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메신저로 나눈 배달업체들의 금지된 대화, EU가 잡아낸 ‘왓츠앱 카르텔’

6월 2일 오후, 브뤼셀의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건물에서 한 가지 결정이 내려졌다. 독일의 음식 배달업체 딜리버리 히어로(Delivery Hero)와 스페인의 글로보(Glovo)에 총 3억 2,900만 유로, 우리 돈으로 약 4,800억 원의 벌금을 부과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단순한 벌금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기업들이 서로 완전히 합병하거나 지배적 지분을 가져야만 담합으로 처벌받았는데, 이번에는 달랐다. 딜리버리 히어로가 글로보 지분을 일부만 가지고 있으면서도 뒤에서 손을 잡고 담합했다는 이유로 처벌받은 것이다. EU가 이런 ‘소수 지분을 이용한 은밀한 담합’을 처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18년 7월부터 2022년 7월까지, 딜리버리 히어로는 글로보 지분의 일부를 소유하면서 묘한 게임을 시작했다. 두 회사의 임원들은 이메일과 왓츠앱을 통해 가격과 비용 같은 민감한 정보를 교환했다. EU 관계자들이 이를 ‘왓츠앱 카르텔’이라고 부른 이유다.

그들이 나눈 대화는 이런 식이었다. “우리가 이 시장에 들어갈까요, 아니면 당신들이 들어가시겠어요?” 어떤 나라에는 누가 진출할지, 어떤 지역은 누가 담당할지를 마치 영토를 나누듯 조율했다. 2020년 7월이 되자 두 회사는 아예 경쟁을 포기했다. 같은 시장에서 만나지 않기로 한 것이다.

결과는 뻔했다. 소비자들의 선택권은 줄어들었고, 가격은 높아졌다.

두 회사는 서로의 직원을 빼오지 않기로 합의했다. 처음에는 관리자들만 해당됐지만, 나중에는 물류 전문가를 포함한 거의 모든 직원으로 확대됐다. 다만 배달원들은 예외였다. 직원이 아닌 자영업자로 분류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EU 경쟁 담당 책임자 테레사 리베라는 이렇게 말했다. “이런 카르텔은 소비자와 비즈니스 파트너의 선택권을 줄이고, 직원들의 기회를 제한하며, 경쟁과 혁신의 동기를 약화시킵니다.”

이번 결정은 EU가 노동시장과 관련해 내린 첫 번째 반독점 조치다. 근로자들의 기회를 줄이는 노포치(no-poach) 합의를 제재하는 것도 처음이다.

경쟁이란 게 단순히 가격을 낮추는 것만이 아니라는 메시지였다. 좋은 인재를 놓고 기업들이 경쟁해야 공정한 노동시장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두 회사는 자신들의 잘못을 순순히 인정했다. 그 대가로 벌금이 10% 가량 감경됐다. 딜리버리 히어로는 2억 2,300만 유로, 글로보는 1억 600만 유로를 내기로 했다. 딜리버리 히어로는 이런 상황을 예상하고 4억 유로를 충당금으로 준비해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이번 카르텔 적발은 2022년 어느 날 시작됐다. EU 집행위원회 관계자들이 예고 없이 두 회사 사무실에 나타나 현장 조사를 벌인 것이다. 그때부터 시작된 공식 수사가 3년 만에 결론을 낸 셈이다.

현재 딜리버리 히어로는 글로보 지분의 94%를 소유하고 있다. 두 회사는 유럽 최대의 음식 배달 플랫폼이다. 딜리버리 히어로는 전 세계 70여 개국에서, 글로보는 20여 개국에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브뤼셀의 이번 결정은 분명한 신호를 보냈다.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형태 담합도 결코 눈감아주지 않겠다는 것이다. 왓츠앱으로 주고받은 메시지 하나하나가 증거가 될 수 있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기자 / 혁신적인 스타트업들의 이야기를 발굴하고 전달하며, 다양한 세계와 소통하는 것을 추구합니다. / I want to get to know and connect with the diverse world of start-ups, as well as discover their stories and tell th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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