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들어가며
인공지능으로 인해 생산성이 비약적으로 개선되면서 인공지능을 잘 활용한다면 조직 개개인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고, 소규모 조직으로도 많은 일을 처리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졌다. 특히 지적인 노동의 경우에는 대체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왔지만 인공지능 앞에서는 기존의 편견들이 여지없이 무너지고 있다. 최근에 컨설팅 관련된 칼럼 하나를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맥킨지 컨설팅이 인력을 대대적으로 감축하고 있는 이 상황은 남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특허업계와 특허법인은 어떤 방향으로 인공지능 시대를 대비해야 할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인공지능의 조직 파괴적인 혁신
거대한 변화의 물결이 산업 전반을 휩쓸고 있는 지금, 우리는 인공지능이라는 전례 없는 기술 혁명의 중심에 서 있다. 과거 산업혁명이 육체노동의 자동화를 이끌었다면, 현재의 인공지능 혁명은 지식 노동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세계 최고라 불리던 컨설팅 기업 맥킨지가 AI의 영향으로 대규모 인력 감축을 단행하고, 기존의 파트너 중심의 다수 인력으로 구성되던 팀 구조를 소수의 핵심 인력과 AI가 결합된 형태로 재편하고 있다는 소식은 우리에게 많은 점을 시사한다. 이는 단순히 비용 절감의 차원을 넘어, 지식 서비스 산업의 본질적인 구조가 변화하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탄처럼 느껴지는 것은 필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인간 고유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전략적 사고와 분석 능력마저 AI가 대체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이 사건은, 비단 컨설팅 업계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이러한 거대한 흐름 속에서 특허업계 역시 예외일 수 없다. 오히려 특허라는 무형의 지식재산을 다루는 우리 분야는 AI 기술의 영향력에서 더욱 자유로울 수 없는 위치에 있다. 특허 명세서 작성, 선행 기술 조사, 특허 분쟁 분석 등 변리사의 핵심적인 업무 영역 대부분이 언어 기반의 데이터 처리와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허업계는 놀라울 정도로 변화를 따라가는데 다소 둔감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오랜 시간 동안 유지되어 온 도제식 업무 방식과 보수적인 조직 문화로 인해 새로운 기술의 도입을 더디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가올 미래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과 준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맥킨지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변화의 물결은 우리 변리사들이나 특허법인들이 외면한다고 해서 피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변화를 직시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않는다면, 어느 순간 거대한 파도에 휩쓸려 도태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특허법인의 조직적 특성은 이러한 변화에 대한 취약성을 가중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대부분의 특허법인은 소수의 변리사와 스태프로 구성된 소규모 조직 형태로 운영된다. 이러한 구조는 유연하고 신속한 의사결정이 가능하다는 장점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기술 도입이나 시스템 변화에 필요한 자원과 인력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명확한 한계를 가진다. 대규모의 자본과 인력을 투입하여 AI 기술을 연구하고, 업무 프로세스 전반을 혁신하는 대형 로펌이나 글로벌 컨설팅 펌과는 출발선부터 다른 것이다. 결국 개별 특허법인이나 변리사 개개인의 역량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는, 인공지능 시대에 필요한 체계적이고 거시적인 대응 전략을 수립하는 데 있어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발명신고서 내용을 잘 모르는 신인류 발명자들의 등장
이러한 상황 속에서 최근 특허 상담 현장에서는 매우 흥미로운 변화가 있다. 바로 고객들이 ChatGPT와 같은 생성형 AI를 활용하여 작성한 특허명세서 초안을 지참하여 상담을 요청하는 사례가 부쩍 늘어난 것이다. 이는 고객들 스스로가 AI 기술을 업무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기술 변화에 대한 시장의 빠른 적응력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불과 1년 전만 하더라도 GPT로 작성한 특허명세서 초안은 사용할 내용이 거의 없는 껍떼기 수준이었지만, 최근 버전들은 꽤 그럴듯해 보이는 경우가 있다. 과거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이러한 새로운 유형의 상담은, 이제 특허법인이 거부할 수 없는 현실이 된 것 같다. 고객들은 더 이상 수동적으로 변리사의 서비스를 기다리지 않으며, 스스로 정보를 찾고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능동적인 주체로 변화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의 이면에는 우리가 반드시 경계해야 할 위험성이 내포되어 있는데, 생성형 AI가 작성한 특허 명세서 초안은 표면적으로는 매우 그럴듯해 보일 수 있지만, 그 내용을 깊이 들여다보면 심각한 문제를 발견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가장 큰 문제는 발명자 본인조차 자신이 가져온 명세서의 내용이나 그 안에 담긴 기술적 사상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는 생각의 흐름과 논리의 전개 과정 전체를 인공지능에게 맡겨버렸기 때문에 발생하는 결과이다. 발명의 핵심적인 아이디어와 그 구체적인 구현 방식, 그리고 경쟁 기술과의 차별점 등은 발명자의 머릿속에서 치열한 고민과 검증을 거쳐 탄생하는 것인데, 그 과정이 생략된 채 초기 아이디어를 입력하여 그럴듯하게 아니 심하게 포장된 결과물만 얻었으니 그 깊이와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발명자조차 자신의 발명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상황은 특허 출원 과정에서 매우 심각한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특허의 방향성을 설정하고 권리 범위를 확정하는 과정은 발명자와 변리사 간의 긴밀하고 깊이 있는 소통을 통해 이루어진다. 변리사는 발명자의 설명을 토대로 기술의 핵심을 파악하고, 법률적, 기술적 관점에서 최적의 권리화 전략을 수립한다. 그러나 발명자 본인이 AI가 생성한 결과물에 의존하여 자신의 아이디어를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한다면, 변리사 역시 정확한 방향을 설정하기 어렵게 된다. 결국 발명의 본질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특허가 등록되거나, 권리 범위가 매우 협소하게 설정되어 제대로 된 보호를 받지 못하는 등, 특허의 가치가 현저히 떨어지는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생각의 끈을 놓친다면
따라서 발명자가 직접 AI를 활용하여 특허 명세서를 작성하고 출원까지 진행하는 것은, 그 내용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중요한 법적 권리를 행사하려는 시도와 같아 위험하다고 할 수 있다. 특허 명세서는 단순히 기술을 설명하는 문서를 넘어, 발명자의 독점적인 권리를 정의하고 보호하는 법률 문서이기 때문에, 단어 하나, 문장 하나의 차이로 권리의 범위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사소한 실수 하나가 장차 막대한 금전적 손실로 이어질 수도 있다. AI가 이러한 법률적, 전략적 함의를 깊이 있게 고려하여 명세서를 작성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AI에게 특허명세서의 작성방향에 대한 명확한 방향제시와 통제력이 필요하고 결과물이 나오면 이를 검증할 수 있는 역량이 필요한데 안타깝게도 이 부분은 고객사들의 개인역량으로는 어려워 보인다.
결국 AI 시대에 특허를 의뢰하는 고객사가 견지해야 할 중요한 원칙 중 하나는 바로 생각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인공지능은 우리의 사고를 보조하고 확장시켜주는 매우 강력한 도구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결코 우리의 생각을 완전히 맡기고 인공지능의 생각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서 자신의 생각을 대체해서는 안될 것이다. 특히 자신의 아이디어를 권리화하는 특허 출원 과정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AI에게 생각의 주도권을 넘겨주는 순간, 우리는 발명의 본질로부터 멀어지게 되고, 결국 변리사에게조차 자신의 아이디어를 제대로 전달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인공지능이 원하는 방향으로 특허를 출원하게 될텐데, 이는 단순히 의사소통의 문제를 넘어, 자신의 소중한 지식재산을 스스로 포기하는 행위와 다를 바 없을 것 같다.
특허법인을 만나기 전 단계에서의 AI활용 전략은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고객사 입장에서 AI를 가장 바람직하게 활용하는 방법은 AI의 활용 범위를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거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덧붙이는 등의 보조적인 역할에 제한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예를 들어, 막연하게 구상하고 있던 아이디어를 AI와의 대화를 통해 보다 명확한 개념으로 발전시키거나, 기존 아이디어에 AI가 제안하는 다양한 변형 예시들을 추가하여 발명의 범위를 확장하는 방식이다. 이처럼 AI를 창의적인 발상을 위한 파트너로 활용한다면, 생각의 주도권을 잃지 않으면서도 기술의 완성도를 한 단계 높일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잘 정제된 아이디어를 가지고 변리사와 상담한다면, 훨씬 더 깊이 있고 효율적인 권리화 전략 수립이 가능해질 것이다.
인공지능의 영향력은 비단 특허 출원 업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특허 분석 및 컨설팅 영역에서는 이미 AI가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그 중요성은 앞으로 더욱 커질 것이다. 과거에는 수많은 인력과 시간을 투입해야만 가능했던 대량의 특허 데이터 분석이 이제는 AI를 통해 훨씬 짧은 시간 안에, 그리고 훨씬 더 깊이 있게 이루어질 수 있게 되었다. 이는 기존의 업무 방식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단순히 방대한 양의 특허를 분석하여 트렌드를 요약하고 경쟁사의 동향을 보고하는 수준의 서비스는 이제 AI가 더 잘할 수 있는 영역이 되었기 때문이다.
조언자에서 실행조력자로
과거 특허 컨설팅의 주요 서비스 모델이었던, 대량의 특허 데이터를 분석하여 인사이트를 도출하고 이를 보고서 형태로 제공하는 방식은 이미 큰 차별성을 주기 어렵다. 이제 웬만한 기업들은 자체적으로, 혹은 외부의 저렴한 분석 툴을 이용하여 기본적인 특허데이터에 기반한 맵이나 동향 분석 자료를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특허법인이 과거와 동일한 방식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고객에게 아무런 가치를 주지 못하며, 결국 시장에서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 이제 고객들이 원하는 것은 단순히 정리된 정보가 아니라, 그 정보를 바탕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구체적이고 실행 가능한 실행계획 및 실행보조까지 넘어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제 특허 컨설팅은 단순한 인사이트 제공을 넘어, 고객의 비즈니스 현장에서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실행의 단계까지 깊이 관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분석 결과가 아무리 훌륭하더라도 그것이 실제 제품 개발이나 사업 전략에 반영되지 않는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이제 변리사는 단순히 법률 전문가나 기술 분석가의 역할을 넘어, 고객의 비즈니스 파트너로서 함께 고민하고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이는 기존의 컨설팅 모델과는 완전히 차별화된, 훨씬 더 높은 수준의 전문성과 책임감을 요구하는 일이다.
특허 컨설팅에서의 실행이란 크게 두 가지 측면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컨설팅 결과를 바탕으로 고객사 자체의 핵심 IP 포트폴리오를 전략적으로 구축하고 강화하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특허를 출원하는 것을 넘어, 미래 기술 로드맵과 연계하여 어떤 기술을 언제, 어떤 형태로 권리화할 것인지를 설계하고, 이를 통해 경쟁사가 쉽게 넘볼 수 없는 강력한 기술적 해자를 구축하는 활동을 포함한다. 이는 고도의 전문성과 장기적인 안목을 필요로 하는 매우 전략적인 업무이다.
실행의 또 다른 중요한 축은 바로 타사의 IP에 대한 효과적인 대응 전략을 수립하고 이행하는 것이다. 이는 경쟁사의 특허 공격을 방어하고, 필요한 경우 라이선스 협상을 진행하거나 특허 무효 심판을 제기하는 등의 법적 대응을 포함한다. 또한, 경쟁사의 특허를 회피하여 제품을 설계하거나, 반대로 경쟁사의 핵심 특허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여 특허로 확보하는 등의 공세적인 전략까지도 포괄하는 개념이다. 이러한 IP 대응 전략은 기업의 생존과 성장에 직결되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며, 풍부한 경험과 깊이 있는 통찰력을 갖춘 전문가의 조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제는 실행경험(EX)이 필요한 때
결국 미래의 특허법인은 이러한 실행의 영역에서 얼마나 차별화된 가치와 실행경험(EX, Execution eXperience)을 제공할 수 있느냐에 따라 그 성패가 갈릴 것이다. 단순히 법률 지식을 전달하고 서류 작업을 대행하는 수준을 넘어, 고객의 비즈니스 목표 달성을 위해 함께 발로 뛰는 진정한 파트너가 되어야 한다. 이는 변리사 개개인의 끊임없는 노력과 학습을 요구함은 물론, 특허법인 조직 전체의 체질 개선과 시스템 혁신이 뒷받침되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과거 컨설팅펌들이 제공하던 전략 보고서만으로는 더 이상 고객을 만족시킬 수 없는 시대가 된 것처럼, 특허업계 역시 단순히 특허 출원 대리나 분석 보고서 제공만으로는 생존을 담보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고객의 비즈니스 현장에 더 깊이 파고들어, IP를 기반으로 한 실질적인 성과를 함께 만들어내는 ‘실행 전문가’로서의 역량을 증명해야만 한다. 이는 결코 쉽지 않은 길이지만, 우리가 반드시 나아가야 할 방향이기도 하다.
원문 : 이제는 EX(실행경험)가 필요할 때
글 : 유철현 BLT 변리사 / 유 변리사는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직접 투자하는 ‘엑셀러레이터형’ BLT 특허법률사무소를 시작으로, IT와 BM분야의 전문성을 살려 다양한 기술 기반 기업의 지식재산 및 사업 전략 컨설팅을 수행하고 있다. 현재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심의위원과 한국엔젤투자협회 팁스(TIPs)프로그램 사업 심사를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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