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뒤에 사람있어요 #1] 마루180에서는 어떤 사람들이 일하고 있을까?
세계의 창업 중심지마다 자리를 잡고 있는 협업·지원 공간은 그 나라 창업 생태계의 현황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장소다. 업계 주요 행사와 인재들이 몰리는 네트워크의 요지이기 때문이다.
서울의 경우 강남 테헤란로를 중심으로 주요 지원 공간들이 세워졌다. 이들은 모두 5년이 채 안 된 신생 기관들이지만, 창업 열풍에 힘입어 빠르게 명성을 얻었다. 반면 이 공간을 작동하게 하는 배후(?)의 인물들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공간을 채우는 컨텐츠를 만드는 사람들, 스타트업만큼이나 치열하게 일하고 있는 마루180 스타트업 팀을 만나봤다. (마루180 장소 탐방 기사 보러 가기)
마루180에서 팀원들을 만나며, 각 개인이 일당백으로 일하고 있는 조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재단의 뒷받침이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여유있으리라는 편견과는 달리, 그들이 지원하는 스타트업만큼이나 스타트업같은 업무 강도와 자세로 조직을 이끌어나가고 있었다.
이희윤 매니저 / 마루민 커뮤니티·외부 협력 관리
이희윤 매니저의 닉네임은 ‘마루 엄마’다. 닉네임에 걸맞게 그녀는 마루180의 역사부터 각 팀원이 하는 일에 이르기까지 조직에 관한 거의 모든 것들을 설명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무려 입사 5년 차로, 마루180 건물 부지를 찾으러 부동산을 돌아보던 시절부터 마루와 함께했다. 그녀는 마루 커뮤니티와 외부 파트너사를 관리한다. 그러니까 사람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서로의 욕구를 연결해주는 게 일이다.
제일 잘하는 일이 있다면. 연결이요. 마루에 앉아 있으면, 노력하지 않아도 정말 많은 사람이 찾아와요. 스타트업 뿐만 아니라 VC, 엑셀러레이터, 정부 관계자 등이 오는데 또 저마다 목적이 달라요. 오늘 만난 VC가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입주해 있는 스타트업이 어떤 필요가 있는지를 계속 듣다 보면 자연스레 서로를 연결해주고 있더라고요.
실제 투자가 성사됐던 경험이 있나요. 아직 구체적 성과가 난 적은 없어요. 하지만 수많은 미팅이 만들어지긴 했어요. 이전에는 알음알음했던 일이라면, 이제는 아예 신규 입주사가 들어올 때마다 투자 제안서를 받아 제가 가진 VC 네트워크에 공유하고 있어요.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되고 싶은지. 아산나눔재단은 간접적으로 스타트업에게 자금 투자를 해요. 초기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VC 펀드에 출자자로 참여하는 방식입니다. 올해 초부터는 재단 출자 사업 검토 업무에도 참여하기 시작했어요. VC들과 더 가까이 일할 수 있게 되면서, 이제 출자 계약서도 웬만큼 검토할 수 있는 수준이 됐어요. 이전에는 단순 연결이었다면, 이제부터는 투자 관점에서 스타트업에게 더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요.
김아랑 매니저 / 기업가정신 교육 사업
김아랑 매니저가 마루에서 ‘안방마님’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조직 내 주요 사업들을 한 번씩은 다 맡아봤기 때문이다. 이희윤 매니저와 마찬가지로 입사 5년 차고, 정주영 창업 경진 대회의 1,2회를 이끌었다. 현재 그녀가 맡는 일은 청소년 창업 교육 사업이다. 재단이 교육 사업을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널리 알려있지 않거니와, 창업자 강연 수준에 머무를 것이라는 편견과는 달리 이들의 교육 사업은 상당히 체계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중·고등학생과 대학생을 나누어 창업 교육을 하고 계시다고요. 크게 중·고등학생 대상의 ‘히어로스쿨’과 대학생 대상의 ‘AER(Asan Entrepreneurship Review)’을 진행하고 있어요.
그런데 중고생 나이 또래 아이들이 창업에 관심이 있나요? 당연히 ‘창업해라’라는 내용이 아니에요. 자기주도적인 문제 해결에 초점을 둔 교육입니다. 자기 욕망 알기, 인생 그래프, 문제 발견하고 해결하기 등이 주 내용이죠. 아이들이 커서 창업을 하든, 취업을 하든 이런 역량은 꼭 필요하니까요.
2018년부터는 기업가정신 교육이 중고등학교 정식 과목으로 채택된다고요. 저희가 좀 빨리 길을 튼 편이예요. 올 1월부터 청소년 교육 스타트업인 어썸스쿨과 함께 창업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강사 선발 면접과 교육 콘텐츠 기획 과정에도 모두 참여하고 있어요. 올해 말까지 70개 학교에 들어가는 게 목표예요. 신청 학교에 대해서는 무료로 교육을 제공합니다.
AER은 어떤 프로그램인지. 대학 경영 수업에서는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HBR)를 활용해 수업을 많이 하는 편이죠. 물론 그 내용은 외국 기업 사례가 주가 되고요. 그런데 국내 기업 중에서도 케이스 스터디할 만한 기업이 적지 않아요. 하지만 관련 자료 자체가 없고, 있더라도 교육용이 아니라 논문 형식으로 되어있다는 문제를 발견했습니다. 아산 기업가정신 리뷰는 국내 기업의 사례를 분석해 대학 내 경영·창업 교육을 할 수 있게 돕는 사례집으로, 작년 8월 17일에 프로그램이 정식 런칭했습니다. 벌써 6기째 진행하고 있네요. (AER 사례집 보러 가기)
벌써 나온 사례집만 15개라고 들었습니다. 한 사례 개발하는 데 10개월이 걸립니다. 유명 교수를 초빙해 자문회를 만들어서 사례 개발을 합니다. 저는 모든 개발 과정을 총괄하고, 발간 심사가 끝나면 편집 작업을 하고 있어요. 1년에 10개 사례를 개발하는 게 목표예요. 교수분들이 수업 때 활용할 수 있는 피칭노트도 따로 제작하고 있고, 저희 측에 신청하시면 제작물로 인쇄해서 보내드리기도 합니다.
품이 많이 들어가는 일인데, 타 사업에 비해 잘 눈에 띄지 않았던 것 같아요. 결과물을 짠하고 보여줄 수 있는 행사 같은 게 없으니까요. 개인적 보람은 현장에서 많이 느껴요. 중고등학교에 교육하러 가보면 반응이 제각각이에요. 관심 없는 경우도 있고, 교육이 끝나고 나서도 자기들끼리 활동을 이어가기도 하고. 그런 모습 보면 뿌듯하죠. AER의 경우 내년에는 사례집 활용률을 높이기 위해 홍보 활동을 적극적으로 할 계획입니다. 대학생 대상으로 케이스 분석 경연도 추진해보고 싶고, 사례집을 영문판으로 만들어 해외에도 알릴 수 있으면 좋겠어요. 할 일이 많아요.
배일우 매니저 / 정주영 창업경진대회 총괄
<정주영 창업경진대회>는 하루짜리 행사가 아니다. 그 전에 무려 6개월간 전국을 돌아다니며 열 두 번의 설명회를 한다. 그것도 창업을 잘 모르는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올해는 단순 행사 홍보가 아니라, 마치 대학 커리큘럼처럼 VC와 창업자를 초빙해 창업 초기 지식 전반에 관한 강연을 시도했다. (강연 동영상 보러 가기) 배일우 매니저는 그렇게 선발된 8개 팀과 9주간 동고동락하며 온갖 궂은 일을 도맡았다.
인턴을 하다가 입사한 경우라고. 아직 학생이에요. 다음 학기 때는 학교도 같이 다녀야 합니다. 6개월간 인턴 하다가 7월에 정식 입사했어요.
이제 행사 끝났으니 좀 후련하시겠어요. 첫 직장이고, 제가 처음부터 끝까지 총괄한 첫 업무였고요. 기분이 뭔가 시원섭섭합니다. 사실 학교에 있을 때는 대학생 창업에 대해 부정적이었어요. 스펙 쌓기용이라고 생각했죠. 실제 현장에서 팀들을 만나보니 그런 편견이 깨졌고요.
6개월이 넘는 설명회, 9주간의 경연 기간 등 호흡이 긴 경진대회였네요. 이번 해에 좀 새로운 시도를 했죠. 설명회를 강연 형식으로 해서, 연사 섭외에도 애를 썼고. 각 지역 창조 경제 혁신 센터에서 개최했다는 부분도 의미 있었다고 봅니다. 근데 저희끼리는 참가팀 심사가 끝나면 그때부터 진짜 일을 시작한다고 그러거든요. 9주간 사업 실행을 팀들이 직접 해보기 때문에요. 일대일 멘토 선정부터, 마루 입주 공간 제공, 사업 실행비 지원 등등 일이 많아요. 지방팀의 경우 거주비도 제공해주고 있고, 각 팀마다 피칭이나 마케팅 교육 일정을 잡는 것도 저의 업무였습니다.
일하면서 제일 재밌었던 건 뭔가요. 각 팀이 피칭 교육을 총 세 번 받았어요. 총 발표는 여섯 번을 시연해보는데 때마다 수준이 달라요. 점점 좋아져요. 그럴 때 제일 기분 좋았죠. 팀들도 9주간 자기들 1년 할 걸 다 했다고 말할 만큼 성장 속도가 빨랐어요. 그런 게 정주영 창업경진대회만의 경쟁력이기도 하고요.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되고 싶은지. 아직 구체적으로는 모르겠지만, 창업 팀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네요. 투자면 투자, 법률이면 법률. 그냥 겉핥기식으로 돕고 조언하는 게 아니라, 어떤 한 분야에서는 명확한 도움을 줄 수 있는 전문가를 꿈꾸고 있어요.
김주은 매니저 / 마루민 커뮤니티·시설 운영 관리
마루의 얼굴이라고 들었습니다. 매일 아침 마루에 오신 분들을 처음 맞이하고 있습니다. 인포데스크에서 마루민들과 교류하며 다양한 니즈를 파악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하고 있고요. 마루민들을 위한 다양한 지원 프로그램(Benefit) 의 원활한 운영도 여기에 포함되죠.
마루 전체적인 시설 관리를 운영하고 계시다고요. 입주 마루민 및 방문객들이 가장 직접적으로 느끼는 부분이 바로 공간과 업무환경입니다. 이 부분에 대한 관리가 잘 이뤄지지 않는다면 마루에서 일하고, 공간을 찾는 분들의 업무에도 품질이 저하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항상 이전 점에서 개선할 점이 없는지 적극적으로 찾고 개선방안을 기획합니다. 마루민들이 쾌적하고 편리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송태헌 / 마루 업무 지원
송태헌 인턴은 ‘마루 요정’이라고 불린다. 이희윤 매니저는 일은 많고 사람은 적은 팀 내에서, 송 인턴이 맡고 있는 역할이 아주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송태헌 인턴은 정주영 창업경진대회 팀을 비롯해 마루민 커뮤니티 관리 업무를 모두 지원하고 있어, 두 사업에 속한 스타트업을 서로 연결하는 교두보 역할을 한다.
태헌 인턴님은 입주사 반상회인 ‘타운홀 미팅’을 총괄하고 계시다고요. 입사하기 전에는 인턴이라 결정권이 낮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일해보니, 권한과 책임이 높아서 놀랐어요. 맡은 부분에 대해서는 스스로 기획하고 컨펌만 받는 정도예요. 저는 매 월 마지막 주에 열리는 타운홀 미팅 기획과 진행을 총괄합니다. 7월에는 포켓몬 고 게임에 착안해서 각 포켓몬 속성별로 다른 팀 팀원끼리 친해질 수 있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기도 했어요.
마루에서 일하고 난 후 창업에 대한 관점이 바뀌었나요. 원래 해외 유학생이지만 휴학을 하고 두 달 째 일하고 있어요. 마루180에 현재 10개 회사가 입주해있고, 대표님들과도 계속해서 만나다 보니 궁금했던 국내 창업 생태계에 대해서 빠른 시간에 많은 걸 알게 됐어요. 사실 창업 과정이 좋은 일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힘들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한 번쯤은 창업을 꼭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근데 ‘마루 요정’으로 선정되는 기준이 뭔가요. 귀여움? 아니, 농담이에요. 그냥 전통적으로 마루 업무를 하는 인턴을 마루 요정이라고 부릅니다. 저는 6대 요정이고요.
팀원들이 말하는 ‘마루180 팁’
- 마루180은 스타트업 펀드 출자자로 참여하며 간접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현재 16개 조합과 2개 엑셀러레이터에 투자한 상태다.
- 마루에 입주해있는 ‘마루민’ 기업이 회사 홍보 이벤트 개최를 원하면 최대 500만 원을 지원받을 수 있다. 이 밖에도 쏘카 매달 무료 이용권, 에어비앤비 출장비 지원 등의 혜택이 있다.
- 마루180은 매년 3월과 9월 입주사 모집을 받고 있다. 마루180에서 구글캠퍼스 입주사 선발과 관리를 동시에 하고 있기 때문에, 구글캠퍼스 입주를 원하는 기업도 마루180 측으로 지원서를 보내면 된다. 공간이 상대적으로 오픈되어 있는 편인 구글캠퍼스에는 평균 3~4인의 글로벌 향 초기 기업을, 셀 단위로 공간이 구획된 마루180에는 8~16인의 규모 있는 팀을 배정한다.
- 입주 심사 기준은 크게 세 가지다. 사업성, 지원 필요성, 커뮤니티 기여도다. ‘커뮤니티 기여도’란 마루의 ‘Pay it forward’ 정신을 얼마나 이해하고, 실천하는 팀인가에 대한 평가다. 실제 선후배 마루민들 간에 서로 도움을 주는 문화가 형성되어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