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12월 27일, 중국 인터넷에 낯선 이름이 떠올랐다.
그날 가장 많이 검색된 AI 관련 인물은 OpenAI의 샘 알트만(Sam Altman)이 아니었다. 중국 AI 스타트업 DeepSeek를 만든 량원펑(梁文锋)도 아니었다. 인기 검색어에 오른 이름은 뤄푸리(罗福莉, Luo Fuli)였다. 서른도 안 된 DeepSeek 소속 여성 연구원이었다.
“레이쥔(雷军)이 천만 위안을 주고 영입했다.”
기사 제목은 이랬다. 레이쥔은 샤오미의 창업자다. 천만 위안은 한화로 약 19억 원. 사람들은 궁금해했다. 이 사람이 누구길래?
DeepSeek-V3 기술 보고서를 열면 첫 페이지에 저자 목록이 나온다. 이름이 86개다. 알파벳 순으로 빽빽하게 나열되어 있다. AI 연구에서 이런 대규모 저자 목록은 흔하다. 대형 모델 하나를 만들려면 수십 명이 몇 달간 매달려야 한다. 논문에는 기여한 모든 사람의 이름이 올라간다. 누가 핵심인지는 이 목록만 봐서는 알 수 없다.
뤄푸리는 이 86명 중 한 명이었다.
같은 목록에 다마이다이(Damai Dai)라는 이름이 있다. DeepSeekMoE—DeepSeek 성공의 핵심 기술—의 1저자다. DeepSeek-V2 논문에서도 저자 순서상 뤄푸리보다 앞에 위치한다.
그런데 다마이다이를 다룬 중국 미디어 기사는 거의 없다. 그의 얼굴을 아는 사람은 동료들뿐일 것이다.
왜 한 사람만 유명해졌을까.
2019년 7월, 이탈리아 피렌체. ACL(전산언어학회) 학회 프로그램 북을 열면 Fuli Luo라는 이름이 여덟 번 등장한다. 석사과정 2년 차 학생이 1년 만에 낸 성과였다.
즈후(知乎, 중국판 지식인)에서 화제가 됐다. “뤄푸리는 어떻게 ACL에 8편이나 낼 수 있었나?” ‘8편 논문의 주인공’이라는 첫 번째 꼬리표가 붙었다. 8편 중 1저자는 2편이었고 나머지는 공저자였지만, 그 구분은 곧 사라졌다. ‘8편’이라는 숫자만 남았다.
그녀는 자신을 ‘컴퓨터 분야에서 맨땅에서 시작한 사람’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쓰촨성 작은 도시 출신. 고등학교 때까지 컴퓨터를 제대로 만져본 적 없었다. 대학 1학년 성적은 바닥이었다. 부모님은 “여자아이가 할 일이 아니다”라고 했다.
‘8편 논문’에 대해서도 담담하게 말했다. “1년간의 노력이었고, 운도 따랐습니다. 정월 대보름에 논문을 투고하고 기숙사에 누웠는데, 밖에서 폭죽 소리가 들렸습니다. 눈물이 났어요.”
석사 졸업 후 알리바바 다모원(达摩院). 2022년에 DeepSeek로 이직. 이때만 해도 DeepSeek는 무명의 스타트업이었다.
2024년 5월, DeepSeek-V2가 발표됐다. 성능은 GPT-4 Turbo에 준하는데 비용은 수십 분의 1. AI 업계에서 비용은 곧 진입장벽이다. 그 장벽을 허문 모델이 나오자 중국 빅테크들이 일제히 가격을 내렸고, DeepSeek는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뤄푸리는 즈후에 글을 올렸다. “가격 대비 성능이 최고예요.” 평범한 제품 소개 글이었다. 그런데 이 글이 퍼지면서 ‘DeepSeek-V2의 핵심 개발자’라는 두 번째 꼬리표가 붙었다.
12월, 세 번째 꼬리표가 결정타였다. “레이쥔이 천만 위안 연봉으로 영입.” 미디어가 원하는 서사의 모든 요소가 갖춰졌다. 95후(1995년 이후 출생 세대). 여성. 천만 연봉. 레이쥔. ‘천재소녀’라는 프레임은 이때 완성됐다.
정작 영입 여부는 불분명했다.
2025년 2월, 펑파이신문(澎湃新闻)이 샤오미 내부 시스템을 확인했다. ‘罗福莉’라는 이름은 검색되지 않았다.
같은 날 밤, 그녀가 위챗 모멘트에 글을 올렸다.
“조용히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돌려줬으면 합니다. 몇 년 전에도 말했듯이 저는 천재소녀가 아닙니다. 높이 띄울수록 추락도 큰 법입니다.”
9개월 뒤인 11월 12일, 그녀가 공식 합류를 발표했다. “지능은 결국 언어에서 물리 세계로 나아갈 것입니다.” 샤오미 합류를 알리며 남긴 말이다.
한 달 뒤인 12월 17일, 샤오미 개발자 컨퍼런스. MiMo-V2-Flash를 발표한 건 그녀였다. 개발자들 사이에서 인지도가 높은 사람을 무대에 세우는 건 샤오미 입장에선 합리적인 선택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그날 컨퍼런스를 다룬 기사들은 임원이 아닌 그녀를 중심으로 다뤘다.
과도한 관심이 부담스럽다고 했던 사람이, 그 관심 덕분에 무대에 서게 된 셈이다.
86명 중 왜 그녀만 유명해졌을까.
2019년의 ‘8편 논문’이 씨앗이었다. ‘여성 개발자’라는 희소성이 토양이었다. ‘레이쥔 천만 연봉’이라는 스토리가 기폭제였다. 세 가지가 겹쳤다. 그리고 이 조합은 우연이 아니다. 미디어는 숫자와 얼굴과 유명인이 있어야 기사를 쓴다. 뤄푸리는 그 조건을 갖춘 드문 사람이었다.
기술적 기여도와 미디어 노출 사이에는 상관관계가 없었다. 다마이다이는 여전히 논문 속 이름으로만 존재한다.
뤄푸리는 ‘천재소녀’라 불리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녀가 원한 건 “조용히 일할 수 있는 분위기”였다.
미디어는 다른 것을 원했다. 스토리가 필요했다. 86명 중에서 한 명을 골라 주인공으로 만들어야 했다. 그녀가 선택됐다. 그 선택에 그녀의 의사는 반영되지 않았다.
그녀는 그 서사 바깥에서 코드를 쓰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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