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up’s Story #386] 소속 가수 없이 음원 차트를 흔드는 콘텐츠 기획사
작년 2월 말, 아이돌 팬덤 중심의 줄세우기식 차트 왜곡을 방지하겠다는 명목으로 ‘음원 차트 개혁’이 단행됐다. 가장 큰 변화는 각 기획사의 음원 발표 시간이 자정에서 오후 6시로 변경된 것. 팬덤뿐 아니라 대중의 호응을 얻어야만 실시간 차트 상위권에 오를 수 있도록 구조가 개편됐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 팬덤의 힘으로 음원 시장에서 안정적 지위를 누리던 대형 기획사들 발등에도 불이 떨어졌다. 아무리 전적이 화려한 탑클래스 아이돌 그룹이라고 해도, 줄 세우기는커녕 차트 아웃의 위험으로부터 안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대규모 자본과 노동력을 갖춘 조직도 풀기 어려워하는 ‘음악 콘텐츠 마케팅’에 맨주먹으로 도전하고 있는 스타트업이 있다. 바로 음악 크리에이터그룹 ‘스페이스오디티(Space Oddity)’다.
평범한 기획사라고 하기엔 시스템이 특이하다. 먼저 소속 가수를 두지 않는다. 정원 7명의 소규모 조직으로 구성되어 있고, 프로젝트 단위로 디지털 음원 혹은 앨범 제작을 한다. 매 프로젝트 때마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작곡가, 작사가, 영상 감독, 가수를 섭외해 음악을 제작한다. 작년 한 해 동안 이들이 제작한 것은 14개의 음원과 9개의 브랜드 콘텐츠다. 제작한 음원 중 단 하나를 제외한 13개가 차트 100위 권 안에 들며 선전했다. 특히 웹드라마 ‘연플리(연애 플레이 리스트)’ OST는 차트 상위권에 오르며 폴 킴, 멜로망스 등 숨은 원석들을 대중에게 소개했다.
많은 가수들이 ‘차트 100위 진입’을 활동 목표로 잡고 있는 요즘, 인지도와 자금력 없이도 연이은 성공을 만들어낸 비결은 무엇일까. 서울음반(로엔엔터테인먼트의 전신), 네이버뮤직, 카카오뮤직, 메이크어스, 딩고뮤직을 거쳐온 김홍기 대표는 ‘소셜’과 ‘데이터’에서 그 해법을 찾았다.
스페이스오디티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어떤 회사인가?
음악과 관련한 모든 컨텐츠를 만드는 회사다. 단순히 음악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음악을 하나의 캔버스 삼아 브랜디드 광고 등 다양한 콘텐츠로 확장 생산해내고 있다. 우리는 전속 가수를 두지 않는다. 대신 흩어져 있는 작사가, 작곡가, 가수 등의 크리에이터들을 모아 협업 네트워크를 만든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이들과 함께 성공 가능성이 높은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것이 목적이다. 비슷한 개념의 회사는 아직 한국에 없다.
데이터가 사업에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모양이다.
음악 업계의 가장 큰 니즈는 시장을 예측하고 실패 확률을 줄이는 거다. 그러나 대형 기획사들조차 여전히 감으로 음반을 제작하고 있다. 음악 산업도 하나의 비즈니스이기 때문에 이번이 잘 돼야 재투자를 통해 다음을 만들어낼 수 있다. 우리는 데이터 분석을 통해 한 아티스트의 현황 및 향후 계획을 50장 정도로 제시해줄 수 있다. 현시점에서 해야 할 것과 해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설명해줄 수 있다는 말이다.
어떤 데이터를 주로 검토하나.
대외비라 자세히 밝힐 수는 없다. 다만 온라인상에서 추출할 수 있는 모든 데이터를 취합하고 분석한다. SNS 버즈량, 아티스트 개인의 팔로워 수, 음원 차트 순위 등 아주 다양한 항목을 검토한다.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는 어떤 것이 있나.
웹드라마 <연애플레이리스트>의 OST 앨범이다. 각 프로젝트마다 가장 잘 어울리는 아티스트와 크리에이터를 결정해서 진행하는데, 이때도 데이터를 활용했다. 사실 OST에 참여한 폴 킴은 당시 인지도가 많이 떨어졌다. 그러나 SNS, 음원 차트 데이터를 누적이 아닌 최근 것으로 잘라서 분석해본 결과, 이 가수의 상승세가 눈에 보였다. 작곡, 작사가도 처음에는 인지도 없는 가수를 선정한 것에 의구심을 가졌지만, 데이터를 제시하며 믿어달라고 요청했다. 결국 우리의 예측이 맞아떨어졌고, OST 앨범은 차트에서 선전했다. 그 후 폴 킴의 과거 노래가 역주행하면서, 현재는 전국 행사를 다니고 있다고 하더라. ‘제2의 폴 킴’을 찾기 위해 발굴한 것이 멜로망스다. 비록 OST 음원 발매 일주일 전에, 자작곡인 ‘선물’이 먼저 역주행을 해버렸긴 했지만 어찌 됐거나 그 가수가 상승세를 탈 것이라는 우리의 예측은 맞았던 거다. 이런 식으로 리스크를 최대한 줄이면서, 성공 가능성이 높은 콘텐츠를 만들어 내고 있다.
음악 업계에 종사하면서 쌓아왔던 네트워크들이 큰 자산이 됐겠다.
좋은콘서트부터 서울음반, 네이버뮤직, 카카오뮤직, 메이크어스 등을 거치며 여러 크리에이터, 스탭들과 연을 맺었다. 공연 기획, 음원 유통, 프로모션까지 업무도 두루 거쳤기 때문에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을 알게 됐다.
음반에서 음원으로, 또다시 모바일 스트리밍으로 시장이 변화하는 내내 음악이라는 주제를 다뤄온 셈이다.
그렇다. 처음 좋은콘서트에 재직했을 때는 시장 자체가 음반 위주였다. 그러다 서울음반 당시에는 MP3 플레이어가 등장하면서 가수들이 삭발하고 난리가 났었다. 음반 시장 자체가 무너지는 시기였던 거다. 내가 음악 관련 일을 계속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도 많이 했다.
네이버에 이직할 때에는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사람들이 유튜브와 스트리밍 서비스로 음악을 소비하기 시작했다. 그 후에 카카오뮤직을 거쳐 메이크어스로 가게 된 계기는 세웃동과 같은 채널의 소셜 영향력을 확인하고 나서다. 그 때 나이가 마흔이었다. 20대 때처럼 다시 한번 열정 있게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업계 선수들을 설득해 멀티 채널 브랜드인 ‘딩고’를 만들었다. 이때부터 데이터를 팠다. 그러다 차트 역주행 음원과 소셜 간의 밀접한 연관성을 발견했다.
이 이론을 증명하고자 페이스북에서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우리만의 콘텐츠를 기획했다. 그렇게 만들어낸 게 ‘세로 라이브’, ‘이슬 라이브’다. 모바일에 꼭 맞는 세로 화면에 1인칭 시점으로 가수가 나에게 노래를 불러주는 것처럼 시선을 맞춘다. 또 공공장소에서 소리를 켜지 않고도 시청할 수 있도록 상단에 큰 자막을 넣었다. 결국 소셜 상에서 반응을 얻는 데 성공했다. 소셜과 모바일의 관계에 대해 모두 의구심을 가졌지만, 나는 흐름이 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확신했다. 먼저 가 있으면 망해도 망한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그 생각이 맞았고.
데이터 분석 기술을 심화시켜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 예정이라고.
자세히 말하긴 어렵지만, 아티스트와 기획사가 함께 실질적인 지표를 확인할 수 있는 분석 도구를 내년에 출시할 예정이다.
기획사들은 스페이스오디티의 행보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고 있나.
이미 찾아와 같이 일을 해보자는 곳도 많다. 인디레이블부터 대형 메이저 기획사까지 층위도 다양하다. 현재는 컨텐츠 생산을 통해 기업 입지를 다지고 있지만, 향후에는 기획사들과 협업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볼 생각이다. 아예 아티스트 양성 단계서부터 함께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 그야말로 소속 가수 없이 스타를 키워내는 아주 특이한 형태의 회사가 되겠다.
나는 스페이스오디티를 공유경제 기획사라고 정의한다. 교통에서는 우버가, 숙박에서는 에어비앤비가, 공간 대여 분야에서는 위워크가 나왔다. 음악 업계에서는 스페이스오디티가 공유 경제 시스템을 만들어갈 수 있으리라 본다. 전속 계약을 하지 않고서도 플랫폼과 크리에이터, 아티스트를 네트워크로 묶어 컨텐츠를 만들어내는 구조로 말이다.
창업한 지 7개월이 됐다. 감회가 어떤가.
잘해온 것만 해도 모자랄 판에, 40살이 넘어서 창업이라는 새로운 일에 도전했다. 마치 아무것도 모르는 암흑 속으로 번지점프 하는 기분이다. 청년들의 열정 넘치는 창업도 중요하지만 나와 같이 연륜과 경험 있는 사람들의 창업에도 좀 더 많은 지원이 있었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스페이스오디티의 목표를 말씀해달라.
음악뿐 아니라 음악을 기반으로 모든 컨텐츠를 생산하고 유통할 수 있는 재밌는 회사가 되는 게 꿈이다. 또 사우스바이사우스웨스트(SXSW)와 같은 콘텐츠 컨퍼런스도 개최해보고 싶다. 지난달 직접 개최한 컨텐츠 컨퍼런스인 ‘리프트오프(Liftoff)’가 그 시작점이 될 것이다. 향후 출시 예정인 데이터 서비스를 통해 모든 가수를 연결할 수 있는 물리적인 허브를 만들고, 음악 업계의 공유 경제 시스템을 구축해나갈 예정이다. 지켜봐 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