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트렌드

[이희우의 쫄지마! 인생] 6. 벤처투자의 기초

대한민국 스타트업을 위한 어느 벤처투자자의 수줍은 고백

“이희우의 쫄지마! 인생”

벤처캐피탈에 들어오면 제일 먼저 권하는 책이 아마도 ‘워렌버핏’의 투자철학 관련 책이 아닌가 싶다. 나도 선배로부터 그 책을 추천 받았으니깐. 읽고 나서 느낀 점은 ‘뻔.하.다.‘ 라는 것이다. 그렇지, 세상의 모든 진리는 원래 뻔하거든.

투자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경제의 큰 흐름을 알아야 하고, 그것을 아는 가장 좋은 방법은 주식투자를 해봐야 한다고 흔히 얘기한다. 상장 주식과 비상장 주식을 같은 선상에서 비교하기 어렵긴 하지만 투자의 기본이 되는 원칙은 상장 비상장을 떠나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워렌버핏은 ‘가치투자’를 얘기 했다. 가치투자, 이것 역시 뻔한 개념이다. 기본적인 가치를 창출하는 저평가된 기업을 찾아 오랫동안 묻어두면 된다는 개념. 누가 모르나?

모 증권사에 주식 계좌를 열었다. 첫 투자부터 꼬였다. DJ 정권이 들어섰다는 이유로 ‘광주은행’에 질렀다가 IMF 터지고 나서 내 돈 거의 다 날렸다. 두번 째 투자도 비슷했다. 코스닥 작전 주에 손 댔다가 반토막 신세. 세번 째, 네번 째 투자도 비슷했다. 

‘미래와사람(현 윌비스)’ 권성문 대표의 KTB 인수로 인해 주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냉각캔으로 주가가 7배 거까이 엄청나게 뛴적 있는 ‘미래와사람’에 대한 기대감이라고 해야할까? 아무튼 권대표의 KTB 인수이후 두차례 유상증자를 하는 동안 난 그의 능력(?)을 믿고 우리사주를 인수했다. 이제 남은 주식은 그때 할당받은 우리사주 ‘KTB’ 주식 뿐. 그래도 얼추 10,000주는 보유하고 있었다.

인수 당시인 1999년 2월  5 ~ 6천원대에서 머물던 주가는 2000년 2월엔 세배 가까이 오른 15,000원에 거래되고 있었다. 말단 사원이 1년 만에 주식 평가익이 1억원에 육박하게 된 것이다. 흥분되었다. 그 평가익을 생각하니 든든했다. 그 든든한 마음을 재산삼아 술을 퍼먹기 시작했다.

그러던 2000년 2월 어느날, 내가 신규업무팀에 있던 시절이다. 한통의 전화가 옆팀으로 걸려와서 그 팀에 아무도 없는 관계로 내가 땡겨서 받았다.

“신규업무팀 이희우 대리입니다”

“어, 그래. 나 권성문인데, 혹 권부장 계시나?”

“대표님 안녕하세요. 근데 권부장님은 지금 자리에 안계시는데요”

난 여기서 대화가 끝날 줄 알았다. 권대표가 말을 계속 이어간다. 사실 권오훈 부장은 KTB 인수시 미래와사람 측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분이다. 

“근데 말이야, 이대리 요즘 잘 지내지?”

“아 넵! 오늘 뭐 권대표님 냉각캔 검찰조사도 무혐의로 끝나고 주가도 오르고 넘 좋은데요”

“…”

“그리고, 확실히 불확실성이 무섭지 신문에 기사가 나서 가시화 되면 주가가 안정되는 것 같아요”

“…, 음~ 그래. 권부장 오면 전화 왔었다고 메모 부탁하네”

“넵, 알겠습니다”

인사치레로 하는 말에 괜히 냉각캔 운운 한것 같은 생각도 일순간 들었다. 뭐 어때? 전화를 끊고 난 바로 주식 1,000주를 시장에 던졌다. 그 돈으로 회사 바로 앞에 있는 기아자동차 매장으로 가서 현금으로 차를 샀다. 해치백 스타일의 겨자색 Rio. 그리고 일주일 뒤에 차가 나왔고 차 산 기념(?)으로 그날 차 옆문을 심하게 긁어 버렸다. 

그때 주식을 다 팔았어야 했다. 그 당시부터 비실비실 대던 주가는 액면가(5,000원) 근처까지 내려갔다. 난 다시 KTB와 권대표의 능력을 믿어보고 싶었다. 회사에서 20백만원 대출을 받았다. 액면가 밑으로 내려갔을때 내가 갖고 있던 현금 20백만원을 더해서 KTB 주식을 총 40백만원어치 더 샀다. 세상이 어떻게 흘러가는 줄 모르고.

2001년부터 닷컴버블 붕괴가 가시화되어 갔다. 주가도 계속 액면가 밑을 맴돈다. 2002년 8월 KTB 퇴사를 결심하고 퇴직금을 정산하려고 갔더니 대출금과 상계되어 받을 수 있는 퇴직금이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난 퇴사 후 몇개월 안에 주식을 다 팔아 버렸다. 몇천만원 손실을 안고.

이런 주식투자의 역사는 5년정도 더 지속되었다. 계속 귀가 얇아 여기 저기 기웃거렸고 또 돈을 질렀다가 잃고. 워렌버핏의 투자원칙은 잊혀져만 갔다. 그러던 어느날, 아마도 2007년 초로 기억난다. 난 책장 한 귀퉁이에 처박혀 있던 워렌버핏의 투자원칙 관련 책을 다시 집어들었다. 그리고, 내가 얼마나 헛된 망상에 사로잡혀 투자를 하게 되었는지 알게 되었다. 전혀 가치투자와 관련 없는 기업에 투자를 해 놨으니. 왜 10년 전에는 같은 책을 읽으면서도 중요한 그의 투자원칙을, 그의 소중한 가르침을 체득하지 못했을까? 역시나 돈 잃으며 체득하는 배움이 제일 효과가 있단 말인가?

실제로 그의 투자방식을 적용해서 2008년 금융위기가 터졌을 때 난 삼성전자, NHN, 포스코 등 현금창출 능력이 있는 우량기업에 투자하여 재미를 본 적이 있다. 그리고 지금도 우량기업에만 투자하고 있다.

투자원칙은 단순하다. 현금 창출능력이 뛰어난 가치있는 기업이 주가가 낮을 때 투자하라는 것이다. 문제는 원칙을 아느냐 모르느냐가 아니라 그 원칙에 맞게 행동하는 실행력이다. ‘사람은 선하게 살아야 한다’ 라는 큰 원칙은 모두 다 이해는 한다. 그렇지만 행동을 다 그렇게 하는가? 결국은 실행력이다.

벤처투자도 마찬가지다. 그 원칙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벤처투자시 사람이 제일 중요하며 사람에 대해 투자해야 한다고 모든 벤처투자자들은 말한다. 누가 모르는가? 그렇지만 투자시 제일 크게 하는 실수가 사람에 대한 평가, 사람에 대한 검증 부족이다. 나 역시 주관적일 수 밖에 없는 사람에 대한 검증을 나름 객관적으로 하였다고 자기 합리화 한 적은 없었는지 되돌아 본다. 또한 사람은 별로 였는데 서비스와 시장에만 혹해서 투자한 적은 없었는지.

경영진에 대해 레퍼런스 체크를 많이 한다고 사람에 대한 검증이 객관화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는 워낙 좁은 나라고 투자 심사하는 사람들 마다 호불호가 분명해서 레퍼런스 만으로는 경영진을 판단하기 어려울 수 있다. 때론 이런 절차가 짜고 치는 고스톱 판이 되기도 한다. 다른 방법은 없을까? 이건 투자자로서의 매일 매일 고민거리이다. 그래서, 작지만 경영진 실사(Management Team Due Diligence)시 몇가지를 추가해서 보는 나 만의 실험을 요즘 하고 있다. 물론 그 실험이 효과가 있었는 지는 또 몇년의 시간을 필요로 하겠지만 말이다. 

최근에 읽고 있는 ‘Venture Capitalists at Work’에서 보면 초우량기업(Billion-Dollar Company)으로 성장시킬 경영진을 발굴하고 투자할 때 뭘 중요하게 보는 지에 대한 설명이 나와 있다. 실리콘밸리의 한 벤처투자자는 ‘P.S.D.’를 본다고 한다. 바로 ‘Poor, very Smart and Driven’이다. 아끼고 절약하면서 성공에 대해서는 항상 배고파 하는 것, 매우 똑똑하며 뛰어난 판단력 보유하고 있는지, 그리고 비전을 향해 달려가는 끊임없는 열정을 가지고 있는지.

이 세가지만 제대로 알아볼 수 있어도 VC에 몸담고 있는 당신은 훌륭한 벤처투자자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세가지를 갖추고 있는 창업자가 거대한 시장기회(Market Opportunities)와 잘 만난다면 그런 창업자는 확실히 초우량기업을 일굴 수 있는 위대한 기업가가 될 수 있겠지만.

1997년 KTB 네트워크에서 벤처캐피탈에 입문한 후 현재 코그니티브인베스트먼트를 설립 및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모든 스타트업을 위한 고품격 투자상담 토크쇼 “쫄투! 쫄지말고 투자하라”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스타트업 교육에 관심 많아 예비 창업자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창업교육 프로그램인 “쫄지마! 창업스쿨”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2014년 7월 그 동안 플래텀에 연재한 글과 새로운 창업이야기를 담은 ‘쫄지 말고 창업(이콘출판)’ 책을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벤처캐피탈, 창업, 스타트업, 기업가정신 등에 관심이 많아 개인적으론 그쪽 분야를 계속 연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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