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선 전화기를 쓰면 벌금 내야 하는 시대가 온다?
며칠전 난데없이 사람들을 화들짝 놀라게 한 사건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900MHz 대역의 무선 전화기를 사용하면 앞으로 과태료를 물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것. 2014년부터는 900Mhz 주파수 대역은 KT에서 사용해야 하고, 다른 기기에서 사용할 경우 최대 200만원의 과태료가 나올지도 모른다는 것(전파법이 이렇게 엄격합니다.).
간단히 상황을 정리하면 이러습니다. 2006년경 정부는 무선 전화기 디지털 화를 위해 주파수를 다시 분배하기로 했습니다. 가정용 무선 전화기로 많이 쓰이는 900Mhz대 전화기는 통화에는 문제가 없지만 디지털 서비스를 이용하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전환후 남게될 주파수는 LTE 서비스를 대비해서 KT가 사들였습니다.
900Mhz 무선 전화기는 우리가 아는 일반 가정용 안테나 달린 무선 전화기입니다. 2006년 정부 발표때도 2000~2006년까지 약 660만대가 팔렸고, 미래부 자료에 따르면 2003년부터 2012년까지 560만대가 팔린 물건입니다. 지금도 많이 쓰이냐구요? 그렇습니다. 젊은 사람들이야 스마트폰이 있으니 많이 쓰지 않지만, 나이 드신 분들은 여전히 많이 사용하시고, 사용여부를 떠나 집전화를 없애지 않은 집은 하나 정도 씩은 갖추고 있는 물건입니다.
음성 통화를 위해서는 아직도 훌륭한 물건이고, 여기저기 옮겨다니며 전화를 해도 끊김이 없습니다. 마루에 본체를 놔두고 방에서 전화를 하기에도 좋습니다. 거기에 고장이라도 나지 않는 이상, 집전화를 자주 바꾸는 사람은 꽤 드물 겁니다. 미래부 주장으론 10만대 정도만 남아있을거라고 하지만, 글쎄요?
자- 문제는 여기입니다. 정부는 왜 900Mhz 무선 전화기에 대한 전환 조치를 행하지 않았을까요? 아날로그 방송->디지털 방송 이전은 어마어마하게 홍보하고 돈들여서 바꿔주기도 하면서, 왜 무선 전화기는 그냥 내버려둔채 지금까지 오게 만들었을까요? 이유는 어쩌면 간단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까, 이게 큰 문제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
이미 정부는 2006년에 발표한 보도자료에서 해당 무선 전화기를 전화기 수명이 끝날 때까지 사용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900Mhz 전화기도 판매가 되고는 있지만, 지금 팔리는 대부분의 무선 전화기는 새로운 Ghz 대역의 표준에 맞춰진 무선 전화기입니다. 설령 900Mhz 전화기를 계속 사용한다고 해도, 정부가 시범 케이스 삼아서 과태료를 물릴 가능성은 크지 않습니다. 법에 따르면 불법 통신 기기가 되기 때문에 물려야 하긴 하지만-
… 그랬다가 그 뒷감당을 누가 할까요? (* 과태료 부과 안한다고 공식발표했네요(링크))
아마 초기에 정부는 900Mhz 전화기가 자연도태되길 바랬을 겁니다. 2006년이라면,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지요. 이때면 3G 서비스도 시작되기 전입니다. 900Mhz 대역은 이동통신사 입장에서도, LTE-A 서비스가 시작되기 전엔 그냥 별 생각이 없던 영역이었습니다. 게다가 전환 작업은 비용이 꽤 들어가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 이후 상황이 급변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이 900Mhz 문제를 제대로 정리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KT가 주파수 경매에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 읍소하지 않았다면, 아직도 900Mhz 대역 문제는 그냥 이슈가 되지 못했을 겁니다. 방통위는 알면서도 그냥 방치하는 자세였고, 그 뒤를 이은 미래부 역시 마찬가지. 조만간 입장을 결정한다고는 하는데… 과연 어떻게 될까요? KT와 LGU+ 입장이 대립하고 있어서 말입니다(링크)
이미 세상은, 이용 주파수 변경 작업 하나에도 엄청난 알력다툼이 수반될 수 밖에 없는 지경에 처해 있습니다. 사실 주파수는 꽤 특수한 공공재라서, 앞으로도 이와 비슷한 논쟁은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유선 세상에서 무선 세상으로 이행하기 위한 전환과정이기 때문에 어쩔 수는 없지만, 이에 대해선 앞으로 계속 주목해서 지켜볼 수 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어, 저도 전혀 몰랐지만, 이번에 900Mhz 무선 전화기만 피(?)를 보는 것이 아닙니다. 노래방에서 흔히 사용되는 무선 마이크 이용 주파수도 700Mhz 대에서 900Mhz 로 몽땅 바꿔야 해서, 여기저기 말이 많습니다(링크). 정책 결정 과정에서 실 사용자들이 무시되고, 결정된 뒤에서도 제대로 홍보도 하지 않고, 전환을 위한 비용도 들이기 싫어한 탓입니다.
…이런 과정에서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이 떠안습니다.
그냥 무선 전화기를 샀고, 무선 마이크를 샀을 뿐인데 순식간에 불법 무선 기기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될 판입니다. 이동통신사들의 알력다툼이라 생각했는데 우리 삶에도 영향을 끼칩니다. 앞으로도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기 위해서, 두 눈 크게 뜨고 방송/주파수 정책의 향방을 지켜봐야할 이유가 생겼습니다.
살다살다, 일반인들이 주파수 정책에까지 관심을 가져야할 이유가 생기다니, 어떤 면에선 조금 황당하네요. 이런 건 해외 판매되는 스마트폰을 한국에서도 쓸 수 있을까 없을까 고려할 때나 생각해볼 영역이라 생각했는데.. 거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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