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up’s Story #260] 스물일곱 쇼핑광, 425만 요우커의 ‘짐’을 주목하다.
일본에 ‘바쿠가이(爆買い)’라는 말이 있다. 직역하면 ‘폭탄 구매’ 정도인데, 일본에 와서 이삿짐을 싸듯이 물건을 대량 구매하는 중국인들의 소비 양상을 이르는 말이다. 명동과 동대문 등 몇몇 상권을 번영시킨 것 역시 절반 이상은 이 바쿠가이의 영향이 크다. 거리에서 쇼핑백 수십 개를 들고 다니는 관광객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각설하고.
이러한 중국인 헤비 쇼퍼를 대상으로 사업을 시작한 스타트업이 있다. 이들의 콘셉트는 중국인 관광객들을 ‘짐’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다. 쇼핑 물품을 숙소로 당일 배송해주는 ‘아이디바오(Aidibao)‘다. 열정적인 쇼핑광으로서, 여행 중 짐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다는 신선혜 라이트립 대표를 만났다.
왼쪽부터 김한준 CSO, 신선혜 CEO, 이소희 COO, 여염정 마케터.
중국 관광객은 평균 182만 원어치의 쇼핑을 한다.
일본 관광객(33만 원)보다 5배 이상 높은 금액이다. 서울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은 여행 경비의 74%를 쇼핑에 지출한다. 쇼핑 내용물 중 85%는 화장품이다. 원래는 여행객이 들고 있는 캐리어를 호텔로 옮겨주는 서비스를 하려고 했다. 그런데 나중에 그 캐리어를 열어보니 안의 대부분이 쇼핑백으로 채워져 있더라. 여행짐이 담긴 캐리어를 옮기는 것과, 쇼핑 물품이 담긴 캐리어를 옮기는 서비스는 성격이 아예 다르다. 일단 내부에 있는 물건이 모두 새것들이고, 화장품의 경우에는 여러 가지 취급 주의 사항들이 생긴다. 이런 특수성에 주목해서 틈새시장을 노려봤다.
대기업 인턴 시절, 과장님이 ‘왜 벌써 왔어?’라고 물었다.
‘왜 벌써부터 안정적으로 살려고 해?’라는 뜻이었다. 이 질문이 인생을 바꿔놨다. 내가 스물일곱이고, 09학번이다. 대학교(이화여자대학교)에서 공간디자인을 전공했으니, 전공도 많이 살릴 수 있는 직장이었다. 그런데 10년 뒤를 생각해보니 내가 그리던 미래와는 많이 다르겠더라. 아직 해볼 게 많다는 생각에 창업을 결정했다.
쇼핑광이라서 시작했다. 그런데 우리 고객들은 더한 쇼핑광이었다.
예전부터 명동 쇼핑을 너무 좋아했다. 그렇기 때문에 짐을 들고 쇼핑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안다. 어쩌면 당연하게 감수하고 있었던 불편이었는데, 내가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물론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라는 걸 하면서 깨닫고 있지만.
그래서 아이디바오가 어떤 서비스냐고?
아이디바오를 풀어서 설명하자면, ‘중국 관광객 쇼핑 물품 숙소 배송 서비스’다. 여행 중에 쇼핑한 물건을 고객이 묵는 숙소로 당일 배달해준다. 결과적으로 여행객은 쇼핑 짐 걱정 없이 가벼운 몸으로 여행을 즐길 수 있다. 현재는 베타 서비스 중인데, 위챗의 위치 추적 기능을 활용해 고객이 있는 장소로 찾아가고 있다. 아이디바오 위챗 계정을 팔로우하고, 숙소 정보와 예약자명을 적으면 5분 안에 배송맨이 출동한다. 현재 세 명의 공동 대표와 중국인 직원 한 명이 일하고 있는데, 디자이너·마케터·기획자 구분할 것 없이 주문이 들어오면 누구든 출동한다. 아직까지 건 당 무조건 2만 원을 받고 있고, 이후에는 거리 별로 요금을 책정할 예정이다.
실제 짐이 도착했을 때의 모습
쇼핑에는 철이 없다.
장담하기는 어렵지만, 쇼핑을 주목적으로 오는 관광객은 계절이나 시기를 타지 않는다. 보통 중국의 춘절이나 노동절이 대목이라고 하는데, 오히려 반대다. 그때는 단체 관광객이 많은 시기라 우리 입장에서는 대목이 아니다. 또 메르스같은 위기에도, 쇼핑하러 오는 사람은 있더라. 그런 면에서 오히려 꾸준히 성장할 수 있는 비즈니스라고 생각한다.
여행 계획을 빡빡하게 세워 온 이들이 우리 서비스를 많이 이용한다.
단체 여행보다는 혼자 혹은 친구들끼리 개인 여행을 온 관광객이 우리 서비스를 더 선호한다. 아무래도 많이 움직여야 할 테니까. 이들은 평균적으로 여섯, 일곱 군데를 들러 쇼핑을 한다. 그런데 주요 고객의 성격을 한 가닥으로 정리하기는 어렵다. 니즈가 다양하다. 화장품을 대량 구매하는 웨이상(위챗에서 물건을 파는 개인 사업자)도 있는 반면, 정말 작고 가벼운 쇼핑백을 맡기는 고객도 있다. 처음엔 웨이상을 중심으로 서비스를 운영했었고, 지금은 대중적으로 어필할 수 있도록 마케팅 활동을 하고 있다.
최종적인 경쟁자는 EMS로 짐을 직접 부쳐주는 업체들이다.
‘여행객의 쇼핑 물품을 숙소로 배달해준다’는 개념의 서비스는 우리 이전에도 있었다. 동대문을 중심으로 원단이나 의류를 대량 구매한 외국인들이 일반적으로 사용하던 서비스다. 이들은 EMS로 짐을 중국으로 직접 붙여주기도 하는데, 아이디바오도 최종적으로는 이 분야에 도전해보고 싶다. 그 과정에 있는 것이 리패키징 서비스다. 숙소로 짐을 배달할 뿐 아니라, 쓸데없는 포장을 제거하고 구매 물품들을 컴팩트하게 다시 포장해주는 거다. EMS나 리패키징 서비스 모두 안전성이라는 산을 넘어야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다. 고객에게 물품이 손상되거나 분실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없애주는 것이 우선이다. 현재는 문제 발생 시 우리가 전액 책임을 진다.
숙박 분야 스타트업과의 시너지를 기대한다.
협업 가능성이 가장 큰 분야라면 최근 규모가 커지고 있는 숙박 업체들이다. 단일 상점과 협업하는 것은, 우리 서비스 모델과는 잘 맞지 않는다. 고객은 다양한 상점에서 쇼핑을 할 테니까 독점 계약은 손해다. 그래서 호텔이나 게스트하우스, 모텔 O2O 서비스와 MOU를 체결하고, 숙소 이용자가 우리 서비스를 저렴한 가격에 이용할 수 있는 방향으로 푸는 게 더 적합하다 봤다. 얼마 전 O2O 얼라이언스 2차 행사 때, 우리가 데모데이 우승팀으로 선정되었는데, 그때도 숙박 스타트업들이 많은 관심을 보여줬다. 현재는 코엑스의 인터콘티넨탈 호텔과 MOU를 체결한 상태다. 우리도 다양한 여행, 숙박 스타트업과의 협업을 위해 여기저기 문을 두드려보고 있다.
대기업이 침범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냐고?
안 그래도 얼마 전 대기업 관계자를 만났다. 그들도 할 거라고 하더라. 그런데 직접 이 일을 해보니 돈이나 기술만 갖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정말 한 명 한 명 고객을 대할 때마다 온 마음을 다해야 한다. 앞서 말했지만, 고객의 니즈가 정말 제각각이다. 통일된 응대로는 만족시키기가 어렵다. 예를 들어 운송을 우리가 직접 안 하고 택배사에게 맡긴 후 수수료를 줄 수도 있다. 하지만 200~300만 원 쇼핑 물품을 일반 택배사에 맡긴다는데 안심하는 고객이 어디 있겠나. 그래서인지 대기업이 이 시장에 뛰어든다는 말이 부정적으로만 들리지는 않는다. 오히려 지금은 그들이 들어와 이 시장에 가능성이 있는지 확인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시장 규모도 좀 넓혀줬으면 하고.
남성 위주의 VC업계, 설득이 쉽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여성보다는 쇼핑을 즐기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래서인지 ‘굳이 이런 서비스를 사람들이 사용할까?’라는 지점에서 설득이 쉽지 않았다. 아직은 투자받을 시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를 응원해주는 몇몇 심사역들도 ‘좀 더 헤매라’고 조언해줬다. 애정을 담은 충고였고, 감사하다.
인력은? 우버나 에어비앤비와 같은 유연한 고용 형태로 확충할 계획이다.
현재는 상근자 보다는 자기가 원하는 시간만큼을 일할 수 있는 단기 고용 형태가 적합하다. 중국 유학생과 한국인이 반반으로 구성되면 좋다고 본다. 의사소통이 좀 불편해도 한국 현지인을 만나고 싶어 하는 관광객들이 많다. 현재 젊은 느낌으로 인력을 꾸리려고 준비 중이다.
자체 앱이 90% 정도 완성됐다.
올해 목표는 자체 앱을 출시하고, 공항 운송으로까지 서비스 내용을 확장하는 것이다. 명동에서 바로 공항으로 운송하는 것도 가능하고, 숙소에서 공항으로 때에 맞춰 배달해주는 것도 가능하다. 우리 사명이 라이트립(lightrip)이지 않나. 중국 관광객이 짐 걱정 없이 가볍게 여행을 즐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