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월 25일 개봉한 『F1 더 무비』를 두 번 봤다. 먼저 가까운 극장에서 2D로, 그리고 조금 멀리 가서 아이맥스로 다시. 같은 영화였지만 꽤 다른 경험이었다. 아이맥스 상영관에서 나온 관객들의 표정이 묘했다. 대부분 약간 멍한 얼굴이었는데, 그것은 지루함이 아니라 감각의 과부하 상태 같았다.
브래드 피트가 연기하는 소니 헤이즈가 떠올랐다. 한때 F1 드라이버였지만 은퇴 후 택시 기사로, 도박사로, 종목이나 대회 규모를 가리지 않고 경주가 있는 곳을 떠도는 남자. 그에게 운전은 생계수단이면서 동시에 무아지경을 향한 갈망이었다. 모든 소음이 사라지고 완전한 집중 상태에 빠지는 그런 순간을 꿈꾸는 사람.
관객들도 어쩌면 비슷한 상태가 아닐까. 집에서 편안하게 볼 수 있는데도 굳이 극장을 찾는 사람들. 우리에게 극장은 일상의 소음이 사라지는 곳, 잠시나마 다른 세계로 빠져들 수 있는 공간인 것은 아닐까?
위험의 미학
소니 헤이즈가 레이싱카를 몰 때 느끼는 것은 단순한 스릴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는 행위다. 시속 300킬로미터로 달리는 순간, 그는 죽음과 삶의 경계선을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한다. 도박판에서 판돈을 올릴 때와 같은 심리다.
극장에 가는 것도 어떤 면에서는 도박이다. 시간과 돈을 걸고 불확실한 결과에 베팅하는 것. 특히 아이맥스는 OTT 두 달치 구독료가 나간다. 집에서 보면 손해 볼 것 없는 안전한 선택이지만, 극장에서 보면 완전히 다른 무언가를 얻을 수도 있고 실망할 수도 있다. 그 불확실성이 우리를 끌어당긴다.
일반 극장에서 먼저 본 『F1 더 무비』도 충분히 즐거웠다. 브래드 피트의 연기, 레이싱 장면의 박진감, 뻔하지만 매력적인 스토리. 만족스러운 투자였다. 하지만 오늘 아이맥스에서 본 같은 영화는 전혀 다른 차원이었다. 같은 판에서 판돈을 올린 순간, 게임의 규칙 자체가 바뀌었다.
몸이 기억하는 것들
소니가 레이싱카에 다시 올랐을 때, 그의 몸은 30년 전을 기억했다. 핸들을 잡은 손, 페달을 밟는 발, 엔진 소리에 반응하는 모든 감각들. 근육의 기억은 거짓말하지 않는다.
아이맥스 상영관에서 내 몸도 뭔가를 기억해냈다. 거대한 스크린 앞에서 목을 뒤로 젖혀야 했던 어린 시절, 영화관 특유의 어둠과 소음, 팝콘 냄새와 뒤섞인 기대감. 그런 것들은 집의 소파에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것들이었다.
영화 속에서 ‘레드플래그’라는 단어가 나왔을 때 무슨 뜻인지 몰랐다. 언더컷, DRS 같은 용어들도 마찬가지. 극장을 나서면서 스마트폰으로 검색해봐야 했다. 하지만 그런 무지함조차 매력적이었다.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세계에 잠시 발을 담그는 스릴. 도박사가 자신이 모르는 게임에 뛰어들 때의 흥분과 비슷했을 것이다.

집단 최면의 힘
소니가 젊은 드라이버 조슈아와 함께 트랙을 달릴 때, 그들 사이에는 묘한 교감이 생긴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리듬, 서로의 움직임을 예측하는 감각. 혼자서는 절대 만들 수 없는 마법이다.
극장도 마찬가지다. 수백 명이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 같은 이야기를 본다는 것. 누군가가 숨을 죽이면 덩달아 긴장하고, 누군가가 탄성을 지르면 함께 환호한다. 개인의 감정이 집단의 에너지와 공명하는 순간들.
이것은 소셜미디어가 제공하는 가짜 연결감과는 다르다. 물리적으로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 서로의 체온과 숨소리를 느낄 수 있다는 것. 원시적이지만 강력한 유대감이다.
기술이 만드는 새로운 중독
『F1 더 무비』의 제작진들이 진짜 레이싱카를 몰고, 진짜 트랙에서 촬영한 이유는 무엇일까. CGI로도 충분히 그럴듯하게 만들 수 있는 시대에 말이다. 아마도 그들도 소니 헤이즈와 같은 중독자들이었을 것이다. 진짜가 주는 쾌감에 중독된 사람들.
관객들은 그 진짜함을 무의식적으로 감지한다. 브래드 피트의 몸에 실제로 가해지는 중력, 그의 얼굴 근육이 일그러지는 미세한 떨림, 목소리에 섞인 진짜 긴장감. 이런 것들은 연기로 만들어낼 수 없다.
하지만 모든 영화가 이런 극한의 리얼리티를 추구할 필요는 없다. 대부분의 영화는 집에서 봐도 별 차이가 없을 것이다. 문제는 가끔, 정말 가끔 나타나는 이런 영화들이 우리의 기준을 바꾼다는 것이다. 일단 진짜를 맞보면 가짜로는 만족할 수 없게 되는 것처럼.
멍해진 얼굴들의 의미
『F1 더 무비』를 보고 나온 사람들의 멍한 표정을 다시 떠올려본다. 그들이 대단한 영화를 봤다고 생각하는 건 아닐 것이다. 줄거리는 뻔했고, 캐릭터들도 전형적이었다. 하지만 분명히 무언가는 경험했다. 집에서 봤다면 절대 느낄 수 없었을 어떤 감각을.
소니 헤이즈도 결국 트랙으로 돌아간다. 나이가 들었고, 더 이상 예전 같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왜냐하면 그것 없이는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속도가 주는 황홀감, 위험과 맞닥뜨리는 순간의 생생함. 그것이 그의 진짜 삶이다.
어쩌면 우리도 가끔은 그런 순간이 필요한 것 아닐까. 안전하고 예측 가능한 일상에서 벗어나, 조금은 위험하고 불확실한 무언가를 경험하는 시간. 극장은 그런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몇 안 되는 공간 중 하나다.
모든 영화가 그럴 필요는 없다. 하지만 가끔, 아주 가끔은 우리에게도 속도가 필요하다. 심장이 빨리 뛰고, 손바닥에 땀이 나고, 세상이 조금 더 선명해지는 순간들. 그런 영화들이 계속 나온다면, 극장도 계속 살아남을 것이다. 소니 헤이즈가 트랙을 떠날 수 없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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