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와 테헤란로에 존재하는 명과 암
미국 샌프란시스코 실리콘밸리는 IT창업을 희망하는 이들에게 꿈의 지역으로 불리운다. 애플, 구글과 같은 글로벌 IT기업 뿐만 아니라 차세대 글로벌 리더가 되기 위해 아이디어와 기술로 무장한 스타트업이 모여 있다. 그 결과 실리콘밸리는 세계 IT트렌드를 볼 수 있는 곳으로 자리 잡았다. 세계적인 인재가 모여들고 성숙한 스타트업 생태계와 천혜의 자연환경이 뒷받침한다.
실리콘밸리와 직접적인 비견은 어렵겠지만 한국에도 다수의 벤처기업이 태동한 지역이 있다. 네이버와 NC소프트 등 다양한 1세대 기업이 성장한 벤처1번지, 강남 테헤란로다. 2호선 강남역부터 삼성역 부근까지 이어져 있는 테헤란로 부근에는 다수의 창업지원 기관과 더불어 상당수 스타트업이 모여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 매진 중이다.
엘리트 집단이 모여 있는 걸로 유명한 두 곳엔 희망의 빛도 있지만 그림자도 존재한다. 몇 가지 짚어 봤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실리콘밸리
살인적인 집세… 100년 넘은 가옥도 7억 원 넘게 팔린다
통상적으로 알려진 실리콘밸리 지역은 샌프란시스코 지역 아래부터 사우스베이까지였다. 요즘은 금문교를 지나 마리 카운티, 바다 건너 오클랜드와 프리몬트까지도 실리콘밸리로 여겨진다.
지역이 커지는 동시에 지역의 크고 작은 IT기업에서 수많은 일자리로 인재를 불러모았다. 하지만 최근 도시와 지역을 떠나는 이들이 늘기 시작했다. 순 유입자도 최근 2년 간은 없다시피 하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일년에 많게는 2만명까지 늘었던 것과 대조적이다.
이들이 떠나는 가장 큰 이유는 집값 때문이다. 최근 5m 정도의 마당이 있는 23평의 집이 매물로 나온 지 2일만에 21억 원에 거래 되었다. 이마저도 약 6억 원의 웃돈을 주고 구입했다고 알려진다. 이 집은 애플의 신사옥이 있는 서니베일 근처에 위치한 동네에 있다.
높은 집 값은 연봉도 치솟게 한다…엔지니어 구인난
부담스러운 집 값은 엔지니어의 높은 연봉으로 이어진다. 구글 본사 소속 SW엔지니어의 평균 연봉은 한화 약 2억원 정도다. 문제는 구글처럼 연봉을 주지 못하는 스타트업이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양질의 엔지니어는 어떤 기업에서든 필요하지만 그 정도 금액을 감당할 수 있는 기업은 많지 않다. 때문에 원격근무 형태로 계약하는 트렌드가 확산중이다.
트럭에서 생활하며 회사 다니는 ‘워킹 홈리스’, 자동차문을 깨고 노트북을 훔치는 범죄도 늘어
번듯한 직장을 다니지만 캠핑카에서 생활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이는 길가에서 심심찮게 목격 된다. 높은 집 값을 감당하기 보다 트럭에서 지내며 돈을 아끼는 것이다. 샌프란시스코 지역의 홈리스는 팔로알토, 마운틴뷰, 쿠퍼티노 등 대표적인 실리콘밸리 지역에서 증가세다.
이와 동시에 자동차 문을 깨서 금품을 훔쳐가는 범죄도 기승을 부린다. 최근 5년 간 발생한 횟수만 10만 건이 넘지만 해결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범인은 집중적으로 ‘랩탑’을 노린다. 범행 시간은 약 20초 남짓. 좋은 차를 타고 다니는 엔지니어가 많아지며 발생한 웃지 못 할 문제가 생겨난 셈이다.
다수의 생각을 좇는다…보수적인 구조로 변모
‘에코체임버(Echo chamber)라는 말이 있다. 메아리 울림이 계속되는 방을 의미 하는데, 실리콘밸리를 두고 그렇게 표현하기도 한다. 트럼프 지지자인 스타트업계 거물 피터 틸은 실리콘밸리를 떠났다. 지역 정치 성향과 정반대 되는 주장을 펼치며 갈등을 겪었기 때문이다.
지역 IT업계는 이해하는 언어와 시야가 같고, 이를 바탕으로 같은 목표를 세운 이들이 대부분이다. 그렇기에 다수가 선호하는 트렌드에 몰려 다양성이 사라진다는 지적이 있다.
-대한민국,강남 테헤란로
10명 정도 사용하는 사무실의 임대료는 300만원부터
강남에서 10인이 사용할 만한 사무실이면 300만원 이상부터 가격이 형성된다. 코워킹 스페이스라는 공용공간이 있지만, 가격 임대비용이 저렴하다고 할 수는 없다. 모든 편의와 부대시설이 마련돼있을 경우 가격은 더 올라간다.
땅 값도 비싼데 교통 체증과 주차 전쟁은 덤
대부분의 스타트업 관계자는 강남 일대의 교통 체증을 운영 상 어려움으로 토로한다. 외부 미팅이 있을 경우 혼잡한 교통 문제로 시간을 맞추는 것에 애로사항이 있다는 것이다. 주차와 주차료도 큰 난제로 꼽았다. 이들의 한달 평균 주차료는 16만원 정도였다. 스타트업 중 이 비용을 매달 지불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이에 상당수 스타트업 관계자는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주차 시설까지 완비돼 있는 건물만을 찾아 다닌다.
팀장급 인력 구인난
스타트업이 한창 발전할 때 노련한 팀장급 인사가 참여해 서비스를 발전시킨다면 더없이 좋을 것이다. 이에 일정 경력 및 능력 위주의 채용을 하고 싶어하는 기업이 많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런 인재를 스타트업에 영입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이들 경력에 상응하는 임금을 줘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스타트업 특성상 기존에 흔히 보던 사업이 아닌 경우가 많아, 관련 경력자 자체를 찾는게 하늘의 별따기인 것도 있다. 관련 경력이 있어도 조직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겉도는 경우도 다반사다.
테헤란로에 있을 수 밖에 없는 그들의 사정
이러한 문제를 드는 스타트업 관계자들에게 다른 지역으로 옮길 의향이 있느냐고 물었지만, 다들 한결같이 ‘no’라고 대답했다. 이유는 비즈니스 미팅의 용이성, 양질의 행사 접근성 등을 들었다.
“일단 테헤란로에서 많은 미팅이 이뤄진다. 아울러 저녁에 있는 행사 대부분 이 근처에서 열려 강연을 듣거나 네트워킹을 하기에도 용이하다. 또한 대중교통 구조 자체는 편리하게 구성돼 있다. 사무실이 타 지역에 있을 경우 채용, 투자 등 사업 성장 관련한 여러 이슈에 대응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익명을 요구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사업지의 장소가 인식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확인했다”며 “강남이 아닌 지역에서 사업을 하면 투자 등 여러 의사 결정권자로부터 무시 받는 기분을 느꼈다”고 했다며, “몇몇 기업은 지역에 비상주 사업장을 가지기도 한다”고 털어놨다.
대개 기업 입사, 이직을 고려하는 입장에서 근무지는 우선 순위에 들어간다. 도심 외곽으로 갈수록 꺼리는 경향이 있다. 아울러 강남 지역은 편의 시설 측면에서도 선호도가 높다.
이 외에도 새로 론칭한 서비스는 대개 트렌드에 민감한 강남구를 중심으로 운영하다 보니 다른 지역으로 옮기기 쉽지 않다는 점도 있다.
닮음꼴인 실리콘밸리와 테헤란로
두 지역은 비슷하다. 고급 인력과 열정으로 뭉친 스타트업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매진 중이다. 다만 이면에는 값비싼 임대료와 인력난 문제를 끌어 안은고 있다.
실리콘밸리가 속한 샌프란시스코에선 시장 선거 운동이 한창이다. 이들은 노숙자를 줄이기 위한 여러 공약을 펼치고 있다. 닫힌 생태계를 개선하기 위한 자성의 움직임도 있다.
우리나라는 그 어떤 때보다 창업 하기 좋은 환경이 마련 됐다고들 한다. 투자금도 늘었고 지원센터도 스타트업을 열성으로 지원한다. 그럼에도 지역 한계를 못 벗어나 사업 외적으로 힘들다는 이야기는 꾸준히 흘러 나온다. 특정지역에 집중되는 문제를 고민하고 해결해야 더 나은 창업 생태계가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