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한국 사회의 ‘워라밸’을 논하다.
최근 ‘워라밸(Work & Life Balance, 일과 삶의 균형)’이 중요한 사회적 가치로 자리 잡고 있다. 주당 법정 근로시간이 현행 68시간에서 52시간(법정근로 40시간+연장근로 12시간)으로 단축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며 종업원 300인 이상의 사업장과 공공기관은 2018년 7월 1일부터 ‘주당 근로시간 52시간’을 지켜야 한다. 기실 워라밸은 일하는 시간의 길고 짧음이 핵심이 아니다. 사람을 먼저 배려하는 문화의 다른 표현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일과 삶의 균형은 우리 사회에 어떤 시사점을 던지고 있을까. 또 문화를 만들어 가는 데 있어 요구되는 선제 조건은 무엇일까.
26일 인기협 주최 굿인터넷클럽 행사에서 업계에 부는 워라밸 트렌드에 대해 논하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왼쪽부터)이봉재 대리주부 부사장, 은진기 잡플래닛 연구소장 , 박세헌 우아한형제들 실장, 김영주 일생활균형재단 WLB 연구소장/사진=플래텀DB
모더레이터 / 김국현 에디토이 대표 : 개인의 작은 행복을 추구하는 이들이 늘어나며 ‘욜로’, ‘소확행’ 등 신조어가 생겨나는 시대다. ‘그 회사 워라밸이 어떻냐’는 질문도 빈번하다. 우리 사회에 워라밸은 어디까지 와 있다고 보나.
은진기 소장(이하 ‘은’): 아직은 과도기다. 이전 직장에서 해외를 다니며 직원 교육을 담당했었다. 그중 LA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의 경우 3시 30분에 교육을 끝내달란 요청을 많이 했는데, 4시가 퇴근 시간이라 차가 막히기 때문이었다. 캘리포니아 지역도 직원의 편의를 우선하며 이를 철저히 지키는 편이다. 미국에 간 주재원 상당수가 이 부분에서 충격을 받곤 했다. 어떤 이는 ‘일에 열정이 없다’며 화를 내기도 했다.
미국도 야근하는 사람들이 있다. 다른 점이라면 본인이 원해 일하고 성취하는 거다. ‘자의’로 이뤄지는 거다. 그에비해 국내 사정은 어떤가. 상사가 퇴근하지 않으면 못 나가고 돌발회의가 일상이라 본인의 스케쥴을 짜기 어렵다. 급여 수준은 다른데 하는 일은 사원부터 부장까지 동일한 거다. 국내에서 워라밸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건 어쩌면 당연하단 생각까지 든다.
김영주 소장(이하 ‘김’): 현장에서 느끼는 건 좋은 기업일수록 워라밸이 목표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우수 사례로 소개되는 기업은 시간보단 ‘일’관리를 우선했다. 전략적으로 일과 생활균형이 적합해야 높은 생산성으로 이어진다고 본 거다. 생산성 저변에 깔려 있는 건 업무 특성에 맞는 적당한 시간과 특징이었다.
참고로 미국은 따로 시간관리를 하지 않아도 신뢰를 바탕으로 업무 관계를 계약한다. 이 부분을최대한 성과로 내보이지 않으면 계약을 파기하는 게 자연스러운 문화로 자리잡았다. 그에 비해 한국은 경제 발전을 먼저 하고 민주화가 이뤄져 많은 기업이 HR에 미흡하다. 아지은 개선되어야 할 것이 많다.
업무 외 대기시간은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문제를 낳는다. 어떻게 풀어야 할까.
김: 일과 삶의 균형은 팀단위 소통이 중요하기에 중간 관리자의 리더십이 관건이다. 때문에 이해관계자간 의사소통이 중요하다. 지난주 구글에서 각 팀의 생산성 차이를 연구해 발표했는데, 주요 포인트는 팀 내 자유로운 소통 여부였다.
한국은 눈치를 본다. 그래서 의견에 다양성이 떨어지고 자기 검열도 많이 한다. 문제는 소비자 욕구가 다양해지는 상황에 이에 맞게 준비해야 하는 기업에서 이는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7,8년간 지켜본 결과 의견이 수용되지 않더라도 자유롭게 얘기할 수 있는 심리적 안정성, 이를 가능케 하는 리더십이 내부에 존재할 때 생산성이 높아진다는 걸 알았다.
은: 산업별로 다르게 문제를 해결해야 할 듯 하다. 확실한 건 한국엔 열심히 일 잘하는 사람이 많다는 거다. 그에 비해 몰입도 및 임직원 만족도는 평균 이하다. 이유는 성과평가를 제대로 못하기 때문이다. 선진국 기업의 경우 성과평과가 명확하고 피드백도 잘 돼있어 업무에 대한 신뢰가 명확한 편이다. 그에 비해 한국은 채용공고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자리에 앉아있지 않으면 나쁜 평가를 받을까 불안해 한다. 인사 평가를 보다 객관적으로 세분화해 평가하고 개인화 해야 이 문제가 조금이라도 해결될 거라 본다.
박세헌 실장(이하 ‘박’): 올해로 인사 업무 17년차를 맞았다. 10년전부터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데, 그때 만난 대학생과 요즘 대학생 간 일과 삶, 직업, 성공을 대하는 사고가 다르다. 3,40대의 사고방식과 큰 차이가 있다는 의미다.
사회에 나와 내 일을 가지고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책임감을 가진 게 과거 기본 인식이었다면, 지금 사회 초년생에게 결혼은 선택, 회사는 철저히 계약 관계라는 마인드가 자리하고 있다. 평생직장이란 개념 또한 사라진 지 오래다. 상사가 눈치 준다고 퇴근 못하는 걸 부당하다고 여기는 세상이 된거다. 향후 기성세대 마인드를 가진 이들이 더 줄어들거다.
취업이 어렵다는 구직자와 채용하기 어렵다는 기업 사이의 간극이 메워지지 못 하고 있다. 우리가 좋은 인재를 뽑으려면 그들이 추구하는 일과 삶에 대한 가치관을 맞춰주면서 성과를 극대화하는 게 맞는 방식이다. 우린 직원들에게 ‘떠나라’고 주문한다. 회사에 있는 동안 커리어를 위해 열심히 하고 회사의 성과로 반영되고 좋은 직업인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그렇게 되고 있다.
우아한형제들 내부엔 특별한 문화가 자리한다고 들었다.
박: 최근 이름 뒤에 ‘님’을 붙이는 존칭 문화를 도입했다. 비법정 휴가가 많은 것도 특징이다. 작년에 173일까지 쓴 직원도 있다. 거의 모든 직원이연차를 소진하고 있어 100%에 달한다.
우리 제도중 ‘우아한 어린이날’ 이라는 게 있다. 어린이날(5월5일) 전후로 하루씩 휴가를 더쓸 수 있는 거다. 전체 직원 중 기혼율이 40%가 안되고 그들 중 아이가 있는 직원은 10%도 안돼 비율로 따지면 소수의 직원만 혜택을 본다. 하지만 이 제도는 모든 직원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제공한다. 회사에 쏟는 에너지라는 건 한계가 있다. 이를 내부에서 보완해줘야 한다. 그래야 생산성을 떨어뜨리지 않을 수 있다.
우리는 기존에 없었던 걸 기획할 때 될 이유를 먼저 먼저 찾는다. 이후 6,70%정도 준비가 되면 해본다. 이때는 ‘중단할 수도 있음’을 전제로 한다. 많은 기업이 우릴 벤치마킹할 때 ‘두렵다’고 하는데, 실행해 보라고 조언한다. 법적으로 강제된 것이 아니면 하다가 중단하면 되잖나.
구성원을 신뢰하니까 그에 걸맞는 문화가 만들어지는 듯 하다.
박: 다수의 직원이 선량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다만 선량하게 잘 지켜가는 다수를 위할 것인지, 오남용 하는 직원을 근절하기 위해 제도를 없앨 건지에 대한 고민은 있다. 이럴 땐 제도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일으키는 직원을 제지하면 된다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봉재 대리주부 부사장(이하 ‘이’): 근본적으로 기업 경영진의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 젊은 직원의 문화를 이해하고 객관적으로 살펴보며 그들을 인정하는 데 가치를 둬야 한다.
다만 스타트업 입장에선 우아한형제들같은 시도를 선뜻 하기는 어렵다. 스타트업은 늘 인력과 자원이 아쉽다. 당장 생존과 즉결된 상황에서 파격을 시행했다간 회사에 위기를 자초할 수도 있다. 이를 최대한 보완하기 위해 노력은 하고 있지만 어려운 부분이다.
현실적인 이야기다. 이럴 때 스타트업은 어떻게 해야 할까.
박: 지난 7년 간 회사에 걸맞는 제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다. 하다 그만둔 것도 많다. 4년전까지만 해도 우리 부사장은 매달 은행을 찾아가는 게 일이었다. 영업이익을 내고 만든 게 아니라는 뜻이다. ‘돈 벌면 복리후생을 제공하겠다’는 곳은 평생 복리후생을 제공하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의지만 있으면 되는 게 많다. 다른 기업의 좋은 제도를 무조건 따라할 필요는 업다. 그 제도가 왜 만들어졌는지 과정을 참고해 구성원들과 얘기해봤으면 좋겠다. 경험해본 바 내부에 답이 있는 경우가 많았다.
사회와 정부 정책이 도와야 할 것은 무엇일까.
이: 노동 유연성은 세계적인 추세다. 본인이 원할 때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하는 게 일상화 되고 있는 거다. 그에 비해 정부 정책은 20세기 근로기준법 에 따라 규정하고 규제한다. 정부가 ‘오픈마인드’이길 바란다.
박: 30%의 기업에서 모든 생산성이 나오는 게 국내 산업 구조다. 이 상황에 대한 문제제기가 꾸준히 되고 있다. 특정 산업은 3년 내 중국 업체에 따라 잡힐 거란 전망이 있지만 제대로 된 준비를 하지 못하고 있다. 스타트업 및 모바일 혁명이 가속화하는 상황에서 정부는 ‘규제’로 답하고 있다. 최근 풀러스 사태가 대표적이다. 여러 이해관계 때문에 합리적인 토론을 못한 채 위기를 맞았다. 중국은 스타트업이 기존의 법과 부딪치면 그 법을 없앤다. 그 결과 많은 젊은이들이 취업보단 창업을 선택한다. 정부는 이 상황을 좌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은: 예전 직장에서의 사례다. 미국인 상사와 일본엔 있는 엔지니어가 커뮤니케이션 문제를 겪고 있다며 도움을 청해왔다. 확인해보니 문제의 원인은 한국 대기업 고객사로 인한 것이었다. 당시 그 대기업은 불가능한 마감 기한을 요구했다. 매출을 발생시켜야 엔지니어 입장에선 이를 받아들였지만, 미국인 상사는 안 된다는 결정을 한 상황이었다. 그때문에 발생한 문제였다. 단편적인 이야기지만, 대기업의 태도가 바뀌어야 한다고 본다.
김: 최소 5개 정부 부처가 일과 생활의 균형을 다루고 있지만 우리는 체감하지 못 하고 있다. 노동 시간 관련 이슈는 21세기가 시작되며 논의된 것이지만 어떻게 해결할 진 아무도 나서서 말 하지 못 하고 있다. 이를 최대한 빨리 마무리했으면 좋겠다.
성과 중심인 정부 정책의 기조에도 아쉬움이 있다. 주 52시간제 도입 자체는 좋다. 다만 방향성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 틀이 없다. 또한 지금까지는 제조업 중심으로 법이 설계 돼있어 비정형 근로자에 대한 보완책이 부재했다. 현실적으로 다시 설계되어야 한다.
워라밸이 시대의 화두지만 생산성이 낮아진다는 우려도 있다. 이 과도기를 어떻게 맞이해야 할까.
박: 이전 직장은 오전 7시 30분 출근, 밤 11시에 퇴근하던 곳이었다. 일이 많아서라기 보다 암묵적 강요 때문이었다. 당시에는 그게 미덕이었다. 밤늦게까지 있어야 하니 대부분 낮에 일을 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당연히 생산성은 현격히 떨어질 수밖에 없었고. 먼저 일을 빨리 끝내면 눈치 보지 않고 퇴근하는 분위기를 기업이 만들어 줘야 한다.
회사가 일부러라도 바꾸는 게 중요하다. 열심히 하는 이들을 알아봐 주고 연봉도 올려주고, 좋은 평가를 주는거다. 물론 반대의 경우엔 그에 상응하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래야 다수의 구성원이 신뢰하는 곳으로 변한다. 그것이 보편화되면 일하는 방식은 저절로 바뀐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