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자문조직 스맥(SMAG, Startup Management Group)의 전준현 고문은 1991년 한솔교육(이하 한솔)의 부사장을 역임한 인물이다. 한솔이 국내 대표 영유아 교육 기업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함께 이끈 그는, 2013년 돌연 은퇴를 선언한 후 당해 연말부터 초기 스타트업을 돕는 멘토로 변신했다. 놀라운 점은 2년의 자문 기간 동안 한 푼의 보수도 받지 않고 이 일을 한다는 점이다. 그는 어떤 이유로 스타트업을 돕기 시작한 것일까? 자칭 ‘모태 장사꾼’ 전준현 고문을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한솔교육의 부사장으로 있다가, 스타트업을 돕는 멘토로 변신했습니다.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91년도에 한솔 창업 초기 멤버였어요. 나는 영업을 맡았고요. 부도 위기를 몇 번 넘겼지만, 9년 만에 2천억 매출을 내는 기업으로 성장했죠. 창업 당시에 우리가 내렸던 좋은 회사에 대한 정의는 이래요. 첫째, 고객에 끊임없이 가치를 제안한다. 둘째, 수익을 조직원들에게 분배한다. 셋째, 번 돈을 사회에 환원한다. 그렇게 사훈을 만들고 쭉 잘 나갔어요. 그런데 매출이 수천 억대가 되고 기업이 커지다 보니 나 스스로가 변질하더라고요. 그렇게 인생 2막에 대해 고민하다가 밥 버포드의 <하프타임>이라는 책을 읽게 됐어요. 100세 시대에 50살 이후 후반전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고찰한 책이죠. 그렇게 2013년 스맥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한솔교육이 이전에 창업을 한 경험이 있으신가요?
저는 타고난 장사꾼이에요.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아이스크림을 팔았어요. 부모님도 장사를 하셔서, 몸에 배어 있죠. 77년도 서울대 관악 캠퍼스가 생기면서 등산 열풍이 불었는데, 그때 국내 최초로 칡즙을 팔아서 돈을 꽤 벌었어요. 사회운동에 참여해 사업 본부장으로 있으면서, 시위 자금을 벌기도 했죠. 민주항쟁 이후 대통령 직선제로 개헌되고 나서는 한국 첫 정치 광고 회사를 차렸어요. 정치인들을 위해 홍보 대행을 해주는 거였죠. 돈도 많이 벌었는데, 창업 멤버들끼리 갈등이 생겨 접었습니다. 이런 경험들을 통해 장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배웠죠. 이런 노하우를 후학에게 전수하고자 스맥을 만든 겁니다. 조이코퍼레이션, 홈핏, 맘시터 등 20개의 스타트업 자문을 맡아왔어요.
장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건가요. 스타트업들을 만나면서 뭐가 가장 문제라고 생각하셨어요.
비즈니스모델(이하 BM) 문제죠. 초기 스타트업을 만나면 BM을 주먹구구 식으로 만들어놓은 데가 많아요. 마치 자기 인사이트가 대단한 것처럼 착각하면서요. 기발한 아이템보다 중요한 건 돈 버는 구조를 짜는 거예요. 어떤 고객에게 어떤 가치를 제공하고 돈을 받을 거냐에 대한 개념이 미묘하게 틀어져 있는 경우가 많아요. 수수료를 20%만 받는다는 팀한테는 내가 ‘너넨 뭐 먹고 살래’ 그래요.
일단 사람들을 많이 모은 다음에 수익 구조를 만들겠다는 스타트업도 많습니다.
먹고 사는 구조는 처음부터 짜야 해요. 그런 전략은 특수한 비엠이 아니고서는 백전백패입니다. 많은 창업자가 ‘캐시플로우 제로 상태’를 벗어나는 것과 손익분기점(BEP)를 넘기는 것을 구분을 못하더라고요. 손익분기점 넘기는 것은 투자한 모든 자본을 회수하는 걸 말하고, 캐시플로우 제로는 단기적으로 올해 나간 지출과 들어온 수입이 동일한 상태를 말해요. 이 캐시플로우 제로 상태는 빨리 벗어나야 해요. 이게 1차 관문이에요. 자기 피를 만들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어요.
사람들은 어떨 때 지갑을 연다고 보세요.
자신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받을 때죠. 불교에 자리이타(自利利他)라는 말이 있습니다. 풀어서 말하면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의 이익에 복무하라’는 내용이죠. 경쟁자보다 새롭고 좋은 가치를 고객에게 제안해야 합니다. 국내 서비스를 벤치마킹하는 순간 2위 업체 밖에 안 되는 거죠.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보통 초기 스타트업을 만나면 가장 먼저 시작하는 작업은 무엇인가요.
다 똑같아요. CVP(Customer Value Position)를 잡아내는 거예요. 어떤 고객에게 어떤 가치를 주고 돈을 벌 것인가. 이 자료를 만드는 데에만 tjr 달이 걸려요. 여기서 프로덕트와 가격, 팀 빌딩이 결정돼요. B2B 사업 모델이 나왔으면 영업이 중요하니까 그와 관련된 사람과 공동 창업을 해야돼요. B2C라면 마케터가 주요 직무를 맡아야겠죠. 개발이 중요한 사업 모델이면 개발자를 제일 먼저 찾아야 하고요. 창업자가 자신과 같은 역량을 가진 사람들로 초기 멤버를 짜면 팀이 깨져요. 같은 대학, 학과, 회사 친구들끼리 창업하지 말라고 해요. 사업 모델을 보고 그에 필요한 인력을 찾아야 합니다.
선거 광고 회사 차리셨을 때, 공동 창업자들끼리 갈등이 있어서 팀이 깨졌다고 하셨잖아요. 공동 창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좋다고 봐요. 스타트업은 돈이 없잖아요. 비용 절감 측면에서도 좋은 인력을 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공동 창업이죠. 고민을 같이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건 창업자에게도 큰 힘이 되고요. 다만 주주 간 계약서는 꼭 쓰라고 그래요. 과거에는 문서화가 안 되어 있어서 문제가 많았던 거예요.
스타트업이 가장 고민하는 것 중 하나가 마케팅입니다. 전문가로서 해주실 조언이 있나요.
CVP를 잘 찾아내면 됩니다. 어떤 고객을 타깃으로, 어떤 메시지를 내보내야 할까에 대한 행동의 원칙이 서는 것이니까요. 그 뒤에는 움직이기만 하면 됩니다. 예를 들어 홈핏이라는 스타트업은 저랑 작업하면서 ‘검증된 코치’, ‘불만율 제로’라는 CVP를 찾아냈어요. 그다음부터는 홍보든 마케팅이든 끊임없이 이것만 말하는 거예요. 그 팀은 SNS 광고도 딱 이 두 가지 메시지만 가지고 하고 있어요.
근데 2년간 자문을 하시면서 돈을 전혀 안 받으신다고요. 왜 보수를 받지 않으세요?
돈이 없는데 어떻게 받습니까. 오히려 제가 밥을 사줘야 하는 수준이에요. 하지만 딱 캐시플로우 제로 상태를 벗어나면, 멘토링한 스타트업한테 ‘조직원한테 이익 분배 어떻게 할 거냐’, ‘사회 환원 어떻게 할 거냐’ 물어봐요. 거의 따지는 식으로요. 내가 못 만들었던 좋은 회사를 내가 자문한 스타트업은 만들어봤으면 하는 마음에서입니다. 이미 스맥 출신 두 회사는 행동을 시작했어요. 직원들 월급 올려주고, 수익 10% 사회 환원하는 식이죠.
초기 스타트업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시다면요.
맨 처음에는 창업자 혼자서 철저히 비엠을 먼저 고민하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그 뒤에 팀 빌딩도, 마케팅도 이루어져야 하고요.
스맥의 다음 목표는 무엇인가요.
제가 80살 되기 전까지 100개 팀을 돕는 게 목표예요. 기업가들은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을 가지고 있어야 해요. 안 그러면 세상이 복잡해집니다. 앞으로의 세상에서는 사람을 소중히 할 줄 모르는 회사는 살아남지 못할 겁니다. 아무리 기술이 발달해도, 일의 본질은 사람이 하는 것이에요. 인재를 잘 대우해주면서 적재적소에 활용할 줄 아는 곳이 큰 기업으로 성장하게 될 겁니다. 자문한 100개 중 30개는 제가 꿈꿨던 ‘좋은 기업(Good Company)’으로 클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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