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up’s Story #338] ‘4만원 대 캐리어’로 크라우드펀딩 10000%를 넘긴 기업 ‘샤플’
심플한 디자인, 스마트 트랙킹 기능까지 장착한 캐리어를 4만9천 원에 판매하면서, 샤플은 소셜네트워크상에서도 큰 주목을 받았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인 와디즈에서는 며칠 째 모금액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모금일이 10일가량 남은 현재, 샤플은 목표 모금액의 18,000% 이상을 달성했다. 캐리어 전문 회사일까? 저렇게 팔아서 남는 건 있을까? 많은 궁금증을 가지고 디자인 크라우드 플랫폼 ‘샤플(SHAPL)’의 진창수 대표를 만났다.
샤플 진창수 대표
■ 캐리어 회사? 킥스타터? 퀄키? 도대체 정체가 뭔가요?
샤플이라는 기업 자체를 캐리어를 통해서 알게 됐다. 샤플은 어떤 회사인가?
이번 와디즈를 통해 진행한 Dr.Nah 캐리어는 우리 프로젝트 중 하나일 뿐이다. 샤플은 다양한 디자이너들의 제품 디자인을 크라우드소싱 방식으로 생산하고 유통하는 디자인 크라우드 플랫폼이다. 디자이너와 소비자, 두 집단에게 안정감있게 샤플을 소개하기 위한 채널로 와디즈를 선택했다.
킥스타터, 인디고고와 유사한 모델인가?
정확히 말하자면 전혀 다르다. 그들은 중개 플랫폼이다. 생산자가 따로 있고, 그들과 구매자를 연결해주는 역할에 머문다. 생산, 유통에 관여하지 않다 보니 여러 문제가 생긴다. 펀딩은 받았는데 양산이 늦춰져 소비자들이 성토하는 경우도 많고, 배송 사고도 잦다. 킥스타터 등은 이런 문제에 대해 법적으로 책임지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철저히 삼자의 입장인 거다. 때문에 소비자가 환불 수수료를 무는 등의 피해 사례가 적지 않았다. 완성도에 대한 확인 없이, 자극적인 아이디어만을 전시하려고 하는 플랫폼의 욕심도 폐해를 부추겼다. 과도한 마케팅의 피로감과 가격 부담은 소비자가 모두 떠안게 되어 있는 거다. 장기적으로, 중개 플랫폼에는 한계가 있다고 본다.
중개에 머물지 않고, 생산과 유통을 전담한다는 점은 퀄키*와도 비슷해 보이는데.
다르다. 플랫폼에 모인 아이디어를 현실화, 상품화한다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자격조건 없이 모든 대중으로부터 아이디어를 받았던 퀄키와 달리, 샤플은 제품 디자이너의 아이디어만을 취급한다. 퀄키가 파산한 이유는, 아이디어를 위한 아이디어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비전공자, 비전문가들의 아이디어를 현실화 시키려다 보니 실용성이나 퀄리티 측면에서 좋은 제품이 꾸준히 생산될 수 없었다. 또 유통 채널을 다방면으로 넓히다보니, 그에 따른 수수료 부담이 적지 않았고 결국 생산가와 판매가 차이가 커졌다. 비싸진거다. 이 틈새로 이른바 ‘짝퉁’ 들이 들어왔다. 몸에 걸치는 의류와 달리, 집에 두고 쓰는 가전 제품의 경우 기능만 비슷하다면 모조품을 구매하는 경우가 많지 않나. 결국 소수의 팬덤에게만 사랑받는 플랫폼으로 전락하면서 시장에서 뒤처졌다.
*퀄키(Quirky) : 미국의 크라우드소싱 아이디어 상품 개발 플랫폼으로, 2009년 설립되어 큰 투자를 유치하기도 했지만 2015년 9월 파산 신청을 하며 폐업했다.
퀄키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샤플은 어떤 방식으로 생산과 유통을 진행하고 있나.
전문 디자이너 혹은 디자인 대학 졸업자들에게 디자인 아이디어를 받는다. 그들 중 500명 이상의 소비자에게 ‘좋아요’를 받은 제품은 샘플을 만들어 선판매한다. 일반적인 크라우드 펀딩 방식이다. 최소 수량은 5천 개로, 5천 개가 선판매 완료되는 순간부터 생산이 들어간다. 주문부터 생산까지는 두 달 정도가 걸린다.
■ 거품 가격 – (포장·조립비용+유통수수료+오프라인 운영비) = 4만9천 원 캐리어
단도직입적으로, 그 정도 품질과 디자인의 캐리어를 어떻게 4만9천 원에 판매할 수 있나? 남는 건 있는 건가.
당연히 있다. 나름의 생산 혁신을 이뤘기 때문에 가능한 구조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기업이 생산 혁신을 기계화, 자동화와 같은 생산 구조 변화에서 만들려고 했다. 하지만 진짜 생산 혁신은 유통과 맞닿아 있다. 생산 비용의 40% 이상이 제품 조립과 포장에 들어간다는 사실을 알고 있나. 오프라인으로 제품을 판매할 경우, 포장까지 깔끔하게 완료가 되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온라인으로만 판매하기 때문에 완조립이 되어 있지 않더라도, 상세 페이지를 통해 사용자가 조립법과 사용법을 익힐 수 있다. 별도의 화려한 포장 없이 박스에 넣어서 반조립 상품을 보내기 때문에, 생산 단가의 40%가 낮아진다. 배송은 광저우에 있는 자체 물류 센터에서 직접 45개국으로 배송한다. 여기서 컨테이너에 들여올 때 부가되는 중간 유통 비용이 생략된다. 이런 구조를 만드는 게 생산 혁신이다.
이케아(IKEA)와 비슷한 구조인가.
비슷한데, 이케아는 오프라인 중심의 판매를 하고 있기 때문에 운영비가 많이 들어간다. 우리는 온라인 홈페이지 내에서만 판매를 하고, 직접 전 세계로 배송을 보내기 때문에 운영비 부담이 없다. 또 홈페이지에서만 독점 판매를 하기 때문에, 각 유통 채널과 바이어에게 지불하는 수수료도 없다.
디자인에 대한 저작권 관리는 어떻게 하고 있나. 퀄키처럼 모조품이 등장할 수도 있고, 제품이 잘되면 디자이너가 직접 생산하겠다고 나설 수도 있지 않나.
디자인 저작권은 디자이너에게 있고, 생산과 판매 독점권을 샤플이 가진다. 작곡가에게 저작권료를 지불하는 음반사와 같다. 직접 생산은 엄두를 못 낼 거다. 그 누구도 이 가격으로는 못 만들고, 못 판다. 디자인만 해도 제품이 잘되면 저작료를 받을 수 있는데 굳이 어려운 길을 밟으려는 디자이너는 없다고 본다. 같은 이유로 샤플 제품은 짝퉁이 나올 수 없다. 생산가와 판매가의 틈이 워낙 좁기 때문이다. 타 기업이 틈새를 뚫고 들어오기에 투자 대비 효율이 너무 낮다.
생산가와 판매가의 틈이 좁다는 것은, 수익이 적다는 말인데.
전혀 다른 이야기다. 한 바이어에게 10만 개를 판매하는 것보다, 10만 명의 소비자에게 제품 하나씩을 판매할 때 수익률은 되려 높다. 바이어에게 대량으로 제품을 넘기게 되면, 단가를 훨씬 낮춰서 줘야 한다. 하지만 샤플 플랫폼을 통해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를 하면, 샤플과 소비자 양측 모두에게 좋은 가격으로 거래를 할 수 있게 된다. 다만 이때 전제되어야 할 것은 10만 명이 샤플 사이트에 들어와 제품을 사게끔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것을 위해 와디즈에서 우리 채널을 홍보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고.
모금일이 10일 정도 남은 현재, 목표액의 18707%(약 9억3천억 원)를 달성했다. 와디즈를 포털에 검색하면 샤플 캐리어가 연관 검색어로 뜨더라. 이렇게까지 반응이 좋을 거라 예상을 했나.
못했다. 1억만 해도 잘된 거라고 생각했다. 한국의 소비자들은 보수적인 성향이 강하다. 브랜드 제품을 선호하고, 배송 속도에도 민감하다. 그러나 이번 와디즈 프로젝트에서 검증되고 있는 사실은, 한국의 소비 문화가 실용적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좋은 디자인, 품질, 가격 등에서 거부할 수 없는 제품을 내놓으니, 전혀 유명하지 않은 ‘샤플’이라는 기업이 판매를 해도 산다. 심지어 배송이 두 달 뒤인데도. 샤플 자체 플랫폼에도 하루 평균 방문자가 100명 정도씩 늘어나고 있다. 18일 이후에는 샤플에서만 판매가 되니, 수익 전환율은 더 높아질 것이다.
화제가 된 캐리어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해달라.
독일 레드닷 디자인어워드, DFA(Design For Asia) 심사위원으로 활약하고 있는 나건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제품이다. 본인이 자주 해외 출장을 다니며 가졌던 바람을 샤플 캐리어에 담았다. 아주 기본적이고 심플한 캐리어다. 뭘 더해서 만든 게 아니라, 필요하는 것을 모두 뺀 디자인이다. 다만 내구성이 좋도록 소재와 바퀴 부분에 심혈을 기울였다. 분실을 방지하기 위해 스마트폰 앱과 연동해서 사용하는 트래킹 기능이 더해졌다.
■ 전 세계에 있는 공장을 ‘내 공장’처럼 쓸 수 있는 3가지 방법
많은 하드웨어 스타트업이 중국 양산에 관심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의사소통도 힘들고, 품질에 대한 확신이 없어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더 싸게 만들어서 더 많은 수익을 남기려는 욕심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제 값 주고 만들려고 하면, 잘 만들어준다. 싸게 만들려고 하면 당연히 저질 제품이 생산되고, 그걸 구매한 소비자들도 불만족스럽다. 그런 악순환이 계속되다 보니 중국 현지 생산에 대한 나쁜 인식이 생겼다. 현재 샤플 캐리어는 유명 캐리어사인 S기업과 같은 공장에서 생산을 한다.
중국 공장에서 ‘우수 고객’으로 인식되는 게 중요하다던데.
맞다. 모든 OEM 생산에서, 현지 공장을 내 공장처럼 쓸 수 있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가 초도 물량 확보다. 한 번에 100만 개씩 생산을 해버리면, 브랜드 인지도가 없어도 공장 내에서 그 기업 물건 생산에 대한 우선순위가 높아진다. 그다음이 브랜드력이다. 마지막이 재구매력인데, 얼마나 자주 그리고 빠르게 재생산을 하는지도 아주 중요한 요소다. 샤플은 선판매를 하니 초도물량이 확실하다. 또 판매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바이어에 비해, 중간 유통 과정 없이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를 하기에 재구매력도 높은 편이다. 현지 공장을 우리 공장처럼 이용할 수 있는 요건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제품 품목에 따라 생산하는 공장도 달라질 것이다. 어떻게 여러 공장과 연을 맺었나.
2007년 이라크 파병을 갔다. 그 때 미군들과 생활하며, 이동이 잦은 사람들에게 샤워 용품을 챙겨 다니는 것이 매우 귀찮은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 때 만든 게 스마트 샤워용기다. 2013년 당시 1인 창업으로 시작해 킥스타터에서 5만5천 달러 펀딩을 받고 45개 국에 판매를 했다. 그때 다수의 플라스틱, 실리콘 공장과 관계를 맺었다. 캐리어 공장은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연을 맺게 됐다.
전 세계 45개국에서 판매되고 있는 스마트 샤워 용기
1인 창업자로, 혼자 제품 양산과 배송을 했었다는 말인가.
그렇다. 가방 제조 회사를 운영하는 친누나의 도움이 컸다. 또 매형이 중국사람인데, 광저우에서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가족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때의 경험으로 중국 현지 생산에 대한 거부감이나 두려움은 없었다. 이 스마트 샤워용기를 판매하며 갖춘 지식과 인맥들이 현재 샤플의 자산이다.
다양한 디자이너들이 제품 아이디어를 내놓을 텐데, 샤플이 생산할 수 있는 품목 범위는 어떻게 되나.
현재까지는 단순 플라스틱 제품만을 생산했지만, 상용화된 기술 안에서는 모든 것의 생산이 가능하다. 누군가 노트북 제품을 올려 펀딩에 성공했다면, 글로벌 브랜드 OEM 공장에서 노트북을 생산할 수도 있다. 특별한 개발적 이슈가 추가되지 않는 선에서, 디자인적으로는 다 가능하다.
기술에 대한 저작권 문제는 없나.
저작권이 개방되어 있는 기술에 한해서는 무한히 가능하다. 저작권이 걸려있는 기술을 꼭 제품에 넣어야 하는 경우에는, 저작료를 지불할 수 있다.
AS는 어떻게 처리하나.
캐리어의 경우에는 기존 기업들도 무상 AS를 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대부분이 사용자의 손을 타면서 생긴 파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1년 무상 AS를 할 수 있는 건 품질에 자신 있기 때문이다. 또 워낙 제품 단가가 싸다보니, 수리가 아닌 새 상품 교체로 대응할 계획이다. 1년이 지난 후에 제품이 파손될 경우, 재구매 30% 할인 혜택을 준다. 보통 캐리어 수리 비용보다 싸게 새 제품을 구매할 수 있는 거다.
■ 디자인이 곧 언어, 언어 장벽 없는 세계적 플랫폼 되겠다
프로젝트 상세 페이지를 읽어보니, 투자자들이 샤플의 비즈니스 모델에 대해 신뢰하지 않았다는 내용이 있더라. 어떤 부분에서였나.
일단 현재 유행하는 비즈니스 모델이 아니라는 거다. 기관 투자자들은 돈을 맡긴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 한창 트렌디한 분야의 서비스를 발굴하느라 바쁘다. 퀄키도 파산하고, 유사 서비스 중 잘되는 곳이 없다 보니 외면을 받았다. 이해했다. 그래서 직접 성과를 보여주자고 마음 먹었다. 우리는 제조사인 동시에 플랫폼을 운영하고, 양질의 마케팅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전 세계 디자이너들의 노트 속에는 아직 현실화되지 못한 수만 가지 아이디어들이 담겨 있다. 우린 그걸 잘 만들어 싸게 판매할 수 있다. 소비자들이 반응할 수밖에 없는 서비스라고 생각한다. 향후 킥스타터 캠페인도 진행할 예정인데, 이를 통해 샤플이 세계적으로 알려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 전에 투자자들이 관심을 가지면 더 기쁘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샤플 자체의 가치를 높인 상태에서 현실적인 숫자를 가지고 협상할 수 있기를 바란다.
스타 제품, 스타 디자이너가 플랫폼 내에서 탄생하는 게 인지도 확보에 중요하겠다.
그렇다. 디자이너라는 직업이 풍요 속 빈곤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유명 브랜드가 어떤 제품을 내놓으면, 그 기업에 열광하지 디자이너에게 열광하진 않는다. 지금까지 브랜드는 기업이 주도해 만들었고, 소비자들의 선택을 강요했다. 하지만 이제 1인 미디어 시대다. 샤플 플랫폼을 통해 각 디자이너의 팬덤이 형성되기를 기대한다. 디자이너와 소비자가 직접 브랜드를 만들어나가게 될 것이다.
제품의 디자이너를 부각시키는 샤플의 홍보 전략
마지막으로 단기, 중장기 목표를 말씀해달라.
기본적으로 신예 디자이너와 유명 디자이너의 제품을 동시에 생산하는 투트랙 전략을 취한다. 나권 디자이너와 같은 셀렙은 물론, 전세계 디자인 학교 졸업생들에게 플랫폼을 알리기 위해 홍보 활동을 할 계획이다. 디자인 자체가 하나의 언어이기 때문에 지역적인 한계가 없다. 아마존, 페이스북과 같은 글로벌한 기업으로 성장해나갈 수 있었으면 한다. 샤플 제품의 구매자들은 단순히 그 제품이 아닌 새로운 유통 구조의 혁신을 구매한 것이다. 지금까지 중개 유통 중심의 커머스가 메이저였다면, 앞으로는 샤플과 같은 플랫폼이 전자 상거래의 메이저가 될 것이라 믿는다. 지켜봐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