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0억 투자받고 900억에 인수했지만… 2년 만에 법정관리

프롤로그: 7월 4일, 우려가 현실이 되다
2025년 7월 4일 오전, 서울회생법원에는 두 통의 기업회생절차 신청서가 동시에 접수됐다. 신선 축산·수산물 유통 스타트업 ‘정육각’과 그 자회사 ‘초록마을’이었다. 법원은 같은 날 바로 절차 개시를 결정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스타트업 업계와 유통업계에는 깊은 우려가 확산됐다. 불과 3년 전까지만 해도 ‘혁신 유통의 대표주자’로 각광받던 정육각이 자회사와 함께 법정관리라는 극단적 선택을 했기 때문이다.
정육각은 2022년 대기업들을 제치고 약 900억 원에 초록마을을 인수했다. 한때 ‘스타트업 M&A의 성공 모델’로 거론되던 이 거래는 불과 2년 만에 최악의 결과를 낳았다.
혁신의 아이콘에서 법정관리까지
정육각의 비상과 몰락은 극명하다. 2016년 설립 당시 정육각은 ‘도축 4일 이내 배송’이라는 파격적인 서비스로 주목받았다. 기존 유통업체들이 1-2주 걸리던 배송을 4일로 단축한 것이다. 회사 측은 IT 기술과 물류 혁신을 통해 신선도를 극대화했다고 설명했다.
투자자들의 관심도 뜨거웠다. 신선식품 유통의 패러다임을 바꿀 게임체인저로 평가받으며 누적 투자 유치액은 1200억 원에 달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온라인 식품 주문이 급증하면서 정육각의 성장세는 더욱 가파르게 보였다.
하지만 사업 초기부터 업계 내부의 시선은 싸늘했다. 축산업계 전문가들은 정육각의 마케팅 전략에 대해 강한 의문을 제기했다. 특히 2021년부터 2022년 사이 정육각의 핵심 마케팅 메시지였던 “도축 후 5일 이내 돼지고기가 가장 맛있다”는 주장이 집중 포화를 맞았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정육각이 근거로 제시한 축산물품질평가원 자료는 잘못 인용된 것으로 확인됐다. 농촌진흥청 자료에 따르면 오히려 도축 후 1-2일 기간 동안 사체 강직으로 인해 고기 맛이 가장 좋지 않다는 것이 정설이다.
한 축산업계 관계자는 “기존 유통이 6단계에서 3단계로 줄었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농장→도축→육가공→소비자로 가는 4단계가 기본이고, 3단계 과정을 갖춘 대형 회사들은 이미 많이 있다”고 지적했다.
업계의 비판은 단순한 견해 차이를 넘어섰다. 한 축산 전문가는 “체계적인 검증 없이 마케팅을 전개하려면 그 분야에 과학적 지식이 기존 종사자들보다 풍부해야 하는데, 기본기 없이 노이즈 마케팅만 했다”고 평가했다.
이런 마케팅 논란은 정육각이 업계 전문성보다는 소비자 어필에 치중했다는 비판으로 이어졌다. 당시 정육각의 성장세와 투자 유치 소식에 가려져 이런 목소리들은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정점은 2022년 초록마을 인수였다. 정육각은 대기업들과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유기농 식품 유통기업 초록마을을 인수했다. 당시 업계는 이를 ‘온라인 플랫폼과 오프라인 매장의 완벽한 결합’이라고 평가했다. 정육각의 디지털 역량과 초록마을의 오프라인 네트워크가 시너지를 낼 것이라는 기대였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인수 이후 정육각의 재무상태는 급격히 악화됐다. 2023년에만 225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부채 부담은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현금흐름도 위험 수준에 달했다.
M&A 실패의 해부: 세 가지 치명적 실수
정육각의 실패를 분석하면 스타트업 M&A의 전형적인 함정들이 드러난다.
첫 번째는 ‘무리한 인수 규모’다. 900억 원이라는 인수 금액은 당시 정육각의 현금흐름이나 자본 규모에 비해 과도했다. 스타트업이 자신보다 훨씬 큰 규모의 기업을 인수하면서 재무구조가 한 번에 불안해진 것이다.
두 번째는 ‘통합의 착각’이다. 정육각과 초록마을의 사업 모델은 표면적으로 보완적이었지만, 실제 운영에서는 중복 투자와 비효율이 속출했다. 온라인 플랫폼과 오프라인 매장의 시너지는 예상보다 훨씬 구현하기 어려웠다. 서로 다른 기업문화, 시스템, 운영 방식을 통합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소요됐다.
세 번째는 ‘외부 환경 변화에 대한 오판’이다. 2022년 인수 당시만 해도 저금리 기조가 유지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2023년부터 시작된 금리 인상과 투자 부진, 소비 위축은 정육각의 계획을 크게 흔들었다. 특히 추가 투자 유치가 어려워지면서 현금흐름 개선 계획이 차질을 빚었다.
숫자로 보는 몰락의 궤적
정육각의 재무 상황은 수치로 보면 더욱 참담하다. 2023년 225억 원의 영업손실은 매출 대비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다. 2024년에 약 400억 원의 신규 투자를 유치했지만, 이는 누적 손실을 메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더 심각한 것은 현금흐름이었다. 두 회사 모두 실질적으로 부채 초과 상태에 빠졌다. 단기 차입금 상환 압박과 운영자금 부족이 동시에 닥치면서 자율 구조조정으로는 한계가 명확해졌다.
법원에 제출된 자료에 따르면, 정육각과 초록마을의 채권자 수는 수백 곳에 달한다. 협력업체부터 가맹점, 임직원까지 광범위한 이해관계자들이 피해를 우려하고 있는 상황이다.
법정관리 절차: 마지막 생존 카드
서울회생법원이 신속하게 회생절차 개시를 결정한 것은 시장 충격을 최소화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법원은 기존 경영진이 계속 기업을 운영하도록 하고, 별도 관리인 선임은 하지 않기로 했다. 이는 사업 연속성을 최대한 보장하겠다는 신호다.
실제로 초록마을의 전국 오프라인 매장과 온라인몰, 물류센터 등 핵심 사업은 정상 운영되고 있다. 반면 정육각의 온라인 유통 서비스는 일시 중단됐다.
앞으로의 일정은 촘촘하게 짜여 있다. 오는 21일까지 채권자 목록을 제출해야 하고, 8월 18일까지 채권자 신고와 채권 조사가 진행된다. 9월 1일 조사위원(신한회계법인)의 보고서가 나오고, 9월 29일까지 회생계획안을 제출해야 한다.
문제는 회생계획안이 채권자들의 동의를 얻을 수 있느냐다. 만약 부결되면 파산 절차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 정육각과 초록마을의 마지막 승부수인 셈이다.

벤처캐피탈들의 줄손실과 업계 경고등
이번 사태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곳은 벤처캐피탈(VC)들이다. 정육각에 투자한 여러 VC들의 투자금 상당 부분이 손실 처리될 가능성이 크다.
한 VC 관계자는 “정육각 같은 대형 딜에 참여했던 투자사들의 손실 규모가 만만치 않을 것”이라며 “이미 업계에서는 유사한 위험에 노출된 포트폴리오 기업들에 대한 재검토가 시작됐다”고 말했다.
특히 M&A를 통한 외형 확장을 추진하고 있는 스타트업들에게는 경고등이 켜졌다. 무리한 인수합병보다는 내실 있는 성장에 집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스타트업 생태계에 던진 화두
정육각 사태는 단순한 개별 기업의 실패를 넘어 스타트업 생태계 전반에 중요한 화두를 던졌다. 특히 해외의 유사 사례들과 비교해보면 더욱 명확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첫째, ‘과학적 근거 vs 마케팅 어필’의 균형이다. 정육각의 “초신선” 마케팅은 미국 Excel 브랜드 쇠고기의 신선 진공 포장 마케팅과 유사하다. 둘 다 기술적 혁신을 내세웠지만, 소비자 경험이나 과학적 근거에서 문제가 드러났다.
둘째, ‘마케팅 vs 실제 소비자 니즈’의 괴리다. 비욘드미트가 환경 보호 메시지로 마케팅했지만 소비자들은 맛과 가격을 더 중시했던 것처럼, 정육각도 ‘초신선’이라는 컨셉에 집중했지만 실제 소비자들이 원하는 가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셋째, ‘성장 vs 수익성’의 딜레마다. 그간 스타트업들은 수익성보다는 성장성에 집중해왔다. 시장 점유율 확대를 위해 손실을 감수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금리 인상과 투자 환경 악화로 이런 전략의 한계가 드러났다.
넷째, M&A의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정육각의 초록마을 인수는 당시 스타트업 업계의 화제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두 회사 모두를 위험에 빠뜨렸다. 규모의 경제를 추구하되, 재무적 안정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이다.
다섯째, 외부 환경 변화에 대한 대응 능력이다. 코로나19 이후 급성장했던 온라인 유통 시장이 정상화되면서 성장률이 둔화됐다. 여기에 고금리와 소비 위축까지 겹치면서 정육각 같은 기업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유통업계의 구조조정 신호탄
정육각 사태는 유통업계에도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특히 퀵커머스와 리테일테크 분야에서 비슷한 위험에 노출된 기업들이 있는지 재점검이 시작됐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정육각 사태 이후 투자자들이 유통 스타트업에 대해 더욱 신중해졌다”며 “단순한 혁신 아이디어보다는 실제 수익 모델과 현금흐름을 더 꼼꼼히 따져보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실제로 여러 리테일테크 기업들이 사업 계획을 재검토하고 있다. 공격적인 확장보다는 기존 사업의 수익성 개선에 집중하겠다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협력업체와 가맹점들의 불안
정육각과 초록마을의 회생절차 신청으로 직접적인 피해를 우려하는 곳은 협력업체들이다. 납품업체부터 가맹점, 물류업체까지 광범위한 사업 파트너들이 있다.
법원과 회사 측은 피해 최소화를 위해 공급망 유지에 주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일부 거래 조건 변경이나 지연 결제 등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한 협력업체 관계자는 “정육각과 거래 비중이 높았던 만큼 걱정이 크다”며 “다른 거래처 발굴을 서둘러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에필로그: 마케팅과 전문성의 균형
정육각 사태는 스타트업 업계에 명확한 메시지를 던졌다. 혁신적 마케팅도 중요하지만, 업계 전문성과 과학적 근거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스타트업 생태계는 이제 ‘빠른 성장’에서 ‘지속 가능한 성장’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할 시점이다. 앞으로 진행될 법정관리 절차는 두 회사의 생존을 넘어 업계 전반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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