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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의 법칙에서 실리콘밸리의 법칙으로”

지난 11월 14일 서울 한양대학교에서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주최로 열린 ‘실리콘밸리의한국인2024’에서 제니퍼 조(Jennifer Cho) 포트로직스(Portlogics) 미국법인장이 발표를 하고 있다. / 사진=스타트업얼라이언스  

지난 11월 14일, ‘실리콘밸리의 한국인 2024’ 행사 연사로 나선 제니퍼 조 포트로직스 미국법인장의 이야기는 한 권의 소설처럼 흥미진진했다.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그녀는 한때 이론물리학에 심취했던 진지한 학생이었다. 그녀의 노트는 너무나 정교해서 다른 학생들 사이에서 족보로 돌려볼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대학원 진학을 앞두고 그녀는 첫 번째 전환점을 맞는다. 순수 이론보다는 산업적 접점이 있는 연구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 바이오메디컬 피직스로 전공을 바꾸어 미국 유학길에 오른 것이다.

인생의 전환점은 늘 우리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온다. 박사과정 막바지, 그녀는 또 다른 갈림길 앞에 섰다. 당시 대부분의 박사들이 선택하던 길은 두 가지였다. 학계에 남아 교수가 되거나, 대기업 연구소에서 연구원이 되는 것. 하지만 그녀는 이미 진단장비의 상업화, 즉 비즈니스 쪽으로 관심이 옮겨가고 있었다.

“변하지 않는 것에 집중하라.” 그녀가 그때 읽었던 한 책의 구절이다. 교육적 배경은 일할 분야를 결정할 수 있지만, 그 분야 안에서도 다양한 직무가 있다는 것. 중요한 것은 매일매일 수행하는 기능이 자신의 성격과 잘 맞아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녀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때 만난 멘토들은 그녀에게서 두 가지 특징을 발견했다. 청중을 사로잡는 능력과 신뢰를 주는 진정성이었다.

실리콘밸리의 특별함은 어쩌면 이런 전환의 순간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문화에 있을지 모른다. 조 법인장은 “미국에서는 삶의 경로가 바뀌는 것을 한 번도 문제로 느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중요한 것은 일관성이 아니라, 변화의 계기와 새로운 관심사에 대한 진정성이라는 것이다.

그녀의 커리어는 두 개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발전했다. 테크와 비즈니스 디벨롭먼트. 초기 제품을 시장에 내놓고 반응을 살피는 일, 그것은 단순한 분석력을 넘어서는 무언가를 요구했다. 문화적 차이를 감지하는 능력,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을 읽어내는 능력. 그녀는 이런 직관력이 의외로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LA의 실리콘 비치에서 물류 스타트업의 법인장으로 일하는 지금, 그녀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깨달은 미국식 업무 전략을 공유했다. “오늘만 날이다”라는 마음가짐으로 네트워킹에 임하고, “거절은 스포츠다”라는 태도로 적극성을 잃지 않는 것.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실력과 커뮤니케이션의 균형이다.

“영어에 너무 집착하지 마세요.” 그녀의 조언은 의외로 단순했다. 중요한 것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그것을 전달하는 에너지, 단 두 가지라고 했다. 그녀의 말에는 20년 넘게 미국에서 살아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확신이 묻어났다.

현재 그녀가 일하는 포트로직스는 물류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그 이면에는 테크 기반의 프로세스가 있다. 마치 그녀의 커리어처럼, 전통 산업과 첨단 기술이 만나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다. LA라는 도시 역시 그렇다. 무역과 엔터테인먼트의 도시가 이제는 제2의 실리콘밸리로 변모하고 있다. 다양성과 창의성을 바탕으로, 테크는 이제 모든 산업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강조한 것은 실력과 커뮤니케이션의 균형이었다. 영어 실력보다는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그것을 전달하는 에너지가 더 중요하다는 그녀의 조언은, 결국 ‘나’라는 상품의 본질적 가치를 말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기술적 능력과 인간적 소통 능력의 조화, 그것이야말로 오늘날 실리콘밸리가 추구하는 진정한 인재상이 아닐까.

기자 / 제 눈에 스타트업 관계자들은 연예인입니다. 그들의 오늘을 기록합니다. 가끔 해외 취재도 가고 서비스 리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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