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때 우리는 일이 힘들면 던지곤 했다. “아, 그냥 농사나 지을까?” 무심코 던진 말이다. 그런 말들은 세대가 바뀌면서 “당구장이나 해볼까?” 혹은 “치킨집이나 차릴까?”로 변해갔다. 마치 다른 일들이 그보다 단순하고 쉬울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해 쉽게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스타트업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아이디어와 기술력만 있으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서사. 그것이 우리가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다. 그러나 현실은 조금 다르다.
얼마 전 우연히 당구장 창업 절차에 관한 자료를 보게 되었다. 그 내용은 놀랍도록 복잡했다. 시장 조사부터 임대차 계약, 인허가, 사업자 등록까지. 단순히 당구대를 놓고 손님을 받는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의 체계적인 사업이었다.
먼저 위치를 선정해야 한다. 유동인구, 경쟁업체, 주요 고객층을 분석해야 한다. 대학가? 상업지구? 역세권? 어디가 좋을까? 그리고 계산이 필요하다. 임대료, 인테리어 비용, 당구대 구입비, 인건비, 관리비… 수익구조는 또 어떻게 될까? 이런 질문들이 쌓이기 시작한다.
임대차 계약을 하기 전에는 해당 건물의 용도가 당구장 영업이 가능한지 확인해야 한다. 인테리어와 시설 준비는 또 어떤가? 당구대, 조명, 공기청정기는 물론이고 소화기, 방음 시설과 같은 법적 요건도 갖춰야 한다.
체육시설업 신고를 위해서는 임대차계약서, 시설개요서, 건축물관리대장 등의 서류가 필요하다. 교육청에 문의해 학교 보호구역 여부도 확인해야 한다. 상대구역이라면 심의를 통과해야 하고, 세무서에서는 사업자 등록증을 발급받아야 한다. 이 모든 인허가가 완료되어야 비로소 영업을 시작할 수 있다.
그리고 사업을 시작했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지역 광고와 SNS, 오픈 이벤트, 멤버십 제도 등 마케팅도 필요하다. 시설 점검과 청결 유지는 기본이고, 정기적인 매출 점검과 고객 피드백을 통한 서비스 개선도 이루어져야 한다.
“농사나 지을까?”라는 말은 어쩌면 도시인의 로망이었을지 모른다. 땅을 일구고, 씨를 뿌리고, 물을 주고, 수확을 하는 단순한 일련의 과정으로 상상했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 농사는 날씨, 병충해, 유통, 정부 정책, 농산물 가격 변동 등 수많은 변수를 고려해야 하는 복잡한 일이다.
그건 당구장이나 치킨집도 마찬가지다. 넓게 보면 스타트업도 다르지 않다. 아이디어와 기술만으로는 부족하다. 시장 조사, 자금 조달, 팀 빌딩, 마케팅, 법적 절차, 고객 관리… 이 모든 것들이 상호작용하며 사업의 성패를 좌우한다.
우리는 종종 남의 일을 쉽게 생각한다. 농부의 일, 자영업자의 일, 창업가의 일. 그것들은 모두 단순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복잡한 생태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이다. 그들은 매일 수많은 선택과 결정을 해야 한다.
“농사나 지을까?”라는 말을 던질 때, 우리는 농사의 낭만만을 보고 있었는지 모른다. “당구장이나 해볼까?”라고 할 때도, 당구장의 복잡한 현실보다는 간단한 사업의 이미지만 떠올렸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이해와 존중일지도 모른다. 모든 직업, 모든 사업에는 바깥에서 보이지 않는 복잡성이 존재한다. 그것을 인정할 때, 우리는 자신의 선택에 대해서도 더 현실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일이 힘들다고 무심코 “농사나 지을까?”라고 말하기 전에, 농사의 현실을 생각해보자. 스타트업을 꿈꾸며 아이디어와 기술만 강조하기 전에, 사업의 모든 측면을 고려해보자. 세상의 모든 일은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그리고 그 복잡성을 이해하는 것이 어쩌면 성공의 첫걸음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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