77.4%가 축제장을 벗어나 도시를 둘러봤다. 금오랜드도 가고, 금오산도립공원도 가고. 라면 한 그릇에 도시 전체를 맛본 셈이다. 외지인 비율은 53.2%로 낮았지만, 오히려 그게 자연스러워 보인다. 진짜 축제는 그 도시 사람들이 주인공이 되어야 하니까.
가장 흥미로운 건 김천이다. 첫 회 축제임에도 10만 명이 찾았고, 이들 중 89.7%가 도시 곳곳을 누볐다. 직지사에도 가고, 산채 요리도 맛보고. 김천은 ‘김밥천국’이라는 별명을 역으로 활용해 축제를 만들었고, 그 축제는 도시 전체로 사람들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축제와 관광지의 동선이 자연스럽게 이어진 덕분이다. 축제장 주차가 차면 직지사 주차장을 이용하게 했는데, 이게 오히려 사람들을 도시 안으로 끌어들이는 계기가 되었다.
많이 오는 것과 잘 오는 것은 다르다. 방문객 수라는 가시적 성과에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 수십만 명이 와서 술잔만 기울이다 가는 것과, 만 명이 와도 도시의 구석구석을 누비며 그 도시의 매력을 발견해가는 것. 어느 쪽이 진정한 성공일까?
이번 분석 결과는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단순히 많은 사람을 모으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 축제는 도시의 매력을 알리는 창구여야 하고, 그 매력은 축제장 안에 갇혀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진정한 도시브랜딩은 축제가 끝난 뒤에 시작된다. 축제는 도시를 알리는 시작일 뿐이다. 오히려 축제가 끝난 뒤가 더 중요하다. 김천의 경우 축제 이후에도 직지사 일원을 찾는 주말 평균 관광객 수가 평소 대비 약 2배 증가했다. 이게 바로 진정한 성공의 모습이다.
한 도시의 브랜드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축제라는 특별한 이벤트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 수는 있다. 하지만 그들의 발걸음이 도시 전체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그들의 기억 속에 도시는 남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이 축제는 잊어도 도시는 기억할 때, 우리는 비로소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건 축제의 규모가 아니라 도시와의 연결성이다. 축제는 도시라는 책의 표지일 뿐이다. 그 표지를 넘어 책의 내용을 읽게 만드는 것, 그것이 진정한 도시브랜딩의 시작이다. 35만 명이 찾아와도 도시가 텅 빌 수 있고, 10만 명이 와도 도시가 가득 찰 수 있다. 숫자의 역설이자, 도시브랜딩의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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