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스토리 #16] 엄마들이 설립한 부모교육 전문기업
부모 교육 전문 기업 ‘그로잉맘’의 팀구성과 문화는 자못 독특합니다. 이다랑 대표를 포함한 다섯 명의 팀원은 일주일에 몇번만 모여 근무합니다. 출근해도 4시가 되면 누가 묻지 않아도 퇴근하죠. 출근해 있는 시간은 적지만 협업툴 등으로 밤낮없이 일을 하기에 업무량이 적은 건 아닙니다. 탄력적으로 업무를 하는 건 구성원 모두 육아를 위해 스스로 경력단절을 택한 엄마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한정된 시간 속에서 소비자와 소통을 적극 추구합니다. 많게는 주간 300여 명의 고객을 만나며 유아동 심리 상담 시장의 문턱을 낮추고자 노력 중입니다.
콘텐츠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고 묵묵히 달린 결과 이들은 별다른 영업 없이도 국내 유수 대기업과 협업 중입니다. 동시에 수만 명의 부모 고객을 팬으로 보유하고 있죠.
“스타트업을 정의하는 표본에선 벗어나 있지만, 우리 같은 기업이 살아 남으면 유의미한 사례가 될 것”이라 말하는 이다랑, 이혜린 공동창업자를 만나봤습니다.
이다랑 그로잉맘 대표, 이혜린 그로잉맘 부대표/사진=플래텀 DB
팀원의 공통점이 ‘엄마’라고요.
이다랑 대표(이하 ‘다랑’): 네, 모두 아이를 키워요. 처음엔 제가 콘텐츠를 어느정도 알고 있으니 그 외 영역 전문가를 영입하면 된다고 생각 했어요. 이 대표는 아동심리 전문가다. 그런데 우리 같은 사업은 고객, 즉 부모들과 활발히 소통하고 피드백을 서비스에 반영하는 것이 빠르다는 것을 알았어요. 부모가 아닌 사람에겐 이 부분이 어쩔 수 없는 한계가 되더라고요. 그래서 지금 형태로 팀빌딩을 했어요. 엄마들이 일을 하다보니 효율성과 고객 이해도가 높아요.
유연하게 근무 중이라고요.
이혜린 부대표(이하 ‘혜린’): 저를 포함한 팀원 다섯 명 모두가 육아 중이에요. 그래서 일주일에 두 세번 모여 10시부터 4시 까지 일을 해요. 나머지 시간엔 협업툴로 대화하며 업무를 진행합니다. 저희로썬 최적의 업무 방식이에요.
팀원 중 최대 8년 동안 경력이 단절되었던 사람도 있어요.
혜린: 자발적 경력단절은 아이를 잘 키우겠다는 엄마의 의지라고 봐요. 학업과 일보다 가정의 소중함이 더 크다는 거죠. 다시 일선 현장에 나갈 마음을 먹는 것도 중요하다고 봤어요. 그런 분들이 저희 조직에 적합하다고 생각했고요.
팀원이 합류하면 구글 서비스와 협업 툴을 쓰는 것부터 교육했어요. 일을 잘 하기 위해 쓰는 것들이죠. 다행스러운 건 저희 팀원들은 빨리 적응했어요. 효율성도 좋고요. 일을 다시 시작했다는 것만으로도 자신감이 높아요. 저희의 원칙이 틀리지 않았음을 느낍니다.
그로잉맘은 콘텐츠 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콘텐츠 제작원칙이 있다면요.
혜린: 꾸준히 비슷한 톤의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어요. 화제성을 위한 자극적인 요소는 없습니다. 대신 한 번 본 사람들은 팬이 되게끔 노력해요. 그로잉맘은 한 번의 콘텐츠로 10만명이 보고 1만명이 남는 게 아닌 꾸준히 5만명이 보는 걸 지향해요. 기존의 콘텐츠 마케팅 방향과는 다르게 움직이지만 저희 고객에겐 이 방법이 유효하다고 판단하기에 기조를 유지하는 중이에요. 콘텐츠의 결도 육아와 비슷하게 하려고요. 끝이 없지만 잔잔한 레이스를 유지하는 거죠.
다랑: 저흰 아직까지 영업을 한 번도 안 해봤어요. 모두 기업 측에서 연락이 와서 진행한 거예요. 대부분 같은 톤을 유지하는 저희 콘텐츠를 오래 지켜본 뒤 제안을 주시더라고요. 아무래도 기업의 본질을 지키고 있어서 오는 기회가 아닐까 해요.
여타 기업이 그로잉맘이랑 협업하며 얻는 메리트는 뭔가요.
다랑: 고객이 저희에게 갖는 신뢰감을 공유하는 거죠. 다만 광고 콘텐츠는 고객과의 신뢰에 영향을 줄 수 있기에 고려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 말라’는 게 특징이라고요.
혜린: 그로잉맘에선 ‘목소리를 키우지 말라’거나 ‘말을 아끼라’는 등 줄이는 코칭이 대부분이에요. 저희는 아이의 기질과 성향을 파악할 수 있는 재료를 제공하고, 부모는 그걸 보며 아이를 파악하고 하지 말아야 할 걸 생각하게 하는거죠. ‘과유불급’은 아이를 키울 때도 해당 돼요. 너무 과해서 탈이 나는 경우가 많아요. 저희는 훈육 방법이 아니라 세상에 나와 있는 훈육 방법을 구분하는 법을 알려드려요. 양육자의 피로도를 줄어드는 것부터 해야 좋은 육아가 시작된다는 게 저희 입장이에요.
그로잉맘을 두고 엄마의 역할만 강조한다는 의견도 있던데요.
다랑: 저흰 부모의 역할을 나누는 콘텐츠를 제공하지 않아요. 그로잉맘의 ‘맘’을 엄마로 아시던데, 마음의 ‘맘’이에요. 부모 역할은 같다고 보거든요. 다만 엄마와 아빠가 각각 육아를 대하는 마음은 다르다고 봐요. 같은 상황이라도 대처하는 온도차가 있어요.문제를 해결하는 방식도 다르고요.
특정 타깃을 가지고 운영하는 콘텐츠 기업인 만큼 마케팅 방향도 다를 것 같습니다.
다랑: 일반적인 마케팅과 크게 다르진 않아요. 엄마들이 자주 보는 블로그, 인스타그램에 저희 콘텐츠를 노출하고, 문화센터 강연, 루프탑 파티 등 오프라인에서 고객을 자주 만나려고 해요.
다른 점이라면 콘텐츠에서 저희 운영 상황과 성장하는 모습을 모두 노출한다는 점이 되겠네요. 다 보여주는 게 스토리텔링이고, 마케팅이라고 정의하고도 있어요. 진심으로 다가가니 고객으로부터 응원도 많이 받아요.
혜린: 기본적으로 엄마 대상 마케팅은 불안감에서 시작돼요. ‘다른 집도 이거 사는데, 안 사면 안 돼’하는 식이죠. 저희 제품은 그런 불안감을 조장하며 팔아야 하는 것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이런 마케팅은 기업이기 전에 고객인 저희 스스로를 피곤하게 만드는 일이에요. 최대한 고객과 상생하는 마케팅을 진행하고 싶어요.
타깃 고객 특성상 사용자를 오프라인에서 많이 만나는 편입니다. 온라인 확장 계획도 있을텐데요.
다랑: 고객의 70%는 오프라인 강연에서 유입돼요. 다만 고객 확장을 하려면 온라인에서 해야 합니다. 온라인만이 해결하는 문제가 존재하거든요.
혜린: 부모 고객을 만나며 느낀 게 두 가지 있어요. 우선 육아 정보가 아닌 ‘내 아이’를 궁금해한다는 점이에요. 시장이 개인화 되는 것처럼 육아 시장도 마찬가지인거죠. 두 번째는 질문을 하고 싶어한다는 것이었어요. 지금도 글 하나에 수십 개 댓글이 달려요. 다만 저희가 명확한 답을 주기 어렵다는 점이 문제에요. 그래서 데이터에 근거해 각 고객이 질문하고 답하는 시스템을 만들고 있어요. 그게 가능해지면 소비자는 온라인으로 많은 것을 할 수 있어요. 영상을 보고 질문하고, 영상 분석 및 객관적으로 결과가 도출된 보고서를 받아볼 수 있어요. 고객이 입력한 정보를 토대로 알맞은 답을 줄 수 있으니 고객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되는거죠.
다랑: 이 서비스는 6월에 런칭 합니다. 상담센터를 가지 않아도 전문적인 분석을 받을 수 있게 되는거죠. 오프라인에서의 상담 비용은 많게는 70만원까지 들어요. 오프라인 상담소 대부분이 서울, 경기 일부 지역에만 몰려있고요. 우리 온라인 서비스는 지역을 가리지 않고 모두가 균일하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게 취지에요. 이 서비스가 저희 계획대로 운영되면 누구보다 보호자의 마음을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감성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거라 봐요. 기존 업계와 부딪치지 않으면서 성장도 할거고요.
이러한 온라인 서비스는 언제부터 생각한 건가요.
혜린: 내부에 알고리즘이 생기면서부터요. 오프라인에서 이미 진행 했던 건데, 거기서 고객의 상호패턴 및 문제점, 고민유형이 쌓이더라고요. 1차적으로 그걸 모은 뒤 데이터가 맞는지 검증하기 위해 70명 정도를 다시 모아 테스트해봤어요.
다랑 : 온라인으로 심리상담을 하는 업체 대부분이 텍스트 기반으로 해요. 저희는 거기서 한계가 발생한다고 봤습니다. 상담 받는 사람의 데이터가 쌓여있지 않으니 신뢰 이슈가 생기거든요. 그로잉맘에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전 조사를 실시해요. 정확한 상담을 위해 불편할 정도로 세세하게요. 내용은 고객과 저희 당사자만 볼 수 있도록 처리하고요.
혜린: 엄마가 되면 염치 없이 아무에게나 묻고 싶어져요. 신기한 일이죠. 그래서인지 저희 방식을 민망해하면서도 좋아하세요. 놀이 영상을 보내는 것도 아이의 발달을 위한 분석을 위해서니까요.
구글캠퍼스 서울의 ‘엄마를 위한 캠퍼스’ 프로그램에 참여한 것이 창업으로 이어졌어요.
다랑: 원래 직업은 상담사였는데요. 상담의 형태도 시대에 맞게 변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고민이 컸어요. 여러 해결 방법을 고민하고 찾다가 스타트업을 알게 됐어요. 관련 책도 읽어 가며 혼자 시작했는데 막막하더라고요. 인큐베이팅이 필요했어요. 그러다 엄마를 위한 캠퍼스에 지원해 이것저것 배웠어요. 벌써 2년 전 봄이네요.
소셜네트워크 팔로워가 많으면 커머스 사업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요. 굳이 심리 상담 사업을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다랑: 저라고 그런 유혹이 왜 없었겠어요. 단순히 돈을 버는 것이 1순위가 아니었을 뿐이에요. 사회 문제를 해결하며 돈 버는 방법을 찾는 게 꿈이에요. 소셜벤처 형태죠. 제가 생각한 이상적인 사업모델이어서 낯설기는 했어도 뛰어든거죠.
사업을 운영하는 동안 가장 많이 신경쓴 부분은 무엇인가요.
혜린: 가능성 있다는 걸 꼭 보여주고 싶었어요. 아시다시피 심리상담은 사업적으로 매혹적인 아이템은 아닙니다. 사업을 설명하고 설득하는 과정부터 어렵죠. 그럼에도 사업을 시작한 건 누군가에겐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이 악물고 버텼어요. 먼저 오프라인에서 검증을 시작했어요. 엄마들이 돈을 지불할 만한 콘텐츠라는 걸 입증하고 싶었죠.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나면 매출의 절반은 온라인에서 낼 수 있도록 기획했고요. 현재 그 과정이 진행 중이에요.
그로잉맘이 잃지 않아야 할 원칙이 있다면요.
다랑: 엄마가 일 하기에 좋은 직장을 꾸준히 운영하자는 것입니다. 일반 창업가와 구분 짓고 싶진 않지만, 아이를 키우는 기혼 여성의 창업은 사회에서 부딪히는 게 많아요. 피하지 않고 정면대응하며 성장하고 싶습니다. 아울러 돈에 휘둘리지 않는 조직을 만드는 것도 있어요. 자본과 신념이 충돌할 때 부모의 알 권리가 침해되는 비즈니스로 변질될 수 있거든요. 그 점을 늘 경계하고 있어요.
투자 유치는 고려하나요.
혜린: 투자를 받으면 좋죠. 다만 지금은 내부 힘만으로도 운영이 가능함을 증명하는 게 우선인 것 같아요. 구입할 만한 제품을 만들고 검증된 뒤의 이야기라고 봐요.
현재 소셜벤처 형태인데요. 사회적기업으로 갈 계획인가요?
혜린: 앞으로도 소셜벤처일 거예요. 그로잉맘은 정부가 인증하는 사회적기업 기준에 맞지 않아요. 형식에 억지로 맞추다 보면 본질이 흔들릴 수 있어요. 다만 사회적 가치를 가지고 자연스럽게 성장하고자 해요. 정부가 인정하지 않아도 우리의 미션만 수행하면 족해요.
이 분야에 동종업체가 많이 생겼으면 한다고요.
다랑: 아직까지 상담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대중이 많아요. 시장에 선택권이 다양해지는 건 중요해요. 고객이 필요하다는 흐름이 생기면 시장이 커질 수 있으니까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사업 각오 한 말씀 부탁 드립니다.
다랑: 저희는 스타트업에서 정의하는 성장 표본과는 달라요. 세련되지 않고 빠르지도 않은 편이죠. 하지만 저희가 살아 남으면 또 다른 성장 유형 사례가 될거라 생각합니다. 거창하게 표현하자면, 사회에 울림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