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우의 쫄지마! 인생] 11. 네 번의 청혼, 한 번의 승낙
대한민국 스타트업을 위한 어느 벤처투자자의 수줍은 고백
“이희우의 쫄지마! 인생”
지난 주에 결혼 8주년을 맞았다. 4월 16일. 그날은 둘째 딸 생일이기도 하다. 결혼기념일과 둘째 생일을 기억하기 쉽게 하기 위해서 같은 날로 퉁쳤다. 예정일이 대충 결혼기념일 부근이어서 4월 16일에 유도분만 받았다.
하필 지난 주 결혼기념일이 ‘쫄투! 쫄지말고 투자하라’ 촬영이 있는 화요일 이었다.(둘째 딸 생일 축하파티는 전날인 월요일에 하긴 했다.) 오후 5시가 다 되어 가는데 와이프로부터 카톡이 날라왔다. 와이프는 매주 화, 목요일 구청 여성합창단에 나간다. 그날도 연습이 있었다. 사실 와이프는 술 뿐만아니라 탄산 음료수도 마시지 않는다.
“소프라노 아줌마들 때문에 술해써. 어지러.”
“대낮부터 술이라니, 조만간 나이트도 가겠군 ㅋㅋ”
아뿔싸, 이런 메시지는 날리는게 아닌데…
“한숨 자야게따. 일찍와!!!”
“오늘 쫄투 찍어”
“기념일도 안챙기구, 늙어서 구박할꼬얏!”
“미안, 흑흑”
“사랑해 알라뷰~”
” “
“미안해, 죽을 죄를 지었어”
” “
“주말에 맛 있는 거 먹으러 가자. 내가 다 사줄께”
큰 일 났다. 그날 쫄투 촬영은 우울했고, 뒷풀이 까지 마치고 들어가니 이미 11시 30분. 들어가면서 꽃이라도 사 가지고 가려 했는데, 그날 따라 꽃집도 보이지 않고. 카드라도 써서 주려고 했더니 생일카드 파는 곳도 눈에 띄지 않는다.
사실 와이프를 만나기 전 세 명의 여자에게 청혼한 적이 있다. 세명의 여자에게 청혼하기 위해 백명이 넘는 여자를 만났었지. 그렇지만 결혼은 네번째 청혼한 여자인 와이프와 하게 된 것이다. 그것도 만난지 40여일 만에, 크리스마스 이브에 와이프가 승낙한 것이었다.
실제로 벤처캐피탈과 스타트업의 만남은 연애와 결혼 과정과도 흡사한 측면이 많이 있다. 서로 첫눈에 반할 경우는 별로 없다. 한쪽이 상대방에게 끊임 없는 구애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럴러면 일단 모수가 많아야 된다. 즉, 많은 사람을 만나봐야 된단 말이다. 그래야, 자신과 맘에 맞는 일생의 반려자를 만날 가능성이 높아지며 상대방에게 차였을 때도 빨리 훌훌 털고 일어날 수 있다.
결혼을 위해 맘에 맞는 상대를 만나야 하듯 투자유치를 위해 맘에 맞는 투자자를 만나야 한다. 맘에 맞지 않는 투자자와 기업가의 만남은 결혼식 올리자마자 이혼을 생각하는 부부관계와 흡사하다. 이 얼마나 불행한 현실이겠는가?
그런데, 결혼과 투자유치의 가장 큰 차이점은 아무래도 벤처캐피탈과 기업가 간의 관계는 ‘이혼을 전제로 한 결혼’이라는 것이다. 연인 사이의 결혼은 간혹 돈 많은 상대방에 인수(Acquisition)되는 결혼도 있고, 스펙 좋은 남녀가 멋지게 합병(Merge)하는 형식의 결혼도 있지만 아무리 멋진 M&A(인수합병)을 한다고 해도 이혼(Exit)을 전제로 하진 않는다. 그렇지만, 벤처캐피탈로부터의 투자유치는 언젠가 헤어짐을 전제로 하는 한시적 결혼생활이다.
한시적 결혼생활도 생활이다. 멋진 이별(Exit)을 준비하고 있지만 그 사는 기간 만큼은 궁합이 잘 맞아야 한다. 즉, 이혼을 전제로 하지만 생활은 행복하게 지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기 위해선 서로 상대방에게 솔직하고 숨기는 것 없이 모든 것을 소통(Communication) 해야 한다. 간혹 투자자 모르게 홀로 회사의 근심을 모두 안고 짊어지고 가려는 창업자들을 볼 때가 있다. 그럴 때 마다 안타까움을 느낀다. 가정에서도 부부가 서로 어려움을 털어 놓고 함께 해결해 나가려고 할 때 부부간의 애정도 더 쌓여가는데… 하물며. 벤처캐피탈은 기본적으로 귀중한 자금을 투자한 투자자이면서도 회사를 도와 회사가 성장하길 원하는 든든한 지원군이다. 벤처캐피탈의 수 많은 실패경험과 성공경험은 내부에 축적되어 거대한 지식창고가 된 경우가 많이 있는데 그런 지식창고를 창업자들은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기업가와 벤처캐피탈의 관계를 Visionary와 Pattern Recognizer라고 하는 지도 모르겠다. 벤처캐피탈은 과거의 투자 성공 및 기업 성장지원 경험을 그와 유사한 원대한 비전을 가진 스타트업을 통해 그 성공 패턴을 찍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Venture Capitalists at Work 중에서)
회사가 성장하면 벤처캐피탈은 서서히 이별(Exit, IPO 또는 M&A 등)을 준비한다. 그 이별은 서로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였을 때 더 애틋하다. 행복한 결혼생활 후 성공적 이별(Capital Gain)은 이별 이후에도 그들의 관계를 더 돈독하게 만든다. 성공한 기업가는 회수한 자금으로 벤처캐피탈에 투자자(LP)로 참여하거나 스스로 기업형 벤처캐피탈(CVC)을 만들어 창업자들을 돕기도 하고, 벤처캐피탈은 상장 이후 에도 사외이사로 회사 경영에 도움을 주거나 회사에 새로운 사업기회를 제공(스타트업 M&A) 하는 것을 돕기도 한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관계인가?
이런 말만 그럴 듯 하게 떠들면 무슨 소용 있겠는가? 당장 열불난 와이프 속도 못 다스리는데. 그래서 이번 주말에는 청소도 하고 애들 목욕도 시키고 맛난 것도 사주려고 한다.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위해. 이별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