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의 새로운 정의, 버리는 안목의 미학
스타트업과 신사업에서 ‘혁신’이라는 단어는 항상 빠지지 않고 등장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혁신’이라는 단어를 떠올려보면 왠지 스티브 잡스의 ‘아이폰’, 엘론 머스크의 ‘테슬라’ 또는 ‘스페이스 X’와 같은 것들이 생각나게 된다. 기존에 없었던 혁신적 기술을 통해 꿈으로만 생각했던 것들을 세상에 출시하고 시장을 장악하여 ‘이 세상에 불가능은 없다’고 말하는 것 같은, 남에 세상 얘기처럼 들리는 그런 것들이다.
[그림 1] 2016 Most Innovative Companies, BCG Global
하지만 ‘파괴적 혁신’의 창시자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교수의 정의를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기존의 제품을 지속적으로 개선해 높은 가격에 제공하는 존속적 혁신에 비해 파괴적 혁신은 현재 시장 제품의 성능에 미치지 못하는 제품을 도입해 기존 시장을 파괴하고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파괴적 혁신의 사례로 ‘우버’나 ‘에어비앤비’가 많이 거론되고 있으나 실제로 국내 기업이 아니다 보니 피부로 와 닿지는 않는다. 또 이에 따른 해당 기업을 벤치마킹한 국가별 아류작들이 우후죽순으로 나타나 결과적으로 그들간의 마케팅 경쟁으로 인한 과다 출혈 또한 혁신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필자의 직업상 다양한 스타트업의 대표자 및 창업자를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많은데, 소위 성공한 창업과 성공하지 못한 창업 간에는 바로 파괴적 혁신의 정의에 해당하는 분명한 차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즉, 성공한 창업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대단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제품을 개발하는 것이 아닌, 창업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역량을 발휘해 기존 경쟁사들이 취급 또는 접근하지 않는 새로운 시장을 발굴하여 사업화에 성공한 경우가 매우 많다는 점이다. 기술적 요인이나 기존 시장 규모를 비교해 봤을 때, ‘이런 기술(혹은 아이템)로 어떻게 사업에 성공하지?’하는 제품 및 서비스의 스타트업들이 창업 3년 안에 수십억의 매출을 올리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그렇다면 과연 이들은 어떻게 사업화에 성공하게 됐을까?
가장 빈번히 발생하는 주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버리는 안목’이 뛰어난 창업자의 전략적 마인드이다. ‘버리는 안목’은 다양한 부분에서 발견할 수 있다. 특히 이러한 안목은 틈새시장 전략을 통해 나타난다. 아라미드 상판을 제조하는 스타트업 A사는 기존의 대기업들이 선점하고 있는 기존 상판 시장을 과감히 포기하고 실험용 상판이라는 틈새시장을 파고들었다. 그 결과 창업 3년 안에 수십억의 매출을 올리는 기업으로 성장하였다. 은행에서 소형 건물 공사에 대한 건축 대출을 외면한다는 점을 간파하여 오피스텔과 다세대 주택에 대한 P2P 부동산 대출업체를 창업하여 1년만에 500억 이상의 투자금을 모은 B사의 기사 또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스타트업의 성공사례이다.
이에 비해 시장에서 성공하지 못한 창업자의 경우, 기술적 우수성과 차별성에도 불구하고 시장이 제품을 알아봐주지 못한다는 푸념을 하거나, 개발기술의 모방을 막기 위한 방법에 대부분의 시간을 투자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기술의 우수성 및 차별성과 개발기술에 대한 방어 전략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자신의 기업이 포함되어 있는 산업의 기술 궤적(technological trajectories)과 시장의 성숙도를 고려하지 않고 기술의 전유성 체제(appropriability regime) 달성에만 몰두하는 것에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두 기업의 성공 사례는 자신이 포함되어 있는 산업에 대한 수명주기를 인식하고 성숙기에 접어든 단계에서, 꼭 필요한 제품/서비스 기능 구성 또는 기존에 외면되었던 틈새 시장을 발굴하여 사업화에 성공한 케이스이다. 이는 바로 ‘4 Dimensions of Innovation Space’ 중 포지션 혁신에 해당되며, 또한 창업기업 멤버들의 패러다임 혁신에 따른 조직의 혁신 의지와 사고가 포함된 것이다.
[그림 2]. The 4Ps of Innovation Space, Francis and Bessant, 2005
그렇다면 기존의 기업들은 파괴적 혁신에 능숙하지 못하고 왜 실패하는 걸까? 이는 바로 ‘최고의 수익을 가져다 주는 고객에게 서비스하고 가장 매력적인 수익을 내는 곳에 투자를 집중해야 하는 것이 좋은 기업이 해야만 하는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이미 기업이 ‘스스로 판단하는’ 최고의 수익을 가져다 주는 고객, 매력적인 수익을 내는 곳을 정해버렸기 때문에 파괴적 혁신이 가능한 새로운 시장을 보기 어렵다. 이로 인해 기존 산업 리더들은 지속적인 혁신을 해야만 하고 파괴적인 기술이 그들을 묻어버리도록 자신을 방치한다는 것이다.
[그림 3] Clayton Christensen, The Innovator’s Dilemma
자, 이제 “어떻게 하면 높은 기술력이 아니어도 되면서 저렴하면서도 잠재 시장에서 열광하는 제품을 발견하여 사업화할 수 있을까”라는 숙제를 기존 접근 방식의 문제점 도출을 통해 풀어보자.
실제로 대기업 및 글로벌 기업에서 신제품 또는 새로운 서비스를 출시할 경우, 완성품을 통해 제품에 대한 시장 반응을 점검하기도 하지만, 제품에 컨셉이나 목업(Mock-up) 제품을 활용해 출시 전 고객 검증 조사를 진행한다. 완성품을 통한 제품 또는 서비스 검증을 진행할 경우, 이에 따른 막대한 비용이 발생하고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Pivot에 많은 자원과 시간이 투입되므로 목업, 브로셔, 스토리 보드 등 소위 MVP(Minimum Viable Products)를 활용하여 개발 제품에 대한 테스트를 진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그 다음이 문제다. 기존에 구축된 시장에 대한 검증 테스트를 진행할 때, 핵심 타겟이 될 고객군을 선정하고 그들을 대상으로 개발 제품에 대한 의견을 물어보는 프로세스는 파괴적 혁신을 이루기 어렵다. 우리의 잠재 고객이 기존 시장의 핵심 고객이었던 그들이라는 가설을 가지고 테스트를 수행하기 때문에 그 외 고객인 잠재 고객군에 대한 개발 제품의 수용성을 측정하기 어려우며, 기존 고객의 경우, 이미 기존에 높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하이 퀄리티의 제품을 경험하였기 때문에 최소한의 기능으로 구성된 저렴한 제품에 대한 니즈보단 더 좋은 프리미엄 제품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제시할 확률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또 다른 문제점은 검증을 진행하는 ‘방법’에 관한 것이다. 1989년 창간된 여성 월간지 ‘마리안느’는 사전 시장 조사 결과 무려 95%의 주부들이 낮뜨거운 섹스 이야기, 연예인 루머 일색의 기존 여성잡지에 상당한 식상함과 거부감을 느낀다고 응답하였으며 이런 고객의 욕구에 맞춰 3無(無섹스, 無루머, 無스캔들) 잡지라는 컨셉으로 시장에 출시되었으나 불과 17호만에 폐간하게 되었다. 실패에 대한 원인은 매우 명확하였다. “어떤 주부가 조사원 앞에서 섹스, 스캔들, 루머가 많은 잡지를 원한다고 얘기할 것인가?”였다. 결과적으로 우리의 고객은 비의도적으로 거짓을 응답할 때가 있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그림 3] 불과 17호만에 폐간한 여성잡지 마리안느
두 가지 문제점은 우리가 파괴적 혁신을 이루기 위해 어떻게 시장 검증을 진행해야 하는지에 대한 시사점을 던지고 있다. 첫째, 제품을 개발해 시장 검증을 진행할 경우, 창업자가 예상하지 못한 새로운 시장이 창출될 가능성을 염두하여 다양한 잠재 고객군을 대상으로 테스트를 진행해야 한다는 점과 둘째, 고객의 실질적인 검증을 위해 우리가 수렴할 수 있는 시그널은 고객의 텍스트와 음성뿐만이 아닌 고객의 행동에 대한 관찰의 중요성이다. 이를 위해 고객 검증 테스트 설계 시, 2nd 고객군 및 비고객군까지 수용할 수 있는 고객 매트릭스 구성을 통한 다양한 가능성 검증이 진행되어야 하며, 콜드콜 테스트, 스모크 테스트, 스플릿 테스트 등을 통해 고객이 실제와 가장 유사한 상황에서 구매 및 호감도를 행동으로 나타낼 수 있는 실질적인 검증에 대한 접근이 필요하다.
시장검증을 위해 완벽한 제품을 통한 사용성 평가 및 높은 학문적 지식을 바탕으로 복잡한 알고리즘을 통한 접근 방법론도 좋지만 최소한의 제품을 실제와 동일한 구매 또는 사용환경에서 빠르게 검증할 수 있는 ‘Low-end 파괴적 혁신’ 시장 검증 접근이 필요하며 전문가들의 의견이 아닌 실제 시장 검증을 통한 사업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시장은 사업의 의사결정을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핵심지표이기 때문이다.
창업자 누구나 개리 하멜과 프라할라드의 Strategic Intent에 따른 원대한 꿈을 가질 필요는 있지만 혁신 창업가가 되기 위해 스티브 잡스와 엘론 머스크가 될 필요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