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대안학교 만든 고등학생, 이번엔 IT로 세상 바꾼다”
[Start-Up Impact] “대안학교 만든 고등학생, 이번엔 IT로 세상 바꾼다” 최훈민 씨투소프트(테이블매니저) 대표
‘74일만의 기적’
대학교 입시 위주의 고등학교 교육에 신물을 느끼고 자퇴한 18살 남학생, 그는 대한민국의 비정상적인 교육을 비판하며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1인 시위를 했다. 그리고 74일이 지나 학생이 주인인 학교인 ‘희망의 우리 학교’라는 간판을 걸고 대안학교가 설립됐다. 2012년 5월이었다.
‘희망의 우리 학교’를 만든 장본인인 최훈민 씨는 20살이 되는 시점에 또 다른 도전을 하기 위해 사회에 발을 내딛었다. IT기업의 창업이다. 2년이 지난 2016년, 최훈민 씨는 ‘대표’라는 타이틀을 달고 씨투 소프트라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테이블 매니저’라는 레스토랑 고객관리 솔루션을 제공한다.
최훈민 대표는 어릴 때부터 남달랐다. 이 때문인지 ‘고등학생 창업’, ‘고등학교 자퇴’, ‘대안학교 설립’, ‘IT기업 창업’ 등 적은 나이에 많은 경험을 겪었다. 최 대표는 앳되게 보이지만, 차분한 분위기가 이를 대변했다. 대안학교를 만든 계기가 IT 창업으로 이끌었다는 최훈민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흥미로웠다.
최훈민 씨투소프트 대표
■ ‘영재’에서 ‘자퇴 학생’으로
최 대표는 ‘영재?’였다. 어릴 때엔 IT, 프로그래밍에 관심이 많았고, 전국에서 손가락에 들 정도로 성적도 우수했다. 중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과학고등학교 입학을 준비하며,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학원을 다닐 정도였다. 하지만 이런 입시 교육은 그를 다른 길로 인도했다.
“어릴 때부터 공부만 해서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어머니한테 내가 좋아하는 IT 공부를 하겠다고 말했다. 부모님은 걱정했지만 내 의견을 존중했다. 중학교 3학년 때 한국정보올림피아드 대회에서 금상을 받아 과학고에 입학할 수 있었지만 IT특성화고등학교에 들어갔다.”
고등학교 입학 동시에 최 대표는 중소기업청 지원사업에 선정돼 IT기업 대표가 됐다. 창업동아리도 운영했다. 하지만 사업은 그리 쉽지 않았다. 학교는 사업 지원보다는 입시 위주의 공부를 요구한 것이다. 이 때문에 그는 IT사업에 대한 경험을 먼저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고등학생인 신분에 인턴에 지원했다.
“고1 겨울방학 때, ‘스마투스’(이투스 창업자가 만든 회사)라는 IT스타트업에서 개발 인턴을 2개월 정도 했다. 정말 좋았다. 급여도 많고, 퇴근도 빨랐다. 야근은 거의 없었다. 다른 인턴분들은 카이스트 재학생들이었다. 그런 인턴을 하면서 수십 년 동안 9시 출근해서 6시 퇴근하는 일을 해야 된다고 생각하니 끔찍했다.”
짧은 인턴 생활은 최 대표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꿨다. 고등학교 ‘자퇴’라는 결심을 하게 만든 것이다. 그는 자퇴하고 스스로 공부를 통해 IT회사를 만들자고 계획했다. 몇몇 친구들도 자퇴에 동의했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최 대표 혼자만 자퇴서에 사인을 했다. 어쩔 수 없는 대한민국의 현실이었다. 주변에서는 그에게 ‘대단하다’, ‘용기있다’라는 찬사를 보냈다.
“‘자퇴’가 나는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여겼는데, 주변의 반응 때문에 부담스러웠다. 창업을 해서 취업 걱정 같은 것은 하지 않아도 되고 좋은 결정이라고 생각했지만 사람들의 시선은 달랐다.”
■ 74일간의 기적, 대안학교를 만들다
‘자퇴’는 결국, 최 대표에게 새 인생을 만들어줬다. 학생 스스로 만드는 학교를 만들게 했다. 최 대표는 그 당시를 회상하면서, 내 스스로가 이끈 선택보다는 IT가 기적을 만든 것이라고 했다.
최 대표는 자퇴를 하고나서 대한민국 교육부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며 2012년 2월 29일부터 교육부 정문과 광화문 광장에서 1인 시위를 했다. 언론에서는 그를 대서특필했다. 입시지옥을 경험했던 국민들은 최 대표를 지지했다. 한 순간에 인기 스타가 된 것이다.
“당시에 트위터가 인기였다. 나의 1인 시위는 실시간 트위터 RT 1위가 될 정도로 큰 이슈가 됐다. 포털 뉴스 메인과 실시간 검색어 순위 1위에 올랐다. 트위터에서 많은 분들이 나를 응원해줬다. 시위 이외에 할 일이 없었던 나는 그들에게 일일이 답글을 남겼다.”
1인 시위는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최 대표는 난감했다. 추위와 허리 통증과 싸우면서 시위 중단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몰랐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영웅, 희망이라고 치켜세웠다. 언론도 꾸준히 관심을 가졌다.
“시위를 끝낼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였다. 피켓에 ‘죽음의 입시경쟁을 없애자, 희망의 학교’를 만들자‘라고 썼는데, 그 둘 중에 하나를 내가 해야 했다. 입시경쟁은 중단될 수 없으니, 나는 ’희망의 학교‘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희망의 우리학교를 만들자!’ 최 대표는 트위터에 트윗을 날렸다. 광화문 광장에는 ‘희망의 우리학교’에 관심 있는 100여명이 찾아왔다. 서울시가 이 학교를 후원했고, 지상파 등 모든 언론사들이 ‘희망의 학교’에 관심을 가지며 전국적으로 홍보됐다. 1인 시위 74일 만에 대안학교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야말로 ‘기적’이라는 말이 나올만했다.
IT공부를 하고 싶어서 자퇴한 최 대표가 대안학교를 만들 게 된 것이다. 당시에 어떤 이가 “네이버가 기획하고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SNS가 협찬했다”고 한 말에 그는 동의했다. 100명이 후원하고, 서울시가 협찬까지 나선 ‘희망의 우리 학교’는 IT가 만들어 낸 ‘기적’이었다.
■ “IT는 세상을 변하시키는 큰 도구”
“2년 정도 대안학교를 운영하다보니, IT가 큰 변화의 도구라고 생각했다. 정치도 중요하지만, IT의 도구를 가진 사람이 변화를 일으키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른 친구들에게 대안학교의 내 역할을 넘겨주고 난 창업을 했다. 회사명은 고등학교 때 만들었던 회사 이름 그대로 ‘씨투 소프트’라고 지었다.”
최 대표는 고등학교 때 매장 고객관리를 하는 태블릿 메뉴판으로 창업을 했다. 레스토랑에서 주문하기 전에 이름이나 휴대폰 번호를 입력하면 10%할인을 해주고 고객을 식별해주는 솔루션이었다. 그러나 비싼 태블릿 가격과 불안한 소프트웨어로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20살, IT 창업 아이템은 배달 고객관리 솔루션이었다. 첫 사업은 시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4개월 만에 서비스를 론칭해 베타테스트를 한 그는 결국 사업을 접었다.
“배달 업계는 고객관리에 대해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배달을 빨리 해주는 게 서비스의 핵심이었다. 고객응대가 아니라 음식이 맛있고 빠른 배달이 중요했다. 타겟을 잘못 잡아서 서비스를 론칭한 것이다. 그래서 번호를 기반으로 고객관리를 할 수 있는 예약형 레스토랑에 눈을 돌렸다.”
타겟 고객을 바꾼 결정은 탁월했다. 서비스 시작 전부터 유명 레스토랑과 계약이 된 것이다. 계약서도 준비되지 않은 상태였다. 레스토랑에서 늘 단골 고객 이름과 연락처를 물어보는 수고로움을 ‘테이블 매니저’로 없앨 수 있다는 것이 제대로 먹혔다.
사실, 레스토랑 고객관리 솔루션인 ‘테이블 매니저’ 사업은 최 대표의 큰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일본에 거주하고 있는 큰아버지가 2000년대 초반에 레스토랑 예약관리 프로그램을 만들어 10년 동안 사업을 하면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뒀다. 비즈니스 관련 조언자도 큰아버지였다.
“큰아버지가 일본 후쿠오카에서 700여 곳에 레스토랑 예약관리 프로그램을 공급했다. 소프트 리스 형태로 사업을 했는데, 2008년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로 서버 리스 회사가 문을 닫으면서 회사를 정리해야만 했다. 그래서 불가피하게 회사 문을 닫았다. 현재도 30여 곳이 개인 돈을 지불하고 큰아버지 솔루션을 이용하고 있다.”
■ ‘테이블 매니저’의 탄생
테이블 매니저는 예약을 많이 받는 고급레스토랑(파인다이닝)들이 간편하게 예약고객을 관리할 수 있는 솔루션이다. 수기장부로 관리해야만 했던 고객관리를 IT와 접목시킨 것이다. 기존 솔루션도 있었지만 너무 불편한 나머지 레스토랑에서는 사용하지 않았다.
테이블 매니저는 철저하게 레스토랑 사장님들의 의견을 뒷받침해 만들었다. 말 그대로, 사용자에 최적화된 서비스다. 최 대표가 직접 레스토랑에 가서 사장님들의 의견을 듣고 불편한 점을 테이블 매니저에 적용했기 때문이다.
“보통 레스토랑에는 예약 담당 직원이 없기 때문에 매니저가 모든 일을 전담한다. 예약관리, 결제 등 모든 업무를 맡는다. 그리고 매니저가 앉아서 일할 자리가 없다. 즉, 앉아서 편하게 솔루션을 사용할 수가 없다. 이런 점들을 테이블 매니저에 반영해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테이블 매니저는 고객이 레스토랑에 전화를 했을 때, 디스플레이 창에 해당 고객의 이름, 연락처, 과거 예약현황, 선호하는 음식, 고객에 대한 메모 등을 한 눈에 제공하는 게 큰 장점이다. 즉, 처음 온 고객에게는 맛있는 메뉴 등을 추천하거나, VIP 고객에게는 메뉴 설명이 필요가 없다. 심지어는 블랙리스트 고객도 알 수 있다.
“테이블 매니저를 사용하면 예약하고 오지 않는 손님인 일명 ‘노쇼 고객’를 미리 방지할 수 있다. 노쇼 레벨이 자동으로 매겨지는 시스템으로, 노쇼 레벨이 높은 고객은 사전에 여러 번 확인해 노쇼를 없애 비용을 아낄 수 있다.”
부가적인 기능을 통해 영업과 마케팅도 할 수 있다. 선별적으로 고객을 선택해 예약 문자메니시지나 할인쿠폰 등을 발송 가능하다. 예를 들어, 최근 몇 달간 가장 많이 오는 손님에게 감사인사나 쿠폰을 보낼 수 있다. 특정시간에 테이블이 비웠을 때, 그 시간에 주로 예약하는 손님에게 음식 쿠폰이나 추가 서비스 메시지를 보내 빈 테이블을 없앤다.
■ 개발자 대표의 빠른 의사 결정, 그리고 ‘어린 대표?’
2년 동안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서비스가 발전할 수 있는 계기는 최 대표가 개발자이기 때문이었다. 그가 직접 매장에 찾아가 솔루션을 사용하는 것을 보고 개선사항 등을 바로 적용할 수 있는 것이다. 하루에도 10번이나 업데이트를 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주말마다 매장에 찾아가 눈치를 보면서 테이블 매니저를 사용하는 것을 봤다. 처음엔 그 분들이 저를 불편해 했지만, 나중에도 밥도 주고 좋게 봐주셨다. 초창기에 단말기와 전화를 연결하는 방식이었는데 설치도 2시간 정도 걸리고, 에러도 많이 났다. 그런 문제를 직접 보고, 통신사와 직접 제휴해 문제를 해결했다.”
보통 IT기업에서는 기획자나 영업자가 문제를 발견해 개발자한테 넘겨주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 커뮤니케이션 오류가 생기면서 개발이 지연이 되거나 제대로 이뤄지지 않지만, 최 대표는 직접 소통하면서 빠른 의사결정으로 서비스를 개선했다.
■“엄마 카드를 빌려 밥도 사먹었죠”
씨투 소프트의 사업은 녹록하지 않았다. 20살이라는 패기에 사업을 시작했지만, 처음에 창업을 같이 했던 친구들은 군 문제와 급여 문제로 회사를 떠났으며, 초기 자금도 최 대표가 그동안 모아뒀던 돈, 300만 원이 전부였다.
“처음에 보증금 200만 원에 월세 18만 원을 내는 사무실을 냈다. 종로 세운상가 옆에 창문과 화장실이 없는 곳이었다. 이마저도 힘들었다. 단 몇 개월 만에 돈을 다 사용했다. 홈페이지 제작 외주를 통해 간신히 버텼다. 여름에 사무실이 너무 더워 연희동 오피스텔로 이사를 갔다.”
자금에 대한 어려움으로 최 대표는 홈페이지 개발외주, SNS마케팅대행으로 사업자금을 조달했다. 하지만, 정부 창업지원금은 절대 신청하지 않았다. 심지어 투자를 하고 싶다는 엔젤투자자 제안도 거절했다.
“고1때 정부지원금으로 사업을 시작했는데, 너무 거기에 의존을 했다. 결론은 사업이라는 것이 내가 투자해서 돈을 버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확실하게 비즈니스가 됐을 때 지원금이나 투자를 받는 것이 옳은 것 같다. (지금은 조금 후회도 된다.)”
최 대표는 자금 문제로 엄카(엄마 카드)를 빌려서 밥을 사먹을 때도 있었다. 또 아버지 차를 몰고 다니며 미팅을 하는 등 힘든 시기를 겪어야만 했다.
최 대표는 20대 초반이라는 어린 나이에도 기죽지 않았다. 늘 직원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테이블 매니저가 나이와 상관없는 서비스이기 때문에 별 개의치 않는다고 한다. 나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하는 일이라고는 좋아하는 후디 티셔츠를 입는 대신에 미팅 때엔 반드시 수트를 입고 가는 것밖에 없다.
“희망의 우리학교에서 대표직을 맡은 경험이 사업에 큰 경험이 됐다. 이때 많은 사람들도 알게 됐다. 이런 것들이 어리다는 단점을 보완할 수 있었다. 제가 자주 조언을 구하는 분들도 내 아버지보다 나이가 많으신 분들이다.”
■ 테이블 매니저의 ○○○일의 기적
사업 2년 만에 테이블 매니저 솔루션은 인정받기 시작했다. 이 시점에 맞춰 최 대표는 외주 일을 끊고 필요한 최소 인력으로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손익분기점을 목표로 인원을 늘려나간다는 계획이다.
마케팅도 본격적으로 펼치면서 솔루션 사용 레스토랑도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계약율은 70~80%을 육박한다고 한다. 미팅 스케줄로 하루하루가 늘 바쁠 정도다. 또 테이블 매니저에 집중하기 위해 투자유치나 정부 지원 자금에도 신경을 기울이고 있다.
“상상 속에 있었던 문제를 IT로 해결하는 게 목표다. 고객간의 직접적인 접촉이 있는 비즈니스를 IT를 통해 문제 해결을 하겠다. 비효율적인 것들을 IT를 통해 최소화하고 낭비되던 에너지를 본질에 맞게 집중하게 만드는 것이 나의 비전이다.”
74일간의 기적으로 만든 ‘희망의 우리 학교’ 이후에 최 대표의 IT사업의 기적은 며칠이 걸릴지 아직은 모르겠다. 그러나 이미 숫자는 카운트된 듯하다
※해당 콘텐츠는 KT경제경영연구소 ‘디지에코’ 스타트업스토리에 연재된 내용입니다.
글 : 이욱희 (skyseapoet@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