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up’s Story #444] 라프텔, 기술을 통해 불법 애니메이션 시장을 양지로
애니메이션은 하위문화로 불리는 등 대중에겐 별난 분야로 여겨지고, 불법 콘텐츠의 유통이 빈번하다. 일본, 미국에 견주어볼 때 국내 불법 유통 사이트의 트래픽 수치는 상상이상으로 높다.
애니메이션 추천·스트리밍 플랫폼 라프텔의 김범준 대표는 ‘당연하지 않은 게 당연한’ 이 시장을 바로잡고 싶었다. 이대로 가다간 업계가 고사할 거라 확신했다. 이에, 불법 애니메이션 콘텐츠 시장과의 전쟁을 선언하며 4년 넘게 싸움을 벌이고 있다. 동시에 콘텐츠 유저를 위한 큐레이션을 다듬고, 주요 고객 특성을 고려한 수익모델을 설계했다. 특히 이미지와 영상에 기반한 딥러닝 기술을 통해 콘텐츠 내용을 분석한다. 콘텐츠 분석 데이터를 기반으로 더욱 빠르고 정교하게 사용자 취향에 맞는 애니메이션을 추천할 수 있다. 그의 사업 취지에 공감한 여러 투자사는 투자를 단행했고, 여러 기관에서도 협력 중이다.
“좋아하고 잘 하는 일로 힘든 것을 해결할 때마다 희열이 극대화된다”는 김범준 대표를 만나 얘기를 나눠봤다.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을 하다 보니 이 일을 한다…사명감은 ‘덤’
만화 덕후로 알고있다.
어릴 때 대여점에서 빌려보던 만화책이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불법 다운로드 되는 콘텐츠로 변모했다. 문제는 이게 나쁘다는 걸 모르고 꾸준히 소비해왔다는 점이다. 처음 만화가 양산될 때의 상황도 업계에 위기를 가져오는데 일조했다. 양질의 콘텐츠 생산보단 수많은 대여소에 책이 비치되도록 하는 게 목표였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웹툰의 발전이 반가웠다. 웹툰은 만화를 선호하는 시장의 수요도 알았고, 트래픽을 모으는 데도 성공했다. 그렇게 시장의 격변과 변화를 지켜봤다. 아쉬운 건 웹툰 외의 전통 만화 분야였다. 요즘 시대에 맞지 않는 모양새가 아니어서 제대로 소비되지 못하고 있었다. 불법 시장이 활황이라는 건 시장에 반응하는 소비자가 있다는 뜻이다. 이들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만화 관련 통계 데이터를 모으기 시작한 건 이 때문이다.
남들에게 ‘대세’인 사업이 본인에게는 ‘대세’가 아니었다고.
이전 창업 때 이야기다. 해외에서 성공했던 패션 관련 서비스를 개발했었다. 글로벌 트렌드이긴 했지만, 내가 크게 관심을 가졌던 분야는 아니었다. 소비자 니즈에 맞도록 만드는 게 쉽지 않았다. 고객 의견을 반영해 고치고 출시하고, 피벗하고, 반응이 좋지 않으면 다시 바꿨다. 그렇게 2년을 보냈지만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시장이 원하는 것,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 가운데 2개는 확보한 뒤 창업을 해야 한다고 한다. 그 말을 바탕으로 첫 아이템을 돌이켜보면 분명히 시장이 원하는 것이었다. 다만 고객의 니즈를 정확히 아는 것부터 어려웠다. 잘하거나 좋아하는 분야도 아니었고. 결국 깔끔하게 프로덕트를 접기로 했다.
이후 두 번째 아이템인 라프텔을 생각했다. 우리 부부가 좋아하는 건 만화와 여행이었다. 그 중 만화를 더 좋아해서 이 아이템으로 결정했다. 동시에 데이터를 최적화해 사용자에게 만족할 만한 가치를 제공하는 솔루션을 잘 만들 수 있다고 판단했다.
서비스를 만들기 까지 4년이나 걸렸다.
시장의 수요를 구글의 검색엔진 쿼리양을 따져봤다. 한국,일본,미국의 통계를 살펴봤는데 정말 심각했다. 한국은 불법 만화를 소비하는 층이 너무 많았다. 이 영역을 바로잡고 싶었다. 그때 생각한 게 B2B2C 방식이었다. 사용자를 먼저 모으기 위해 추천서비스를 만들어 평가 데이터를 차츰 쌓아갔다. 시작당시 대형 출판사 등에서 우리 사업에 관심이 있었지만 데이터가 부족하다고 피드백을 했다. 소비자 입장에서의 만화 시장 문제만 알았던 거지 비즈니스 생태계를 몰랐었던 거다. 여러가지를 준비해 1년 뒤에 다시 출판사에 찾아갔다. 그런데 이때는 ‘카카오페이지’가 유료화되면서 콘텐츠 제공자가 우리 같은 플랫폼 사업자에게 요구하는 금액이 이전대비 4배가 올라 있었다. 아울러 우리가 시장을 선점하기엔 어려울 것도 같았다.
분야를 세밀하게 파보기로 했다. 애니메이션, 라이트노벨이 눈에 들어왔다. 아울러 해외서 넷플릭스가 각광받고 있었다. 분명히 애니메이션 분야에도 기회가 있겠다 봤다. 라프텔의 현재 모습을 갖추게 된 계기다. 2014년 프로토타입 제작, 16년 하반기에 애니메이션으로 방향성을 다시 잡은 뒤 지난해 스트리밍 서비스를 오픈했다.
#고객이 부담없이 콘텐츠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한다.
작품 큐레이션은 직접 하나.
2014년에 작품추천엔진을 만들었다. 엔진은 보통 2가지로 나뉜다. CF, CBF가 있다. A작품을 좋아하는 이에게 일반적인 다른 작품을 추천해주는 게 CF다. 유튜브, 구글 등 기본적인 검색엔진이 사용하는 방식이다. CBF는 A작품을 좋아한 이에게 비슷한 그림체를 가진 작품을 추천해주는 방식이다. CF보다 세밀해서, 제대로 운영되기 위해선 수작업이 선행돼야 한다. 이 때문에 넷플릭스도 영화전문가를 통해 수작업으로 작품을 필터링 한다. 우리는 카테고리를 17개로 분류했다. 시대상, 시간 및 공간, 주인공의 성격, 중심소재 및 성장서사 등을 구분했다. 거기서 세부적으로 1,700개의 태그를 만들었다. 맵핑 자체는 어려웠지만 의미 있는 데이터로 쌓였다. 그 태그가 작품에 붙어 있으면 장르는 자동생성이 됐기 때문이다. 현재는 새 작품이 나올 때만 작업하면 돼서 비교적 어렵지 않다.
월정액 가격이 저렴해 운영하기 쉽지 않겠다는 사용자 피드백도 보이더라.
그 말을 들으니 감사하다. 오히려 너무 비싼 게 아닐까 걱정했다. 왓챠플레이는 애니메이션을 제외한 모든 콘텐츠가 월 4,900원이다. 넷플릭스는 14,500원만 내면 4명까지 시청이 가능하고. 우리는 애니메이션만 볼 수 있는데 9,900원이다. 현실적으론 최선의 가격이다. 동시상영작을 포함해 각각 대형 CP사 콘텐츠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가격을 낮추기 위해선 꾸준히 노력할 거다. 주요 고객층이 15세~24세여서 과금 하기가 쉽지 않다. 어린 독자의 부담을 낮추고, 상대적으로 소비 역량이 되는 분들께 소장 가치를 주는 콘텐츠를 제공할 수 있도록 고민하고 있다.
콘텐츠도 다양하게 구성하고 싶다. 현재 재패니메이션(일본 애니메이션) 니즈가 가장 높아서 그렇게 운영 중이지만 점차 사업의 규모가 확장 하면 경쟁력 있는 국내 애니메이션 및 미국 작품 등도 들여오고자 한다.
서버유지비, 판권 대여비 등 사업상 큰 지출요소가 있다. 이를 월 과금이나 광고 등으로 충당할 수 있나.
광고는 오히려 돈이 안 된다. 1시간당 시청 가능한 광고 회수를 제한한 뒤 보여주고 받는 비용은 2, 3원 정도다. 여기에 집중하면 일반 유저는 다시 불법 사이트로 갈 확률이 크다. 프로모션을 경험하는 고객에게 라프텔은 주요 소비채널이 아니다. 그래서 프로모션을 생태계 선순환을 위한 방법으로 설계했다. 예를 들면 작품 태깅을 작업할 때 태스크를 잘게 쪼개놓고, 소비자가 그 정보를 입력해놓으면 보상하는 식이다. 고객이 부담 없이 콘텐츠를 접할 수 있도록 고민하고 있다.
서비스 이용 성비는 어떻게 되나.
우리 유저의 비율은 각각 65:35로 남성이 약 두 배 정도 많다. 하지만 결제 비율을 살펴보면 수치는 정반대다. 콘텐츠에 지갑을 여는 비율은 여성독자가 많이 한다는 뜻이다. 그중에 BL콘텐츠에 반응이 높다. 여기에 힘을 실을까도 생각을 했지만, 자칫 회사 정체성이 바뀔 수 있기에 조심하고 있다.
#왓챠와 외형은 같으나 본질은 다르다
현재 라프텔은 왓챠(왓챠플레이)가 걸어온 길을 따라 걷는 모양새다. 콘텐츠의 결이 달라 마케팅은 다르게 접근해야 할텐데.
왓챠플레이는 합리적인 가격대로 대중을 공략한다. 프로모션도 한달 무료 사용 이후마음에 들면 계속 사용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우리의 타깃은 불법서비스를 사용하던 이들이다. 구매전환이 관건이다. 큰 비용으로 대외광고보단 구매 전환 단계에서의 사용자 경험을 어떻게 하면 더 낫게 할 수 있을 지를 고민하고 있다.
스트리밍 서비스를 쓰다가 이탈하는 여러 이유가 있을거다.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
국내선 이용이 가능한데 해외에서 볼 수 없는 불편함들은 모두 기술로 극복이 가능하다. 최근 한 기능을 더 넣었다. 사용자 계정으로 로그인 후 몇일 간 접속하지 않아도 볼 수 있도록 해뒀다. 다만 그 기간이 영원하면 안 되기 때문에 작품을 소장할 수 있도록 하는 모델도 만들어뒀다.
디지털 콘텐츠 판매 사례는 3가지다. SVOD, TVOD, AVOD로, 결제 구독하거나, 단권 결제하거나, 광고를 시청한 뒤 무료로 작품을 감상하는 거다. 넷플릭스와 왓챠플레이는 SVOD 방식이다. 라프텔은 3가지를 모두 취급한다. 라프텔이 그리는 모델은 AVOD를 보며 서비스를 만족한 뒤, 구독하는 것이다. 이후 유저가 좋아하는 작품을 따로 결제할 수 있도록 설계 중이다.
왓챠플레이는 최근 손익분기점을 넘었다. 비슷한 걸음을 걷는 라프텔은 언제쯤 그 때가 올까.
우리가 생각하는 손익분기는 내년 상반기다. 아직 번아웃이 크지 않다. 매출도 순조롭게 오르는 중이다. 다만 프로모션을 집행할 수록 그 순간은 멀어질 거라 본다. 국내 시장만 봤을 때 손익분기점을 맞추는 건 어렵지 않다. 다만 완성형 서비스로 가는 길은 아직 멀다. 당장 내년 목표만 하더라도 국내에서 애니메이션 영역에선 자리잡는 것이고, 그 후엔 동남아 시장으로 진출하는 것이다. 국내에서 자리를 잡은 후 동남아를 진출한다면 북미 시장에 도전할 만한 깜냥은 갖췄을 거라 생각한다.
#’불법’과 전쟁 중…이 세계에서 살아남는 법
불법 콘텐츠는 인터넷이 생긴 이후 없어지지 않는 문제다.
근본적으론 음지의 불법시장을 양지에 올려놓아야 한다. 그게 우리 목표 중 하나다. 우리와 비슷한 성격을 가진 업체라면 초반에 같은위기를 겪었을 거다. 방법은 저마다 다를 텐데, 우린 우리식으로 꾸준히 노력 중이다.
쉽지 않은 사업을 하고 있다. 동력은 어디서 얻나.
살면서 부딪치는 대부분의 일은 깊게 파고들면 다 어렵다. 어려움을 뚫고 나가면 다른 회사가 쉽게 못 오르는 진입장벽을 만드는 거라 본다. 어려운 무언가를 추구하는 이유는 좋아해서다. 문제를 해결하고 나아갈 때가 좋다. 그 과정에서 정부 지원과제 선정, 투자 유치도 있었다. 특히 유저의 격려는 큰 힘이된다.
외부적으로 좋은 요인도 있었다. 웹툰 분야에서 밤토끼가 잡혔고, 최근엔 웹하드 분야서 큰 일이터졌다. 불법시장 문제는 버튼을 누른다고 해서 단번에 해결되긴 어렵다. 그런 점에서 정부차원에서의 움직임이 반갑다.
불법 콘텐츠가 불법인 줄 모르는 소비자에게 한 마디 한다면.
소비하는 사람들이 잘못됐다곤 생각지 않는다. 근본적으로 시스템이 잘못 자리 잡았기 때문에 생겨난 거다. 다만 불법 콘텐츠가 횡횡할 수록 원 저작권자는 고생하고 결국 좋은 콘텐츠는 만들어지지 않을 거다. 이 문제를 깊이 생각해주길 바란다.
라프텔은 좋아하는 작품을 꾸준히 오래 볼 수 있는 가치를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하며 서비스를 만들고 있다. 많은 사랑 부탁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