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경준 대표가 이끄는 크립톤(구 케이파트너스앤글로벌)은 2000년부터 액셀러레이팅과 투자를 해온 장수 기업이다. 이들의 액셀러레이팅을 받은 기업은 100여 곳. 이 중 12개 기업은 IPO에 성공했다.
크립톤은 초기투자에서 시리즈 A 투자까지 진행하는 액셀러레이션 프로그램과 실전형 창업스쿨 ‘크립톤 36’을 주축으로 창업가를 만나고 있다.
크립톤과 인연을 맺은 스타트업 대표들에게는 ‘크게 혼나고 돌아오지만 사업의 기초부터 다시 잡을 수 있었다’, ‘진심을 다하는 멘토링’이라는 평을 듣는다. 스타트업이 액셀러레이터에게 가장 바라는 덕목이겠다.
크립톤의 목표는 한 가지다. 제조, 부품소재, 첨단기술, 농업 등 다양한 분야의 저력 있는 스타트업을 해외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출시키는 것이다.
스타트업겐 ‘지속 가능한 핵심 가치’, 대표(CEO)에게는 ‘기업가 정신’이 필수라 말하는 김 메이글 크립톤 이사를 만났다.
김 메이글 크립톤 이사 /사진=플래텀 DB
회사 이야기 먼저 해보자. 크립톤은 2001년부터 지금까지 100여개 팀을 액셀러레이팅 했다. 여느 액셀러레이터에 비해 인큐베이팅 기업 수가 적다.
우리는 몇 팀을 액셀러레이팅 했는지 세지 않는다. 한 회사를 맡으면 최소 3년간은 팔로업을 한다. 이 때문에 되도록이면 다루는 팀을 1년에 10팀 이상 넘기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다. 관리할 팀이 많아질수록 상대적으로 신경을 덜 쓰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팀의 구조부터 파악한다. 이를 섹션별(인사, 재무, 세일즈 마케팅 등)로 나눈다. KPI를 따지는 건 이후의 일이다. 이 때 대표에게 ‘얼마 벌었냐’고 묻지 않는다. 대신 수익을 내기 위한 방법을 논의한다. KPI 체크가 아닌 상승 포인트를 잡아 주는 게 진정한 액셀러레이터의 역할이 아닐까 싶다. 이 외 글로벌 시장에 대한 시각, 기업 내 핵심 가치를 무엇으로 두는 지, 팀을 표현하는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조언한다.
팀은 어떻게 발굴하나.
소개를 받거나 데모데이를 통해 살펴본다. 혹은 행사에서 만나 인연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일례로 헤이스타트업 행사가 끝난 뒤 한 농업 스타트업에 시리즈 A규모로 투자했다.
좋은 팀은 만나기 위해 오랜 시간 관찰한다. 단순히 IR만 보고 투자하는 건 도박이다. 나는 5가지 요소를 두고 팀을 발굴한다. 대표의 역량, 시장, 진입장벽, 구조화, 그리고 마케팅이다. 나머지 요소는 비교적 빠르게 판단할 수 있으나 대표의 역량은 쉽게 가늠하기 어렵다. 초기 기업은 대표 역량이 팀 전체의 80%를 차지하기에 팀을 오래 봐야 하는 게 맞다.
초기 팀의 경우 시장성 검증이 어려울 텐데.
크립톤에선 3가지 아이템을 본다. 기존에 없던 것, 기존에 있었지만 형태를 바꾼 것, 유저 충성도로 브랜드가 된 것이다. 이 중 기존 형태를 바꿔 독특한 아이템을 다루는 팀을 선호한다.
크립톤은 데모데이를 진행하지 않는다.
데모데이를 잘 치러내려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외형보단 팀에 더 집중하는 게 이득이라고 봤다. 데모데이는 아직 계획에 없다.
데모데이는 액셀러레이터에게 양날의 검이다. 하우스가 유명해 질수록 마음 상하게 하는 일도 많아진다. 우린 최대한 그걸 지양하고 싶다.
사전 조사해본 결과 많은 스타트업 창업가들이 크립톤36 프로그램에 만족도가 높았다.
사업 이해도가 약한 창업자가 많아 만든 프로그램이다. 동시에 창업 생태계를 키우기 위한 의도도 있다. 수강생들이 수업을 듣고 해커톤을 함께하면 실질적 인프라 구축이 될 거라 봤다. 우리가 취지대로 창업자들이 생각해준다니 감사한 일이다.
업력이나 평가에 비해 인지도가 상대적으로 약하다. 의도적인건가.
우리를 알리는 데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실적과 성과는 좋았다.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12개 기업을 상장시켰다. 후속투자는 말할 것도 없고. 특히 IPO는 1년에 한 군데씩 해온 거나 마찬가지기에 우리 하우스의 자랑이다. 좋은 팀이 찾아오고 좋은 팀을 찾기위해 우리도 노력한다.
홍보를 자제한 측면도 있다. 이름이 알려지면 연락 오는 팀이 늘어날 것이고 도착하는 IR자료를 검토하는데 시간도 많이 들여야 한다. 그보다는 액셀러레이션하는 팀에 시간을 쏟고 견고하게 다지는 게 맞다고 봤다.
김 이사는 십여년의 해외생활을 했다.
삼성, LG 등 국내 대기업 영향으로 해외에선 우리나라를 기술력 있는 국가로 본다. 한때 노키아가 핀란드국가경쟁력이었듯 말이다. 노키아가 몰락해도 제2, 제3의 노키아가 등장해 핀란드의 경제 원동력이 되었다. 당연히 핀란드에 창업 생태계가 잘 조성돼 있다. 그에 비해 국내는 그러지 못 한다는 게 불가사의했다. 잠재력 있는 스타트업을 세계 시장에 진출할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 마침 양경준 대표의 제안도 있어 크립톤에 합류했다.
‘기업가 정신’을 중시한다고 들었다.
공장을 갑작스레 폐쇄한 모 기업의 하청업체 직원이 ‘문제는 위에서 저질러놓고 왜 자신들이 쫓겨나고 가족이 고통 받아야 하느냐’며 울며 인터뷰한 뉴스를 보고 이 업을 더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경영진 교육이 절실하다는 생각이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스타트업도 마찬가지다. 의사 결정권자 몇 명이 실수를 하면 아랫사람이 타격을 입는다. 단순히 사업을 접는다고 해서 해소될 문제가 아니라고 봤다. 그래서 대표를 교육할 때 ‘팀원에게 실수할 까봐 혼내는 거다’라고 강조한다.
기업 액셀러레이팅에 기준이 명확하다.
15년 정도 해외에서 지내는 동안 농업, 건설업, IT업 등 다양한 산업을 경험했다. 대기업도 다녀보며 조직 시스템을 배웠고, 직접 법인을 세워 엑싯도 해봤다. 이를 살려 액셀러레이팅 중인데 힘들면서 재밌다. 스타트업이 변하는 걸 보면 신난다. 하지만 잘못 인도할 경우 길이 완전히 달라지는 실수를 범할 수 있기에 매번 조심하고 있다.
기업의 자립을 위해 액셀러레이터가 있어야지, 단순 ‘투자자’ 역할에 비중을 높이면 안 된다고 본다. 액셀러레이터라면 기업의 자금 및 구조를 파악하고 HR도 책임져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작은 기업일수록 인사 이슈가 두드러진다. 또한 기업의 규모가 갑자기 커질 때에도 액셀러레이터의 역할은 중요하다. 대표가 일을 나눠주고 자리를 비워도 팀이 무리 없이 운영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대표를 이끄는 일이기에 액셀러레이터는 평소에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 관련 사업을 하겠다는 사람보다 적게 알면 액셀러레이팅을 받을 이유가 없지 않겠나. 요즘은 어린 데다 잘하는 친구들도 많다. 트렌드 흐름도 파악해야 하고 이들의 성향도 알기 위해 여러모로 노력하는 편이다.
기업 IR 준비도 함께 한다고.
투자 하고 싶은 기업일 경우에 한해서다. IR은 기업소개서이자 팀원 모두가 회사의 핵심가치 및 경영방침과 매출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일련의 과정이다. 자료가 오가는 동안 기업이 가진 문제를 파악한다. 만약 기업이 매출 목표를 100억이라고 정의했을 경우에 오늘 얼마를 벌어야 하는 지를 따지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기업의 성장 가능성을 어느 정도 점쳐볼 수 있다.
‘탈곡기’라는 별명으로도 불리운다고.
빡빡하게 따져보는 편이다.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기업의 90%가 망하기 때문이다. 10%의 성공 가능성을 가진 팀에게 모든 역량을 쏟는 건 당연하다. 선정해 맡은 팀은 모두 성공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이유로 혹독하게 멘토링 하고 있다.
김 이사의 멘토링 방향과 멘티 스타트업 구성원이 생각하는 것이 다르면 갈등이 생길 수 있다.
그럴때는 그들 스스로 깨닫기까지 기다린다. ‘고집이 있으니 대표’ 아니겠나.
실패하는 팀에 공통적으로 보이는 것은 뭔가.
핵심 역량이 없거나, 있지만 효과적으로 알리지 못했거나 규제 등 여러 이슈에 발이 묶였기 때문이라고 본다.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기 위해 기업은 정치, 경제, 사회와 기술을 분석해야 한다. 그것없이 단순 운으로 성장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성장 가능성 높은 팀에게서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뭔가.
글로벌 시장 진출을 지원하는 입장에서 팀이 가져야 할 우선적인 역량은 ‘언어’다. 말을 중심으로 문화 차이를 이해한 뒤 파트너를 구축하는 게 해외 진출의 과정이다. 대표의 역량과 경력에 따른 유명세가 팀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지는 않는다.
해외 진출에 성공하는 팀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기본적으로 그 시장에서 필요한 아이템을 하는 팀이다. 동시에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경쟁력이다. 이게 가능하려면 대표와 팀의 역량이 대단히 중요하다.
김 심사역은 유럽에서 8년, 아시아권에서 4년 있었다. 쌓은 글로벌 네트워크가 있을텐데, 스타트업에게 어떻게 도움이 되나.
해외 시장에 진출할 때 가장 공들여야 할 사람은 물건을 사줄 ‘바이어’다. 그리고 마케터와 진출 국가 문화를 이해시켜 줄 친구가 필요하다. 아울러 진출 국가의 법규도 명확히 이해해야 한다. 이에 대해 설명해줄 수 있는건 멘토가 아닌 그 나라의 실무자다. 우리와 함께 해외 시장에 진출하는 팀은 진출 국가에 가서 시장을 직접 경험하게 한다. 여기에 우리의 인적 인프라가 도움이 된다.
당장 해외 마트만 봐도 우리와 상품 규격이 다르다. 관련 허가나 인증도 받아야 한다. 커머스 기업이 무작정 주 고객을 ‘월마트’라고 했을 때 곤란해지는 게 이 때문이다. 적어도 내가 액셀러레이팅 하는 팀은 이 과정을 미리 배울 수 있다.
국내 스타트업의 해외진출은 꽤 오래된 화두다. 어떻게 하면 가능할까.
투자 규모, 액셀러레이팅 방법과 시장에 접근하는 방식의 차이만 있을 뿐, 국내 스타트업의 내부 문제 때문에 진출이 어려운 건 아니라고 본다.
국내에 해외 시장 진출을 적극적으로 도울 수 있는 경험자가 많지 않다는 것은 있겠다. 점진적으로 경험자가 늘어날수록 진출하는 기업도 많아질 거라 본다.
해외 진출을 원하는 스타트업도 갖춰야 할 게 많다. 언어를 통해 문화와 나라를 이해하고 틈새시장을 찾아야 한다. 희망하는 국가에서 자신과 회사가 어느 정도 성공 가능성이 있는지 꾸준히 확인해야 한다.
해외 진출을 ‘유명세’에 의존하는 이들이 많다. 그런 자세로는 오래가기 힘들다. 구조와 지속가능한 핵심 가치를 잃지 않아야 어디서든 뿌리내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크립톤을 찾아올 스타트업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우리 하우스는 참을성있게 견디는 창업자를 선호한다. 세세한 멘토링 과정은 힘들 수 있다. 하지만 기업 구조를 탄탄히 한 뒤 성장하고 싶다면 우리를 찾아와 달라. 크립톤은 맡은 팀 모두가 성공하길 바라며 함께 뛴다.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