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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자의 통계학 “미용실과 펜션은 왜 더 오래 버티는가”

때로는 통계가 소설보다 더 잔인하다.

국세청이 최근 5년(2019∼2023년)간 100대 생활업종의 궤적을 추적해 창업 이후의 생존율 통계를 공개했다. 이 차가운 숫자들 사이로 누군가의 꿈과 희망, 그리고 좌절의 흔적이 비친다. 열정으로 불을 밝힌 가게들이 어떻게 어둠 속으로 사라져갔는지, 또 어떤 업종이 끝내 빛을 잃지 않고 살아남았는지. 이 보고서는 우리 시대 자영업자들의 생존 서사를 담고 있다.

우리는 흔히 삶과 죽음을 대비시키지만, 사업에서는 생존과 폐업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한때 희망찬 간판을 내걸었던 가게들이 어떤 이유에서건 문을 닫을 때, 그곳에는 누군가의 꿈이 산산조각 나는 소리가 들린다. 통계는 그 파편의 크기와 무게를 수치화할 뿐이다. 그럼에도 이 숫자들은 미래의 창업자들에게 일종의 지도가 될 수 있다. 어떤 바다가 항해하기 좋고, 어떤 풍랑이 배를 뒤집을지 예측할 수 있게 해주는 해도와 같은 것이다.

강민수 국세청장이 이끄는 국세청은 2017년 11월부터 우리의 일상과 밀접한 100대 생활업종 사업자 통계를 생산하고 공개해왔다. 이번엔 최근 5년(2019년~2023년) 동안의 데이터를 분석해 창업 후 사업을 지속하는 비율, 즉 ‘생존율’을 계산했다. 특히 창업자 수가 많은 생활업종을 생존율 상위·하위 업종으로 구분해 제시함으로써, 창업을 꿈꾸는 이들에게 업종 선택의 가이드라인을 제공하고자 했다.

통계는 무감각하고 건조하게 느껴지지만, 그 속에는 수천 명의 사람들이 쏟아부은 땀과 눈물이 담겨있다. 현실의 냉혹함은 문학보다 더 극적일 때가 있다. 헤밍웨이는 소설을 쓰기 위해 카리브해에서 낚시를 했지만, 국세청은 우리 사회의 거대한 바다에서 업종별 생존과 소멸의 패턴을 낚아올렸다. 그 결과물은 단순한 숫자의 나열이 아니라, 우리 시대 자영업자들의 희로애락을 담은 일종의 리트머스 시험지다.

생존과 죽음은 인생에서도, 사업에서도 가장 극적인 순간이다. 100대 생활업종의 1년 생존율은 2019년에서 2022년까지 상승세를 보이다가 2023년에 다소 하락했다. 2023년 기준 5년 생존율은 39.6%. 10개 가게 중 4개만이 5년 후에도 불을 밝히고 있다는 뜻이다. 나머지 6개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이 39.6%라는 숫자 뒤에는 얼마나 많은 사연이 숨어 있을까. 코로나19를 견뎌내고, 물가 상승과 임대료 인상, 인건비 압박을 이겨낸 이들이 있는가 하면, 거센 파도에 휩쓸려 간 이들도 있다. 어떤 이는 밤잠을 설쳐가며 가게를 지키고, 어떤 이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끝내 문을 닫았을 것이다. 통계는 그저 ‘생존’과 ‘폐업’이라는 두 글자로 그들의 이야기를 압축했지만, 그 뒤에 숨은 희비는 천차만별이다. 소설가가 인물의 내면을 묘사하듯, 우리는 이 숫자들 속에서 사업자들의 희망과 절망을 읽어내야 한다.

미용실은 이상하리만치 강인했다. 창업 관심 생활업종 중 1년 생존율이 91.1%로 가장 높았다. 그 뒤를 펜션·게스트하우스(90.8%), 편의점(90.3%)이 이었다. 반면 통신판매업은 69.8%로 가장 낮았고, 화장품가게(74.2%), 식료품가게(77.3%)가 그 뒤를 이었다. 숫자 뒤에 숨은 이야기를 읽어보자면, 통신판매업은 창업 후 1년 내에 30.2%가 폐업하고, 화장품가게는 25.8%, 식료품가게는 22.7%가 문을 닫는다. 사람들의 머리는 계속 자라고, 여행은 멈추지 않으며, 편의점에서의 소비는 지속된다. 반면 온라인 판매와 화장품, 식료품 시장은 경쟁이 치열하다.

3년 생존율을 보면 더 확연해진다. 미용실(73.4%), 펜션·게스트하우스(73.1%), 교습학원(70.1%) 순으로 높고, 통신판매업(45.7%), 분식점(46.6%), 패스트푸드점(46.8%) 순으로 낮다. 미용실, 펜션·게스트하우스, 교습학원은 창업 후 3년까지 생존하는 비율이 70% 이상으로, 100대 생활업종 3년 생존율 평균인 53.8%보다 크게 높다. 반대로 말하자면, 통신판매업자의 절반 이상은 3년 안에 사라진다는 뜻이다.

연령대별로 보면 더 흥미로워진다. 40세 미만 사업자는 미용실(73.9%), 40세 이상 60세 미만은 펜션·게스트하우스(73.8%), 60세 이상도 펜션·게스트하우스(76.3%)가 가장 높은 생존율을 보였다. 젊은 창업자들 중에서는 분식점(41.9%)이, 40세 이상 60세 미만과 60세 이상에서는 호프주점이 가장 낮은 생존율을 기록했다. 젊은이들이 차린 분식점은 오래 버티지 못하고, 중년 이상이 운영하는 호프주점도 마찬가지라는 슬픈 현실이다.

편의점과 식료품가게, 두 동네 소매업태의 승부도 흥미롭다. 편의점이 69.1%, 식료품가게는 54.3%로 편의점의 생존율이 훨씬 높았다. 프랜차이즈의 힘일까, 아니면 체계적인 운영 시스템 때문일까. 옷가게(54.3%)와 화장품가게(47.6%)의 대결에서도 옷가게가 승리했다. 커피음료점(53.2%)은 피자·햄버거전문점(51.0%)보다 생존율이 높았고, 치킨전문점(45.4%)은 가장 낮았다. 치킨집을 차리려던 예비 창업자들은 이 통계를 보고 한숨을 내쉴지도 모른다.

국세청의 이 보고서는 마치 한 편의 소설처럼 읽힌다. 누군가의 꿈이 시작되고, 그것이 번창하거나 몰락하는 과정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다만 소설과 달리, 이 이야기는 냉혹한 숫자로 이루어져 있다. 창업을 꿈꾸는 이들에게 이 통계는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될 것이다. 미용실을 열까, 아니면 통신판매업에 뛰어들까? 펜션을 경영할까, 아니면 화장품가게를 차릴까?

때론 숫자가 가장 정직한 예언자다. 통계는 말한다. 창업, 첫해가 고비라고. 그리고 업종에 따라 생존의 확률이 달라진다고. 누군가는 이 통계를 보고 꿈을 접을지도 모른다. 또 누군가는 역설적으로 이 숫자를 뛰어넘고자 하는 도전 의식을 불태울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든, 이제 그들은 자신이 마주할 현실을 더 분명히 알게 되었다.

카프카는 “책은 우리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고 했지만, 이 통계는 우리 사회의 얼어붙은 현실을 깨는 도끼다. 미용실 창업은 상대적으로 안전한 항해처럼 보이지만, 통신판매업은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와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그 바다에 뛰어들 것이다. 모든 창업자는 자신의 배가 침몰하지 않을 것이라 믿으며 출항한다. 그들의 자신감이 통계의 냉혹함을 넘어설 수 있을까? 그것은 오직 시간만이 알려줄 것이다.

이번 통계는 단순한 숫자의 나열이 아니라, 우리 시대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거울이다. 그 속에는 성공과 실패, 희망과 절망이 공존한다. 모든 창업자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써나가고 있으며, 이 통계는 그들 이야기의 결말을 암시할 뿐이다. 소설의 결말이 항상 예측 가능한 것은 아니듯, 개인의 운명 또한 통계의 예측을 뛰어넘을 수 있다. 그것이 우리가 숫자를 읽으면서도 꿈을 꾸는, 모순적이지만 아름다운 이유일 것이다.

기자 / 혁신적인 스타트업들의 이야기를 발굴하고 전달하며, 다양한 세계와 소통하는 것을 추구합니다. / I want to get to know and connect with the diverse world of start-ups, as well as discover their stories and tell th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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