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생컨2020] “액셀러레이터 가치평가는 결국 스타트업이 한다”
창업기업을 발굴하여 육성하는 액셀러레이터의 등록․관리 제도가 시작(’16.11.30)된 후, 매년 액셀러레터 수가 늘어나고 있다. 2017년 4개로 시작된 국내 액셀러레이터 수는 2018년 100개, 올해 5월 기준 250여개로 증가했다. 이들 액셀러레이터는 국내 창업 생태계 조성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긍정적인 부분이 있으면 부정적인 부분도 있게 마련이다.
최윤섭 디지털헬스케어파트너스(이하 DHP) 대표가 25일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주최로 개막한 2020 스타트업 생태계 컨퍼런스의 연사로 나서 액셀러레이터의 역할과 고민, 그리고 스타트업 생태계에 전하는 제언을 이야기 했다.
2016년 설립된 DHP는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의 초기 스타트업만을 집중적으로 발굴, 투자, 육성하는 액셀러레이터이다. 포트폴리오사로 쓰리빌리언 (유전체 분석), 닥터다이어리 (당뇨 관리 앱), 메디히어 (원격진료 앱), 마보 (명상 앱), 삼손컴퍼니 (탈모 관리 앱), 펫트너 (반려동물 헬스케어) 등이 있다. 이하 강연내용 전문.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는 왜 존재하는가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는 LP(펀드 출자자)와 VC(벤처캐피탈), 그리고 스타트업과 관계를 맺고 있다. LP로부터는 출자를 받고, 벤처캐피탈과는 후속투자 연계를 한다. 그리고 스타트업은 발굴하고, 투자하고, 육성한다.
스타트업에게 액셀러레이터는 극초기 시행착오를 줄여주는 파트너이다. 부족한 경험, 네트워크, 도메인 전문성 등을 보완해주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팀 세팅, 아이템 선정-보완-검증도 함께한다. 그리고 VC 등 기관투자자의 후속투자 유치까지 버틸 수 있는 시드 자금을 제공한다.
벤처캐피탈에게 액셀러레이터는 검증 비용을 낮춰주는 파트너이다. 신기술, 이머징 마켓 등 VC에게 익숙하지 않은, 혹은 빠르게 바뀌는 분야에서 팀과 기술, 시장에 대한 최소한의 검증을 먼저 진행해서 알려준다. 결과적으로 VC의 자본이 훨씬 효율적으로 투입되는 효과를 내게 해주는 존재인 것이다. 하지만 이런 역할을 제대로 못 한다면, 그저 앞단에서 자릿세를 받는 입도 선매자로 비춰질 수 있다. VC로서는 투자 기회를 선점당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신뢰 프로세스가 필요하다.
LP에게 액셀러레이터는 기본적으로 자본 증식 수단에 하나이다. 기업 LP에게는 새로운 시장에 진입하는 채널이기도 하다. 대기업은 스타트업처럼 새로운 시장에서 학습, 실행이 어렵다. 예외는 있지만, 직접 스타트업에 투자, 멘토링하기도 쉽지 않다. 액셀러레이터는 그 중간에서 가교 역할을 한다.
더 넓게보면 액셀러레이터는 ‘사회적 자본’을 스타트업 씬으로 끌어들이는 역할을 한다. VC가 모험 자본을 스타트업 생태계에 투입하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아직 사회적 자본인 ‘전문성’의 투입은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액셀러레이터는 전문가와 네트워크를 연계시키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액셀러레이터는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믿는다. 단, 그 역할을 제대로한 한다면 말이다.
좋은 액셀러레이터, 나쁜 액셀러레이터는 어떻게 구분하나.
좋은 액셀러레이터를 무엇이라 명확하게 말하기는 어렵다. 이 생태계에서 주인공은 스타트업이고 액셀러레이터는 조연에 불과하다. 아무리 멘토링을 해도 결국 의사결정권은 스타트업에게 있다. 그리고 결과는 쉽게 드러나지만, 과정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아무리 액셀러레이터가 많은 역할을 해도 스타트업의 사업 결과가 좋지 않으면 모두 묻힌다. 그리고 스타트업 성패에 기여한 액셀러레이터의 비중을 측정하기도 어렵다. 정말 액셀러레이터가 도와서 잘된 것인지, 어차피 잘 될 팀이었는지 쉽게 판단하기 어렵다. 아울러 액셀러레이팅의 가치가 모든 스타트업에게 균등할 수는 없다. 모든 스타트업은 근본적으로 개별적인 소우주이기 때문이다.
나쁜 액셀러레이터는 상대적으로 답하기 쉽다. 스타트업 성장에 방해가 되는 것이 그런 유형이다. 그런 곳이 없는 것은 아니다. 투자금 이외의 ‘밸류 애드’가 없는 액셀러레이터도 그런 곳이다. 밥을 많이 사준다고 좋은 액셀러레이터는 아니다. 그리고 투자 활동이 없는 액셀러레이터도 좋다고는 할 수는 없다. 스킨 인 더 게임(Skin in the Game)을 하지 않으면 액셀러레이터의 존재 이유는 희미하다고 본다.
액셀러레이터는 지속가능한 사업모델을 만들 수 있는가.
액셀러레이터도 고민이 많다. 액셀러레이터의 사업모델은 지속가능할까. 이 업은 ROI가 나오는 업일까.
액셀러레이팅에 투입되는 리소스는 매우 크다. 쉽게 보고 뛰어들었다가는 큰 코 다친다. 제대로 액셀러레이팅 하려면 스타트업 초기 팀원 수준으로 기여해야할 수도 있다. 5팀 이상 병행하기는게 쉽지 않다.
그리고 액셀러레이팅의 범위는 예상보다 훨씬 넓고 다양하다. 기본적으로 전문가 멘토링을 해야하고 네트워킹과 데모데이 등을 수행해야 한다. 여기에 대기업과 분쟁 중재, 창업자 간 분쟁 중재, 고소-고발 대응책 마련 등 이슈도 대응해야 한다.
아울러 액셀러레이팅 기간은 예상보다 훨씬 길다. 범위를 정해서 칼로 무 베듯 끊을 수 없는게 이 일이다. 포트폴리오가 늘어날수록 부담도 축적된다. 실례로, 3년 전 투자 팀을 아직까지 멘토링하고 있기도 하다.
투입되는 자원이 크면 리턴(회수)도 클까? 액셀러레이터 사업모델은 투입된 자원보다 더 큰 수익을 올릴 수 있을까?
액셀러레이터의 수익모델로는 우선 투자수익이 있다. 투자한 스타트업의 지분 가치 상승에 따른 수익이다. 이건 시간이 오래 걸린다. 발생 여부, 규모도 불확실하다. 하지만 규모의 경제가 발생하면 큰 수익이 될 수는 있다.
그리고 잘 버텨야 한다. 창업자의 개인적 자산에 의존하거나 외부 투자유치, 최대한 아끼는 자린고비 마인드가 필요한 일이다. 부대 수익을 기대할 수는 있다. 정부 사업을 수주한다거나 대기업 오픈이노베이션 대행, 교육 사업 등이 있다.
장기적으로는 투자 수익을 통해 지속가능한 모델이 만들어져야 한다. 포트폴리오 숫자가 늘어나면 멘토링, 관리에 들어가는 리소스도 비례해서 증가한다. 5천만원 투자하나 5억원을 투자하나 멘토링과 관리 리소스는 동일하다.
포트폴리오 숫자가 많으면 구주 매각 등으로 조기 엑싯(exit)을 노리고 이를 재투자하여 선순환하는 구조로 갈 수 있다. 질이 높으면 펀드 사이즈를 키워서 건당 투자 금액을 늘리고, 팔로온(후속) 투자를 활발하게 할 수 있을거다.
조기 회수, 펀드 사이즈가 가능해지고 커지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액셀러레이터와 VC와 바통을 이어 받는 게임이 되어야 한다. VC가 이어 받을 때, 일부 엑싯을 통해 신뢰에 대한 비용을 지불한다면, 이 투자 수익으로 액셀러레이터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 이런 조기 회수 채널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지만, 지금 현실은 프리 IPO시장이나 세컨더리 펀드에 대해서만 제한적으로 허용되고 있다. 만약 VC가 액셀러레이터의 구주를 인수하는 것을 신주 투자에 준하게 허용한다면 의미있는 변화가 일어날거라 본다.
펀드 사이즈를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개인투자조합의 가장 큰 문제는 개인 비중이 51%에 달한다는 것이다. 개인 출자자만으로는 규모있는 펀드를 만들기가 어렵다. 법인 LP가 돈을 투입한다고 해도 받기 어려운 구조이다. 법인 LP가 100억 원 출자 의향이 있다면, 개인 LP 출자금도 100억을 만들어와야 한다.
벤촉법으로 벤처투자조합 결성이 가능해졌다. 환영할만한 일이다. 향후 액셀러레이터의 펀드 규모는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팔로온 투자도 활성화 될거라 본다. 부업을 하지 않고 본업에 충실하여 지속 가능한 모델 실현에 도움이 될거라 생각한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초기 투자 경쟁
같은 액셀러레이터 뿐만 아니라 VC, 심지어 정부까지 시드와 프리A, 시리즈A 투자에서 경쟁자가 되고있다. VC가 초기 투자로 범위를 확장하고 있고 정부는 유망스타트업 1500 곳에 직접 투자를 한다고 한다. 앞으로 어떻게 역할 분담을 해야할까. 그리고 경쟁자들과 구분 짓는 핵심적인 차이는 무엇일까.
아마도 그건 밸류 애드일거다. 돈 말고 스타트업에게 무엇을 더 줄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스타트업에게 추가적 가치를 주기 위해서는 자문과 네트워크를 제대로 제공해야 한다. 투자금은 특화된 LP로 구성하고 선순환 구조로 운용해야 한다. 추가적 가치에서 경영은 스타트업 경험과 노하우를 전해야 하고 도메인 전문성은 특화된 전문 분야의 멘토링을 제공해야 한다. 우리 이야기를 하자면, DHP는 헬스케어 펀드를 결성했고, 초기 헬스케어 스타트업에게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의료, 규제, 디자인 전문가들이 파트너로 참여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타트업에게 많이 거절당한다. 액셀러레이팅의 가치는 받아본 이후에만 파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스타트업 씬에 갓 들어온 극초기 팀이 좋고, 나쁜 액셀러레이터를 구분할 수 있을까?
중요한 건 스타트업 씬에 갓 들어온 극초기 팀이 좋은 액셀러레이터와 나쁜 액셀러레이터를 구분할 수 있느냐이다. 사실 이건 매우 어렵다. 정보의 비대칭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할까.
액셀러레이팅은 신뢰재라고 할 수 있다. 받아보기 전에는 그 가치를 알 수 없다. 창업자들은 고민할 수 밖에 없다. 액셀러레이터를 서로 비교하기도 어렵다. 둘 이상의 액셀러레이터에게 투자 받는 경우도 드물기 때문이다.
극초기 팀에게겐 액셀러레이터 간 정보의 비대칭이 존재한다. 액셀러레이터의 평판에 대해 알기 어렵고, 합리적인 투자 조건에 대해서도 파악하기 어렵다. 그래서 그냥 유명한 곳, 밸류 높게 쳐주는 곳, 팁스 선정 가능성이 높은 곳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DHP는 “우리가 이야기 하는 것들이 맞는지 안 맞는지는 우리 포트폴리오 대표님들께 물어보고 결정하세요”라고 한다. 사실 그게 유일한 답변일거다. 액셀러레이팅의 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 유일한 주체는 기존 포트폴리오 대표들이다. 결국 서비스의 가치는 고객이 결정한다.
팁스 패러독스, 퀄리티 콘트롤, 빈익빈 부익부
팁스는 극복하기 어려운 언페어 어드벤티지이다. 투자사 입장에서는 가장 효과적인 투자 협상 카드이기도 하다. 팁스 운영사가 아닌 DHP가 거절 당하는 대표적인 이유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중소형 액셀러레이터에게는 팁스 운영사 선정 문턱이 너무 높다. 최소 요건인 500제곱미더 보육공간 확보는 쉬운 일이 아니다. 이제 컨소시움 파트너는 T/O도 없다. 이게 액셀러레이터도 빈익빈 부익부를 야기시킨다. 대규모 투자사가 들어가 팁스 운영사가 되면 투자 경쟁 우위을 점하게 되고, 결국 더 많은 수익으로 이어진다.
물론 순기능도 있다. 좋은 투자사를 선별하는 기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팁스 운영사치고 이상한 곳은 적다. 오히려 팁스 운영사 선정 기준을 더 높여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액셀러레이터 300개 시대(5/31일 기준 249개)를 앞두고 있다. 그 많은 액셀러레이터는 뭘 하고 있을까.
액셀러레이터가 250여 개에 달한다. 퀄리티 컨트롤이 필요한 시점이다. 250여 개 중, 체감적으로 시장에서 활동하는 곳은 극히 일부이다. 국가가 등록, 관리할 필요성은 차치하더라도 등록 요건은 과연 적정한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 등록 요건을 갖췄다고 해서 액셀러레이터의 자격이 있는지는 다른 사인일거다.
등록 요건 뿐만 아니라, 유지 요건도 필요하다고 본다. 시드 투자 등 액셀러레이터의 최소한의 활동도 없는 곳도 많다. 물론 활동이라는 것은 단순히 정량적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을거다. 중요한 것은 스타트업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QC가 되지 않으면, 동종(AC) 및 인접(VC) 업계뿐 아니라 결국 스타트업에게 피해가 간다. 업계 내 자성 및 자정 작용도 필요하다.
생태계에 드리는 몇 가지 제언
액셀러레이터의 지속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제도적 정비가 필요하다. 규모있는 펀드의 조성이 있어야 한다. 개인 투자조합의 개인 출자 비중이 완화되고, 해외 투자 가능하게 해야한다. 그리고 조기 엑싯을 위한 제도적 정비도 있어야 된다고 본다. VC가 액셀러레이터 구주 인수를 통한 바통 이어 받기가 활성화 되어야 한다.
팁스 운영사 선정 기준의 다변화가 필요하다. 중소형 액셀러레이터도 팁스를 운영할 수 있다고 본다. 규모에 상관없이 정말 잘 할 수 잇는 운영사를 선정해야 한다. 그 기준 마련이 있어야 한다.
액셀러레이터 업계의 반성과 자정이 필요하다. 극초기 창업자와 정보 비대칭이 큰 만큼 스스로 윤리와 원칙 준수가 필요하다. 업계 내부에서의 자정작용을 어떻게 만들지도 고민해야 한다.
어려움과 딜레마가 있지만, 액셀러레이터는 생태계에 꼭 필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응원과 관심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