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돈이 돈을 만든다고들 한다. 하지만 때로는 돈이 아이디어를 만나 더 큰 기회를 만들기도 한다. 중소벤처기업부가 24일 서울 엠갤러리에서 발표한 ‘2025년 스타트업 코리아 펀드’가 그런 모양새다.
30개 민간 출자자가 2,500억원을 내놓고, 정부가 1,700억원을 더해 약 6,000억원 규모의 벤처펀드를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작년에 8,733억원을 모았으니, 2년간 1.5조원이라는 거대한 돈의 흐름이 만들어진 셈이다. 단순한 숫자로만 보기엔 그 안에 담긴 의미가 너무 크다.
어떤 면에서 이 펀드는 생태계의 순환을 닮았다. 스푼랩스처럼 벤처투자로 성장한 기업이 이제는 투자자가 되어 후배들을 돕는다. 도쿄세경센터라는 재일동포기업은 머나먼 일본에서 고국의 젊은 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손을 뻗었다. 돈의 흐름 속에 온기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이 펀드의 특징은 ‘오픈이노베이션’에 있다. 올해 처음으로 신설된 분야로, 대기업과 스타트업 간의 전략적 협업을 촉진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바이오, 반도체, 뷰티 등 각 산업의 선두주자들이 자신들보다 작지만 더 빠르게 움직이는 벤처기업들과 손을 잡는 모양새다. 일본 최대 CRO 기업 ‘CMIC’이 국내 바이오 벤처와의 협력을 위해 참여했고, 한국제약바이오협회는 15개 회원사와 함께 연합 컨소시엄을 구성해 벤처투자에 뛰어들었다. 기업들이 단지 수익을 좇는 게 아니라, 미래의 파트너를 찾아 나서는 여정인 셈이다.
기존 투자 경험이 있는 기업들의 변화도 흥미롭다. 일반 법인 15개사는 작년보다 5배나 많은 1,190억원을 출자하기로 했다. 금융권 5개사도 30% 증가한 4,030억원을 내놓았다. 한번 맛본 벤처투자의 가능성이 그들을 더 깊은 물로 이끈 듯하다. 정부가 제공하는 우선손실충당, 동반성장평가 가점, 정부 포상 같은 인센티브가 한몫했을 것이다. 위험이 줄어들면 모험은 더 쉬워진다.
더 흥미로운 것은 정부 재정의 출자 비중은 낮추고, 민간 자금의 비중은 높여 펀드의 민간 자금 유치 효과를 2배로 높였다는 점이다. 통상 모태펀드 출자사업은 60% 내외를 출자하는데, ‘스타트업 코리아 펀드’는 ‘정부 30%, 민간자금 70%(민간 출자자 40%, VC 추가모집 30%)’의 구조를 갖췄다. 정부의 지원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민간의 자율성과 시장의 논리를 더 중시한 모델인 셈이다.
작년에 조성된 펀드는 결성된 지 수개월 만에 AI, 바이오, 로봇 분야 딥테크 기업 등 20개사에 총 275억원을 투자했다.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 올해부터 본격적인 투자가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어떤 아이디어, 어떤 기술이 이 자금의 물줄기를 타고 세상을 바꿀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것이 벤처투자의 매력이면서 동시에 불확실성이기도 하다.
이 펀드가 주로 투자하는 분야는 초격차·글로벌, 세컨더리, 오픈이노베이션 세 분야다. 특히 초격차·글로벌 분야는 글로벌 진출이 기대되는 10대 분야 딥테크 스타트업에 투자한다. 바이오·헬스, 미래 모빌리티, 친환경·에너지, 로봇, 사이버보안·네트워크, 시스템반도체, 빅데이터·AI, 우주항공·해양, 차세대원전, 양자기술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누군가는 이 목록을 보며 한국의 미래 산업지도를 그려볼지도 모르겠다.
오영주 중기부 장관은 이 펀드가 “딥테크 분야별 생태계 구성원 간 오픈이노베이션 기회를 제공하고, 더 많은 기업과 금융기관이 벤처투자 시장에 참여하도록 촉진하는 플랫폼 역할을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에서 단순한 펀드 조성을 넘어선 생태계 구축에 대한 의지가 느껴진다.
5월이면 출자사업 공고가 나올 예정이다. 하반기부터는 운용사를 선정하고 본격적인 펀드 조성에 들어간다. 이 돈의 물줄기가 어떤 아이디어를 만나 어떤 미래를 그려낼지, 그 여정이 흥미롭다.
우리는 종종 ‘돈’이라는 단어에 차가운 이미지를 덧씌운다. 하지만 이런 투자 펀드를 들여다보면, 돈이 꿈과 가능성을 키우는 토양이 될 수도 있음을 깨닫게 된다. 벤처캐피털이라는 것은 결국 남의 꿈에 베팅하는 일이다. 모든 베팅이 성공하진 않을 테지만, 몇몇 성공한 베팅이 실패한 것들을 모두 덮고도 남을 만한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 그것이 벤처투자의 본질이다.
누군가의 아이디어가 세상을 바꾸는 순간, 그 시작점에 이런 투자가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때로는 돈이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가능성의 다른 이름이 되기도 하니까. 스타트업 코리아 펀드는 단지 돈을 모으는 일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씨앗을 뿌리는 일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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