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 맥락, 의미, 표현’ 문서의 완성도를 평가하는 네 가지 관문
부제 : 내 문서가 가진 문제점은 무엇인가 ?
어느날 내 수업을 듣고있던 분이 쉬는시간에 자신의 보고서를 조심스레 들이밀었다. 거의 마무리단계에 와있는 보고서의 디자인에 대해 조언을 구하러 온 것이었다. 그 보고서는 확실히 비주얼에 문제가 있긴 했다. 그러나 내 생각엔 비주얼보다 전체적인 논리구조와 전개방식이 더 문제였다. 그가 원하는대로 해당 슬라이드를 보기 좋게 꾸며주는 일은 어렵지 않았지만 그것이 대세에 영향을 미치진 못할것 같았다. 그래서 그에게 간단하게 답변했다. ‘지금으로선 비주얼을 다루는 것이 의미없고 단순한 논리구조 확보가 먼저’라고 말이다. 그는 실망했지만 나의 설명에 수긍했다.
처음엔 조언을 하는 나도 간단하게 대답할 수 없었다. 논리, 흐름(전개), 비주얼 모두가 좋지 않은 사례를 만나게되면 보완할 것이 너무 많아 어디부터 얘기를 꺼내야 할지 몰라 오히려 할말을 잃거나 조리없이 장시간을 주절거리고 있는 나를 발견하며 당황했다. 명쾌하게 핵심을 찌르지 못하는 나 역시 그들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 쓴웃음이 났다. 이때문에 난 문서의 완성도를 평가하는 단순한 진단체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시행착오를 거쳐 순차적으로 통과해야 하는 네 개의 관문형태로 정리했다.
지난 몇 년간 난 수백통의 메일과 만남을 통해 다양한 산업군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들의 고민을 듣고 그들의 고민을 같이 해결하려 노력했다. 그 간접경험이 나의 강의와 코칭을 성장시키는데 도움이 되었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기획자들의 문서작성 습관, 산업군별로 다른 보고서/프레젠테이션의 문화, 대다수의 기획자가 느끼는 어려움, 스스로 느끼지 못하는 문제의 심각성 등이 그 경험에 포함되어 내가 네 개의 관문으로 진단방법을 체계화 시키는데 일조했다.
자신이 작성한 문서나 프레젠테이션이 가진 문제를 인식하는 것이야 말로 기획력을 한 단계 진보시키는 첫 걸음일 것이다. 그럼 네 개의 관문을 하나씩 통과해보도록 하자.
네 개의 관문, 그리고 첫번째 논리의 문
이 세상의 문서는 다음의 네 관문 중 하나에 머물러 있다고 생각한다. 제 1관문을 통과하지 못한 문서에게 나머지 관문은 의미가 없다. 이는 장애물을 넘지않고 우회하면 실격당하는 허들경기와 같다. 핵심논리가 있어야 그를 단계적으로 설득하는 맥락이 의미가 있고, 맥락이 살아있어야 이해력을 배가시키는 스토리텔링이 의미있게 된다. 그리고 그것들이 적절한 비주얼로 그려질때 최상의 효과를 거두게된다.
- 제 1관문 : 논리의 문 – 주장하는 바가 단순명료하게 정리되었는가
- 제 2관문 : 맥락의 문 – 청중의 반응을 의도한바대로 이끌어가고 있나
- 제 3관문 : 이해의 문 – 내용을 쉽고, 강렬하면서 흥미롭게 이해가 가능한가
- 제 4관문 : 표현의 문 – 의도한 내용을 빠르고 정확하게 읽어낼 수 있나
4개의 관문이라는 개념을 정립한 이후 난 답변이 좀 더 간략하고 수월해 질 수 있었다. 검토하는 문서가 1관문을 통과해 2관문을 넘어서지 못했다면 난 논리에 대한 약간의 보완점과 함께 맥락의 설계에 대해 내 설명을 집중시키고 그에 대해 보완이 되고나서 3,4관문에 대해 얘기하자는 식으로 정리할 수 있었다.
난 수 년전부터 스타트업 코칭을 시작했는데 그 때 내가 검토한 40여개의 스타트업의 제품소개서(혹은 사업계획서) 중 4개의 관문을 모두 통과한 팀은 하나도 없었다. 대략 30여개의 팀이 1단계에 머물러 있었으며, 7~8개팀이 2단계에, 3단계에 도달한 팀이 1~2팀 정도였다. 거의 대부분은 1관문을 통과하지 못한채 거기에 계속 머무르게 된다. 스타트업만 그런것은 아니었다. 내가 피드백을 의뢰받는 수 백개의 문서들 중 8~90%가 논리의 문을 통과하지 못했다. 스타트업의 제품소개서나 사업계획서는 매우 명확한 지향점을 가진다. 그들은 대부분 제품이나 (대부분 앱이나 간혹 제조업도 있다) 서비스를 가지고 있다. 제 1관문을 통과할 자격이 있는지 알아보는 방법은 간단하다. 아래 질문에 대답하는 것을 들어보면 알 수 있다.
“당신은 어떤 점이 불편해서 그 앱이나 서비스를 만들게 되었는가 ?”
위의 질문이 불편하다면 이런 질문으로 바꾸어 보겠다
“내가 저 제품(혹은 서비스)를 구입함으로 얻는 Benefit은 뭔가 ?”
자신의 보고서가 위의 두 가지 질문에 대답할 수 없는 주제라면 이런 질문도 가능하다
“당신이 그 주제에 대해 주장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가 ?”
사실 저 세 가지 질문은 거의 비슷하다. 1관문을 통과할 자격을 갖춘 사람들은 저 질문을 받으면 반사적으로 답변이 나온다. 그것도 짧게 나온다. 게다가 몇 가지인지 명확하게 구분해서 얘기한다.
‘결혼을 혼자 준비하기엔 알아볼 것이 많아 시간과 노력이 너무 많이 들고 전문성도 떨어진다. 그 때문에 웨딩플래너를 고용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신경쓸 것들이 많아 스트레스가 쌓이더라’
웨딩 서비스를 준비하는 스타트업이 위와 같이 대답한다면 거의 완벽하다 생각한다.(1차적으로는 말이다.) 수 십초이내에 대답할 수 있을 정도로 단순하게 정제되어 있고 혼자 준비하는데 대한 3가지 문제와 그 대안으로 고려하는 웨딩플래너 역시 완전한 솔루션이 아니라는 명확한 구조를 갖추고 있다. 이 뒤로 이어질 내용은 사실 뻔하다. 우리 서비스가 그 문제를 완전히 보완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많은 스타트업은 저렇게 단순하게 대답하지 못한다. 아예 답변을 하지 못한다면 최악의 상황이다. 자신들의 제품이 어필해야할 최소한의 논리구조를 전혀 갖추지 못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내 경험에 의하면 아예 대답하지 못하는 경우가 예상보다 많았다. 그리고 대다수는 대답을 하지만 주절거리며 1분이상 이런 저런 얘기를 하는데 핵심내용이 그 주절거림 속에 들어있는 경우도 있었지만 초점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는 주절거림도 있었다.
어쨋든 첫 번째 관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핵심의 뼈대가 제대로 갖추어졌는가이다. 위에서 예로 든 웨딩 서비스 얘기를 계속해보자. 난 위에서 제시된 저 문장이 1차적으론 완벽하다고 했다. 난 아마 애매한 부분에 대해 추가적으로 질문을 해댈 것이다. 가령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든다는 것의 더 구체적인 내용, 전문성이 떨어진다고 하는데 그 전문성이란 무엇인지 떨어진다면 어떤 기준으로 그걸 평가했는지, 여전히 신경쓸 것이 많다고 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말이다. 당연히 작성자는 그에 대한 대답을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거기까지 대답할 수 있어야 1단계 관문의 요건을 모두 갖춘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위의 저 질문이 1관문의 모든 것이라 착각하지 말라. 저것은 단순히 시작일 뿐이고 여러분들은 그 다음 질문에 대해 역시 같은 방식으로 대답해야 한다. 가령 그 다음 질문은 이런것이다.
“당신의 제품(혹은 서비스는)은 그 불편함을 어떻게 해결하였는가 ?”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이 진짜 하고싶었던 얘기가 아니던가. 가장 기본적인 논리의 뼈대는 불편함(혹은 문제점)과 해결책에 대한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답변이 아닐까 생각한다. 제 1관문은 가장 어렵다. 단순하면서도 구체적이어야하기 때문에 많은 생각과 고민으로 많은 정보를 압축해 단단하게 만들어진다. 그런데 8~90%의 문서가 1관문을 넘어서지 못한다는 사실이 우리의 문서가 가진 최대의 문제점이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기획자들은 보고서 스킬을 업그레이드 하기 위해 스피치와 프레젠테이션 매너, 디자인 등 피상적인 부분에 여전히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제일 큰 문제인 간결한 논리를 제쳐두고 말이다.
제일 큰 문제는 단순나열
내가 경험하고 파악한 우리의 문서와 보고서의 가장 큰 문제점은 ‘단순나열’에 있다. 피드백을 원하는 많은 사람들의 문서를 검토하면서 그 판단에 더 확신이 서게되었다. 단순나열은 간결하고 임팩트있어야 할 주장을 분산시키고 맥락(제 2관문)을 약화시킨다. 1관문을 통과하지 못하는 문서들은 대개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진다
- 전달하려는 정보가 너무 많다
- 의미가 구체적이지 않고 모호하다
- 중요도가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위는 모두 단순나열이 야기시킨 문제들인데 이로인해 청중은 문서를 모두 읽거나 발표를 듣고나서도 전체적으로 주장하려는 메시지를 잡아낼 수 없거나 오해하게 된다. 청중들이 발표나 문서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작성자보다 짧다. 따라서 전달하려는 정보가 많아질 수록 집중력을 잃는것은 당연하다. 임팩트있는 몇 개의 메시지만 이 자리에서 받아들 일 수 있을 뿐이다. 그러니 최대한 줄여야 한다.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와 같은 모호한 표현 역시 청중 입장에선 와닿지 않게 느껴질뿐이다. 이런 포괄적인 단어들은 구체적인 표현으로 교체해야 한다. (글자 몇 개가 더 늘어나도 말이다) 최악은 이러한 모호한 표현들이 군집을 이루는 것이다.
중요도의 차이가 드러나지 않거나 (=같은 레벨에서 나열하거나) 몇 가지인지 구분조차 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문제점이 두 가지인지 세 가지인지 말이다. 그래서 한 번은 보고서를 읽어내려가다가 “그래서 문제점이 세 가지라고 주장하는 겁니까?”하고 질문한적도 있었는데 작성자는 “그렇다”고 대답하지도 못한체 우물쭈물 했다. 우리는 주장하고자 하는 임팩트있는 메시지 몇 개를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증명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여러가지를 얉게 나열하는 것을 대신해서 말이다.
제 2관문, 맥락의 문
1관문의 핵심이 간결한 주장이었다면 그 다음은 매끄러운 논리전개다. 무엇인가를 주장하기 위한, 인과관계를 가지고 있는 보고서는 대개 현상-문제-원인-해결책으로 이어지는 몇 개의 마디를 연속적으로 배치하여 청중의 반응을 단계적으로 유도해 나가게 된다. 기본적으로 이 흐름이 말이되야 하고 더 나아가서는 설득력을 가져야 한다.
예를들어 두 가지의 문제를 제기했다면 해결책은 그 두가지 문제가 해결될 것임을 다뤄야 한다. 문제점을 두 가지로 제기해 놓고 하나만 해결된다든가 이전에 등장하지 않았던 문제점에 대한 새로운 해결책이 제시된다면 이는 말이 안되는 것으로 맥락에 대한 문법 자체가 틀린 것이다. 시간에 쫓기는 상황에서 정신없이 작성하다 보면 일어날 수 있는 의외로 흔한 현상이다.
또 다른 형태의 문법적 문제도 있다. 한번은 대기업 차장급 관리자들을 대상으로 강의와 코칭을 진행하면서 각자가 가져온 보고서의 논리전개를 검토하게 되었는데 대다수의 목차가 배경 및 목적-현상-문제점-개선방향-액션플랜-기대효과의 순서로 짜여있었다. 놀라웠던 것은 현상에 들어있어야 할 내용이 ‘배경 및 목적’이나 ‘문제점’에 들어있거나 ‘문제점’에 있어야 할 내용이 ‘현상’에 배치되는 등 맥락의 각 마디가 가지고 있는 정확한 의미를 구분하지 못해 생기는 문제였다. 대개 이러한 형태의 문제를 지닌 보고서들은 1관문을 넘어서기도 힘겹다. 논리가 정리되지 않았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위의 두 가지 형태의 문법적 문제는 맥락의 형성 자체를 방해한다. 그러나 맥락에 대한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더 많은 문제들이 기다리고 있다. 맥락은 몇 개의 마디로 흐름을 단순하게 구성해야 끝까지 이해의 끈을 놓치지 않는데 너무 마디가 많으면 이해자체를 방해할 수도 있다. 지난주 나는 16개 정도의 목차로 구성된 15분짜리 프레젠테이션 문서를 받아들고 당장 목차의 수를 5개 이내로 줄여보라고 권고했었다. 기나긴 흐름을 참아낼 수 있는 청중은 많지 않다.
어려운 주제임에도 문제제기가 미약한 상태에서 바로 해결책으로 넘어가는 것, 주제에 대한 사전지식이 거의 없는 청중에게 당위성을 먼저 얘기하지 않는 것, 이미 널리 알려진 주제임에도 기본적인 지식전달에 너무 많은 지면을 할애하는 것 등은 설득력을 약화시킨다.
매끄러운 맥락을 만드려면 청중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청중의 주제에대한 선입견, 사전지식 등을 바탕으로 내용의 밸런스를 맞추고 5~6마디 이내로 흐름을 만들어 각 마디에서 얘기할 주요 메시지가 처음부터 끝까지 연결되어야 한다.
강의와 코칭을 통해 지금까지 검토한 대다수의 문서들이 (경험적으로는 95%이상이다) 간결한 논리와 매끄러운 맥락을 가지고 있지 못했고, 난 이 두가지가 기획자들이 가진 최대의 약점이라 생각한다. 따라서 기획자들은 스피치와 디자인에 대한 개선노력 이전에 이 두 부분에 역량을 집중해야 진전이 있을것이다.
제 3관문, 이해의 문
세번째 관문은 스토리텔링에 대한 것이다. 간결한 논리와 매끄러운 맥락은 내가 가진 것을 오해하지 않고 정확하게 전달하는데 필수적이다. 그러나 발표주제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거나 활동분야가 다른 청중은 내가 발표하려는 전문적이고 깊이있는 이야기를 단시간내에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또한 내가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메시지를 그리 중요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고 지루해할 수도 있다.
스토리텔링은 그 부분을 보완해줄 수 있다. 어려운 주제에 대한 쉬운 이해를 돕거나 평이한 메시지에 임팩트를 부여하거나 지루한 주제를 흥미로운 것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다. 나는 16년간 IT기획자와 컨설턴트로 활동하면서 IT에 대한 전문성이 없는 경영진을 상대로 보고서를 제출하고 발표해왔다. 비전문가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이 내 일생의 숙제였는데 그 때마다 난 전문용어를 가급적 사용하지 않고 메타포나 사례, 가시적인 모델 등을 만들어 설명하면서 이해를 돕고 임팩트를 갖추려 노력했다.
다시 웨딩서비스로 돌아가보자. ‘혼자서 결혼준비를 하는 것은 어렵다. 그래서 웨딩플래너를 고용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복잡성이 모두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간결한 논리지만 청중이 모두 심각하게 고개를 끄덕일 것 같지는 않다. 나는 저 문장에 임팩트를 더할 수 있는 사례를 하나 만들어보라고 주문했다.
최근에 결혼한 선배에게 엑셀로 된 결혼준비 체크리스트를 받아보니 우려 150가지의 의사결정 사항의 리스트에 숨이 막힐 것 같았다고 얘기하라. 그 과정에서 예비신랑과의 일정에 대한 의사소통 때문에 싸운 얘기, 너무 많은 선택지 앞에서 시간을 보내고, 대안들을 수집하러 다니면서 예비신랑과 언쟁을 벌이고 결혼 자체에 회의를 느껴 몇 번이나 포기할뻔 했던 그런 얘기들을 들려줘서 청중들도 그 이야기에 깊숙히 끌어들이고 그들도 그 상황에 짜증내게끔 만들어라.
청중을 당신의 얘기로 깊숙히 끌어들이기 위해선 정말 구체적인 얘기를 통해 그들의 감정선을 자극해야 한다. 10년 이상 경험을 쌓은 과/차장급 기획자들은 1관문을 어렵지 않게 통과하지만 그들이 가진 메시지는 대게 구체성이 떨어지고 스토리가 장착되어 있지 않아 청중들의 감정선을 자극하는데 있어 부족하다. 스타트업들 역시 마찬가지다. 명확한 제품과 서비스가 존재한다면 스토리를 만들어내기 유리하다. 난 이 스토리 같은 것들을 논리를 어필하는 부스터(Booster)라 부른다.
대부분은 부스터가 없는 것이 문제지만 가끔 스토리의 배치와 흐름이 청중을 엉뚱한 곳으로 끌고가기도 한다. (오해를 만든다) 최근 나의 코칭에 참여한 한 스타트업은 걷는 운동을 측정하는 앱을 통해 그 거리에 따라 아프리카에 물을 기부한다는 사회적 기업이었다. 그는 자신의 다이어트를 위한 운동을 하던 중 우연한 기회에 아프리카의 물부족 문제에 대해 인지했고 그것을 운동과 연결하여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걸음’을 기부하면 광고스폰서가 그 걸음 수 만큼 아프리카에 물을 기부하는 체계를 만들어 냈다. 그의 다이어트 이야기는 뒤로 이어지는 맥락상 필연적으로 나와야 하지만 되도록 빠르게 통과하고 청중의 이목을 뒤에 이어지는 물부족 문제에 집중시켜야 한다. 따라서 난 이야기의 도입부가 내 생각보다 길고 청중이 키워드를 다른 것으로 오해할 수 있음을 지적했고 전체 이야기의 밸런스를 다시 맞춰보는 작업을 했다.
3관문은 자신의 밋밋해 보이는 논리를 얼마나 부스팅 시킬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쉬운 이해를 돕고, 더 강렬한 임팩트를 더하고, 흥미로워야 한다.
제 4 관문, 표현의 문
마지막 관문은 작성기술과 비주얼에 대한 것으로 상대적으로 가장 쉽다. 시선을 끄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누구나 내 의도한 바를 신속하게 오해없이 읽어내느냐가 핵심이지만 불행하게도 비주얼에 대한 대다수의 생각은 시선을 끄는 쪽을 목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짙다.
내가 검토한 많은 젊은 스타트업들은 슬라이드 작성 기술이 상당한 수준에 올라 있었다. 어쩌면 그에 대해 강의하고 있는 나보다 더 뛰어날 정도로 말이다. 아마도 이전 세대에 비해 대학때부터 프레젠테이션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던 습관이 긍정적으로 작용한 것 같다. 그러나 작성기술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대기업의 시니어 기획자들의 슬라이드에 비해 이해와 설득력이 더 낫다고 할 수 없었다.
프레젠테이션에 대한 많은 오해는 ‘보기좋은 떡이 맛도 좋다’라는데서 발생한다. 경쟁 프레젠테이션에서 상대방을 제압하는 수단으로 사용되는 비주얼은 적어도 경쟁자와 논리-맥락-스토리가 비슷한 수준에선 유효할 수 있다. 그것도 모든 참가자들의 비주얼이 신속하게 오해하지 않고 읽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 모두들 시선을 끄는 목적으로 사용될때만 그렇다. 어차피 모든 참가자들의 내용파악이 수월하지 않다면 마지막 남은 평가 수단은 비주얼의 차이가 될 터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훌륭한 프레젠테이션 사례들은 화려하기도 하지만 쉽게 이해된 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 화려함의 이면을 들춰보면 각 슬라이드는 극도로 정형화되어 있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색상과 폰트는 단 몇 가지로 제한적이고 폰트의 크기나 메시지의 위치 또한 거의 고정적인 룰을 따르고 있다. 애플과 스티브잡스의 프레젠테이션만 하더라도 그렇다.
너무 많은 색상과 폰트를 사용하지 않고 일정한 크기와 위치에 고정적으로 메시지를 노출시켜 청중을 학습시키고 생략할 수 있는 글자와 내용은 최대한 줄여 단순화시켜 오해를 줄인다면 승산이 있다. 비주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오해없이 신속하게 해독하는 것이다.
문제의식을 가져라
앞서 설명한 네 개의 관문은 여러분 스스로가 돌아봐야 할 문제인식의 우선순위이자 강의와 코칭을 이어나가야 할 나의 지향점이다. 기획자들이 보고서와 프레젠테이션과 관련해 직면한 문제를 네 가지 방면으로 나누어 설명했고 그 중 가장 큰 약점이 간결한 논리를 만드는 능력이고 그 다음은 매끄러운 맥락을 구성하는 것, 쉽게 이해시키는 것, 오해하지 않게 작성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이제 기획자들은 자신의 문서와 기획력이 어느 단계에 머물고 있는지 냉정하게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 그리고 그 지점부터 자신의 스킬트리를 확장해나갈 계획을 짜보는 것이 순서다.
프레젠테이션 스킬을 한 단계 높이기 위한 기획자들의 관심은 오래동안 피상적인 것에 머물러 왔다. 슬라이드 디자인이나 프레젠테이션 스피치와 매너같은 부분에 말이다. 그 두가지 역시 중요하지만 이제 빙산의 아래에 잠겨있는 가장 기본적인 부분인 논리-맥락-스토리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다. 난 이 세 가지를 문서작성의 ‘기획’부분으로 간주하며 전체 노력의 80%을 여기에 투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머지 20%를 차지하는 빙산의 노출된 부분도 기획이 강해졌을 때 그 위력이 배가된다.
기획에 집중하기 위해 우리는 지금까지의 문서작성 습관도 기획과 생각정리 위주로 변화를 줘야한다. 이는 문서를 작성하는 기획자들에게만 해당되는 문제가 아니다. 문서를 검토하는 관리자나 청중의 인식도 변해야 한다. 부하직원들의 보고서를 검토하는 관리자 입장이라면 이제부터는 빨간펜으로 맞춤법 검사만 해서 돌려보내지 말고 논리구조와 전개방식을 먼저 평가해보고 빨간펜을 들어라. 상사에게 보고서를 가져가야 하는 처지라면 스스로 자신이 어느 관문에 해당되는지 평가해 보고 당신의 상사가 어떻게 보고서를 읽어내는지도 흥미있게 지켜보라. 그리고 회의에 들어가서, 데모데이에 나오는 다른 팀들의 발표를 위와 같은 관점에서 바라보라. 다른 사람들의 프레젠테이션을 보면서 상당한 진전을 이루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샐러리맨들이라면 남의 보고서를 간파하는 것도 기획자의 역량임을 명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