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늘 혁신을 말하지만, 실제로 혁신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익숙한 것들 사이의 낯선 조합일 수도 있고, 우리가 당연시 여겼던 것들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일 수도 있다. 지난 10일, 일본 시부야의 KDDI 오피스에서는 이러한 혁신의 가능성이 한국과 일본 사이에서 구체적인 형태로 나타났다.
디캠프가 ‘디캠프 스타트업 OI 도쿄: 리테일 DX’라는 이름으로 한국 스타트업 9개사를 일본의 거대 기업들과 연결했다. 일본 통신 거물 KDDI와 편의점의 상징과도 같은 로손이 이 자리에 참석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행사의 무게감을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팬데믹 이후 회복세를 보이는 일본 리테일 시장
일본 리테일 시장은 최근 주목할 만한 변화를 겪고 있다. 2024년 들어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관광객 급증과 엔저(엔화 약세) 효과로 활기를 되찾고 있는 것이다. 도쿄, 오사카, 교토 등 주요 상권의 공실률은 1% 미만으로 떨어졌고, 특히 오사카 신사이바시는 공실률 0%를 기록하며 임대료가 크게 상승했다. 명품, 패션, 뷰티, 식품 등 다양한 분야에서 소비가 증가하고 있으며, 임대인 우위 시장이 형성될 정도로 수요가 견고하다.
특히 일본 편의점 시장은 2020년 코로나로 4.5% 역신장했으나, 2021년부터 3년 연속 플러스 성장세를 보이며 2023년 시장 규모는 약 11조 7천억 엔에 달했다. 점포 수는 정체된 반면, 객단가가 꾸준히 상승(2017년 대비 16.5% 증가)하고 있다. 팬데믹 이후 내점객수도 증가세로 전환되었다.
백화점 매출 역시 2023년 전년 대비 9.2% 성장하며, 특히 면세점 매출이 월 기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외국인 관광객의 폭발적 증가와 엔저로 인한 명품 및 고가품 소비 증가가 주요 요인이다.
일본 리테일의 과제와 기술적 대응
그러나 일본 리테일 시장은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내수 침체, 인플레이션(원가 상승), 지역 상권 침체 등 구조적 과제에 직면해 있다. 과거와 같은 양적 확대는 기대하기 어렵고, 질적 성장과 상품·서비스 차별화가 주요 전략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력 부족과 인건비 상승, 비용 절감 필요성에 따라 일본 리테일 업계는 리테일 테크(전자 가격표, AI 무인매장, 자동 계산대 등)와 디지털 전환(DX)을 빠르게 도입하고 있다. 슈퍼마켓·편의점 등 오프라인 매장에서도 ESL(전자 가격표), AI 기반 무인화 솔루션, 리테일 애널리틱스 등 첨단 기술 활용이 확산되고 있다. 이는 운영 효율화와 고객 경험 개선, 비용 절감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리테일 애널리틱스 시장도 2024년 5억 4,200만 달러에서 2033년 7억 8,000만 달러까지 연평균 4.1%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공급망 최적화, 물류 개선 등 데이터 기반 경영이 점차 중요해지고 있다.
한국 스타트업과 일본 리테일 거인의 만남
이런 상황에서 한국 스타트업들의 일본 시장 진출은 양국 모두에게 기회가 될 수 있다. “한국 스타트업의 첨단 기술이 일본 시장과 높은 친화성을 지니고 있다”는 KDDI 관계자의 말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로손 측은 “에너지 절감과 자동화 등 리테일 DX 분야에서 새로운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편의점은 더 이상 단순한 상품 판매처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플랫폼이자, 도시의 인프라로서 기능한다. 여기에 한국의 기술이 더해진다면, 일본의 편의점 산업에 새로운 변화가 올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의 편의점 문화는 오랫동안 리테일 산업의 최전선에 있었다. 한국의 스타트업들이 이 성숙한 시장에 새로운 기술을 접목시키려는 시도는 단순한 해외 진출을 넘어, 실질적인 비즈니스 기회를 모색하는 과정이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이번 행사가 단발성 이벤트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디캠프는 올해 9월과 11월, 두 차례의 추가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있다. TBS 이노베이션 파트너스와는 엔터테인먼트 분야를, 피노랩과는 핀테크 분야를 주제로 한국 스타트업들에게 일본 진출의 기회를 제공할 예정이다.
일본의 CVC 시장이 활발히 성장하는 지금, 한국 스타트업들이 그 흐름에 참여하게 된 것은 시의적절하다. 디캠프의 이러한 노력은 한국 스타트업에게 일본 시장 진출을 위한 구체적인 경로를 제공하는 동시에, 일본 기업들에게는 새로운 기술과 아이디어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이번 행사를 통해 9개의 한국 스타트업들은 일본 리테일 DX 트렌드와 현지 편의점 산업의 미래 기술 전략을 이해하고, 자신들의 비즈니스 모델을 그에 맞게 고도화하는 기회를 가졌다. 실제로 로손이 필요로 하는 서비스 모듈과 관련된 스타트업들의 제안, 로손의 리테일 데이터를 연동해 마케팅 정보를 확보하려는 KDDI와의 협업 파트너십 논의 등 구체적인 비즈니스 가능성이 탐색되었다.
양국 기업의 상호 보완적 협력
이번 행사는 한국 스타트업의 기술력과 일본 대기업의 시장 지배력이 만나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창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특히 리테일 DX라는 구체적인 주제를 중심으로 실질적인 협업 방안을 모색했다는 점에서, 단순한 네트워킹을 넘어 실질적인 비즈니스 성과로 이어질 가능성을 높였다.
일본의 리테일 산업이 직면한 과제들—저출산·고령화, 인플레이션, 인력 부족—은 기술적 해결책을 필요로 한다. 한국 스타트업들이 제공하는 ESL, AI 기반 무인화 솔루션, 리테일 애널리틱스 등은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효과적인 대응책이 될 수 있다.
디캠프 관계자는 “이번 ‘디캠프 스타트업 OI 도쿄: 리테일 DX’를 통해 한국 스타트업들이 일본 리테일 시장 진출을 위한 실질적인 기회를 얻을 수 있어 기쁘게 생각한다”며, “앞으로도 일본 주요 기업들과의 협업을 통해 스타트업의 글로벌 성장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확장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리테일 산업의 디지털 전환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이런 시장 환경에서 한국 스타트업과 일본 기업의 만남은 양측 모두에게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이 연결고리가 앞으로 어떤 실질적인 협업으로 이어질지, 그리고 그것이 양국의 리테일 산업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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