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인이 된 저명한 법학 교수의 교과서를 제자가 최신 판례로 개정해 출간하는 사례가 있습니다. 생전에 스승이 개정을 부탁했고, 유족도 이를 동의한 상황이라면, 이 개정판은 스승과 제자의 ‘공동저작물’로 볼 수 있을까요?
직관적으로는 공동저작물처럼 보이지만, 저작권법상 공동저작물은 쉽게 인정되지 않습니다. 공동저작물의 성립에는 앞서 살펴본 칼럼에서 다룬 객관적 요건뿐 아니라, 창작 과정에서 형성되는 ‘공동창작의 의사’라는 주관적 요건도 판단 요소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번 칼럼에서는 이 ‘공동창작의 의사’가 어떤 기준으로 인정되는지를 살펴보고, 2차적저작물과의 구별 문제까지 함께 정리해보겠습니다.
공동저작물이 되기 위해서는 그 창작에 관여한 저작자들 사이에 그 저작물을 공동으로 창작한다고 하는 의사가 존재해야 합니다. 우리 저작권법은 공동저작물의 성립요건으로 공동창작의 의사를 명문으로 요구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한편, 미국 저작권법 제101조는 ‘공동저작물'(joint works)이란 “2인 이상의 저작자가 자기들의 기여분이 단일한 전체의 분리될 수 없거나 상호 의존적인 부분이 될 것이라는 의사(intent)를 가지고 작성한 저작물을 말한다.”고 정의하고 있어, 공동창작의 의사가 있어야 함을 명문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떠한 경우에 공동창작의 의사가 존재한다고 볼 것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부분은 2차적저작물과 공동저작물의 구별과도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특히 학술서적의 저작자 사후에 그의 제자 등에 의해 그 학술서적의 개정판이 제작된 경우, 이를 원저작자와 후저작자의 공동저작물로 볼 것인지 아니면 2차적저작물로 볼 것인지와 관련해 다양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크게 객관설과 주관설(의사설)로 학설이 대립하고 있습니다.
(1) 객관설
객관설은 공동저작물의 경우 공동으로 저작물을 작성한다는 ‘의사(意思)의 연락’이 당사자 사이에 있는 경우가 보통이지만, 공동의사의 존재를 외부에서 식별하는 것은 곤란하므로 이러한 주관적 요건을 지나치게 엄격하게 요구할 것은 아니라고 보는 견해로서, 공동저작물의 성립을 비교적 넓게 인정하고자 하는 입장입니다.
이 견해에 따르면, 공동저작물이 성립하기 위한 ‘공동창작 의사’의 존재란 객관적으로 보아 참가자 상호간에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지 않는다고 하는 정도의 관계가 있으면 됩니다.
요컨대 공동저작물에서는 복수의 행위주체가 사실행위로서의 창작행위를 공동으로 하는 ‘행위의 공동’이 중요하므로, 당사자 간에 공동의사의 존재를 추단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해석합니다. 나아가 참가자들 사이의 의사의 연락, 특히 쌍방향적인 의사의 연락이 있을 것까지 요구하는 것은 아니며, 복수의 참가자들 사이에 하나의 저작물을 작성한다는 의사가 있음을 외부로부터 추단할 수 있으면 그것 만으로 공동창작의 의사는 존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되면 객관설에 있어서의 ‘공동창작의 의사’는 사실상 거의 유명무실 해지므로, 학설에 따라서는 객관설을 공동창작의 의사를 요하지 않는 입장이라고 이해하는 견해도 있습니다.
객관설에 의하면 복수의 저작자의 창작에 대한 기여 시점이 각각 다른 경우에도 공동저작물이 성립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甲의 학술적 저작물을 그의 사후에 乙이 수정·보충을 함으로써 개작물이 저술된 경우에는 그 개작물에 대해 甲과 乙이 함께 공동저작자로 됩니다.
다만, 객관설의 입장을 취하면서도 사후 개작물, 예를 들어 스승의 사후에 제자가 저작물을 정정하거나 보충하는 경우[1]는 설령 스승이 생전에 제자에게 자신의 저작물을 개정하도록 승낙했거나 아니면 그 저작권을 상속한 유족이 개정을 허락했더라도, 스승의 사후 제자에 의해서만 이루어진 개정작업에는 스승과 제자 간에 창작행위를 함께 한다는 의미에서의 ‘행위의 공동'(객관적 공동) 자체가 존재하지 않으므로 공동저작물이 성립할 수 없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2) 주관설(의사설)
반면에, 주관설(의사설)은 공동저작물의 성립을 좁게 인정하고자 하는 입장으로서, 공동저작물이 되기 위해서는 공동저작의 참가자들 사이에 주관적으로도 공동창작의 의사가 있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공동창작의 의사가 존재하지 않는 경우에는 공동저작물이 아니라 2차적저작물이 성립할 뿐이라고 합니다. 이 견해는, 공동저작자에게는 저작권법상 특별한 취급, 즉 저작인격권 및 저작재산권의 행사 등에 있어서 ‘전원의 합의’에 의해야 한다는 특별한 제한이 가해지는데(저작권법 제15조 제1항, 제48조 제1항), 원저작자의 사후에 공동창작의 의사가 없는 후행 저작자가 수정·보완을 해 개정판을 작성한 경우에, 이를 공동저작물로 보면 후행 저작자는 개정판에 대한 권리행사를 위해 원저작자의 상속인들과 반드시 전원합의를 이루어야 하는 바, 후행 저작자가 개정판에 관해 그러한 제약을 부담해야 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을 이유로 들고 있습니다.
따라서 주관설은 공동저작물로 되기 위해서는 원저작자가 생전에 후행 저작자와 함께 개정판을 작성하고자 하는 의사를 가지고 개정 작업을 어느 정도 진행한 경우라야 한다고 봅니다.
또한 주관설은 객관설에 의할 경우 저작재산권의 보호기간과 관련해서도 문제가 있다고 합니다. 즉, 저작자 사후 개정판을 공동저작물로 인정하게 되면 선행 저작자의 저작재산권의 존속기간은 선행 저작자가 아니라 후행 저작자의 사망시점을 기준으로 산정하게 되는데, 이에 따라 선행 저작자는 개정 작업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여행위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후행 저작자의 개정행위로 인해 원 저작물의 저작재산권이 소멸한 후에도 해당 개정판에 대한 저작재산권을 가지게 되는 점[2]이 불합리하다는 것입니다.
특히 선행 저작물의 저작재산권이 소멸한 이후에 그러한 개정이 이루어진 경우에는 그 개정판에 대한 선행 저작자의 저작재산권이 소멸했다가 새롭게 발생하는 셈이 되는데, 이는 제3자의 공정한 이용에 장애가 될 우려가 있다고 합니다.
(3) 판 례
하급심 판결이지만, “공동저작물이라 함은, 2인 이상이 공동으로 창작한 저작물로서 각자가 이바지한 부분을 분리해 이용할 수 없는 것을 말하는 것이므로 어떤 저작물이 공동저작물에 해당하기 위해서는 2인 이상의 복수의 사람이 모두 창작이라고 평가하기에 충분한 정신적 활동에 관여하는 것이 필요하고, 또 저작물을 작성함에 창작적 행위를 행한 사람들 사이에 공동으로 저작물을 작성하려고 하는 공통의 의사가 있어야 한다.[3]”고 판시해 주관설의 입장을 취하고 있으며, 학설로서도 주관설이 다수설입니다.
대법원은 “2인 이상이 공동창작의 의사를 가지고 창작적인 표현형식 자체에 공동의 기여를 함으로써 각자의 이바지한 부분을 분리해 이용할 수 없는 단일한 저작물을 창작한 경우, 이들은 그 저작물의 공동저작자가 된다.”고 하면서, 이때의 공동창작의 의사는 “법적으로 공동저작자가 되려는 의사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의 창작행위에 의해 각자의 이바지한 부분을 분리해 이용할 수 없는 단일한 저작물을 만들어 내려는 의사를 뜻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고 판시했는데 이는 주관설의 입장을 취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공동저작물의 성립 여부는 살펴본 바와 같이 단순히 함께 작업했다는 사실만으로는 판단할 수 없으며, 창작 당시 ‘공동창작의 의사’가 있었는지 입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히 콘텐츠·학술·플랫폼·엔터테인먼트 등 협업이 빈번한 분야에서는 공동저작물 여부에 따라 저작재산권 존속기간, 권리 행사, 지분 구조, 공정이용 범위 등 다양한 법적 효과가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창작 단계에서부터 저작권 사항을 면밀히 파악해 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따라서 공동 창작 프로젝트를 기획하거나 저작권 귀속 관련 분쟁이 발생한 경우에는, 공동저작물 성립 요건과 저작권 지분 구조, 권리 행사 방식 등 핵심 요소를 초기에 검토하고 정리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과정은 전문적인 법률 자문을 통해 체계적으로 점검할 때 불필요한 법적 리스크를 줄일 수 있습니다.
TIP팀은 창작 단계에서의 저작권 권리 분석부터 분쟁 대응 전략 수립까지, 창작자와 기업이 저작권 리스크를 선제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해법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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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遺著 補訂版, 유저 보정판
[2] 이 점에 있어서 후행 저작물이 단순히 2차적저작물이 되는 경우와 다릅니다.
[3] 서울고등법원 2014. 1. 9. 선고 2012나104825(본소), 2012나104832(반소)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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