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인터넷기업’이 ‘수출기업’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된다면
산업 영역에서 규제혁신의 필요성이 제기된 것은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20년 간 5명의 대통령이 정부차원의 규제혁신을 강조했고, 관련 문제만 다루는 기관도 십수년 전부터 있어왔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사이 규제는 이전보다 더 늘어났다.
근래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지만 규제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소비자 보호 관점에서 만들어진 적절한 규제는 사회의 룰이자 원활한 시스템을 보완하기 위해 필요하다. 하지만 범죄요소를 조장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낡은 법제의 개편과 완화는 국내 산업이 발전하는데 반드시 필요하다.
19일 삼성동 엔스페이스에서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주최로 열린 ‘2018년 8차 굿인터넷클럽’ 행사는 ‘인터넷 강국’에서 ‘규제 강국’이 된 한국의 현황과 대안을 살펴보는 자리였다.
패널들은 공통적으로 한국 인터넷 기업의 혁신에 걸림돌로 작용하는 규제를 빠르게 혁파해야 하며 필요하다면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박성중 자유한국당 의원은 풀어야 할 규제와 해야 할 규제를 나눠야 한다고 강조했다.
“규제가 원인이 되어 세계와 경쟁할 수 없다면 풀어야 하는 것이 맞다. 유튜브나 아마존, 페이스북이 국내서 강세다. 한국 기업이나 서비스가 품질이 낮아서가 아니다. 공정한 경쟁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국내서 벌어가는 수익은 있지만 한국 기업에 비해 세금을 거의 내지 않는다. 차별이 있는 상황이기에 국내 기업의 입지가 계속 축소되는거다. 영국은 일명 ‘구글세’라 불리우는 법인세를 구글에 부과한다. EU는 해외기업들에게 매출액의 3%를 부과시키는 시도를 추진 중이다. 우리도 그런 시도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역차별 문제를 해소해 기울어진 운동장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 국내 산업에 편향되게 하자는 것이 아니다.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똑같은 운동장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취지이다. 얽힌 법안을 일일이 풀어가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국내기업이 경쟁력이 있다면 내버려 둬도 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이다. 그 부분에 대한 역차별 해소는 필요하다. 보호할 것은 보호하되, 완전 경쟁을 해도 균형있게 간다면 시장에 맡기는게 맞다.”
이대호 성균관대 교수는 규제가 필요한 이유, 원인을 먼저 살펴야 한다며, “현 인터넷 시장이 불공정 경쟁인지부터 검토해야 한다. 불공정 경쟁 상황에 빠져있다면 규제는 필요할 수 있다. 국내 사업자와 해외 사업자간 경쟁에서 네이버와 구글은 같은 영역의 사업자이기에 경쟁관계가 맞다. 그 부분에서 불공정 경쟁, 불공정한 규제가 사업자의 발전을 막는 거라면 찾아서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우리나라 인터넷 산업에서 단적인 문제점은 네이버와 다음의 경쟁자가 없다는 것이다. 지난 20년 간 우리나라 포탈 산업을 살펴보면, 2년에 하나씩 사업자가 망해 나갔다. 그 과정에서 라이코스, 엠파스, 야후, 아이러브스쿨, 싸이월드 등이 사라졌다. 지금은 망하지 않는다. 네이버나 다음이 잘 하는 것도 있지만, 경쟁자가 없기 때문이다. 혁신이 정체되어 있다는 것, 그게 가장 큰 문제”라 지적했다.
그는 현실적인 역차별 해소방안은 ‘글로벌 수준으로 규제수준을 낮추는 것’이라 진단했다.
“네이버와 다음은 인터넷 뉴스 사업자로 등록되어 있지만, 구글과 유튜브는 인터넷 뉴스 서비스를 제공함에도 등록되어있지 않다. 젊은 세대는 유튜브로 뉴스를 많이 본다. 역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여러 방법이 논의되고, 역외적용 법안들의 발의가 국회에서 잇따르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효과는 크지 않을거라 본다. 우리나라 걸그룹, 보이그룹이 아랍권 국가에서 노출이 심하다는 지적을 받아 한국에서 복장을 갖춰 입으라 말하는 것과 같다. 전세계에서 해외 사업자 규제에 공통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불공정거래법이다. 문제는 우리나라는 불공정거래법도 다른 나라에 비해 약하게 적용시켜왔다는 것이다. 그나마 있는 법도 잘 활용하지 못 한 것이다. 이 상황에서 다른 나라에 적용된 적이 없는, 적용 가능성이 낮아보이는 법안이 추진되는 상황이다. 이 부분은 각 나라 정부가 모여 논의를 통해 룰을 정해야 의미가 있다. 현 상황에서 현실적인 역차별 해소방안은 규제를 글로벌 수준으로 낮추는 것 밖에 없다.
영국을 중심으로 유럽에서 구글세 등 과세정책을 내고 있지만 잘 되지 않고 있다. 일단 구글 등 해외기업의 매출액도 제대로 산정하지 못 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구글세를 매겨야 할까. 공평한 운동장을 만드는 것에는 공감하지만, 이건 다른 문제다. 포털 서비스에서 구글이 1위를 차지하지 못한 몇몇 나라 중 하나가 한국이다. 구글세를 매길 때 가장 조심해야 할 나라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역으로 운동장이 우리 기업쪽으로 기울면 국내 인터넷 기업이 해외 진출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 시장을 지키는 것이 우선인지, 해외에서 돈을 벌어오는게 우선인지 먼저 생각해봐야 한다. 신중하게 접근하고 고민해야 한다”
박성호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사무총장은 규제 이전에 신-구 사업자간 이해관계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사업 분야에서 기존 사업자와 신규사업자 간 첨예한 이해관계가 있다. 법의 문제로 비춰지지만 사실 파이싸움이다. 양쪽이 공생할 수 있는 해결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끊임없는 만남이 필요하다. 양단하는 방식이 아니라 소통하고 고민하며 상생하는 형태여야 한다. 우리는 이렇게 가는 방식이 서툴다. 그래서 국회든 위원회든 강력한 중재기능을 하는 강력한 중앙콘트롤 기관이 필요하다. 단, 책임을 지고 한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시기를 놓쳐서 많은 부분에서 손해를 보는 그런 상황이 안 생겨야 한다.”
박 사무총장은 “미국은 민간이 창의력을 발휘해 성장했고, 중국은 공산당이 끌고 민간이 받치는 형식으로 성장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어려운 상황에서 뒤늦게 출발했음에도 여러 인터넷 기업이 성장했다. 하지만 그 수는 손에 꼽을 정도다. 정부가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도와줘야 한다. 우리나라는 미국처럼 민간에만 맡기는 것도 아니고, 중국처럼 정부가 주도적으로 끌고가는 것도 아닌 상황에서 산업이 정체되어 있다. 정부가 방관할 시기는 지났다. 절차적으로 문제가 있을 수는 있지만, 정부가 특정 부분에 대해서는 의도적으로 개입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국내 기업을 적극적으로 도와야 하는 시기”라고 강조했다.
구태언 테크앤로 변호사는 한 마디로 ‘만시지탄(晩時之歎)’이라 평하며, 그간 규제로 인해 국내 서비스가 성장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여러번 놓쳤다고 언급했다. 그는 국내 동영상 서비스와 클라우드 서비스가 성업하지 못 한 원인이 규제에 있다고 말했다.
“2000년 대 중반 다음과 네이버의 동영상 서비스들이 인기가 있었지만 인터넷실명제 등 규제로 크게 성공하지 못 했다. 당연히 국내 영상 서비스들은 이용자가 급감했고, 사용자는 유튜브로 넘어갔다. 아울러 초기 UCC는 유튜브나 국내 동영상 서비스나 저작권이 잘 지켜지지 않은 것은 매한가지였다. 다만 이에대한 양국 규제 방향이 달랐다. 미국의 경우 저작권을 어긴 행위를 한 사람을 처벌하는 데 반해 우리나라는 저작권법 위반 방조죄로 플랫폼 기업에 책임을 묻는 형태로 갔다. 규제가 산업을 망친 사례이고, 산업의 트랜드를 규제가 바꾼 안 좋은 사례다. 그것이 쌓이고 쌓여 여기까지 왔다.
또 한국은 클라우드 산업 발전법을 만들어 시장 자체를 열어주지 않았다. 공공, 금융, 의료 시장은 규제로 인해 클라우드를 쓸 수 없었다. 정부는 보안 이슈를 들어 클라우드 데이터센터를 만들었고 외부껄 못 쓰게 강제했다. 금융 역시 외부꺼를 못 쓴다. 내년 1월에야 풀린다. 의료도 작년 7월에서야 환자 정보를 저장할 수 있게 법개정이 겨우 이루어졌다. 이렇게 지난 10년 간 클라우드 산업 영역에서 대기업과 공공, 금융, 의료 등 큰 시장이 외부 클라우드를 쓸 수 없게끔 막혀있었다. 국내 500개 대기업은 모두 자사 데이터센터를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이제와서 클라우드 규제를 푼다고 한들 AWS 등 해외 거대 서비스를 이기기는 어렵다. 정부의 스마트하지 않은 정책이었다. 원인을 진단하고 정책을 세웠어야 했다.
이미 실패한 시장은 되돌리기 힘들다. 성장하고 있는 시장에 그 실패를 반복하지 않는게 중요하다. 기업이 혁신을 할 수 있게 간섭하면 안 된다. 성장하고 나서 규제를 해도 늦지 않다.”
구 변호사는 해외 사업자에 대한 규제가 기울어진 운동장의 균형을 맞추는 필수 조건은 아니라 말했다.
“해외사업자에게 과세한다고 국내 산업이 진흥되는 것은 아니다. 조세정의 차원이지 기업이 잘 되는 것은 다른 문제다. 과세에만 집중하면 다른 것을 놓칠 수 있고, 그것만으로 기울어진 운동장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렵다. 해외 기업과 국내 기업 간 어떤 차별적 요소가 있는지 파악하고 규제를 풀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일괄적이고 단기적으로 규제 문제를 풀기는 쉽지 않다. 입법 체계와 시스템이 바뀌지 않는한 특별법 만으로 해결하기도 어렵다. 문제가 발생한 다음에 치우는 것이 아닌 문제가 생기는 원인을 해결해야 한다.
규제문제는 규제가 너무 많이 생긴다는 것에 원인이 있다. 연간 10000만 건의 재개정이 이루어진다. 규제가 쉽게 만들어지는 행태를 없애야 한다. 입법 형식, 절차 등에서 광범위한 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 20년 간 정부는 규제혁신을 이야기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규제는 더 많아졌다. 정부가 왜 규제를 만드는지 그것을 막을 방법이 어디에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그것은 국회의 몫이겠다. 4차산업혁명 시대에 맞게 정부의 역할과 기능을 다시 정해야 한다.”
구 변호사는 인터넷 기업이 수출기업이라는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지면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된다고 제언했다.
“우리나라 법에는 곳곳에 중개자 역할을 하는 플랫폼 기업에 모니터링 및 삭제 의무를 부과한다. 책임으로 돌아오는 부분이기에 기업에게는 부담이다. 조직과 인력으로 해결해야 하기에 부담은 비용이 발생된다. 예를들어 악성댓글, 명예회손 댓글을 관리하기 위해 포털은 상당한 인력을 투입한다. 악성댓글을 쓴 사람들의 뒷처리를 포털이 하는 것이다. 모니터링 하지 않으면 플랫폼 사업자에게 책임을 지우는 법안이 많기 때문이다. 이는 포털만의 문제가 아니라 여러분야 기업에게도 적용된다.
인터넷 플랫폼 기업은 해외에서 다양한 서비스를 통해 부가가치를 키울 수 있다. 제조, 해운, 철강, 건설과 같은 수출산업이라 볼 수 있다. 이를 인정하는 국민적 공감대가 필요하다. 인터넷 플랫폼 기업을 수출산업으로 육성하자는 합의가 이루어진다면 규제를 찾아내서 완화하는 입법조치를 국회가 하기에 용이하다. 플랫폼 산업에 지워진 규제를 무조건 풀어서 전통산업과 대립시키자는 것이 아니다. 해외기업에 부담을 지우는 것으로는 원인 해결이 안 된다. 수출기업으로 인정해 법 내 부담을 지워 자유롭게 서비스를 만들고 경쟁하게끔 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