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급 과학’으로 과학 대중화 나선 ‘우주라이크’ 지웅배 디렉터
‘은하철도 999’라는 만화영화를 통해, ‘우주’는 7살짜리 지웅배 디렉터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에게 각별한 대상이 되었다. 지구 밖을 묘사한 장면을 스케치북에 따라 그리면서 ‘이것만 보고 살았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할 만큼.
과학고를 조기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천문우주학과 석·박사 통합과정에 재학중이던 그는, 과학 대중강연 경연 국제대회인 ‘페임랩(FameLab)‘에 작년 한국인 최초로 도전하였다. 발표자료 없이 간단한 소품만을 활용하여, 자신의 전공 분야를 일반인 대상으로 3분 이내에 설명하는 대회였다.
‘과학 커뮤니케이터’가 되고 싶다는 그의 오랜 꿈은 4년 전 ‘우주라이크(WouldYouLike)‘를 설립하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주라이크에서 발간하는 잡지는 벌써 9호를 준비하며 대중과의 소통의 폭을 넓혀가고 있었다. 연세대학교 앞 카페에서 그를 비롯한 운영진을 만났다.
‘우주라이크’의 운영진. 왼쪽부터 최우락 행정지원팀장(22), 나현진 SNS관리팀장(19), 지웅배 디렉터(23).
‘과학 커뮤니케이터’라는 단어가 생소하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였다. 같은 학년에서 지구과학을 공부하는 학생이 나와 내 친구 둘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해당 과목의 시험 전날이 되면 얼굴도 모르는 다른 반 학생들까지 찾아와 우리에게 질문했다.
나와 내 친구가 이들을 맡아서 절반씩 나눈 후 설명을 해줬는데, 이를 통해 이론을 더 쉽게 이야기해주는 방법을 자연스럽게 고민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단순히 과학을 공부하는 것 말고, 과학에 대한 ‘썰’을 푸는 게 더 재밌다는 걸 느끼게 되었다. 과학연구자 말고 과학 대중화를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계기였다.
과학의 현주소를 진단하자면?
과학 행사를 가면 억지로 끌려온 아이들과 그 아이들을 데리고 온 학부모가 앉아있다. 그리고 성인이 되면 과학을 접할 기회가 없으며, 그들을 위한 콘텐츠도 거의 없다. 우주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은 중후한 말투로 “광활한 우주는…”이라고 시작한다. 경량화하고, 저렴화한 ‘B급 과학’이 없다. 과학 문화의 복지 차원에서 볼 때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셈이다.
대학원 면접 때 내가 받았던 질문은 “지웅배 학생, 이거저거 많이 하네요. 그런데 대학원 들어오면 이런 거 안 할 거죠?”였다. 연구 시간을 과학 대중화 활동에 뺏길 거라는 전제 때문이었다. 과학 대중화는 나중에 나이 많이 먹고 교수가 된 후 하는 거라는 마인드가 있는데, 난 반대로 생각한다. 인터넷 문화에 익숙하고, 온갖 애드리브에 능한 젊은 세대가 과학을 번역해야 일반인이 소화 가능한 콘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다.
우주라이크를 소개해달라.
만약 우주의 나이가 24시간이라면 인류가 지내온 시간은 1초이다. 밤하늘은 우리가 모르는 23시간 59분 59초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우주라이크는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이 우주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려주는 ‘대한민국 우주 외교관’이다.
2011년 7월 교내 과학 언론 소모임으로 출발한 우주라이크는 스토리텔링 측면에서 뜨거운 반응을 얻어 현재 전국 대학생 28명으로 구성된 비영리단체로 성장하였으며, 8호까지 잡지를 발간한 상태이다. 우리가 생산하는 콘텐츠는 오프라인 잡지로,페이스북 페이지와 홈페이지 등 온라인 미디어로 유통되고 있다.
또한, 나사(NASA)에서 매일 우주 사진을 소개하는 ‘APOD(Astronomy Picture of the Day)’ 서비스를 하고 있는데, 우리가 이를 한국어로 번역하여 제공하고 있다.
잡지를 발간하는 데에 어려움은 없었나.
초반에는 글을 쓰던 사람들이 아니었기에 질적으로 우수한 콘텐츠를 생산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1호 잡지는 내용이 투박하고 디자인적으로도 예쁘지 않았다. 그러나 노력의 결과물을 인쇄하여 배포하는 그 자체만으로도 즐거웠다. 교내에 배포한 후 매일 몇 부씩 사라졌는지 눈으로 확인하면서 뿌듯해 했다. 3호부터는 기사를 취합하여 검수하는 편집 절차를 마련하였으며, 교외 배포도 시작했다.
한편, 한국과학창의재단 민간과학문화육성지원사업에 선정되어 1년간 자금을 지원받다가 이후 자금 부족 해결을 위해 크라우드펀딩을 진행했던 적이 있다. 다행히 목표 금액보다 초과 달성하여 잡지를 발간할 수 있었고, 올해 다시 한국과학창의재단의 지원을 받게 되었다. 또한, 가끔 지원금이나 잡지 광고비로 도와주시는 분들 덕분에 잡지 발간을 이어나가고 있다.
사람들 반응은 어떤가.
올해부터 갑자기 많은 곳으로부터 연락이 오는 편이다. 과학 교사 연수 과정에 우주라이크 잡지를 활용하고 싶다는 요청이 온 적 있고, 영화 ‘마션’ 배급사에서 홍보용 티켓 이벤트를 진행하고 싶다며 연락이 오기도 했다.
무엇보다 중·고교 학생들로부터 잡지 구독 문의가 쇄도하여 서울 시내 대학 외에 중·고교에도 잡지를 무료로 배포하고 있다.
우주복을 입고 서울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당신과 천문학이 멀지 않다.”는 행위예술을 보여줬던 2013년 10월. 당시 영화 ‘그래비티’ 개봉 즈음이라서 관련 프로모션인 줄 알고 오해한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과학 대중화, 가능할까.
우리에겐 좋아하는 아티스트나 축구선수는 있지만, 딱히 좋아하는 과학자는 없다. 그건 과학이 아직 대중문화의 한 장르가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슬프게도, 천문학 동아리 활동을 했던 학생들마저 그 열정을 잃어버린다. 미국과 일본의 경우 고등학교 동아리 활동에서 창조되는 ‘덕후 문화’가 인재를 만든다. 로켓을 만든다고 밤을 새우던 고등학생이 나중에 나사 연구원이 되는 것이다.
“너 천문학 좋아하는 거 멋있다.”며 응원해주는 환경, 과학이 학문이 아니라 대중문화의 한 장르로서 자리 잡는 데에 우주라이크가 이바지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는 우주라이크를 성공한 시민단체로 만들고 싶다. ‘코스모스‘라는 책의 저자, ‘칼 세이건’이 생전에 만들었던 미국 ‘행성협회(The Planetary Society)’가 지금은 아주 거대한 과학 대중화 조직이 된 것처럼 말이다.
과학 대중화는 거창한 구호가 아니다. 친구에게 맛집을 추천하는 이유가 “대한민국 요식업의 발전을 위해서”가 아닌 것처럼 우리의 과학 대중화의 맥락도 그러하다. “너도 한 번 먹어봐.” 했을 때, 친구가 맛있었다고 하면 뿌듯한 것처럼, 우리의 목적은 계몽이 아니라 향유이다. ‘내가 우주의 비밀을 꿰고 있으니, 무식한 사람들을 깨우쳐줘야겠다.’는 식의 과학 대중화가 아니라 그냥 옆집 과학하는 형이 재미있는 과학 이야기를 해주는 것 말이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
‘은하철도 999’에 기관사 캐릭터로 나오는 ‘차장’이 있다. 사람들을 기차에 태운 후 그는 우주 가이드 역할을 한다. 내가 가장 처음으로 만난 과학 커뮤니케이터가 그 기관사였다.
“고개만 들어도 지구 밖”이라는 시구가 있다. 우리가 그저 고개만 들면 바로 우주를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주길 바란다. 그리고 우주라이크의 앞으로의 활동을 지켜봐 달라.
원문 : [우리지금만나 9] ‘B급 과학’으로 과학 대중화 나선 ‘우주라이크’ 지웅배 디렉터
안경은 앱센터 외부필진 /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들을 좋아합니다.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을 즐깁니다. 글로 정리해 사람들과 공유할 때 신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