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떤 소설가는 말했다. 미래는 이미 와 있지만 고르게 분배되지 않았을 뿐이라고.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원격의료산업협의회가 공개한 자료를 읽으며 그 말이 떠올랐다. 비대면진료 전면 허용 1년, 진료 요청 건수 137% 증가. 숫자가 말해주는 것은 단순하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드디어 얻었다는 이야기.
하지만 이 단순한 이야기 뒤에는 복잡한 현실이 숨어 있다.
우리는 시간이 평등하다고 착각한다. 모든 사람에게 하루는 24시간이니까. 그런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OECD 통계를 보면 한국인은 2023년 한 해 동안 OECD 평균보다 132시간을 더 일했다. 연간 휴가는 고작 16일. 자영업자 비율은 23.2%로 OECD 평균 16.6%를 훌쩍 넘는다.
이 숫자들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하다. 병원에 가려면 누군가는 눈치를 봐야 하고, 누군가는 가게 문을 닫아야 하고, 누군가는 아이를 맡길 곳을 찾아야 한다는 것. 맞벌이 부부가 늘어나면서 돌 전 아동의 25.5%가 어린이집 0세반에 다니는 시대다. 소아과 오픈런은 이제 ‘사회 풍경’이 되었다.
비대면진료는 이런 시간의 불평등을 조금이나마 완화해주는 도구였다. 지난 6년간 1,100만 건이 넘는 이용 건수가 그것을 증명한다. 지난 1년간만 100만 명이 플랫폼을 통해 비대면진료를 이용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이것을 ‘실패 사례’라고 부른다. 비대면진료 플랫폼을 “배달 앱을 따라한 수준”이라고 폄하하기도 한다.
원격의료산업협의회가 5월 30일 발표한 입장문은 이런 편견에 맞서는 목소리다. 그들이 말하는 것은 간단하다. 비대면진료는 국민 누구나 평등하게 누릴 수 있는 권리라는 것.
조직화된 단체의 목소리는 크다. 정치 이벤트를 앞두고는 더욱 그렇다. 반면 국민의 목소리는 파편화되어 있어 상대적으로 작게 들린다. 하지만 때로는 조용한 목소리가 더 중요한 법이다.
엔비디아와 구글 같은 글로벌 기업들은 이미 AI 의료 산업에 적극 투자하고 있다. 비대면진료는 단순히 편의성의 문제가 아니다. 의료 데이터와의 결합을 통한 미래 경쟁력의 문제다. 새로운 기술을 국민이 적극 활용할 수 있어야 의미 있는 기술 발전이 일어난다.
2023년 6월, 정부는 갑작스럽게 비대면진료를 재진 환자로 제한했다가 6개월도 안 되어 다시 확대했다. 실수를 반복하지 말자는 것이 원격의료산업협의회의 당부다. 국민 다수가 만족하고 있고, 계속 이용하겠다는 의향도 높은 상황에서 다시 제한한다면 그것은 진보가 아니라 퇴보다.
어느 소설에서 읽은 문장이 생각난다. “미래는 선택하는 자의 것”이라는. 비대면진료를 둘러싼 논쟁도 결국 선택의 문제다. 과거에 머물 것인가, 미래로 나아갈 것인가.
일본과 말레이시아, 중국의 국민들이 비대면진료로 의료진과 상담하고 약을 배송받을 때, 우리 국민은 포털사이트에서 부정확한 정보를 찾아 헤매고 있다. 이것이 우리가 원하는 현실인가?
비대면진료 법제화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21대 국회에서 7건의 관련 법안이 발의되었다가 임기 만료로 폐기된 것도 이미 과거의 일이다. 일주일 뒤 시작되는 새 정부는 이제 선택해야 한다. 국민의 의료 접근권을 보장할 것인가, 아니면 기득권의 목소리에만 귀 기울일 것인가.
미래는 이미 와 있다. 이제 그것을 고르게 분배할 차례다. 비대면진료는 그 시작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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