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땅의 극장은 이제 거대한 변화의 문턱에 서 있다. 지난 5월 8일, 국내 멀티플렉스 업계 2위인 롯데시네마와 3위인 메가박스가 합병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무엇이 이들을 하나로 묶게 했을까. 그것은 다름 아닌 생존이었다.
휘황찬란했던 영화관의 시대는 저물어가고 있었다. 우리가 극장에서 영화를 보던 방식은 어느덧 구시대의 유물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코로나19와 OTT의 거센 공습 앞에서 극장들은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다. 2023년과 2024년의 연간 관객 수는 1억 2천만 명대에 머물렀다. 이는 2019년의 절반에 불과했고, 거슬러 올라가면 2005년의 수준으로 후퇴한 것이었다.
숫자는 무정하게도 현실을 드러냈다. 롯데시네마는 2023년 영업이익 3억 원에 그쳤고, 메가박스는 134억 원의 영업손실로 5년 연속 적자의 늪에서 허우적거렸다. 그들은 지난해 각각 10개, 6개 지점의 문을 닫았다. 마치 침몰하는 배에서 무거운 짐을 던져버리듯이.
그리고 마침내 두 기업은 손을 잡았다. 롯데쇼핑이 롯데컬처웍스의 지분 86.37%, 중앙그룹의 콘텐트리중앙이 메가박스중앙의 지분 95.98%를 보유한 채 합작 법인을 설립하여 공동 경영에 나선다는 청사진을 그렸다. 이 합병이 성사되면 총 1,682개의 스크린을 보유하게 되어, 기존 1위 CGV(1,346개)를 넘어서게 된다. 멀티플렉스 시장은 CGV와 롯데-메가박스 연합의 2강 체제로 재편될 것이다. 국내 극장가에 새로운 거인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주목할 만한 점은 영화 제작 및 투자배급 영역에서의 시너지다. 롯데컬처웍스는 롯데시네마와 롯데엔터테인먼트, 샤롯데씨어터를, 메가박스중앙은 메가박스와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플레이타임중앙을 운영 중이다. 이들은 각자 확보한 IP와 축적된 제작 노하우를 활용해 양질의 콘텐츠 투자를 강화하고 개선된 수익을 시장 활성화를 위해 재투자하는 선순환 구조를 꿈꾸고 있다.
반면, 지금까지 국내 멀티플렉스 시장을 장악해왔던 CGV에게는 도전의 시간이 찾아왔다. CGV는 올해 1분기 매출 5,336억 원, 영업이익 32억 원을 기록했다. 매출은 지난해 1분기와 비교해 35.8% 증가했으나, 영업이익은 29.5% 감소했다. 특히 국내 사업의 어려움이 뚜렷하다. 1분기 국내 사업은 매출 1,283억 원, 영업손실 310억 원이라는 쓰라린 성적표를 받았다.
흥미로운 것은 CGV의 해외 실적이다. 중국 사업 매출은 1,050억 원, 영업이익 189억 원을 달성했고, 베트남 매출 768억 원, 영업이익 129억 원으로 사상 최대 분기 실적을 기록했다. 국내에서는 고전하는 CGV가 해외에서는 빛나고 있었다. 그 차이는 단순했다. 국내에는 ‘파묘’, ‘범죄도시4’와 같은 천만 영화가 다수 있었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기대작의 성적이 저조했다. 반면 해외시장에서는 현지 콘텐츠의 성과가 두드러졌다.
이제 CGV는 새로운 경쟁 구도 속에서 자신들의 전략을 재검토해야 할 상황에 처했다. 그들은 이미 코로나19 이후 극장을 단순한 영화 상영을 넘어 다양한 체험을 제공하는 공간으로 재구성하기 위해 특별관을 확대하고 다양한 콘텐츠를 상영하는 전략을 펼쳐왔다. 4DX, ScreenX, 프라이빗 박스, 템퍼시네마, 골드클래스 등 특별관이 그 예다. 압도적인 관람 경험을 제공해 관람객을 끌어모은다는 목표였다.
여기에 콘서트, 뮤지컬, 스포츠, 게임 중계 등 전통적인 영화 외의 콘텐츠를 상영하며 관객층을 확대하는 시도도 있었다. 지난해 임영웅의 두 번째 공연 실황 영화 ‘임영웅│아임 히어로 더 스타디움’을 스크린X로 개봉해 큰 인기를 끌었던 것이 그 사례다.
업계는 이 합병을 ‘극장 산업이 완전히 무너질 수 있다는 절박함’에서 비롯된 ‘빅딜’로 평가하고 있다. 그것은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그러나 관객들의 반응은 냉담하다. “비싸서 안 간다”는 말은 단순한 합병만으로는 관객의 마음을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난해 극장 관객 수는 1억 2,313만 명으로,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2억 2,668만 명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영화관 수익성이 악화되면서 투자가 위축되고, 작품 수가 줄어들었다. 작품 수가 줄면서 기대작이 줄었고, 관람객도 자연스럽게 감소했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어떻게 끊을 것인가가 국내 극장 산업의 숙제가 되었다.
중앙그룹과 롯데그룹은 합병을 통해 기존 극장 및 영화 사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신규 사업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적극적인 신규 투자유치를 통해 재무건전성을 높이고, 확보된 재원은 OTT와 차별화된 특별관을 확대해 고객 서비스의 질을 높여 나간다는 것이다.
이 거대한 변화가 과연 우리에게 무엇을 가져다줄 것인가? 단순히 규모의 확장만으로 사라진 관객을 되돌릴 수 있을까? OTT의 시대에 극장은 어떤 존재로 남을 것인가?
어쩌면 이 합병은 종말의 시작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일지도 모른다. 위기는 언제나 혁신을 낳는다. 영화관이라는 공간이 단순히 영화를 상영하는 곳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웃고 울며 숨 죽이던 그 특별한 경험의 장소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까.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다. 우리는 그 변화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 극장의 미래는 아직 쓰여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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