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월 20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른바 ‘닥터나우 방지법’이 통과됐다. 더불어민주당 김윤 의원이 대표발의한 이 약사법 개정안은 비대면진료 플랫폼 사업자의 의약품 도매업 허가를 전면 금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표면적으로는 의약품 유통질서를 확립하고 불공정 행위를 방지한다는 명분이지만, 스타트업 업계는 ‘제2의 타다금지법’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을 비롯한 벤처업계는 잇따라 성명을 내고 법안의 즉각 철회를 촉구했다. 이들이 지적하는 핵심은 명확하다. 합법적으로 허가받은 사업을 금지하는 입법이라는 점, 그리고 ‘우려’만으로 혁신을 원천 차단한다는 점이다.
약국 뺑뺑이를 해결하려던 시도, 규제에 막히다
논란의 중심에 선 닥터나우는 2024년 3월 의약품 도매업체 ‘비진약품’을 설립했다. 회사가 밝힌 목적은 단순했다. 비대면진료 후 환자들이 처방받은 약을 구하기 위해 여러 약국을 전전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닥터나우는 합법적 도매업 허가를 통해 제휴 약국에 29개 품목으로 구성된 의약품 패키지를 공급하고, 그 재고 정보를 플랫폼에 공개했다. 환자는 앱에서 ‘조제 확실’ 표시가 뜬 약국을 확인하고 방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방식이 문제가 됐다. 김윤 의원은 “플랫폼이 도매상을 설립해 자사 의약품을 구매한 약국에 우선 노출 혜택을 줘 신종 리베이트 구조를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대한약사회도 “플랫폼이 시장 장악력을 이용해 약국을 줄 세우고, 의약품 강매와 처방전 몰아주기 등 불법 행태를 자행했다”고 주장했다.
위법 여부를 둘러싼 양측의 주장은 엇갈린다. 김윤 의원은 보건복지위원회에서 “닥터나우가 수수료를 받고 플랫폼 검색창에 특정 약국을 우선 노출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닥터나우는 “약국에 공급한 의약품 대금만 수취하며, 위치 기반 지도 방식으로 모든 약국을 제시해 특정 약국 우선 노출이 불가능하다”며 사실 정정을 요구했다. 실제로 닥터나우는 우선 노출 논란 이후 지도 뷰 방식으로 서비스를 개편한 바 있다.
더 주목할 점은 정부의 판단이었다. 2023년 국정감사에서 당시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닥터나우의 도매업 방식이 불공정거래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공정거래위원회도 위법이 아니라는 판단을 내렸다. 닥터나우는 이러한 정부 판단을 신뢰하고 사업을 확장했다.
‘우려’로 시작해 ‘금지’로 끝나는 규제의 패턴
벤처기업협회는 이번 법안을 “법적 근거 없이 ‘그럴 수도 있다’는 우려만으로 적법하게 허가된 사업 자체를 금지하는 대표적 과잉입법”이라고 규정했다. 리베이트, 담합, 환자 유인 등 우려되는 행위는 이미 약사법, 공정거래법, 의료법으로 규제 가능하다는 것이다.
코스포는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제기된 우려에 대해 이미 충실히 소명했고, 이후 우려했던 상황도 실제로 발생하지 않았음에도 입법이 그대로 추진됐다”고 지적했다.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아예 가능성을 차단하는 ‘사전 규제’ 방식이라는 비판이다.
법안이 통과되면 어떻게 될까. 정부는 “기존에 도매업을 영위하던 비대면진료 플랫폼에게도 경과 기간을 두고 사업을 중단시킬 예정”이라고 밝혔다. 닥터나우가 제공하던 실시간 약국 재고 정보 서비스는 중단되고, 환자들은 다시 약국을 돌아다니며 약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 스타트업계의 우려다.
로톡, 삼쩜삼, 타다… 반복되는 ‘직역단체 vs 플랫폼’ 구도
이번 사태는 낯설지 않다. 법률 플랫폼 ‘로톡’을 겨냥한 변호사법 개정안, 세무 플랫폼 ‘삼쩜삼’을 제한하는 세무사법 개정안, 미용의료 플랫폼 ‘강남언니’를 막는 의료법 개정안… 플랫폼이 기존 직역과 충돌할 때마다 국회에서는 규제 법안이 발의됐다.
코스포는 “전통산업과 직역단체의 이해만 강조되는 정책 설계가 반복되고 있다”며 “시장 투명성과 소비자 후생을 높이는 신사업 모델들이 직역단체의 반대로 제도적 장벽에 막히는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타다금지법’이다. 2020년 국회는 승차공유 서비스 타다를 사실상 불법화하는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택시업계의 거센 반발에 정치권이 굴복한 결과였다. 이후 이 법안은 규제가 신산업의 성장을 가로막은 대표적 사례로 회자됐다. 이재명 대통령도 지난 9월 “정치가 이해관계 조정을 잘못했던 것”이라며 아쉬움을 표했다.
그런데 4년이 지난 지금, 같은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 스타트업계 관계자는 “타다 금지법을 학습했는데도 플랫폼 비즈니스에서 이같은 논란이 계속되는 건 문제”라며 “스타트업들이 도전하는 데 가장 큰 장벽이 직역단체와의 갈등”이라고 말했다.
정부 기조와 배치되는 입법, 스타트업 신뢰 무너뜨려
더 심각한 문제는 정책 일관성이다. 정부는 제3차 벤처붐 조성을 국가 전략으로 제시하며 네거티브 규제로의 전환, 신산업 육성을 강조해왔다. 스타트업의 새로운 시도가 기존 기득권과 충돌할 때 혁신의 싹이 꺾이지 않도록 조정하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다. 벤처기업협회는 “새 정부가 지속적으로 강조해온 네거티브 규제와 규제 합리화 기조에 이번 법안이 정면으로 배치된다”며 “이해관계의 반발만으로 신산업 기업의 시도를 제약하는 입법은 정부의 규제 혁신 정책 신뢰도마저 무너뜨린다”고 비판했다.
닥터나우 측도 “정부의 판단을 신뢰해 합법적 범위 내에서 사업을 개선·확장해왔는데, 동일 사안을 뒤늦게 법으로 제한하는 방식은 정책 일관성과 정부 판단에 대한 시장의 신뢰를 훼손한다”고 지적했다.
법안이 본회의까지 통과된다면 파급효과는 크다. 벤처기업협회는 “혁신적인 기술과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법을 준수하며 사업하더라도 언제든지 금지될 수 있다는 위험한 선례가 남는다”며 “스타트업의 도전 의지가 크게 위축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환자 편익 vs 유통 질서, 엇갈린 관점
대한약사회는 이번 법안을 적극 환영한다. “플랫폼의 횡포를 막고 의료기관·약국이 플랫폼에 종속되는 것을 방지한다”는 것이 핵심 논리다. 약사회는 “비대면진료 플랫폼은 ‘즉시 진료 가능’, ‘가장 저렴한 조제’ 등의 기능과 자극적 문구로 환자를 유인하고 있다”며 “이는 환자가 안전성이 아닌 비용과 편의만을 기준으로 보건의료서비스를 선택하도록 함으로써 무분별한 비대면진료를 조장한다”고 주장했다.
약사회는 또 “최근 음식 배달료 인상 논란 등 온라인 플랫폼의 횡포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으며, 거대 플랫폼에 의한 종속이 결국 서비스 이용자의 부담으로 돌아온다”며 플랫폼 규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비대면진료가 “질병 치료나 예방과 관계없이 단순히 편리하게 약을 처방받기 위한 요식행위로 기능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반면 스타트업계는 환자 편의를 강조한다. 코스포는 “환자의 의약품 접근성을 저해하고 다양한 선택권을 제공하는 플랫폼 기능을 제한하는 규제”라고 지적했다. 닥터나우 관계자는 “신산업 스타트업의 혁신적 시도가 충분한 검토와 소통 없이 일률적으로 제한되면 결국 피해는 의료를 이용하는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논란에서 서비스 이용자인 환자들의 직접적 의견은 충분히 드러나지 않고 있다. 실제로 ‘약국 뺑뺑이’ 문제가 얼마나 심각했는지, 나우약국 서비스가 이를 얼마나 개선했는지, 또 제휴 약국 중심의 서비스가 환자의 선택권을 실제로 제한했는지에 대한 객관적 데이터는 부족한 상황이다.
혁신과 규제, 균형점을 찾을 수 있을까
법안은 현재 국회 본회의 통과를 앞두고 있다. 타다금지법의 전철을 또 한 번 밟게 될지, 아니면 혁신과 규제의 균형을 찾는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낼지 주목된다.
코스포는 성명에서 “스타트업이 새로운 시도를 통해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은 곧 국가의 미래를 좌우한다”며 “기득권 직역단체의 논리를 벗어나 기업이 국민 편익과 국가 경쟁력 강화에 기여할 수 있도록 정책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약사회는 “필요한 환자를 대상으로 올바른 방법으로 비대면진료 처방·조제가 이뤄져야 한다”며 “공적 전자처방전 도입, 무분별한 의약품 배송 금지, 가이드라인 위반 플랫폼 업체에 대한 시범사업 참여 제한 등 안전성과 환자 자율성 담보를 위한 검토가 최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국 이번 논란은 단순히 하나의 스타트업 규제 문제를 넘어선다. 신산업과 기존 직역의 이해 충돌을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 혁신을 장려하면서도 공정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그리고 정책의 일관성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라는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의 구조적 과제를 다시 한번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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