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래텀 이가은] 그간 언론 매체나 패널토론 등을 통해 VC들의 단편적인 입장이나 인사이트를 들을 수 있는 자리는 다수 있었지만, 이들이 함께 모여 한국 스타트업과 투자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는 자리는 많지 않았다. 이들을 한 자리에 초대하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그런 자리가 있었다 할지라도 지면과 시간의 제약이 있기에 이들의 명확한 입장을 제대로 전해 듣는 데는 제한이 있었다.
이에 한국의 스타트업미디어이자 중화권 전문네트워크인 플래텀은 창간 2주년 특별기획으로 한국의 창업생태계와 투자환경에 대한 제대로 된 인사이트를 전달하기 위해 한국의 대표 벤처캐피털(이하 VC)을 초대해 그들이 말하는 스타트업과 투자스토리를 듣는 특집 간담회를 진행했다. 10월 30일 1차 간담회에는 프라이머 이택경 대표, IDG벤처스코리아 이희우 대표,퓨처플레이 류중희 대표, 본엔젤스파트너스 강석흔 이사가 참석했으며, 11월 5일 2차 간담회에는 알토스벤처스 한킴 대표, 소프트뱅크밴처스 문규학 대표, 캡스톤파트너스 송은강 대표가 참여했다.
우선 1차 간담회를 2회에 걸쳐 지상중계한다. VC들이 말하는 한국의 스타트업과 투자에 대해 들어보자. <편집자주>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퓨처플레이 류중희 대표, IDG벤처스코리아 이희우 대표, 프라이머 이택경 대표, 본엔젤스 강석흔 이사
공사다망한 가운데 이렇게 자리해줘서 감사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다. 우선 각 사 소개 부탁드린다.
IDG벤처스코리아 이희우 대표(이하 이희우) : IDG벤처스는 1960년대 보스톤에서 리서치 회사로 시작한 IDC그룹을 모기업으로 두고 있다. 벤처캐피탈은 1992년 중국에서 시작해 바이두, 텐센트, 소후, 창여우, 고런처, 앱애니 등 현재 중국의 대표적인 IT기업에 투자해 큰 성과를 냈지. 샤오미의 경우 최초 설립 때 투자를 해 지분을 꽤 많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안다. 이러한 중국에서의 성과를 바탕으로 인도, 베트남, 미국, 한국 등으로 확대를 해온 것.
IDG벤처스코리아는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는데, 제가 대표직은 맡은 이후로는 이전보다 초기 스타트업에 투자를 하고 있는 상태이다.
이대표님은 IDG벤처스코리아 외에 스타트업 먼데이펍 대표, 쫄지마투자 방송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이희우 : 잡다하게 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펀드계약을 하면 전임기간을 5년 정도 두고 이후에는 겸임을 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래서 그 기간 이후 관심을 가졌던 여러 분야 활동을 경험삼아 하고 있지. 하지만 메인은 IDG벤처스코리아다.
본엔젤스파트너스 강석흔 이사(이하 강석흔) : 본엔젤스는 스타트업 전문 얼리스테이지 VC다. 한국에서 엔젤투자라는 개념이 없던 8년 전부터 관련 업무를 시작했지.
본엘젤스는 ‘국내 최초의 마이크로VC’라는 타이틀이 있다.
강석흔 : 우리가 정한 건 아니고, 언론에서 그렇게 명명해줬다.
프라이머 이택경 대표(이하 이택경) : 프라이머는 2010년에 시작한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이자 투자사이다. 본엔젤스가 얼리스테이지 스타트업이라면, 프라이머는 그보다 조금 더 앞단의 팀에게 소액을 투자한다고 보면 된다. 더불어 액셀러레이터로서 여러 파트너들과 함께 스타트업에게 조금 더 밀착해 비즈니스 네트워킹이나 구인, 멘토링 등을 도와주고 있지. 특징이라면 파트너분들이 다들 창업가 출신이라는 것이다.
퓨처플레이 류중희 대표(이하 류중희) : 퓨처플레이는 올해 3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한 ‘컴퍼니 빌더’이다.
‘컴퍼니 빌더’라는 지칭은 생소한 개념인데,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건가?
류중희 : 사실 이전에 올라웍스 엑싯 경험이 있고 프라이머에서 활동도 했지만, 본엔젤스 장병규 대표님이 하시는 걸 보고 너무 부러운 마음이 일었다. 나는 앙트라프러너라기보다 훈수두는 걸 좋아하는 캐릭터이다. 그걸 하고 싶은데 올라웍스를 엑싯하고 보니 다들 너무 잘하고 있더라. 그렇다면 아무도 하지 않는 걸 내가 해야 하는데, 그렇게 찾은 게 두 가지였다.
첫째는 ‘초얼리’에 대한 접근이었다. 본엔젤스가 얼리스테이지, 프라이머가 그보다 더 얼리스테이지라면, 저는 그보다도 더 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말 그대로 ‘초얼리’인 거지. 얼리의 끝은 아이디어와 인디비주얼이다 보통 투자사들은 팀을 본다는 말을 하는데, 저희는 팀이 아니라 개인을 본다. 저도 경험한 바이고 많은 창업가들이 공감하겠지만, 스타트업에게는 한 사람이 팀원이 되는 그 과정도 무척 어렵다. 즉, 팀을 다 만들어서 오라는 말도 어찌 보면 잔인한 말일 수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저희가 퓨처플레이를 처음 시작할 때 대기업에 다니는 엔지니어를 100명 넘게 인터뷰를 했다. 나오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같이 할 사람이 없어서’라고 말하는 무척 훌륭한 분들이 많더라. 때문에 ‘그냥 너 나와라, 우리가 지원해줄게’로 접근한 것. 그런데 이렇게 접근하면 경제적인 문제가 걸린다. 이를 테면 ‘집을 샀는데 중도금을 부어야 해.’ 이런 것 말이다. 그걸 위해 월급을 주겠다고 했지(참고기사). 굉장히 파격적으로 개인창업가의 문제를 풀겠다는 이 ‘초얼리스테이지’에 대한 접근이 하나의 특징인 것.
두 번째는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에 대한 관점에서 출발했다. 저희가 판단하는 대한민국 스타트업 생태계는 조금 왜곡되어 있다. 기술 중심 스타트업이 너무 적은데 그 이유가 엔지니어가 없어서가 아니라는 거다. 엔지니어는 충분한데 아까 언급한 이유로 못 나오고 있는 것이므로 저희는 그 두 가지를 합쳐서 굉장히 얼리스테이지의 기술 중심 회사를 만드는 것으로 역할을 잡았다.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개인을 팀으로, 팀을 회사로 만들어 가는 컴퍼니 빌더인 셈이지. 이 역할을 하면 아무도 하지 않는 거더라. 그 틈새시장을 공략한 회사가 퓨처플레이인 것.
류대표님은 개인적으로 엔젤투자도 하고 있다. 최근 ‘걸어 다니는 벤처확인기관’인 전문엔젤투자자로 선정도 되셨고.
류중희 : 엔젤로서 투자도 한다. 확실한 기준을 세우고 있는 것은 제가 찾은 회사 중 엔젤라운드에 있는 회사인데 퓨처플레이가 투자할 수 없는 회사에 엔젤투자를 하고 있다. 조금이라도 기술 중심 회사가 될 가능성이 있으면 먼저 퓨처플레이에 소개하고, 심사에서 떨어지거나 분야가 아니라고 파트너들이 판단하면 제가 개인적으로 하고 있는 거지. 퓨처플레이의 색깔을 명확하게 해야 하니까.
퓨처플레이 류중희 대표
퓨처플레이는 기술 분야에 초점을 맞춘다고 밝혔다. 각 사가 선호하는 분야 또는 투자 전략이 있다면 무엇인가?
강석흔 : 폭넓게 하고는 있지만 아이템 등을 정해놓고 그쪽에서만 찾아 투자를 하는 것은 아니다. 두루두루 문호를 다 열어두고 네트워킹 하면서 창업자와 팀의 실력 또는 풀고자 하는 문제가 공감이 되거나 투자할 만하다는 판단이 서면 투자를 진행하는 편이다.
분야를 말하자면 주로 ICT이지. ICT중에서도 인터넷, 모바일, 게임 등 소프트웨어 기반 스타트업을 중점적으로 하고 있고. IoT와 같이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가 결합된 서비스들도 투자를 하고 있다. 다만 순수 제조기업에는 투자하지 않는다.
이택경 : 프라이머와 본엔젤스가 거의 똑같은데, 다만 앞서 언급했듯 보다 더 앞단의 팀에 관심을 갖는다. 게임 분야의 경우 투자를 안 한다는 아니지만 조금 특수한 분야이기에 엔턴십에서는 다룬 적이 있지만 투자를 진행한 적은 없다.
프라이머는 인큐베이팅을 하는 모든 팀에게 투자를 하는 것인가?
이택경 : 아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프라이머는 클럽과 엔턴십이 있다. 엔턴십은 투자가 아니라 교육에 운영 목적이 있다. 엔턴십 팀 중 투자할 만한 팀이 있으면 하기도 하지만 주목적은 아니다. 반면 프라이머 클럽 소속팀은 거의 다 투자를 진행한다.
이희우 : IDG의 경우는 기업의 시작이 IT리서치 회사였기에 IT에 관련된 소프트웨어 영역의 회사들은 모두가 관심 대상이었고 투자를 해왔지. 게임, 온라인 커머스, 모바일, 소셜 등 여러 분야에 투자를 해왔고 현재도 계속 관심 있게 보고 있다.
오늘 자리하신 분들이 공동 투자를 진행한 것도 몇 건(퀵켓, 마이리얼트립, 마이쿤, 카닥, 원데이원송 등) 있다. 투자 철학이 맞아서인가, 관심 분야가 맞아서인가?
이희우 : 둘 다이다. 친한 부분도 분명 있고. 같이 투자하는데 상대 투자자와 불편한 관계이면 아무리 괜찮은 팀이어도 함께 진행하기 어려움이 있지. 만나서 얼굴 보면 좋고, 서로 투자받는 팀에 기여하는 바도 비슷하고, 서로 배울 수 있는 관계이고. 그런 관계여야 같이 하는 것이 의미가 있다.
강석흔 : 이게 자주 공론화되는 주제는 아니지만 투자자의 팀웍, 주주의 팀웍 무척 중요하다. 이를 미처 생각하지 않고 투자사를 자금 조달이라는 금융 관점으로만 접근해 여기저기서 막 받는 경우가 있는데 좋은 방법은 아니다. 특히 투자유치는 단계 별로 전략적으로 이어나가야 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코파운더를 소중히 영입하듯, 투자사들을 영입해나갈 때도 그들 간 팀웍이 맞는지를 잘 봐야한다. 조건만 좇아서 이 사람, 저 사람을 주주로 막 끌어들였다가는 팀웍이 안 맞아 중간에서 창업자만 힘들 수 있다.
이택경 : 투자자가 투자만 하고 끝내는 게 아니거든. 가벼운 네트워킹부터 시작해서 후속투자유치까지 계속 도와주는데, 이 과정에서 강이사님 말씀 하신 것처럼 뭔가 호흡이 잘 맞지 않으면 일의 진행이 무척 느리게 된다. 저희도 가끔씩 겪는 일인데, 그럴 때마다 투자자 간 팀웍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이희우 : 특히 회사가 잘 안 되어서 청산하거나 폐업하는 경우 이사회나 주주총회를 하면 각자의 본성이 현격하게 드러난다.
류중희 : 동감한다. 약간 다른 이야기인데, 엔젤리스트는 DB가 있어서 DB로 분석만 해보면 어떤 투자자들이 공동투자를 했는지 나온다. 한국도 DB가 많이 쌓였으니까 조금만 조사해보면 어느 회사들이 서로 친한지 통계적으로 알 수 있다. 투자를 유치하는 입장에서도 대충 이 구조를 알고 준비하면 소개를 요청하기도 편하고 전략적으로 설계를 할 수도 있을 거다. ‘우리 팀에 필요한 게 A요소와 B요소이니, 이 회사와 저 회사를 끼면 좋겠다’와 같이 지능적으로 플레이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십분 공감하는 부분이나, 스타트업 입장에서 투자자들의 호흡까지 접근한다는 것이 익숙한 일은 아닌 듯 하다.
이택경 : 어차피 투자유치는 엄청난 시간을 요하는 작업이다. 투자자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소위 ‘스타’ 팀이 아닌 이상 결국 발품을 팔아야 한다.
항상 스타트업 팀에게 이야기를 하는 부분이 ‘아니, 투자자들은 항상 스타트업 팀들에 대한 레퍼런스 체크가 되고 공유가 되는데, 팀들은 왜 투자자에 대한 레퍼런스 체크를 안 하느냐’ 이다. 투자를 받은 팀에게 물어볼 수도 있고, 하다못해 투자사 홈페이지의 포트폴리오만 봐도 대충 투자사의 성격을 알 수 있지 않나. 이런 것도 알아보지 않고 무작정 만나는 건 성의의 문제일 수 있다.
프라이머 이택경 대표
조금 더 깊게 들어가보자. 스타트업과 투자사 간 불편한 진실일 수 있는데, 스타트업 입장에서 투자유치를 진행하는 과정이 사업의 본질을 해한다는 의견이 있다. 이를테면 투자사가 요구한 자료를 만드는 것에 시간과 에너지가 너무 많이 소모된다는 것. 어떻게 생각하나?
류중희 :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 말은 재무제표를 전혀 신경 쓰지 않다가 투자자의 요청으로 만들려고 하니 부담스럽다는 거거든. 바꿔 말하면 원래 했어야 하는 일을 하지 않고 있었던 거다. 처음부터 제대로 준비해온 팀은 그냥 있는 자료 줘도 무방하다. 특히 초기 투자하는 팀들은 그 정도만 봐도 괜찮기 때문이다.
이희우 : 동의한다. 그렇게 이야기 하는 건 말도 안 되는 것이라고 본다. 창업을 한다는 건 실제 비즈니스에 고민하는 것 외에 본인이 세무서가서 사업자등록 떼고, 영수증 모아서 비용 처리하는 것 등 일련의 모든 과정들이 다 포함되어 있는 일이다. 비즈니스에 대해 고민하는 건 10-20%밖에 되지 않는다고도 할 수 있다. 그만큼 잡무가 많은데, 특히 중요한 투자라는 업무를 처리하면서 자료를 대충 만들려고 한다든가 시간을 뺏긴다는 표현을 한다는 건 말도 안 되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다.
류중희 : 이것 나가면 IDG에 아무도 안 찾아오겠다. (웃음)
이택경 : 이런 경우도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VC마다 요구하는 자료의 수준이 다른데, 가끔 찾아갈 단계가 아닌 VC를 찾아가는 경우를 본다. 당연히 그런 VC를 찾아가면 높은 수준의 자료를 요구하는 거고, 그게 찾아간 팀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인 것이지. 즉, 이 모든 것이 궁합이라고 보는데, 이를 따져보지 않고 무작정 찾아가면 서로에게 시간낭비가 된다.
그러나 그게 아니라면 다른 분들의 의견에 십분 동의한다. 오히려 저희 팀들은 VC 투자 받으면서 많이 배웠다고 하더라. 특히 재무자료 만들면서 말이다. 이대표님 말씀하신 것처럼 시간은 당연히 써야 할 부분이다. 대신 한번 IR 할 때 제대로 하라는 조언은 하고 싶다. 자료 하나를 제대로 만들면 여러 군데 보낼 수 있지 않나. 괜히 어중간하게 IR 한번 하고 다음에 또 하고 하지 말고, 한 번 할 때 제대로 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
강석흔 : 조금 더 첨언하자면, 이게 VC 개인의 성향이나 성격의 차이가 아니라 전체 구조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부분이다. 액셀러레이터는 액셀러레이터의 구조가 있듯 VC도 마찬가지이다. 나아가 그 VC가 조성한 펀드의 종류도 따져봐야 한다. 개인 펀드이냐, 민간펀드이냐, 모태펀드이냐, 정부출자펀드이냐 등 해당 펀드에 따라 관리감독체계가 다르다. 그에 맞춰 개별 투자 건에 있어서 스타트업에게 요구하는 서류의 수준이 다 달라지는 것이지. 사실 심사역이나 담당자들은 이것에 따라 움직일 뿐이다. 그런데 ‘왜 저기는 수월하고 여기는 복잡하나. 저긴 착한 놈, 여긴 나쁜 놈’ 이렇게 접근하면 안 되는 것. LP 구성이 다르니 당연한 이치인 것이다. 앞서 수준에 맞춰 찾아가라는 말을 이 구조에서 이해해본다면 ‘우리 팀은 이런 준비가 안 되어 있으니 이쪽으로 가서 진행하자’와 같이 선택의 문제가 되는 것이지.
류중희 : 예를 들어 퓨처플레이의 경우, LP구조가 아니라 투자자가 있는 주식회사 형태이기 때문에 조금 더 유연한 게 있다. 또한 ‘초얼리스테이지’이다 보니까 회사가 만들어지지 않았거나 만들어 진지 얼마 안 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사실 재무자료를 받는 게 의미가 없다. 그래서 저희는 투자심사할 때 그런 재무자료를 거의 보지 않는다. 대신에 미래에 이 회사가 얼마의 돈을 써야 어느 정도의 목표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인지를 팀원들과 함께 같이 시뮬레이션 해보는 거지. 퓨처플레이는 그냥 몸만 와서 무슨 문제를 어떤 기술로 해결하려고 하는지만 잘 피칭하면 투자한다.
즉, 투자사가 요구하는 자료는 회사의 철학과 단계와 투자 금액과 지원하는 방법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본인에게 맞는 회사를 찾는 것이 가장 기본이고, 딱 맞는 회사를 찾았는데 그곳에서 무언가를 요구한다면 그건 당연히 해야 하는 부분이지.
IDG벤처스코리아 이희우 대표
펀드구성에 대해 이어서 이야기해보자. 각 사의 펀드 구성과 대체로 요구하는 자료 수준은 어떠한가?
이희우 : 저희는 IDG본사가 펀드를 만들어줬기 때문에 LP가 한 명이다. 본사에서 운영하는 거라고 보면 되는 것. 처음엔 저희가 10억에서 3, 40억 규모로 투자를 해오다 보니까 요구하는 자료 수준은 조금 높았다. 매출이 나는 기업을 위주로 투자했기에 매출 추정을 요구하기도 했지. 그러나 얼리스테이지로 대상을 확장 후에는 매출 추정 자료는 요구하지 않는다. 초기기업이 추정 자료를 가져와도 VC들은 그것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안다. 초기의 추정치는 의미가 없거든. 그렇게 투자심사보고서를 완전히 간소화 시켜서 20페이지 정도 쓰던 걸 이제 4-5 페이지 정도로 쓴다. 캐피탈 리턴(Capital Return)이나 IRR(수익률)이 얼마나 나오고 하는 등 필요한 부분은 내가 직접 쓰면 되는 부분이고.
대신 없던 걸 하나 추가한 것이 있다. 어차피 얼리스테이지는 사람에 대한 판단, 팀에 대한 판단이다. 때문에 팀에 대해 요구하는 것이 있다. 왜 창업했고, 처음에 누가 아이디어를 냈고, 누가 누구를 설득해서 팀이 구성 됐고, 본인이 생각하는 팀의 경쟁력은 무엇이고, 부족한 경영진을 영입했을 때 동기부여는 어떻게 해줄 것이고 등에 대한 걸 써오라고 한다. 그걸 받아보면 이 팀이 잘한 건지 아닌 지가 보인다. 물론 그 전에 인터뷰해서 충분히 파악할 수 있지만 지들이 글을 쓰다 보면 본인들도 느끼게 된다. 진정성도 느껴지고.
이택경 : 프라이머의 경우 대부분 다 파트너 출자이기 때문에 외부의 간섭은 없다. 파트너 내에서 자체적으로 심사하고 진행하는데다가 투자 대상이 얼리스테이지이기 때문에 일반 VC보다는 요구하는 자료의 수준은 조금 낮지.
본엔젤스는 어떠한가?
강석흔 : 저희는 투심보고서 두 페이지 쓴다. 이걸 듣는 모든 VC들이 놀라지. (웃음)
두 페이지를 쓰는 게 처음에는 100 페이지를 쓰는 것보다 시간이 더 걸린다. 원래 요약하는 게 어려운 일이거든. 딱 줄이고 줄여서 중요한 핵심들만 모으는 거지. 이 팀에 투자를 왜 하는지 훨씬 명확해진다.
그게 가능한 이유는 펀드의 구조 때문이다. 본엔젤스는 계속 저희 자본금으로만 투자를 하다가 작년에 펀드를 만들었다. 여기 계신 분들도 대부분이 LP들이신데, 이 LP들이 형식적인 걸 간소화해도 다 용인해줄 수 있는 분들이다. 본엔젤스에 대한 신뢰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모태펀드나 정부출자펀드이면, 국민의 세금이기 때문에 당연히 최소한의 관리감독 체계 하에서 움직여야 하는 것이다. 때문에 원래 저희끼리 하던 경우보다는 업무가 많아지는 것이고 자연스레 스타트업에게 요구하는 것도 많아지는 것이지.
작년에 조성한 페이스메이커펀드로 얼마나 투자했나?
강석흔 : 이제 서른 팀이 넘어간다. 1년 정도 됐는데 굉장히 많이 한 셈이다.
류중희 : 이런 것도 중요한 것 같다. 본엔젤스의 경우 1년에 서른 개씩 투자하잖아. 그런데 저희는 많이 해봐야 열 팀이다. 즉, 투자사에 따라 투자를 많이 하고 그 중에 큰 엑싯을 기대하는 회사가 있고 저희같이 굉장히 적게 투자하고 투자한 모든 팀의 성공을 기대하는 회사가 있는 것. 비유하자면 기관총 식이냐, 스나이퍼 식이냐에 따라 회사가 대하는 방법이 다르다. 저희는 초기에 소액을 소수의 회사에 하는 대신 굉장히 많은 서포트를 하고 있다. 그래서 1년에 많이 해봐야 열 팀인 것. 정리하자면, 아주 확실한 기술과 아이템이 있는데 가진 게 아무것도 없다면 저희 같은 회사와 맞는 것이고, 꽤 준비를 해서 바로 협상할 준비가 되어 있으면 조금 더 규모가 큰 곳으로 가는 게 맞는 것 같다.
이택경 : 프라이머도 얼리스테이지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사실 손이 많이 간다. 자금의 이유가 아니라 그것 때문에 1년에 투자하는 팀의 수에 제한이 있다.
강석흔 : 이건 굉장히 노동집약적인 일이다. 즉, 마이크로VC에는 진입장벽이 꽤 있는 거다. 돈 있고 능력만 있어서 이걸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노동과 정성을 여기에 얼마나 쏟을 수 있느냐가 무척 중요한 요소이다.
본엔젤스 강석흔 이사
최근 대형 VC에서 마이크로 펀드를 조성하는 시도들을 보는 견해는 어떠한가?
강석흔 : 물론 자체는 좋게 본다. 다만 자금 지원뿐만 아니라 기업의 가치상승에 얼마나 더 정성을 쏟고 도움을 줄 수 있느냐는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드러날 것이다. 그렇다보면 스타트업 입장에서 보기에 수준이 나눠질 수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택경 : 대형 VC 같은 경우는, 예를 들어 200억 펀드를 20억씩 풀면 열 개만 투자하면 끝이다. 그걸 3억씩 풀게 되면 수가 엄청 늘어나야 하거든. 즉 관리비용이 엄청나게 커지는 것이다. 규모의 경제로는 논리가 서지 않는 부분이기에 익숙하지 않을 것이다.
강석흔 : 여기 있는 사람들이 잘 할 수 있는 건 그것이 몸에 밴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게 정말 즐거워서 하는 거거든. 계산하기 시작하면 답이 나오지 않는다. ‘내가 이걸 왜 하고 있지’ 하는 생각 들 거다.
이희우 : 그러니까 초기기업에 투자를 한다는 건 생각과 철학과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덜 힘든 거지.
이택경 : 금융관점으로 초기 투자에 대해 생각해보면 해서는 안 될 일일 수 있다. 이걸 할 바에 차라리 뒷단에서 20-30억씩 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지. 즉, 초기는 본인이 여기서 느끼는 보람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류중희 : 초기투자 하는 회사들이 대부분 창업가 출신들에 의해 만들어 진 건 그런 이유에서다. 어떻게 보면 투자 관점보다는 벤처로서의 마인드가 훨씬 크다.
이희우 : 절대적으로 공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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