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3월 게오르기에바 IMF 총재는 성명서를 통해 “올해 세계 경제가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수준만큼 나쁘거나 그보다 더 악화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코로나19 여파로 올해 전 세계에 리세션(Recession, 경기 침체)가 예상된다면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보다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게오르기에바 총재는 2021년에는 경제가 회복될 것으로 전망하며 “경제적 타격은 심각할 것으로 보이지만 코로나19 확산이 멈추면 더 빠르고 강하게 회복이 이뤄질 것”이라고 부연하기도 했다.
경제 상황이 급변했음에도 각국 스타트업 육성 기조는 달라지지 않았다. 한국을 비롯해 미국, 유럽, 아시아 등 전 세계에서 스타트업이 각국 경제 성장을 견인하는 핵심기업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배경에는 경제적인 패러다임 시프트가 있다. 세계는 아날로그 경제에서 디지털 경제로 전환되고 있으며, 기술의 발달로 인해 4차산업혁명이라는 패러다임 앞에 놓여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기존 산업을 도태시키고 새로운 산업을 부각시키기도 했다.
그렇다면 스타트업이라는 개념이 탄생했고, 세계 최다 유니콘 기업 보유국인 미국 창업 생태계는 현재 어떤 상황일까. 25일 개막한 스타트업 생태계 컨퍼런스 2020의 두 번째 연사는 김범수 세마트랜스링크 인베스트먼트 파트너가 발표자로 나서 미국 스타트업 생태계 현황을 이야기 했다.
세마트랜스링크 인베스트먼트는 지난 2년간 미국에서 16개 회사에 투자했고, 프리시드와 시드 단계 투자에 집중하고 있는 벤처캐피탈이다. 미국에서 투자한 16개 중 12개 기업은 첫 VC 자금이었다. 평균 투자금은 40만 달러 규모였다.
김범수 파트너는 미국 현지에서 영상 발표로 참여했다. 이하 강연내용 정리.

코로나19가 가져온 변화
현재 미국은 코로나19로 파생된 국민 보건 위기를 비롯해 경제위기, 인종간 불평등 문제가 동시에 터진 상황이다. 메르스 사태 중에 촛불집회와 탄책이 동시에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또 연말에 대통령 선거도 예정되어 있다. 개인적으로 미국은 저력이 있는 국가이기에 결국은 좋은 방향으로 흘러갈거라 예상하고 있다.
각자도행해야 하는 미국이 한국보다 더 많이 바뀔 것으로 전망한다. 미국은 의료시스템이 취약하다. 코로나19 상황에서 대규모 검사와 치료가 쉽지 않다. 그리고 사생활 침해에 대한 거부감이 강하다. 확진자가 발견이 되도 주변인 동선 파악이 쉽지 않다. 혼자서 잘 살아남아야 된다는 위기감이 한국보다 더 크다. 한국은 ‘(병에) 걸리면 병원 가면 되지’라고 생각하지만, 미국은 ‘죽을 지경이 아니면 집에서 버텨야 된다’고 생각한다. 또 개인 동선 추적이 어렵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인간에게 추적 가능한 칩을 심기 위한 빌 게이츠의 음모’라는 농담이 나올 정도이다. 그리고 미국에는 백신 불신론자가 다수 존재한다. 백신을 맞을지 안 맞을지 모르겠다라고 답변한 응답자가 전체 31%, 백신을 거부할 것이라 답변한 사람이 20%로 둘을 합치면 절반에 달한다.

젊은 세대의 트라우마가 변화의 동인이 될 거라고 본다. 한국에서 평생직장 개념이 없어진 것이 IMF 때였다. 마찬가지로 미국도 코로나19 이후 명문대 학생이 기숙사에서 쫓겨난다던지, 회사에서 일방적으로 연봉을 삭감하는 전례없는 상황이 나오고 있다. 특히 젊은층은 평소 느낄 수 없었던 상대적 빈곤을 경험하는 시기이다. 이 상황에서 젊은 세대가 무력감을 경험하고 스스로 생존해야 한다는 위기감을 크게 가지게 되었다. 연령대가 높은 사람들은 백신이 나오면 원래 생활로 돌아가겠지만, 큰 트라우마를 겪은 젊은층은 다를 것으로 본다. 장기적으로 볼 때 젊은세대의 트라우마가 변화를 만들어낼 것이라 생각한다.
최근 미국 VC 투자 동향
60년 가까운 역사를 가진 실리콘밸리는 여러번의 위기를 겪었다. 2000년 닷컴 버블, 2008년 금융위기가 있었다. 하지만 결국 극복했다. 위기도 생태계 흐름의 하나라고 보며 패닉에 빠지는 경우는 없다. 이상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투자자 입장에서 보면 이런 불황이 반가울 수도 있다. 지난 10년 동안 실리콘밸리는 극단적으로 스타트업이 갑인 상황이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많은 회사를 만났는데, 사업계획이나 경영태도, 기업 가치 등에서 거품을 빼고 현실적이 되어 오는 경우가 많았다. 건강하게 운영되는 스타트업이 이 위기를 거치고 살아남으면 큰 기업이 될거라 본다. 투자 여력이 있는 VC에게는 이 시기가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10여년 만에 온 바이어 마켓이라 유리한 면이 있는 것이다. 현재는 조심스러운 낙관을 한다. 하지만 얼마나 심한 리세션이 올 것인지가 관건이겠다.

3월까지는 평소와 다름없는 투자추세를 보였지만, 4, 5월월부터는 투자 건수와 금액 모두 감소 추세이다. 6월 수치는 나오지 않았지만 더 줄어들었을거라 본다. 4월까지 VC가 투자한 금액을 펀딩 스테이지 별로 보면, 시리즈A까지 초기 투자는 영향이 없는 모습이다. 기업 가치가 높은 시리즈B ,C는 감소추세이다.

VC펀드 결성 건수와 금액도 5월에 상당히 많이 줄었다. 한 달 수치로 평가할 수는 없겠지만, 불황이 계속되면 VC펀드 결성이 쉽지 않아 보인다. 그리고 펀드 결성도 부익부 빈익빈이 심하다. 브랜드나 실적이 좋은 VC는 불황이라 해도 대형 펀드를 결성할 수 있지만, 신생 펀드는 첫 펀드부터 조성하기 어렵다.
지금 상황에서 큰 반전이 없다면 초기 투자도 결국 줄어들 것이라 본다. 후속 투자 가능성이 낮다면 초기 투자도 위축될 수 밖에 없다. 초기 투자자들도 이미 기업평가 기준이 예전보다 보수적으로 변했다. 현재 VC 투자는 이미 결성된 펀드의 남은 자금으로 하는 중이다. 자금이 소진되고 신규 펀드 결성이 어려워지면 투자 둔화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팬더믹 이후의 유망 산업
포스트코로나 세상에 대한 많은 예측이 언론이나 소셜미디어에 나오고 있다. 최근에는 코로나 사태 이후 유망 업종 맞추기 열풍이 불 정도이다. ‘코로나 이후’라는 말이 합당한지는 잘 모르겠다. 과거를 가지고 미래를 예측하는 시도가 틀린 경우도 많다. 가까운 예로, 1~2월 코로나19가 한국과 중국에서 발발했을 때 미국이 지금처럼 난리가 날 줄은 아무도 예상 못 했다. 내년에 어떻게 바뀔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트랜드와 가능성을 예상해보는 것은 의미가 있겠다.

여러 산업이 코로나19 이후 미래 유망산업으로 이야기가 되고 있다. 개인적으로 재택근무를 3개월 하면서 바뀌면 내 삶이 정상적으로 유지되겠구나라고 생각한 카테고리, ‘원격근무’와 ‘원거리 학습’, ‘원격 의료’ 분야를 살펴보겠다.
원래도 원격근무에 익숙했던 실리콘밸리는 원격근무에 빠르게 대응했다. 구글, 트위터, 페이스북 등 실리콘밸리 테크 대기업들이 재택근무 정책을 발표했다. 짧게는 올해 말에서 직원이 원하면 영원히 추진한다는 기업도 있다. 하지만 회사가 재택근무를 허용한다고 해서 원격근무가 성공하는 건 아니다. 단지 시작일 뿐이다. 이전에도 실리콘밸리 테크기업은 일주일에 하루나 이틀은 집에서 업무를 보는 경우가 많았다. 장기적으로 재택근무를 하는 것은 이야기가 다르다. 구글이나 애플에서 근무하는 젊은 엔지니어들조차도 너무 오랜기간 혼자 일하는 건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 개인의 일하는 스타일이 재택근무에 맞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모든 직원이 원격근무를 한다고 가정했을 때 어떻게 하면 높은 생산성을 유지할 수 있을지, 환경을 조성하는 적합한 원격도구, 툴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본다.
지금까지 나온 대책은 해결책이라기 보다는 임시방편에 가까웠다. 상시 WFH(Work For Hom)의 어려움을 해결할 새로운 제품, 서비스, 사업모델이 필요한 시점이다. 예를들어 부부가 동시에 집에서 일할 때 집중 방해요소, 자녀가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남에 따른 근무시간 중 육아 문제, 동기부여와 소속감 부족, 화상회의 효과가 떨어지는 미팅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해결책, 서비스가 나와야 하고 나올 것으로 예상한다. 여기에 사업기회와 투자기회가 있다고 본다.
교육분야도 변화가 클 것으로 전망한다. 전통 교육 시스템을 다시 생각해야 할 때가 왔다. 미국은 지금 모든 학교가 휴교이고 가을에도 이어질거라 본다. 현재 학생들은 집에서 원격 교육을 받고 있다. 하지만 오프라인 수업을 온라인으로 옮겨놓은 모델이기에 한계가 있다. 지금까지 온라인 교육은 교실수업의 교재나 방과후 공부의 용도였다. 학교 수업 전체를 온라인으로 하도록 만들어진 서비스는 거의 없었다. 교사들도 모든 학생을 원격으로 가르치는 방법이 정립된게 없었다. 현재는 줌 등 서비스를 이용해 하루 한 두시간 정도 화상 미팅을 하고 남는 시간에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공부하고 숙제하는 형태이다. 어린 학생들은 부모가 감독하지 않으면 한 시간 줌 미팅하는 것도 어렵다. 결국 재택근무하는 부모에게 교육 책임이 상당부분 넘어오게 되는 것이고 원격근무의 생산성을 낮추는 요인이 될 것이다. 그래서 집에서 공부하는 경우에도 학생들이 학교에 가는 것과 같은 규칙적인 학습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방식과 서비스가 새로 나올거라 본다. 온오프라인이 섞인 하이브리드 모델에서 학위의 의미와 가치의 재정의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코로나19는 원격진료의 성장을 앞당겼다. 미국에서 원격진료는 병원 왕래가 힘든 노년층을 대상으로 많이 보편화되는 추세이기도 했다. 미국 사람들은 병원에 갔다가 바이러스 옮겨올까봐 꺼리는 경향이 있다.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병원게 가기보다 집에서 해결하고 싶다는 니즈가 있다. 한편으로 병원은 코로나19 때문에 환자 내원을 막는 동안 어떻게 사업을 유지할지에 신경을 쓰고 있다. 환자와 병원의 이해관계가 일치하기에 원격진료가 원활하게 확산되고 있다. 코로나19가 가라 앉아도 이런 추세는 이어질거라 본다.

원격근무가 기본인 환경은 한국 개인과 기업에 기회
미국 시장에 진출하려는 한국 기업이나 개인에게 원격근무 환경은 기회가 될거라 본다. 미국 기업은 비용절감을 위해 해외 아웃소싱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VC 입장에서 보면 그간 회사의 특정 기능을 해외에 대규모로 두는 것은 잘 되면 다행이지만, 실패 가능성도 높다는 인식이 있었다. 하지만 미국에서조차 리모트로 일해야 한다면 한국에 팀을 두는게 지금보다는 매력적인 선택으로 인식될 거라고 생각한다. 이런 환경에서 잘 적응해서 더 많은 기회를 만들어나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원격근무가 기본이 되면 화상회의에서는 시차와 지리적 위치가 단점이 아니게 된다. 아울러 엔지니어링 팀이 한국에 있어도 걱정이 덜할 것이고 상대적인 임금 경쟁력이 두드러질 것이다. 이 환경이 기회가 되려면 노력할 부분도 있다. 우선 영어 의사소통 능력을 향상시켜야 한다. 화상회의나 전화 영어는 대면미팅보다 어렵다. 유창한 영어가 목표가 아니라 어눌하더라도 생각 전달에 집중해야 한다. 그리고 프로젝트 매니지먼트를 미국식으로 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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