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AI는 없었다, 700명이 있었다

허상은 언제나 화려하다. 2016년 런던에서 시작된 빌더.AI(Builder.ai)가 그랬다. 창업자 사친 데브 두갈(Sachin Dev Duggal)은 “소프트웨어 제작을 피자 주문만큼 쉽게 만들겠다”고 호언장담했다. ‘나타샤(Natasha)’라는 AI가 모든 것을 해결해줄 것이라 약속했고, 그 약속은 마이크로소프트, 카타르 투자청, 소프트뱅크, 딥코어, 국제금융공사 등으로부터 4억 5천만 달러를 끌어모았다. 15억 달러 가치의 유니콘 기업이라는 훈장까지 달았다.

한때 ‘엔지니어.AI’라 불렸던 이 회사는 “인공지능의 힘으로 맞춤형 앱을 쉽게 개발할 수 있다”고 세상에 약속했다. 투자자들은 그 미래에 기꺼이 돈을 걸었다. 특히 카타르 투자청은 2년 전 2억 5천만 달러 투자를 주도하며 큰 기대를 걸었다. AI 붐이 세상을 휩쓸던 시절, 사람들은 인공지능이 소프트웨어 개발의 패러다임을 바꿀 것이라 믿고 싶어했다.

하지만 진실은 단순했다. 런던 본사 뒤편 인도에서 개발자들이 밤낮으로 코드를 두드리고 있었다. AI가 자동 생성한다던 모든 것이 사실은 사람 손으로 만들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기계가 아닌 인간이, 알고리즘이 아닌 노가다가 빌더.AI의 실체였다. 8년 동안 이들은 인공지능을 가장한 채 운영해왔다.

그들의 수법은 간단했다. 고객이 앱 개발을 요청하면 ‘나타샤’라는 AI가 분석하고 설계한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인도의 개발자들이 마치 봇처럼 행동하며 코드를 작성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을 AI가 만든 것처럼 포장해서 전달했다. 고객들은 AI의 마법을 목격했다고 믿었고, 빌더.AI는 그 착각을 이용해 더 많은 투자와 고객을 끌어모았다.

2019년 월스트리트저널이 허상의 한 귀퉁이를 들춰냈다. 대부분의 코딩이 수작업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AI 역량이 크게 과장됐다는 폭로였다. 전 직원 로버트 홀드하임은 500만 달러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회사의 기만적 관행에 우려를 표했다가 해고됐다는 것이었다.

법정 서류에는 빌더.AI가 앱의 “80%가 AI로 제작됐다”고 투자자들을 속였지만, 실제 지원 기술은 제대로 작동하지도 않았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다른 전 직원들도 “엔지니어는 있지만 AI는 없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AI 열풍이 세상을 지배하던 시절, 사람들은 그런 경고를 무시했다. 빌더.AI는 계속해서 투자를 받았다.

2024년 초부터 회사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대량 해고가 연달아 일어났다. 그해 말 투자자들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만프리트 라티아를 두갈을 대신해 CEO 자리에 앉혔다. 하지만 라티아가 발견한 것은 다른 현실이었다.

회사는 최근 2년간 매출을 부풀려 보고해왔다. 2024년 매출을 2억 2천만 달러라고 주장했지만, 실제로는 5천만 달러에 불과했다. 4배가 넘는 허위 매출이었다. 독립 감사에서 이 엄청난 차이가 드러나자, 2023년 5천만 달러를 투자했던 대출업체 비올라 크레딧은 즉시 3,700만 달러를 회수했다. 빌더.AI에게 남은 것은 인도 계좌에 묶여 있는 제한된 자금 500만 달러뿐이었다. 규제 때문에 그마저도 사용할 수 없었다.

블룸버그 보도에 따르면 허위 매출 제시와 과장된 내부 구조 변화, 그리고 신뢰 저하가 연쇄적으로 이어졌다. 더 자세한 조사에서는 인도 소셜미디어 기업 버스 이노베이션과 ‘라운드 트리핑’이라는 수법을 썼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가상 거래를 통해 매출을 부풀려 투자를 유치하는 전형적인 회계 조작이었다. 아마존에는 8,500만 달러, 마이크로소프트에는 3,000만 달러의 클라우드 서비스 미지급금이 쌓여 있었다.

급여 지급 능력마저 상실한 빌더.AI는 영국, 미국, 아랍에미리트, 싱가포르, 인도 등 5개국에서 운영이 사실상 마비됐다. 1,000명에 가까운 직원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5월, 빌더.AI는 파산을 선언했다. 회사는 링크드인에서 이렇게 공지했다. “현 팀의 끊임없는 노력과 모든 가능한 선택지를 탐색했음에도 불구하고, 회사는 과거의 잘못된 결정들이 만든 재정적 부담으로부터 회복할 수 없다.” 현재 미국 연방 당국은 금융 사기 혐의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빌더.AI 사태는 ‘AI 워싱(AI washing)’의 대표 사례가 됐다. 기존 서비스에 AI라는 포장지만 씌워 팔아먹는 행위를 뜻한다. 인포테크 리서치 그룹의 필 브런카드는 “많은 AI 기업들이 과장된 기대와 부족한 재무 관리를 바탕으로 무분별하게 확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현재 AI 스타트업 시장의 불안정성과 거품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사건이었다.

아이러니는 여기에 있었다. 빌더.AI가 AI 기업이라고 주장하며 투자를 받는 동안, 정작 회사의 진짜 자산은 인도에 있는 숙련된 개발자들이었다. 하지만 회사는 그들을 숨기려 했고, 결국 그들마저 버리게 됐다. 인공지능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는 시대에도, 복잡한 기술 영역에서는 여전히 인간의 전문성을 대체할 수 없다는 교훈을 남겼다.

AI 혁명이라고 팔렸던 것이 결국은 전통적인 아웃소싱 회사가 유행어로 포장한 것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카타르 투자청 같은 거대 자본도 큰 손실을 보게 됐다. 경쟁 당국은 경영진의 AI 마케팅 관행에 대한 조사를 예고하고 있다. 9년간 15억 달러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았던 빌더.AI는 이제 한낯 파산한 회사일뿐이다.

허상은 아무리 화려해도 허상일 뿐이고, 진실은 아무리 평범해도 진실이다. 이번 사건은 투명성과 책임, AI 마케팅 윤리에 대한 업계 전반의 진지한 성찰 기회를 제공한다. 빌더.AI가 남긴 마지막 교훈이다.

기자 / 제 눈에 스타트업 관계자들은 연예인입니다. 그들의 오늘을 기록합니다. 가끔 해외 취재도 가고 서비스 리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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