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TV를 보다 보면 지드래곤이 혼자서 카메라를 들고 뭔가 중얼거리는 모습이 나온다. 배경 음악도 없고, 화려한 음향 효과도 없이 그저 지드래곤이 직접 촬영한 영상과 현장에서 녹음된 오디오만 흘러나온다. 극장에서도 본편 시작 전 사전 광고로 이 영상을 접할 수 있고, 강남역 같은 주요 지하철역 대형 전광판에서도, 버스와 택시 LED 광고에서도 지드래곤의 얼굴을 마주칠 수 있다. 처음엔 ‘이게 뭐야?’ 싶었는데, 자꾸 보다 보니 묘하게 중독성이 있다. 아, 이게 뤼튼이라는 AI 회사 광고구나.
제일기획에서 이 광고를 만들면서 “광고를 광고처럼 연출하지 않는 전례 없는 방식”을 시도했다고 한다. 정보가 아닌 신선한 경험으로 브랜드를 각인시키고 싶었다는 거다. 특히 TV 광고를 모바일 세대에 익숙한 세로형 영상으로 제작한 점도 흥미롭다. 그런데 한 가지 놀라운 건, 이 회사가 스타트업이라는 거다.
6-7년 전만 해도 이런 광고는 상상하기 어려웠다. 스타트업이 지드래곤을 모델로? 그때는 대체로 연예인 광고라고 하면 대기업들의 영역이라고 여겨졌다. 삼성, LG, 현대차 같은 대기업들이 주로 하는 일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달라진 풍경
생각해보니 정말 격세지감이다. 과거 스타트업들은 연예인 모델을 쓸 엄두도 못 냈다. 당연히 자금도 부족했고, 설령 돈이 있어도 ‘우리 같은 무명 회사가 감히 연예인을 써도 될까?’ 하는 주눅 같은 게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뤼튼처럼 스타트업들이 유명 연예인을 모델로 기용하는 게 자연스러워졌다. 심지어 “연예인 모델을 쓸 정도로 성장했네”라는 식으로 스타트업의 성공 지표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무엇이 이런 변화를 만들었을까? 가장 주요한 원인으로는 투자 규모의 변화를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대규모 투자를 받는 스타트업들이 늘어나면서 마케팅 예산 규모도 달라진 것으로 보인다. 뤼튼의 경우 1300억 원의 누적 투자를 받았다. 월간 활성 이용자는 500만명을 보유하고 있다. 국내 생성형 AI앱 중에서는 챗GPT 다음으로 2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이 정도 규모라면 상당한 광고 예산을 확보할 수 있는 수준으로 보인다.
경쟁 환경의 변화도 주요 요인으로 추정된다. 비슷한 서비스들이 우후죽순 생기면서 차별화가 절실해졌고, 동시에 SNS 시대에는 연예인 하나로 폭발적인 바이럴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인식이 퍼진 것 같다. 또한 초기에 연예인 광고를 시도한 일부 스타트업들이 주목을 받으면서, 다른 회사들도 비슷한 전략을 고려하게 된 측면도 있어 보인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박수치는 건 아니다
물론 이런 변화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사람들도 많다. “스타트업이 연예인 광고나 하고 있으면 언제 제품 개발하나”, “그 돈으로 직원 월급이나 더 주지” 같은 비판이 쏟아진다.
특히 스타트업 생태계 내부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본말이 전도된 거 아니냐”는 걱정이 나온다. 스타트업의 본질은 혁신적인 제품과 서비스를 만드는 건데, 마케팅에만 올인하면서 정작 핵심 기술이나 서비스 품질은 뒷전으로 밀리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A급 연예인을 광고 모델로 기용했던 스타트업이 얼마 후 폐업한 사례도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화려한 광고와 실제 비즈니스 역량 사이의 괴리가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그럴 때마다 “그 광고비를 제품 개발이나 팀 확장에 투자했으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이 업계에 퍼진다.
직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어떤 직원들은 “우리 회사가 연예인 광고를 하다니!” 하며 자부심을 느끼지만, 다른 직원들은 “차라리 그 돈을 우리 복지나 연봉에 투자해줬으면” 하고 속으로 불만을 품기도 한다. 경쟁사 직원들은 “저 회사는 광고빨로 주목받는구나” 하며 씁쓸해하기도 한다.
유명한 얼굴에 끌리는 이유
그런데 비판이 있어도 연예인 광고는 계속된다. 왜 그럴까? 사실 연예인 광고라는 건 참 신기한 현상이다. 냉정히 생각해보면, 배우가 화장품을 추천한다고 해서 그 화장품이 정말 좋다는 보장은 없다. 가수가 휴대폰을 들고 있다고 해서 그 휴대폰의 성능이 뛰어나다는 건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유명한 사람이 나오는 광고에 더 관심을 갖는다.
왜 그럴까? 한 가지 가능한 설명은 우리가 태생적으로 ‘사회적 동물’이라는 점이다. 무리에서 인정받는 개체를 따라하려는 심리가 작동하는 것일 수도 있다. 연예인이라는 존재는 현대 사회에서 일종의 ‘영향력 있는 인물’ 역할을 하는 셈이다. 그들이 좋다고 하면 왠지 안전하고 괜찮을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 같다.
기업 입장에서는 이런 심리가 매력적으로 느껴질 것이다. 아무도 모르는 회사와 서비스를 알리려면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반면 유명한 사람 하나만 앞세우면 ‘아, 저 사람이 쓰는 거구나’ 하고 상대적으로 빠르게 관심을 끌 수 있다. 비용은 많이 들지만, 적어도 단기간에 강력한 인지도 효과는 기대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저마다 다른 브랜드 이야기
최근 연예인 광고를 하는 회사들을 보면, 나름대로 깊이 생각한 흔적들이 보인다.
뤼튼은 “지드래곤의 신선한 파격이 AI 대중화 시대를 주도하는 뤼튼의 지향점과 일치한다”고 설명한다. 창작자로서의 지드래곤과 창작 도구로서의 AI 사이의 연결고리를 찾으려 노력한 것 같다. 실제로 TV 광고부터 유튜브, 틱톡,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 주요 소셜미디어, 지하철 전광판, 버스·택시 LED 광고, 영화관까지 온·오프라인 전방위 채널을 통해 노출하고 있다. 스타트업치고는 정말 과감한 투자다.
아파트아이는 더 재미있는 실험을 했다. ‘아파트’ 노래의 윤수일 씨와 요즘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송하빈을 함께 광고 모델로 쓴 것이다. 처음엔 ‘이 조합이 왜?’ 싶었는데, 생각해보니 꽤 영리하다.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을 생각해보자. 할아버지 할머니부터 갓 결혼한 신혼부부까지, 정말 다양한 세대가 함께 산다. 윤수일 씨는 기성세대에게, 송하빈은 젊은 세대에게 어필할 수 있으니까 일석이조다.
케어네이션과 차승원의 인연은 벌써 4년째다. 요즘 같은 세상에 4년이면 정말 긴 시간이다. 처음엔 ‘아, 차승원이 그 회사 광고 하는구나’ 정도였는데, 이제는 차승원 하면 케어네이션이, 케어네이션 하면 차승원이 떠오른다. 이게 바로 장기 광고 모델의 힘이다. 단발성 화제로 끝나는 게 아니라, 시간이 흐르면서 브랜드와 모델이 하나의 이미지로 굳어진다.
더휴식이 주현영을 모델로 선택한 것도 MZ세대를 타겟으로 한 명확한 전략으로 보인다. 요즘 젊은 사람들의 여행 패턴을 보면, 단순히 잠만 자는 공간이 아니라 ‘경험’을 중시한다. 더휴식의 21개 콘셉트룸이라는 차별화 포인트도 이런 트렌드와 맞아떨어진다.
아직 모르는 것들이 너무 많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우리가 모르는 게 너무 많다.
뤼튼의 지드래곤 광고가 실제로 사용자 증가나 매출 향상에 얼마나 기여했는지 알 수 없다. 광고가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기업들이 이런 구체적인 성과 지표를 공개하는 경우도 거의 없다. 다른 회사들도 마찬가지다. “브랜드 인지도가 높아졌다”거나 “긍정적 반응을 얻고 있다”는 식의 추상적 표현만 있을 뿐, 투자 대비 수익률(ROI) 같은 객관적 지표는 찾아보기 어렵다.
더 중요한 건, 이런 전략의 장기적 효과다. 연예인의 화려함에 이끌려 온 고객들이 실제 서비스에 만족하고 충성 고객으로 남을까? 아니면 단순히 호기심으로 한 번 써보고 떠날까? 브랜드와 연예인의 이미지가 얼마나 오래 연결될 수 있을까?
무엇보다 리스크 관리는 어떻게 하고 있을까? 연예인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의 대응책은 있을까? 스타트업처럼 자원이 한정된 회사에서 이런 위기상황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소비자가 제품이나 브랜드가 아니라 연예인만 기억하는 현상이 나타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서로 다른 시선들
이런 변화를 바라보는 시각도 제각각이다.
투자자 관점에서는 우려와 기대가 공존한다. 어떤 투자자들은 “마케팅 투자로 빠른 성장을 도모하는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본다. 하지만 다른 투자자들은 “핵심 역량 개발보다 겉치레에 치중하는 것 아니냐”며 걱정한다. 특히 초기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우리가 투자한 돈을 이런 식으로 쓰는 게 맞나”라는 의문도 있다고 들었다.
직원 관점에서는 더욱 복잡하다. 자부심을 느끼는 직원들이 있는 반면, “차라리 그 돈을 인재 영입이나 복지 개선에 썼으면”이라고 생각하는 직원들도 있다. 특히 개발자들 사이에서는 “기술력보다 마케팅이 중요해지는 건 아쉽다”라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경쟁사 관점에서는 견제와 모방이 동시에 일어난다. “저 회사는 광고빨로 주목받는구나”라며 견제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리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라는 압박감을 느낀다. 실제로 한 회사가 연예인 광고를 시작하면 비슷한 업계의 다른 회사들도 너도나도 따라하는 경향이 있다.
광고업계 관점에서는 새로운 기회로 본다. 예전에는 대기업 위주였던 연예인 광고 시장이 확대되면서, 더 다양한 프로젝트와 더 많은 수익 기회가 생겼다. 하지만 동시에 클라이언트의 예산 규모나 리스크 감당 능력이 대기업과는 다르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들
결국 이런 변화를 보면서 우리는 몇 가지 중요한 질문들을 던지게 된다.
스타트업의 본질적 가치는 무엇인가? 혁신적인 제품과 서비스를 만드는 것인가, 아니면 시장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것인가?
빠른 성장과 건실한 성장 중 어느 것이 더 지속가능한가? 연예인 광고로 급성장한 회사와 꾸준히 실력을 쌓아 성장한 회사 중 누가 더 오래 살아남을까?
소비자로서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선택해야 하는가? 유명한 연예인이 추천하는 서비스인가, 아니면 실제 사용해보고 만족할 수 있는 서비스인가?
투자자로서는 어떤 회사에 투자해야 하는가? 화려한 마케팅으로 주목받는 회사인가, 아니면 묵묵히 기술력을 쌓아가는 회사인가?
각자의 선택
6~7년 전과 지금의 변화를 보면서 느끼는 건, 결국 시대가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일들이 일상이 되고, 새로운 기준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찬성하는 쪽에서는 “시간이 생명인 스타트업에게는 빠른 인지도 확산이 필수”라고 주장한다. 반대하는 쪽에서는 “허울뿐인 성장으로는 오래 못 간다”고 반박한다. 둘 다 나름의 근거가 있어 보인다.
사실 이 논쟁에는 명확한 정답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상황에 따라, 브랜드에 따라, 시기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케어네이션처럼 장기적으로 성공하는 경우도 있고, A급 연예인을 썼다가 폐업한 경우도 있다.
중요한 건 무작정 따라하지 말고, 자신의 상황에 맞는 현명한 선택을 하는 것이다. 기업은 자신의 역량과 목표를 냉정히 평가해야 하고, 소비자는 겉모습에 현혹되지 말고 실질적 가치를 따져봐야 한다.
이런 변화가 앞으로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확실한 건, 우리 모두가 이전보다 더 많은 선택지와 더 복잡한 고민거리를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지금, 지하철에서 지드래곤을 마주치며 뤼튼 앱을 다운받을지 말지 고민하고 있는 당신이야말로, 이 변화의 가장 중요한 심판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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