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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창업 교류, ‘APEC 모멘텀’ 타고 재개 신호…”경쟁과 협력 양면 전략 필요”

한중 벤처·스타트업, APEC 계기로 교류 재개
공공기관 3곳 동시에 선전 방문…이 대통령 방중 전망
MWC 상하이 현장 (c)플래텀

한중 창업 생태계 교류가 수년간의 단절을 깨고 재개 국면에 들어섰다. 지난 1일 경주 APEC 정상회담을 계기로 공공기관 방문과 정상 간 교류가 동시에 추진되는 등 양국 간 교류 모멘텀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중국 창업 정책, ‘플랫폼’에서 ‘핵심 기술’로 이동

중국의 창업 정책은 2014년 이후 국가적 어젠다로 추진되며 시기별로 뚜렷한 변화를 보였다. 2014~2017년 ‘대중창업, 만중혁신’ 시기에는 규제 완화와 창업 인프라 확산에 집중했고, 플랫폼 경제가 활성화됐다. 2018~2021년에는 커촹반(科创板) 설립 등을 통해 하이테크 육성을 시도했다.

2022년 이후 중국 정책의 핵심은 ‘전정특신(专精特新)’과 ‘경기술(硬科技)’로 압축된다. 미중 갈등 속에서 반도체, AI, 신소재 등 핵심 기술 분야 강소기업 육성에 주력하고 있다. 이는 한국의 주력 산업과 정면으로 겹치며 경쟁 구도를 형성했다.

배터리 분야에서 중국은 LFP 배터리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고 핵심 소재 자립화를 추진 중이다. AI 분야에서는 국가 주도의 데이터 개방과 컴퓨팅 파워 지원으로 스타트업을 육성하며 한국의 민간 주도 모델과 경쟁하고 있다.

경주 APEC 정상회담, 교류 재개의 분기점

미중 갈등과 코로나19, 중국의 규제 강화로 사실상 단절됐던 한중 창업 생태계 교류가 최근 양국 정상회담을 계기로 변화 조짐을 보인다.

지난 1일 경주 APEC에서 이재명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이 만나 97분간 회담을 가졌다. 양국 정상은 6건의 양해각서를 체결했으며, 이 중 5건이 경제 분야 협력 내용이었다. 기업과 벤처캐피털에 양국 간 교류가 정상화될 것이라는 신호를 준 셈이다.

양국 교류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한국 외교부는 “APEC 정상회의가 양국 협력이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평가했다.

중국 관영 매체들도 협력 분위기 조성에 나섰다. 인민일보는 “한국 기업은 중국의 시장과 기술, 정책을 활용해 혁신 협력 모델을 만들 수 있다”며 AI와 청정에너지 등 신산업 협력을 제안했다. 광명일보는 디지털 전환과 녹색 협력을 강조하며 중소·스타트업의 중국 지방 진출 지원 사례를 소개했다.

차기 APEC 개최지가 중국의 혁신 중심지인 선전으로 결정된 것도 주목할 만하다. 중국이 기술 자립 정책의 성과를 보여줄 수 있는 무대가 마련된 것이다.

이 대통령, APEC 앞두고 중국 방문 추진

정상 간 교류가 이어질 전망이다.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중국은 차기 APEC 의장국 자격으로 한국의 참석을 초청하는 것과 별개로, 양자 회담을 위한 방문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식통은 “양자 회담을 위한 이 대통령의 방중은 APEC 이전에 계획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시진핑 주석의 방한에 대한 답방 형식의 양자 방문이 성사될 경우, 한중 정상이 단기간에 두 차례 만나는 이례적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

실무 교류 본격화…공공기관·기업 ‘쌍방향’ 움직임

정상외교와 맞물려 실무 교류가 활발해지고 있다. 이달 중순 창업진흥원과 이노비즈협회, 한국엔젤투자협회가 각각 선전 방문 일정을 잡았다.

창업진흥원은 중순 선전에서 개최되는 대규모 기술 박람회에 참가해 중국 기업들에게 한국 시장 진출을 제안할 계획이다. 중국 현지 박람회에서 역으로 한국 진출을 유치하는 시도는 이례적이다. 이노비즈협회는 회원사들과 선전을 찾아 현지 사무소를 개설하고 지방정부 및 경제단체와 협력 세미나를 연다. 한국엔젤투자협회는 팁스 선정 기업들과 함께 중국 투자자들과의 매칭 행사를 진행한다.

교류는 쌍방향으로 진행된다. 중소벤처기업부는 9월 APEC 중소기업 장관회의에서 중국 측에 국내 최대 스타트업 행사 ‘컴업(COMEUP)’에 중국 기업들이 참여해줄 것을 요청했다. 중국 공업정보화부는 이를 수락했으며, 연말 컴업에서 중국 기업들의 전시 참여가 성사될 가능성이 높다.

상하이에서는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이 한국 스타트업과 중국 벤처캐피털을 연결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중국 상하이사회과학원은 최근 한국산업연구원과의 공동 포럼에서 “양국은 창업 생태계 협력에서 광범위한 잠재력을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2017년 한한령(한류 금지령) 이후 막혔던 중국 시장의 문이 다시 열릴 기미가 보이면서, 공공기관들이 선제적으로 나서 민간 기업의 진출 리스크를 줄이는 역할을 하고 있다.

“과거와 다른 전략적 접근 필요”

전문가들은 이번 교류 재개가 과거와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지적한다. 2010년대 중반 한국 기업들이 중국을 거대 소비 시장으로만 바라봤다면, 지금은 핵심 기술 분야에서 정면 경쟁자가 된 상황이다.

중국은 전정특신 정책으로 AI, 배터리, 반도체 등 한국의 주력 산업과 겹치는 분야를 집중 육성 중이다. 이에 따라 기술 분야별로 경쟁과 협력을 분리해서 접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민감 기술은 보호하면서 비민감 분야와 공급망에서는 협력하는 복합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경주에서 시작된 교류 재개 움직임은 2026년 선전 APEC을 계기로 본격화될 전망이다. 정부와 공공기관이 APEC 모멘텀을 활용해 교류의 물꼬를 트는 만큼, 민간 기업들은 과거보다 훨씬 정교한 중국 진출 전략을 수립해야 할 시점이다.

한국과 중국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현장 중심으로 취재하며, 최신 창업 트렌드와 기술 혁신의 흐름을 분석해 현장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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