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공지능(AI) 붐 속에서도 수많은 스타트업들이 거대한 투자금에도 불구하고 실패의 쓴맛을 보고 있다. 최근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전 세계적으로 706개의 AI 스타트업이 폐업했다.
가장 주목받는 실패 사례 중 하나는 헬스케어 스타트업 올리브 AI(Olive AI)다. 2012년 션 레인(Sean Lane)과 제러미 요더(Jeremy Yoder)가 설립한 이 회사는 AI를 활용해 의료기관의 운영 효율성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했다.
올리브 AI는 900여 개 병원에서 기술을 도입하며 승승장구했고, 2021년에는 기업 가치가 40억 달러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지속 불가능한 급속 성장과 전략적 오판으로 2023년 말 결국 문을 닫았다.
작가 세르게이 폴레비코프(Sergei Polevikov)는 “집중력 부족과 약 10억 달러에 달하는 쉬운 벤처캐피털 자금이 가져온 ‘샴페인과 코카인 정신’이 또 다른 AI 헬스케어 스타트업인 올리브 AI를 죽였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벤처캐피털리스트들에 대한 날선 비판도 이어지고 있다. 코슬라 벤처스(Khosla Ventures) 창립자 비노드 코슬라(Vinod Khosla)는 2019년 오픈AI의 샘 알트만(Sam Altman)과의 인터뷰에서 “90%의 투자자는 아무런 가치를 더하지 않으며, 70%의 투자자는 오히려 회사에 마이너스 가치를 더한다”고 단언했다.
오픈AI를 비롯해 여러 신생 스타트업을 지원해온 코슬라는 “MBA를 받고 벤처 펌에 합류했다고 해서 기업가에게 조언할 자격이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투자자가 조언할 자격을 갖추려면 직접 대기업을 건설하고 그 과정의 어려움을 몸소 경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도 벤갈루루 소재 AI 스타트업 컨트롤 원(Control One)의 창립자 겸 CEO 프라나반 S(Pranavan S)는 “AI 분야의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벤처캐피털 자금은 인프라, 팀, 연구 개발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면서도 “창업자들이 과도한 약속을 하는 경우가 있어 이를 견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코너스톤 벤처 파트너스(Cornerstone Venture Partners)의 매니징 파트너 아비셰크 프라사드(Abhishek Prasad)는 “벤처캐피털리스트들이 상사처럼 행동하거나 실질적인 가치를 제공하지 않으면서 멘토 역할을 자처할 때 마찰이 발생한다”고 진단했다.
그는 특히 “인도의 경우 아직 젊은 벤처캐피털 생태계이기 때문에 전문 투자자가 아닌 슈퍼 엔젤처럼 운영되는 경우가 많아 창업자와의 마찰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바라트 이노베이션 펀드(Bharat Innovation Fund)의 공동창립자 애슈윈 라구라만(Ashwin Raguraman)은 지난해 AI 서밋 사이퍼 2024에서 “이상적인 상황은 투자자의 개입이 0%인 것이다. 그것은 기업가가 성과를 내고 있다는 의미”라면서 “때로는 0%가 70-80%까지 올라가는데, 이는 좋지 않은 상황이다. 투자자가 70% 개입하고 있다는 것은, 그들의 노력 없이는 가라앉을 수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흥미롭게도 2019년 인터뷰에서 샘 알트만은 “위험 기반 의사결정 상황에서는 이사회가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불과 두해 전, 알트만은 의사결정 과정에서 투명성 부족을 이유로 이사회에 의해 해임되는 아이러니를 겪었다. 비록 이틀여 만에 복귀했지만, 이후 공동창립자들을 포함한 여러 고위 임원들이 회사를 떠났다.
결국 코슬라의 지적처럼, 아이디어와 개입에 관한 갈등이 직관과 반대되는 성과 결과를 낳는 주된 원인으로 보인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단순히 투자자를 배제하는 것이 해답이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바라트 이노베이션 펀드의 라구라만은 “투자자의 역할은 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질문을 던지는 것”이라며 “창업자가 스스로 답을 찾아야 내재화되고 실행력이 생긴다”고 강조했다. 이는 기존의 일방적 조언보다는 쌍방향 소통의 중요성을 시사한다.
업계에서는 AI 스타트업의 높은 실패율을 줄이기 위한 새로운 접근법들이 논의되고 있다. 투자 전 실사 과정에서 기술적 타당성뿐만 아니라 창업팀의 실행력과 시장 이해도를 더욱 엄격히 평가해야 한다는 의견이 늘어나고 있다. 아울러 투자 후에는 성급한 성장 압박보다는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 구축에 집중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AI 스타트업 시장이 계속 성장하는 가운데, 과거의 실패 사례들은 단순한 반면교사를 넘어 미래 성공을 위한 소중한 교훈이 되고 있다. 결국 기술의 혁신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그 기술을 둘러싼 건전한 투자 문화와 파트너십의 구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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