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현오 대표가 오디오에 관심을 가진 건 15살 때였다. 모아놨던 용돈 전부를 부모님께 드리면서 전축을 사달라고 졸랐다. 레코드판 위에 바늘을 들어 음악이 딱 걸리기 시작하는 순간, 오디오 외길 인생은 그에게 주어진 이름 석 자처럼, 정해진 운명처럼 시작되었다.
‘별이 빛나는 밤에’ 애청자이던 그는, 대학 동정을 전하는 ‘캠퍼스 요즘’이라는 코너에 등장하던 YBS(연세대학교 방송국) 여자 아나운서의 목소리에 꽂혀 일찌감치 진학 목표도 결정했다. ‘꼭 저기 들어가서 저분의 얼굴을 봐야겠다.’던 소박한 이유에서였다. 그는 원하는 대학에 입학한 후 YBS 명예국원 명단에 이름을 올릴 만큼 활동적인 대학 시절을 보냈다.
음악감상 자체가 문화생활이던 세대의 끝자락에서 태어나 디지털 시대로 넘어온 후에도 오디오에 대한 연구를 지속했던 오현오 대표. 그의 열정이 빛을 볼 기회가 찾아온 건 최근 VR 시장이 열리면서부터였다. 인터뷰를 위해 역삼동 ‘MARU180‘ 내 사무실을 찾았다.
(주)가우디오랩(GAUDIO LAB, inc.) 오현오 대표(43)
박사 수료 후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고.
2002년, 국내 대기업 디지털TV 연구소에 입사했다. 당시에는 한·일 월드컵을 전후로 여러 기업에서 디지털TV를 경쟁적으로 선보이던 때였고, 가정집에서는 아직도 ‘배불뚝이(브라운관) TV’가 가득하던 때였다.
오디오를 전공으로 공부한 팀원이 한 명도 없었기에 ‘물 만난 물고기’처럼 일하기 시작했다. 입사한 지 한 달 만에 구현한 3차원 오디오 기술은 바로 TV에 탑재되어 전 세계로 팔려나갔다. 몇 년 후에는 이를 다시 자체 개발한 기술로 대체하여 매년 200억 원씩 해외로 빠져나가던 기술 로열티를 절감하였으며, 이 기술은 지금도 TV에 탑재되어 왕성하게 사용되고 있다. 2005년부터는 국제 표준화 회의에 참석하여 우리 기술을 국제 표준으로 채택시키기도 하였다.
그러나 오디오가 인정받는 선은 거기까지였다. 오디오 기술이 아무리 세계 1등이어도 소비자가 그 이유로 TV를 사는 건 아니었고, 기업의 평가 지표는 매출을 얼마나 끌어올렸느냐에 맞춰져 있었다. 나는 고민 끝에 8년간의 직장 생활을 마무리하고 ‘굿데이 투 인벤트(GOOD DAY to INVENT)‘라는 표준화 전문 기업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국제 표준화 회의란.
국제 표준화 회의란 쉽게 말해 세계 1등 기술을 뽑는 ‘기술 올림픽’ 같은 거다. 그리고 우리 기술이 표준으로 채택되면 회의에 참여했던 전 세계 회사들이 모두 우리 기술을 따라 써야 한다. 다 같이 같은 기술을 써야만 제품 간에 호환이 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특허 낸 국제 표준 채택 기술로 로열티를 받을 수 있으므로, 기업 간에 자신의 기술을 표준으로 채택시키려는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는 현장이기도 했다. 내겐 특허에 관한 전문적 이해도를 높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그러던 중 과거에는 도저히 차별화될 수 없었던 오디오 기술이 VR이라는 가상현실 시장이 열리면서 새롭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적당한 오디오 기술로는 현실감을 구현할 수 없는 문제에 봉착한 시점이었다. 그야말로 오디오 기술이 꼭 필요한 때가 다시 온 셈이었다.
VR 시장은 어떤 시장인가.
VR은 경험에 대한 콘텐츠이다. 기존 미디어를 대체하는 완전히 새로운 미디어이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의 경우 텍스트에서 이미지 공유로, 이미지에서 동영상 공유로 진화해왔다. 동영상을 공유하면 경험이 조금 더 현실감 있어졌는데, 이제는 경험 그 자체의 단계까지 왔다. 친구가 360도로 촬영한 영상을 HMD를 끼고 보면 내가 정말 그곳에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 것이다.
영화도 VR의 영역이다. 스크린 너머에 가상현실이 있었는데, VR은 내가 스크린 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Being There’의 경험이라고도 하는데, 내가 정말 거기에 있다는 몰입감을 구현하는 데에서 오감 중 청각을 만족시키는 소리가 예전보다 훨씬 중요해졌다.
2014년 3월, 페이스북이 HMD 제작사 오큘러스를 약 2조 원에 샀다는 소식을 듣고 ‘VR 시장이 뜰 것 같은데, 제대로 해보자.’는 생각에 오디오 분야 시장조사를 해보았다. 내가 생각한 대로 ‘빈 땅’이 맞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그랬더니 관련 시장 현업에 있는 분들은 이 컨텍스트에 대한 이해가 없거나 기초적인 기술 용어조차 몰랐다. 시장에는 아직 인정 못 받던 오디오 기술을 손에 쥐고 있는 몇 안 되는 ‘선수’들만 있었다. ‘이미 보유한 기술로 들어가도 평정될 시장이겠구나.’ 싶어 머릿속 콘셉트를 빨리 프로토타입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가우디오랩의 오디오 기술을 소개해달라.
VR에서 소리는 경험의 절반을 차지한다. ‘가우디오(GAUDIO)‘는 VR 콘텐츠를 만드는 데 있어 필요한 오디오 기술로써, MPEG 국제 표준회의에서 표준으로 채택된 기술로부터 출발했다.
기존 음향 스튜디오에서 사용하는 사운드 저작 툴에 가우디오 플러그인(지웍스; G-Works) 하나만 얹으면 VR 사운드가 완성된 VR 콘텐츠를 만들 수 있다. 또한, HMD와 같은 엔드 기기에 가우디오 플레이어(지플레이어; G-Player)를 적용하면 원하는 소리가 포함된 VR 콘텐츠를 경험할 수 있다.
국내에서는 VR에 관심 있는 사실상 거의 모든 회사와 미팅을 하고 협업을 진행하고 있다. 한 예로, 국내 유명 광고 제작사에서 360도 영상 콘텐츠로 만든 소주 광고가 있다. 원래는 기존의 스테레오 오디오 방식으로 제작되었던 작품인데, 우리와 협업을 통해 VR 오디오가 적용된 콘텐츠로 탈바꿈했다. 고개를 돌리거나 움직일 때마다 소리가 영상에 맞추어 같이 움직이므로 사용자 입장에서는 정말 내가 ‘박보영 남자친구’라는 느낌을 받는다.
앞으로의 계획 및 목표
영화/방송과 같은 고품질 콘텐츠의 VR 오디오 적용에 관심 있는 전 세계 소수의 전문가가 주로 모이는 커뮤니티가 있다. 여기 올린 데모 영상이 입소문이 나면서 프랑스의 유명 스튜디오에서 VR 콘텐츠 제작 협업 제안이 들어오기도 하고, 북미 소재 스튜디오 몇 곳에서도 지웍스의 베타 테스터를 자처하며 우리 제품이 완성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도 오디오 기술이 메말라 있기 때문에 당장 무엇을 해보자고 하는 상황이다.
우리는 올해 10월 미국 할리우드에 진출할 계획이다. 그곳에서 VR 사운드 스튜디오와 협업을 진행하고, 칸 영화제에 우리 회사 로고가 뜨는 VR 영화를 출품하는 게 목표이다. 내년 말이 되면 VR 콘텐츠에는 우리 회사 로고를 많이 보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최종적으로는 ‘VR 오디오 = 가우디오‘라는 등식을 성립하게 하는 게 목표이다. VR을 완성시키는 회사가 되고자 한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
나처럼 이런저런 사연으로 오디오를 좋아하는 분들이 있었다. 그러나 이 공부를 하거나 이 업을 택했다는 것은 영리하지 못했다. 영상처리 툴을 공부하고, 통신기술을 연구하는 게 현명했다. 그런데도 유행을 좇지 않고, 굳이 오디오라는 한우물을 파면서 연구하던 사람들은 그야말로 ‘피가 당겨서’ 하는 사람들이다.
내 선택이 결국은 옳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여기까지 온 것 같다. ‘기다리면 기회가 오겠지.’라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순간순간마다 내 앞에 있는 일들에 정성을 다했을 뿐인데, 운명처럼 VR 시장이 왔다.
앞으로도 좋은 아이디어로 세상에 기여하는 데에서 기쁨을 느끼는 사람들, 일 자체가 좋아서 즐기는 사람들이 모여서 신나게 일할 수 있는 회사를 함께 만들어나가고 싶다.
원문 : [찾아가는 인터뷰 75] “앞으로 전 세계 VR 기업은 ‘가우디오’ 오디오 기술을 쓰게 될 것”
안경은 앱센터 외부필진 /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들을 좋아합니다.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을 즐깁니다. 글로 정리해 사람들과 공유할 때 신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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