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우의 쫄지마! 인생] 1. 연재를 시작하며
대한민국 스타트업을 위한 어느 벤처투자자의 수줍은 고백
“이희우의 쫄지마! 인생”
“내가 외롭지 않다는 것을 느끼기 위해서 이제 내게 남은 소망은 다만 내가 사형집행을 받는 날 많은 구경꾼들이 증오의 함성으로써 나를 맞아 주었으면 하는 것뿐이다”
까뮈의 이방인 중에서
1. 연재를 시작하며
어제 랜디 코미사(Randy Komisar)가 쓴 ‘승려와 수수께끼’를 읽었다. 아침 출근 전에 잠깐 읽고 출근해야지 하며 식탁에서 몇 페이지 읽어 내려가다가 그만 출근 시간을 놓쳐 버렸다. 실리콘밸리의 성공한 기업가이자 투자자, 그리고 철학자인 랜디 코미사의 ‘승려와 수수께끼’는 예전부터 깊숙하게 마음 속에만 묻어 두었던 나의 화두를 다시 꺼내게 만들었다. 투자자와 스타트업 창업자와의 대화로만 치부하기에는 그의 책은 너무나 많은 철학적 함의를 담고 있었다. 그런 그의 화두가, 아니 수수께끼 같은 승려의 질문이 나의 잠재의식을 일깨웠다.
2003년 7월, 난 24/7 Real Media(2003년말 미국 광고기업에 인수됨) 라는 인터넷 광고 미디어렙 회사에서 일하고 있었다. 1997년부터 근무하던 벤처캐피탈 회사인 KTB네트워크를 관두고 나온 지 1년 가까이 흘러가던 시점이었다. 막연히 스타트업을 경험해보고자 뛰쳐 나왔지만 결코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것이 쉽지 만은 않았다. 그래서 복잡한 머리 속을 정리하고자 무작정 떠났던 남도 여행, 갑자기 그 옛 추억이 떠오른다.
17일 제헌절, 그리고 18일이 금요일이라 하루 휴가만 내면 17일부터 20일까지 여행일정이 나올 것 같았다(그 당시에는 제헌절이 휴무였다). 휴가계를 써서 사장 결재를 받는데 사장님이 한 말씀 한다.
“이부장! 18일 휴가 가네. 어디가요?”
“아 예, 이번엔 좀 멀리 갑니다. 땅끝마을 해남으로 가거든요.”
“이번엔 뭐 하려 구요?”
“그냥 머리 좀 식히려구요”
“저번에도 머리 식힌다고 했잖아요. 그 놈의 머리 얼겠다. 얼겠어”
“하하. 사장님도~”
난 그 당시 왜 그리 자주 머리를 식히고 싶었는지 몰랐다. 스타트업의 과중한 업무 부담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IPO(주식시장 상장)를 추진해야 하는데 그것이 삐걱거려 그 스트레스 때문이었을까? 그것도 아님 사장이 KTB 다니고 있던 나를 삼고초려하며 영입할 때 제안했던 주식을 주지 않고 밍기적대었기 때문 이었을까? 아무튼, 나는 탈출을 꿈꿨다. 지긋 지긋한 이 두통이 사라질 것 같은 남쪽으로.
남도여행과 화두(話頭)
항상 여행을 떠나면서 챙겨가는 책이 있다. “한국의 맛집 1300집”을 우선 챙겨서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 이번 여행을 위해 다른 읽을 거리를 찾다가 “좀머씨 이야기”가 눈에 들어왔다. 그것과 까뮈의 “이방인” 이렇게 세 권을 챙겨서 집을 나섰다.
뮤지컬 맘마미아의 음악을 틀었다. “I have a dream”부터 시작된 노래가 “The winner takes it all”로 마칠 때 까지도 도로는 답답하기 그지 없다. 좀더 일찍 나왔으면 하는 아쉬움과 어제 술을 좀 조금만 마실걸 하는 후회가 교차된다.
부안으로 접어들어 변산반도로 가는 길은 평야를 달리는 기분이다. 조금 더 들어가니 서해안이 보이면서 아름다운 해변이 펼쳐진다. 타원형의 그림 같은 해변과 소나무숲이 인상적이다. 그런 길을 부드럽게 미끄러지면서 다은 곳이 채석강(彩石江)이다. 채석강은 오랜 세월 걸쳐 쌓인 퇴적층이 하늘로 올라와 그 가지런한 단층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흡사 중국 당시대의 시성 이태백이 술에 취해 뱃놀이를 하다가 강물에 뜬 달 그림자를 잡으려다 빠져 죽은 중국의 채석강과 흡사하여 그 이름을 따왔다고도 한다.
어느새 밤이 되었다. 나도 잠자리를 잡아야 될 시간이다. 허름한 여관을 하나 잡았다. 여관방을 잡고 물이라도 한 병 사러 나오는데 주인장 아저씨가 여관 앞마당에 삼겹살을 구어 드시면서 나를 부른다. 거기 끼어서 삼겹살에 소주를 기울였다.
삼겹살은 듬성듬성 썰어 급하기 불에 그슬려 먹어야 맛있다고 하시면서 숯불 위 불판에 놓여 있는 삼겹살을 화염방사기 같은 것으로 심하게 그스른다. 그렇게 1분 정도 하니 기름이 쪽 빠지고 바삭 하게 튀겨진 것 같은 삼겹살이 탄생한다. 물론 빠진 기름이 숯에 떨어져 밑의 화력도 더 쌔졌지만 말이다. 그 삼겹살과 신 김치를 곁들여 먹으니 그것도 일품이다. 넉넉한 주인장의 마음씨와 따스한 얘기들이 어우러져 나름 홀로 떠난 여행이 그리 외롭지는 않았다.
방에서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좀머씨 이야기’를 읽었다. 까뮈의 ‘이방인’처럼 기묘한 행동과 사고방식을 가진 주인공 또는 ‘좀머씨’의 모습에서 “호밀밭의 파수군”에서의 주인공 같은 엉뚱한 생각과 세상에 대해 냉소적인 시각을 보이는 모습, 그리고 결국은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헤르만 헷세의 ‘수레바퀴 밑에서’의 ‘한스’ 같은 모습이 보였다. 어쩌면 자기 만의 숲을 꾸미려고 하는 강석경의 ‘숲속의 방’ 같은 모습도 엿보였다. 그런데 원래 이기적이고 냉소적이고 불평 늘어놓기 좋아하는 모습, 그리고 남을 의식하지 않고 자기 만의 세계에 푹 빠져 자신만의 숲을 꾸미려고 하는 모습 이런 것들이 인간 본연의 모습은 아닐까? 우선 인간 본연이라 말하기 전에 나의 모습은 아닐까?
‘좀머씨 이야기’의 마지막 구절이 아직도 머리 속을 어지럽게 한다. “그러니 나를 좀 제발 그냥 놔두시오!” 무슨 말이지? 그래 이게 이번 여행의 화두다. 내가 이 책을 가지고 오길 잘 했나 보다.
“그러니 나를 좀 제발 그냥 놔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