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up Story #325] ‘육아’와 ‘창업’을 양손에 쥔 엄마 창업가들
국내 전체 창업가 중, 여성 창업자의 비율은 8%. 그중 엄마 창업가가 차지하는 비율은 집계하기조차 어려울 만큼 적다. 하나 잘 해내기도 어려운 육아와 창업을 동시에 해나가고 있는 사람들. 그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구글 캠퍼스 서울이 운영하고 있는 ‘엄마를 위한 캠퍼스(Campus for Mom)’에서 연이 닿은 세 명의 여성을 만나봤다.
좌측부터 온라인 리빙 편집샵 모든스튜디오 김혜송 대표, 부모 교육 콘텐츠 기업 그로잉맘 이다랑 대표, 구글 캠퍼스 서울 조윤민 프로그램 매니저 / 사진 = 플래텀
■ 인생 난이도 끝판왕, ‘육아’와 ‘창업’을 양손에 쥔 엄마 창업가들
창업가가 되기 이전에는 어떤 경험을 했었나.
모든스튜디오 김혜송 대표(이하 김) : 인테리어를 전공하고 인테리어 회사에서 10년간 일했다. 7년 차쯤에 MBA 공부를 하며, 회사 내에서 직무를 바꿔 마케팅 기획 일을 했다. 고객은 주로 대규모 호텔 기업이었는데, 당시 공간 기획과 코디네이터 역할을 했다.
그로잉맘 이다랑 대표(이하 이) : 아이들 심리 치료 상담이 주업이었다. 그 전에는 연구직에 있었는데, 지방 이전과 야근이 잦고 대부분 계약직 형태로 일해야 하므로 육아와 병행할 수 없었다. 출산 후 경력 단절이 이어지다가, 창업까지 하게 됐다.
창업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김 : 창업하고 싶다는 생각은 예전부터 갖고 있었다. 죽을 때까지 일하고 싶은데, 출산 이후 육아와 회사 생활을 병행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내 경우엔 양가 조부모로부터 도움을 받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퇴직 연령대도 점점 낮아지고 있지 않나. 늘 그리고만 있었던 창업을 시작해야 할 시점이 왔다고 느꼈다.
회사 생활보다 창업이 몇 배는 더 힘들지 않나?
이 : 해보니 그렇긴 하다. 사실 아동 심리 상담가는 출산 이후에도 병행할 수 있는 괜찮은 직업이다. 그런데 아이를 데리고 상담을 받으러 오는 엄마들의 이유가 한결같더라. 거기서 부모 교육 미비에 대한 문제를 발견했고, 창업이 내가 찾아낸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활용할 수 있는 좋은 도구라고 생각했다. 말씀하신 것처럼, 그냥 직장 다닐 때보다 훨씬 힘들긴 하다. 하지만 좀 더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출산을 경험한 여성의 입장에서, 직접 맞닥뜨린 경력 단절이란 어떤 경험이었나.
이 : 사람이 자신의 정체성이나 자존감을 확인할 수 있는 루트는 다양하다. 그런데 엄마라는 이름 하나만 가지고 살게 되는 순간 모든 공급이 끊긴다. 직업적 성취부터 경제적 주도권까지 전부 다 내 손을 떠나버리기 때문이다. 출산한 기혼 여성에게 있어 경력 단절은 단순히 ‘돈 벌 데가 없다’는 걸 의미하는 게 아니다. 한 사람의 삶의 태도 전체를 바꿔버릴 만큼 결정적인 사건이다. 자신이 의미 없는 존재라고 아마 다들 한 번쯤은 느끼지 않을까.
■ 누구 엄마에서 어엿한 대표님으로, ‘내 이름을 되찾는 경험’
창업 전 도움닫기의 일환으로 ‘엄마를 위한 캠퍼스’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어떤 경험이었나.
이 : 프로그램이 끝날 때 많은 엄마가, 성과를 떠나 여기에 참여하는 시간 자체가 좋았다고 말하더라. 첫 날 왔을 때 ‘이다랑 대표님’이라고 적힌 이름표를 달아줬다. 속으로 ‘난 아직 아무것도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그게 몇 주 반복되다 보니, 자신감이 붙었다. 한 회사의 대표가 되어 잘해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캠퍼스서울 조윤민 매니저 (이하 조) :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도 엄마들에게 소속감을 주는 게 중요하다고 봤다. 창업에 대한 막연한 계획이 있어도, 육아와 가사 일에 우선순위가 밀려 구체화가 어려운 경우가 대다수다. 그런데 프로그램에 참석하는 그 시간만큼은 ‘이만큼은 나를 위해 써야지’ 결심하고 오시기 때문에 그게 좋았다고 하시더라.
9주 프로그램 동안 사업상 어떤 발전과 변화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김 : 인테리어 MD 경력을 살려, 온라인 몰을 만들어보자는 큰 계획만 가지고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그런데 사실상 내가 하려는 게 스타트업은 아니더라. 차별성이 없었다. 9주 프로그램 동안 데모데이 준비를 하며, 새롭게 더한 아이디어가 ‘스타일링 서비스’다. 전문가가 인테리어 제품 세트를 스타일링해서 판매한다는 것이 컨셉이다. 기존의 고가였던 공간 스타일링 서비스를 대중화시키는 비즈니스 모델이 이곳에 와서 확립됐다. 여기에 초기 자금을 어떻게 마련하고, 마케팅은 어떻게 해나가는 게 좋을지 등의 지식이 차곡차곡 쌓였다. 전반적인 방향성이 확실해진 셈이다.
이 : 프로그램 시작 전에는 육아 정보에 대한 접근성을 넓히고 싶다는 생각만 대강 갖고 있었다.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전에는 스타트업 대표라는 게 지금보다 훨씬 대단해 보였다. 내가 다가갈 수 없는 위대한 존재라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9주간 참여하며, 대표도 한 조직 내 여러 역할 중 하나일 뿐이라는 깨달음을 얻게 됐다. 또 함께 참여한 엄마들과 커뮤니티를 만들고, 서로 업무적으로 협업하면서 사업을 발전시켜나가고 있다.
엄마를 떠나 예비 창업자로서 시드 머니(Seed money), 피봇(Pivot), 엑싯(Exit) 등 스타트업 생리와 관련된 용어가 어렵진 않았나.
이 : 아, 그래서 난 수업 전에 항상 책을 읽고 예습해갔다. 근데 나중에 알고보니 다들 잘 모르고 있더라. 나만 모르는 줄 알았는데 다 똑같더라. (웃음)
프로그램을 통해 동업하게 되는 사례가 많은가.
조 : 1기 때는 있었다. 아빠 창업자, 엄마 창업자 두 분이 동업을 한 사례가 있다. 2기의 경우, 공동 창업 사례는 없지만 서로 마케팅 콜라보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9주 프로그램은 구체적으로 어떤 단계로 이루어져 있나.
조 : 첫째 날에는 환영 행사를 한다. 한 장 분량으로 준비한 본인과 비즈니스 소개를 한 이후, 전 기수 엄마 창업가로부터의 노하우를 전수 받는다. 전체 프로그램은 강연과 워크샵 등이 섞여 있는데, 대부분 외부 멘토를 초빙해 진행하고 있다. 예비 창업가는 이 과정을 통해 비즈니스 기획, 개발 부문, 마케팅, 자금 확보에 대한 전반적인 창업 교육을 받게 된다. 마지막 9주차에는 데모데이(Demoday)를 개최한다. 구글러, VC, 멘토 세 명을 초빙해, 자사 서비스를 소개하고 사업 가능성을 검토받는 자리다.
마지막 데모데이 날 감회가 새로웠겠다.
김 : 당시 내 멘토였던 분이 계속 좋은 평가만 하시길래, 쉬는 시간에 따라 나가 객관적인 피드백을 부탁드렸다. 그 분께서 ‘투자가 다는 아니다’ 라며, 수익을 낼 수 있다면 초기 자금을 스스로 만들어보는 것도 좋겠다고 말씀하시더라. 그 말을 듣고 지금도 스스로 종잣돈을 만들어가고 있다. 투자에 대한 생각을 바꾸게 된 계기가 됐다. 데모데이가 끝나니 홀가분한 마음 반, 아쉬운 마음 반이었다. 남편에게도 ‘9주 간 행복했는데, 이제 매주 수요일 뭐하지?’하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이 : 일단 데모데이 때 주어진 시간이 3분이었다. 이걸 해내고 나니까 앞으로 어디 가서도 발표할 수 있겠더라. 보통은 5분 준다. 정말 초 단위로 쪼개가며 연습했다. 당시 심사위원 분들이 모두 남성이었는데, 육아와 관련된 우리 비즈니스를 명확히 이해시키지 못한 채로 3분이 끝났다. 이 경험이 내게는 큰 전환점이 됐다. 내 서비스를 정확히 설명하고, 날카로운 피드백을 받고 싶었는데 아예 이해조차 못 시켰다는 것은 나와 우리 비즈니스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이었으니까. 건강한 충격이었던 셈이다.
사진 = 플래텀
■ 엄마 창업가, 정부 육아 지원 제도 내에서는 신분 애매한 ‘회색 인간’
9주간의 프로그램이 끝나면, 그때부터가 실전이다. 육아와 창업을 병행하는 현실은 어떤 모습이었나.
김 : 당시에는 아이가 8개월이어서 어린이집을 안 갔다. 그 시기엔 정말 초 단위로 하루를 나눠서 썼다. 어딜 걸어서 간 적이 없다. 아이가 잠든 틈새 시간을 활용해 일해야 했다. 투자라 생각하고 베이비 시터를 고용해 하루 5,6 시간을 쥐어짜 일했던 것 같다. 네트워킹을 해야 하는데, 당시에는 외출하기도 쉽지 않았다. 작년 10월부터는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게 돼서 지금은 많이 여유로워진 편이다. 확실히 일에 시간을 투입하는 만큼, 매출도 오르더라. 당시에 비해 현재는 10배 정도 매출이 상승했다.
이 : 나는 당시에도 아이가 4세였기 때문에 어린이집은 다니고 있었다. 근데 나는 지금이 더 힘들다. 아이 성장 단계에 따라 엄마가 해주어야 할 일들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처음에 초기 자금을 마련하려고 VC 위주로 만났다. 그런데 데모데이 때처럼 이해와 공감을 얻는 게 현실적으로 힘들더라. 결국 정부 지원 자금으로 기반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계속 면접을 봐야 한다. 초기와는 달리 외출이 필요해진 상황인데, 아이는 똑같이 등하원을 시켜줘야 한다. 그러니 매일 전쟁 같은 생활이다. ‘여기까지 5분 안에 도착해야, 집까지 20분 안에 들어가는데’ 이런 생각을 매분 하며 살아간다. 며칠 전 새벽 3시에 일을 마치고 나니 몸이 너무 피곤했다. 생각해보니 그 날 16시간을 일했더라. 나머지 8시간 안에 아이 먹이고, 재우고, 놀아주는 모든 걸 한 거다.
정부에서 엄마 창업가를 지원하는 보육 정책은 없나.
이 : 없다. 오히려 창업자는 신분이 애매해서, 종일제 어린이집을 못보낸다. 기존에 종일제를 보냈던 경우에도, 신분을 증명하지 못하면 반일제로 바꿔야 한다. 예비 창업자가 섣불리 개인 사업자를 내기도 어려운 일 아닌가. ‘내 신분을 어떻게 증명해야 하나’하는 고민도 했었다.
신분이 확실하지 않다는 게 무슨 말인가.
이 : 직장에 속해있지 않다는 얘기다. 일한다는 증거가 없다는 거다.
설령 전업 주부라고 해도, 아이를 맡기고 자기계발을 할 권리는 보장되어야 하지 않나?
이 :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육아 지원 예산에 한계가 있다보니 벌어지는 일이다. 경제 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서류 상으로 증명해보여야만 한다.
개인사업자를 내면 아이를 종일반에 맡길 수 있나.
이 : 예전에는 매출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을 서류로 증명해야 했다. 그런데 내 경우엔 당시 준비 중이었기 때문에 수익이 없었다.
김 : 최근에는 사업자등록증과 사무실 주소를 제출하라고 하더라. 당시 집에서 일했기 때문에 사무실이 없다고 하니, 일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서 보내라고 했다. 좀 엉성하다. 셀카를 찍어서 보냈다. (웃음)
투자를 준비하며 어려움을 겪은 적은 없었나. 한 창업가는 VC로부터 ‘난 애 있는 유부녀에게는 투자 안한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하더라.
이 : 사실 남성 VC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에, 육아와 관련된 아이템을 설득시키는 것이 어렵긴 하다. 여러 경험을 거치며, 이건 우리 아이템의 특수한 부분이니까 더 확실하게 준비해야겠다고 결론을 지었다. 투자 미팅을 하면서, 여자 심사역은 딱 두 명 만났다. 그것도 많이 만난 편이라고 하더라. 한 분은 아이를 키우는 여성 심사역이었는데, 확실히 이해하는 관점이 달랐다. 문제에 대해 깊게 공감해주시더라. 그 이외에는 미팅 때 ‘엄마 창업가는 사업 하다가 아이가 더 중요해지면 금방 그만둘 수 있지 않느냐’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다.
편견일까, 현실일까.
이: 편견이다. 엄마 창업가들은 아이들이 잠든 밤에 결과물을 뽑아낸다. 그런데 하루에 16시간 씩 일해도 워킹 타임이 일반 창업자와 다르면 일을 적게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렇게 소중한 아이에게 들일 시간을 쪼개서면서까지 창업에 나선 사람들이다. 절대 대충 일하지 않는다.
여성 창업가에게는 남편의 육아 휴직도 큰 기회의 시간이 될 것 같다.
김 : 그렇다. 3개월만 육아 휴직을 내줘도, 큰 도움이 될텐데. 돈을 몇 배는 벌어다 줄 자신이 있다.(웃음) 내 일 때문이 아니더라도, 아이의 가장 예쁜 시절을 아빠가 함께 보낼 수 있는 기회가 앞으로 없을 거라는 생각에 남편에게 육아 휴직을 권유했지만, 어려울 것 같다. 내 경우 남편의 지지가 없었다면 창업을 시작하지 못했을거다. 하지만 국내 기업 정서 상, 남자가 육아 휴직을 쓴다는 것이 쉽지가 않다. ‘갔다 오면 책상 뺄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다.
이 : 내 경우에는 남편이 심적으로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애초에 창업을 권유했던 것도 남편이고, 정부 관련 일을 하고 있어 제안서같은 것은 검토를 도와주기도 한다. 그런데 남편의 마음과 달리 일상 생활에서 도움받기는 힘들다. 일도 늦게 끝나고, 아이는 아빠를 기다리느라 안자고 보채니까 내 업무에 계속 지장이 온다. 그러다보니 살림은 엉망진창인데, 처음에는 그런 것도 다 미안했다. 근데 어느 날부터는 미안해하지말고 뻔뻔해져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지금은 우리 아이 하나 하원하는데 남편, 고모, 어닌, 형부, 시부모님 모두가 동원된다. 뻔뻔해지지 않으면, 창업가로 살아갈 수 없겠더라.
다른 엄마들에게도 창업을 권하고 싶나.
이 : 권하고 싶다. 내가 좀 덜 자고 노력하면, 이루고 싶은 목표를 향해 달리면서 육아도 병행할 수 있기 때문에 직장 생활보다 나은 면이 있기도 하다. 내 꿈 중 하나는 엄마들이 일하기 좋은 기업을 만드는 거다. 그런 꿈이 있으니 버틸 수 있다.
김 : 전업 주부이든, 워킹맘이든, 엄마 창업가든 자신이 행복한 일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의 언니는 나와 비슷한 시점에 출산을 했는데, 바로 직장에 돌아가서 즐겁게 일하고 있다. 나는 창업의 길을 선택했다. 서로 원하는 삶이 다르기 때문에, 각자가 행복한 엄마로 사는 게 최선이지 않을까. 각자가 원하는 삶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향후 계획을 말씀해달라.
김 : 앞서 말했듯, 상반기 내로 스타일 킷(Style kit)이라는 전문가 인테리어 스타일링 패키지를 판매할 예정이다. 현재 운영하고 있는 온라인 샵 매출을 통해 이를 위한 초기 자금을 마련할 예정이다. 또 현재는 나를 중심으로 거의 모든 업무가 외주로 진행되고 있는데, 올해 내로 팀도 확실히 꾸리고 싶다. 하반기에는 타 기업과 협업 등을 통해 홍보·마케팅에 힘을 쏟을 예정이다.
이 : 그로잉맘은 컨텐츠 기업이기 때문에 기존 오프라인 교육 기업들과 파트너쉽을 맺는 데에 주력하고 있다. 현재는 네이버, AK플라자 등과 협업 중이다. 또 양경준 대표가 개최하는 <헤이스타트업> 행사에서도, 초등학생 프로그램 전체 기획을 맡게 됐다. 이 모든 오프라인 활동과 연계되는 온라인 앱을 개발하고 있는데 현재 절반 이상 완료됐다. 주로 전문가 상담 선생님들을 위주로 팀을 구성했는데, 콘텐츠 이외의 부분을 맡아줄 분들을 모셔서 함께할 수 있을만큼 팀을 성장시키고 싶다.
조 : 현재 엄마를 위한 캠퍼스 3기 모집이 끝났고, 서류와 인터뷰 전형 심사를 앞두고 있다. 총 30명을 선발하는데, 150명이 지원해서 뜨거운 관심을 느낄 수 있었다. 3기 이후에도 엄마를 위한 캠퍼스는 계속될 것이다. 창업을 꿈꾸는 엄마·아빠의 많은 지원을 부탁드린다.
사진 = 플래텀
* 그로잉맘(www.growingmom.com)
2015년 7월 설립된 국내 최초의 부모교육 서비스 제공 기업으로, 부모와 아이 특성에 맞는 체계화된 부모교육 컨설팅 및 육아 코칭 서비스를 운영한다. 상담전문가인 엄마 들이 만든 가족교육 콘텐츠 기업으로, 엄마들의 심리상태를 기반으로 하여 온–오프라인 방식으로 맞춤형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이 특징이다. 캠퍼스 서울의 ‘엄마를 위한 캠퍼스’ 2기를 통해 비즈니스 모델 구상, 시장조사, 인적 네트워크 구축 등을 경험하며 혼자 사업을 시작한 후 현재는 총 3명의 팀원과 외주 디자이너 및 개발자와 함께 일하고 있다.
* 모든스튜디오(www.styleathome.co.kr)
2016년 4월 설립된 기업으로, 현재 스타일앳홈이라는 온라인 리빙 편집샵을 운영하고 있다. 단지 인테리어 제품이 아니라, ‘스타일’을 판매하는 것을 모토로 모든 사람이 아름다운 집에서 살 수 있게 돕는 것이 목표다. 연내 ‘스타일킷’이라는 인테리어 스타일링이 된 세트 제품을 출시할 예정이다. 스타일킷이란 전문가가 스타일링한 인테리어 제품 세트 상품으로 소비자가 인테리어를 어떻게 꾸며야 할지, 어디에서 사야할지 고민하지 않고 원스탑 쇼핑을 가능하게 하는 큐레이팅 상품이다.
* 엄마를 위한 캠퍼스(Campus for Moms)
육아로 창업의 꿈을 미루고 있었던 엄마, 아빠의 창업을 돕는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으로 2015년 7월 1기를 진행하여 2016년 2기 진행했고 2017년 3월부터는 3기 프로그램이 시작된다. 유아(18개월 미만)들이 놀 수 있는 공간과 아기돌보미 서비스가 제공되어 평소 스타트업 커뮤니티에 참여하기 힘들었던 엄마, 아빠도 육아에 대한 부담 없이 아기와 함께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총 52명의 부모 창업가들이 참여해 ‘모이’, ‘베이비프렌즈’, ‘그로잉맘’, ‘스타일앳홈’ 등 다양한 분야의 스타트업이 탄생하는 데 일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