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산이란 단어는 우리에게 늘 멀게만 느껴진다. 그것은 다른 나라의,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처럼 들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미국 동부의 거리를 걷다 보면 어김없이 마주치게 되는 청녹색 간판 라이트 에이드(Rite Aid). 그 익숙한 이름이 두 번째 파산 보호를 신청했다는 소식은 마치 오래된 이웃이 갑자기 이사 간다는 소식처럼 묘한 공허함을 남긴다.
1962년 가을, 펜실베이니아의 작은 도시 스크랜턴에서 알렉산더 그래스가 ‘Thrift D Discount Center’라는 수수한 이름으로 문을 연 가게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성장을 이뤘다. 건강·미용 보조식품을 파는 작은 가게에서 출발해 1965년 약국 운영을 시작한 이후, 라이트 에이드는 마치 미국의 번영을 상징하듯 빠르게 확장했다. 1968년 기업공개와 함께 지금의 이름을 얻었고, 1970년 뉴욕증권거래소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인간의 욕망은 때로 과도하게 부풀어 오른다. 그리고 그 욕망이 만들어내는 성공의 이야기는 대개 비슷한 패턴을 그린다. 라이트 에이드의 성장 서사도 예외는 아니었다. 알렉산더 그래스는 자신의 작은 가게가 언젠가는 미국을 대표하는 기업이 되리라 꿈꿨을까? 아니면 그저 하루하루 더 나은 장사를 위해 최선을 다했을 뿐일까? 기업의 성장은 종종 창업자의 의도를 넘어선다. 그렇게 라이트 에이드는 마치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점점 더 많은 영토를 차지하게 되었다.
1970년대와 80년대, 그들은 미국 동부에서 차근차근 입지를 다졌다. 1983년 연매출 10억 달러 돌파는 작은 마을의 할인점으로 시작한 기업에게는 분명 기념비적인 순간이었다. 우리는 종종 숫자의 크기에 현혹된다. 더 큰 매출, 더 많은 매장, 더 높은 주가. 라이트 에이드의 경영진들도 그 함정에 빠졌을까?
거대한 성공은 언제나 그림자를 동반한다. 라이트 에이드는 1980년대와 90년대를 지나며 공격적인 인수합병으로 미국 전역에 깃발을 꽂았다. 미시간과 오하이오로 진출하고, 1996년 Thrifty PayLess를 품에 안으며 서부 시장까지 진출했다. 2007년에는 Brooks와 Eckerd를 인수하며 CVS, 월그린과 함께 미국 3대 약국 체인의 반열에 올랐다. 그러나 이 거침없는 확장이 오늘날 33억~86억 달러에 이르는 부채의 씨앗이 되리라고, 당시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인간은 미래를 예측하는 데 놀랍도록 서툴다. 특히 자신의 행동이 가져올 장기적 결과를 예측하는 일에는 더욱 그렇다. 라이트 에이드의 경영진들은 무분별한 확장이 결국 견딜 수 없는 부채의 무게로 돌아올 것이라는 점을 인지했을까? 아니면 다른 모든 기업들처럼 무한 성장의 신화를 맹신했을까?
인간의 욕망은 이상하게도 통증에 끌린다. 오피오이드 위기는 미국 사회의 아킬레스건이 되었고, 라이트 에이드는 그 중심에 서 있었다. 마약성 진통제의 과다 처방과 유통에 관한 1,000건이 넘는 소송은 회사의 재정을 갉아먹는 암세포가 되었다. 법정에서의 패배는 단순한 재정적 손실을 넘어 브랜드 가치의 추락을 의미했다.
사람들은 흔히 경쟁을 생존의 원동력이라 말한다. 하지만 때로는 그 반대가 되기도 한다. CVS와 월그린스 같은 전통적인 경쟁자들은 물론, 월마트와 아마존 같은 새로운 강자들의 등장은 라이트 에이드의 입지를 좁혔다. 이들은 더 큰 자본과 더 혁신적인 서비스로 소비자들의 마음을 빼앗았고, 라이트 에이드의 매출은 최근 분기에만 전년 대비 5% 이상 감소했다. 2023년 회계연도에는 무려 7억 5천만 달러의 손실을 기록했다. 숫자는 때로 감정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
인간의 삶에서 두 번째라는 숫자는 종종 의미심장하다. 첫 번째는 실수일 수 있지만, 두 번째는 패턴이 되기 때문이다. 라이트 에이드는 2년 만에 두 번째 파산 보호를 신청했다. 34억 5,000만 달러의 신규 자금 조달에도 불구하고, 회사는 또다시 챕터 11의 문을 두드렸다. 이는 단순한 재정적 위기를 넘어 경영 철학과 비즈니스 모델의 근본적인 문제를 드러내는 사건이다.
현대 자본주의는 무한한 성장과 효율을 추구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기업은 때로 자신의 정체성을 잃는다. 라이트 에이드는 어쩌면 그런 기업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처방전을 조제하고 일상적인 건강 관리를 도와주는 동네 약국이라는 본질적 가치를 잊고, 그저 더 많은 매장과 더 높은 매출을 추구하다 길을 잃은 것은 아닐까?
파산 보호 신청과 함께 라이트 에이드는 154개 매장 폐쇄와 인력 감축을 발표했다. 이런 구조조정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우리는 숫자에 가려진 개인의 이야기를 잊곤 한다. 154개의 매장이란, 154개의 지역 사회에서 라이트 에이드가 사라진다는 뜻이다. 수백 명, 어쩌면 수천 명의 직원들이 일자리를 잃게 된다는 의미다. 그들 중 몇몇은 다른 약국 체인에 취직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꿔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구조조정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사람들은 오래된 건물이 무너질 때 슬퍼하면서도, 그 자리에 어떤 새로운 것이 세워질지 궁금해한다. 라이트 에이드의 자산이 한 곳 이상의 구매자에게 매각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60년 넘게 미국인들의 일상에 스며들었던 붉은 간판이 역사 속으로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그런 쓸쓸한 예감이 든다.
인간의 삶이 그렇듯, 기업의 역사도 선형적이지 않다. 성공과 실패는, 영광과 위기는 마치 사계절처럼 번갈아 찾아온다. 라이트 에이드는 2010년대 들어 디지털 전환과 헬스케어 서비스 확대 등 변화를 시도했다. 웹사이트와 모바일 앱을 개편하고, 예방접종과 원격의료 같은 새로운 서비스를 도입했다. 리브랜딩을 통해 시장 변화에 대응하려 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이 충분했는가? 아니면 그저 시대의 흐름에 쫓기는 후발 주자로서의 발버둥이었을 뿐인가?
사업의 성공과 실패는 단순한 숫자의 게임이 아니다. 그것은 수많은 사람들의 삶과 직결된 이야기다. 라이트 에이드의 47,000명 직원들은 지금 어떤 불안한 밤을 보내고 있을까. 31개 주에 걸친 2,200여 개 매장 중 어디가 문을 닫고, 어디가 살아남을지. 그들의 불확실한 미래는 현대 자본주의의 가혹한 이면을 보여준다.
어떤 기업이든 결국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면 사라진다. 이것이 비즈니스 세계의 냉혹한 진실이다. 라이트 에이드는 과연, 이 파산 보호 기간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단순히 부채를 감축하고 비용을 절감하는 수준에 그칠 것인가, 아니면 근본적인 비즈니스 모델의 혁신을 이룰 것인가? 이 질문의 답이 그들의 생존을 좌우할 것이다.
미국 약국 업계의 구조적 변화는 단순한 기업의 성쇠를 넘어, 사회 전체의 변화를 암시한다. 디지털 전환과 고령화, 그리고 팬데믹 이후의 새로운 의료 패러다임 속에서 라이트 에이드는 어떤 미래를 그릴 수 있을까. 아니, 그들에게 과연 미래가 있기는 할까.
혹자는 말한다. 어떤 기업들은 너무 커서 망하지 않는다고(Too big to fail). 하지만 라이트 에이드는 과연 그런 기업일까? 또는 이전의 시다스와 블록버스터처럼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기업이 될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앞으로 몇 년간의 행보에 달려 있을 것이다.
인생은 종종 우리를 두 번째 기회의 문턱에 세운다. 그리고 그 기회를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진정한 시험이다. 라이트 에이드는 지금 그 문턱에 서 있다. 60년 전 작은 할인점에서 시작해 미국을 대표하는 약국 체인이 된 기업이, 과연 이 두 번째 파산이라는 심연에서 다시 날아오를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역설적이게도, 위기는 종종 혁신의 촉매가 된다. 라이트 에이드가 이 위기를 통해 자신의 본질을 되찾고, 새로운 가치를 발견할 수 있을까? 아니면 과거의 영광에 사로잡혀 점점 더 깊은 수렁에 빠져들 것인가? 우리는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다.
불확실성의 시대에 기업의 생존은 그 어느 때보다 예측하기 어렵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 모든 과정이 우리에게 값진 교훈을 선사한다는 점이다. 라이트 에이드의 이야기는 성공과 실패, 그리고 자본주의의 변화무쌍한 본질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한다. 그것은 마치 우리 자신의 삶처럼, 예측 불가능하고 복잡하며, 때로는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
마지막으로, 인간의 기억은 선택적이다. 수년 후 사람들은 라이트 에이드를 어떻게 기억할까? 미국을 대표하는 약국 체인으로? 아니면 두 번이나 파산 보호를 신청한 실패한 기업으로? 그 대답은 아직 미완성이다. 마치 열린 결말의 소설처럼, 라이트 에이드의 이야기는 여전히 쓰여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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